염포 (전한)
1. 개요
염포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서역도호와 집금오, 우장군을 역임했다. 그는 오손의 분쟁에 개입하여 안일을 지원하고, 금성 태수를 거쳐 중앙 관료로 진출했다. 영시 3년 집금오, 영시 4년에 우장군이 되었으며, 성제의 황태자 결정에 정도왕을 지지했다. 순우장의 숙청 이후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으며, 아들 염단은 신나라에서 장군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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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전한의 재상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전한의 재상 -
병천
병천은 전한 초 유방을 도와 진나라 평정과 항우 격파에 공을 세워 고원후에 봉해졌고, 중위를 지낸 인물이다.
2. 생애
오손의 소곤미(小昆彌) 오취도가 죽고 아들 부리가 뒤를 이었는데, 동생 일이에게 피살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자를 보내 부리의 아들 안일을 소곤미로 세우려 하였고, 일이는 달아나 강거에서 사자를 가로막았다. 안일은 귀인(貴人) 고막닉(姑莫匿) 등 세 명을 시켜 거짓으로 일이를 따르는 척하다가 찔러 죽였고, 서역도호 염포는 고막닉 등에게 황금 20근·비단 3백 필을 하사하였다.
이후 금성태수를 지내다가 조정에 들어와 집금오·우장군을 역임하였다. 영시 3년(기원전 14년)에 금성군 태수에서 집금오로 옮겨, 기원전 13년(영시 4년)에 우장군이 되었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 아들이 없었던 성제는 황태자를 조카 정도왕과 아우 중산왕 중에서 정하려 하였다. 염포는 승상 적방진, 대사마표기장군 왕근과 함께 정도왕을 지지하였고, 곧 정도왕이 황태자가 되었다. 같은 해, 외척으로서 세도를 부린 위위 순우장이 주살되었다. 순우장과 가까이 지냈던 염포는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다.
아들 염단은 신나라에서 장군을 지냈다.
2.1. 서역도호 시절
오손의 소곤미(小昆彌) 오취도가 죽고 아들 부리가 뒤를 이었는데, 동생 일이에게 피살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자를 보내 부리의 아들 안일을 소곤미로 세우려 하였고, 일이는 달아나 강거에서 사자를 가로막았다. 안일은 귀인(貴人) 고막닉(姑莫匿) 등 세 명을 시켜 거짓으로 일이를 따르는 척하다가 찔러 죽였고, 서역도호 염포는 고막닉 등에게 황금 20근·비단 3백 필을 하사하였다.
염포는 서역도호를 역임했으며, 그 은혜와 신뢰가 칭찬을 받았다. 기원전 30년 ~ 기원전 28년에 전한의 서역도호를 역임했다.
2.2. 중앙 관료 시절
오손의 소곤미(小昆彌) 오취도가 죽고 아들 부리가 뒤를 이었는데, 동생 일이에게 피살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자를 보내 부리의 아들 안일을 소곤미로 세우려 하였고, 일이는 달아나 강거에서 사자를 가로막았다. 안일은 귀인(貴人) 고막닉(姑莫匿) 등 세 명을 시켜 거짓으로 일이를 따르는 척하다가 찔러 죽였고, 서역도호 염포는 고막닉 등에게 황금 20근·비단 3백 필을 하사하였다.
이후 금성태수를 지내다가 조정에 들어와 집금오·우장군을 역임하였다. 영시 3년(기원전 14년)에 금성군 태수에서 집금오로 옮겨, 기원전 13년(영시 4년)에 우장군이 되었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 아들이 없었던 성제는 황태자를 조카 정도왕과 아우 중산왕 중에서 정하려 하였다. 염포는 승상 적방진, 대사마표기장군 왕근과 함께 정도왕을 지지하였고, 곧 정도왕이 황태자가 되었다. 같은 해, 외척으로서 세도를 부린 위위 순우장이 주살되었다. 순우장과 가까이 지냈던 염포는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다.
아들 염단은 신나라에서 장군을 지냈다.
2.3. 몰락
오손의 소곤미(小昆彌) 오취도가 죽고 아들 부리가 뒤를 이었는데, 동생 일이에게 피살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자를 보내 부리의 아들 안일을 소곤미로 세우려 하였고, 일이는 달아나 강거에서 사자를 가로막았다. 안일은 귀인(貴人) 고막닉(姑莫匿) 등 세 명을 시켜 거짓으로 일이를 따르는 척하다가 찔러 죽였고, 서역도호 염포는 고막닉 등에게 황금 20근·비단 3백 필을 하사하였다.
이후 금성태수를 지내다가 조정에 들어와 집금오·우장군을 역임하였다. 영시 3년(기원전 14년)에 금성군 태수에서 집금오로 옮겨, 영시 4년(기원전 13년)에 우장군이 되었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 아들이 없었던 성제는 황태자를 조카 정도왕과 아우 중산왕 중에서 정하려 하였다. 염포는 승상 적방진·대사마표기장군 왕근과 함께 정도왕을 지지하였고, 곧 정도왕이 황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외척으로서 세도를 부린 위위 순우장이 주살되었고, 순우장과 가까이 지냈던 염포는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다.
아들 염단은 신나라에서 장군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