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군 (1828년)
1. 개요
영평군 이경응은 조선 철종의 이복 형으로, 전계대원군의 서자이자 고종 즉위 후 숙위대장, 영돈녕원사 등을 역임했다. 1828년에 태어나 1902년에 사망했으며, 당뇨병으로 고생했다. 그는 후사가 없어 양자들을 들였으며, 1868년에는 덕흥대원군의 후손들에게 내려진 항렬자에 따라 이름을 이경응으로 개명했다. 1894년에는 영종정경부사에 제수되었고, 1902년 사망 후 효정의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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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 이경응 (李景應) |
|---|---|
| 휘 (로마자 표기) | I Gyeongeung |
| 자 | 명숙(明叔) |
| 호 | 춘파(春坡), 완시옹(玩市翁) |
| 시호 | 효정(孝貞) |
| 시호 (로마자 표기) | Hyojeong |
| 본관 | 전주 이씨 |
| 생몰 기간 | 1828년 2월 7일 ~ 1901년 2월 11일(음력 1900년 12월 23일) |
| 아버지 | 남연군 이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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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군부인 여흥 민씨 |
| 부인 | 군부인 달성 서씨 |
| 자녀 | 1남 고종 |
| 영평군 | (永平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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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음력) | 음력 1900년 12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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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동궁 -
이해승
이해승은 조선 선조의 후손으로 일제강점기에 후작 작위를 받고 친일 행위를 하였으며,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으나 풀려났고 6·25 전쟁 중 납북되었다. -
누동궁 -
청안군 (1851년)
청안군 이재순은 음서로 관직에 나선 후 종친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 춘생문 사건을 주도하기도 했으나 실패하고 궁내부 대신 등을 역임하며 고종을 보좌했으며 사후 문충이라는 시호를 받은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관료이다. -
전계대원군 -
이성득 (조선 왕족)
조선 왕족 이성득은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서자로, 왕족으로서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이복 형 관련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 생활 중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관련 기록마저 삭제되어 그의 삶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
전계대원군 -
경은군
장조의 서장남 은언군의 증손인 경은군 이재성은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고종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며, 독립협회 해산 후 연초제조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경운궁 담장 축조에 참여한 공로로 경은군에 봉작되었다. -
강화군 출신 -
조봉암
조봉암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농림부 장관,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정치인으로,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당했으나 2011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강화군 출신 -
권율
조선 중기의 문관이자 무장인 권율은 안동 권씨 출신으로,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에서 승리하는 등 활약하여 도원수에 올랐으며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는 데에도 기여,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된 인물이다.
2. 생애
영평군 이경응(李景應, 1828년 ~ 1902년)은 이광의 후궁 이씨에게서 태어난 둘째 아들로, 처음 이름은 이원희(李元羲)였다. 1844년, 민진용의 모략으로 동복 아우(훗날 철종)와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1849년 철종이 즉위하면서 이원희는 이욱(李昱)으로 개명하고 영평군에 봉해졌다. 철종 재위 기간 동안 영평군은 두 번 결혼했지만 자녀를 얻지 못했다.
1864년 철종이 사망하고 고종이 즉위한 후, 정예대원군의 사후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영평군은 이순달(훗날 이재순)을 양자로 들였다. 1868년, 덕흥대원군 후손에게 내려진 통일된 항렬자 사용 명령에 따라 이경응(李景應)으로 개명했다.
그는 1872년 영혜옹주(철종의 딸)와 1893년 의화군 이강(고종의 다섯째 아들)의 혼례를 주관했다.
양자 이재순 역시 자녀가 없어 소현세자의 후손 이한용을 양자로 들였으나, 이한용은 1890년에 요절했다. 1897년, 영평군은 먼 친척 이인봉(훗날 이해승)을 손자의 상속자로 삼았고, 고종이 이를 승인했다. 이해승은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등록되었지만, 실제로는 월산대군의 후손으로 영평군과 13촌 관계였다.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이재순은 청안군(淸安君)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영평군은 1902년 2월 1일에 73세로 사망했다. 청안군은 1904년에 사망했고, 이해승은 1910년에 청풍군(淸風君)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2.1. 젊은 시절
이경응은 1828년(순조 28) 음력 7월 20일 전계대원군 이광(全溪大院君 李㼅)과 그의 첩 이씨(李氏)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이름은 욱(昱)이다. 아버지 전계대원군은 은언군의 서자였고, 은언군은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의 천주교 순교사건, 아들 상계군 추대 사건 등에 연좌되어 이경응은 왕족의 작위를 받지 못했다.
이복 형이자 유일한 적형인 이원경은 민진용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민진용은 노론 중신 민응수(閔應洙)의 후손이었지만 오랫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해 몰락했고, 이광과 안면이 있던 이원덕 등과 불만세력을 규합하고 이원경을 추대하려 했다. 이욱은 이복 동생 이원범(훗날 철종)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복 형 원경은 후손이 없었다. 이경응은 서자였지만, 훗날 아버지 이광의 상속자가 없어 상속자로 추인되었다. 그는 한성부 홍은동 백련사 근처에서 살았다고 한다.
2.2. 전계궁 봉사손
1849년 (철종 즉위년) 철종이 즉위하면서 영평군은 복권되었고, 능령(陵令) 등의 벼슬을 받았다. 철종은 생부와 생모를 대원군 및 부대부인으로 추봉하고 전계궁(전계대원군묘)을 창건하였으나, 제사를 받들 사람이 없었다. 이에 이씨부인 소생 서자였던 영평군을 성서탈적시켜 사자(嗣子)로 세우고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2.3. 고종 즉위 이후
1863년(고종 즉위년) 12월 8일 종척 집사(宗戚執事)에 임명되어 대전관(代奠官)이 되었다. 1864년(고종 1) 2월 5일 애책문 서사관(哀冊文書寫官)이 되고, 2월 7일 여본궁제조(與本宮提調)를 거쳐 4월 11일 다시 종척 집사가 되었다. 9월 19일 고종은 영평군의 양자를 들이라는 특명을 내렸다. 고종은 "영평군(永平君)은 전계 대원군(全溪大院阮)의 사자(嗣子)인데 몸에 고질적인 병이 있어 대를 이을 가망이 없다. 중요한 위치에 있어 계후(繼後)하는 절차를 조금이라도 미룰 수 없으니 종부(宗府)로 하여금 속히 의정(議定)하여 들이게 하라."라고 전교하였다.
같은 해 종친부(宗親府)는 영평군(永平君)의 후사(後嗣)로 경창군(慶昌君)의 9대손 이신휘(李愼徽)의 아들 이순달(李順達)을 결정하여 보고했고, 고종은 이를 윤허하였다. 12월 8일 혼전 향관(魂殿享官)에 임명되었다.
1868년(고종 5) 3월 6일 이름을 욱(昱)에서 경응(景應)으로 개명하였다.
1872년(고종 9) 2월 9일 영혜옹주(永惠翁主)의 길례(吉禮) 때 주혼 당상(主婚 堂上)이 되었고, 옹주의 혼례 때 전안(奠雁)은 영평군(永平君)의 집에서 치렀다.
1893년(고종 30) 의화군(고종의 다섯째 아들)의 길례 때 혼인을 주관하도록 지시받았다.
1894년(고종 31) 영종정경부사(領宗正卿府事)에 제수되었다.
2.4. 생애 후반
1890년(고종 27) 종척 집사(宗戚執事)에 임명되었다. 1895년(고종 32)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으로 재임 중 종척 집사에 임명되어 안에서 곡(哭)하는 반열에 참가하였다. 1896년(고종 33, 건양 1)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에 임용되고, 칙임관(勅任官) 1등에 서임(敍任)되었다.
1900년 음력 3월부터 당뇨병을 앓다가 1902년(광무 6) 2월 1일(1901년 음력 12월 23일) 향년 75세로 별세하였다. 고종황제는 영평군의 장례를 후하게 치르도록 하고, 시호를 의논하여 내리도록 하였다.
3. 사후
그의 시신은 경기도 포천군 주내면 선단4리(현 포천시 포천동 선단4통) 산 11번지 전계대원군 묘소 내에 안장되었다. 후일 청안군 이재순 묘가 조성되고, 왕방산에 있던 이원경의 묘와 1964년 양주군 홍제원 답동리에 있던 풍선군 묘도 묘역 근처로 이장하였다. 2015년 이후 그의 묘소는 화장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1903년(광무 7) 10월 17일 효정(孝貞)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철종의 이복 형이었던 그는 1901년까지 생존했지만 아들을 얻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양자를 들였는데, 그 양자 역시 아들이 없어 결국 생전에 아들, 손자, 증손까지 모두 양자를 입양하여 가계를 이어갔다.
선조의 아홉째 서자 경창군의 9대손 이휘응의 아들 이재순을 양자로 들여 청안군에 봉했다. 그러나 청안군도 아들이 없어, 결국 소현세자의 8대손인 이재철의 아들 이한용(李漢鎔)을 양자로 들여 풍선군에 봉작하였다. 그러나 풍선군 이한용은 양손자로 입양된 지 얼마 안 돼 1890년 15세를 일기로 자녀 없이 사망한다. 결국 덕흥대원군의 후손 이건용(建鎔)의 아들 이해승(海昇)을 다시 풍선군의 양자이자 영평군의 양증손자로 입양하여 청풍군에 봉하였다.
4. 가족 관계
영평군은 다른 왕족들과 달리 사후가 아닌 생전에 양자와 양손자, 양증손자를 모두 입양했다.
* 정부인: 정경부인 신씨(1832~1857), 신재준(申在準)의 딸.
* 계부인: 정경부인 김씨(1839~1921), 김재원(金載元)의 딸.
* 딸: 숙부인 전주 이씨(1866~1913)
* 사위: 선산군수 황연수(1866~1949), 창원 황씨
* 외손자: 황규성(黃葵性, 1893~1949)
* 양자: 청안군 이재순(1851~1904) - 선조의 서자 경창군의 후손이다.
* 양손자: 풍선군 이한용(1875~1890) - 소현세자의 후손이다.
* 양증손자: 청풍군 이해승(1890~미상) -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일제강점기에 후작 작위를 받았다. 한국 전쟁 때 조선인민군에 체포되어 실종되었다.
4.1. 가계도
|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 조부 | 은언군 이인 | 1754년 | 1801년 | |
| 조모 | 상산군부인 송씨 | 1753년 | 1801년 | |
| 생조모 | 전산군부인 이씨 | 1764년 | 1819년 | |
| 아버지 | 전계대원군 이광 | 1785년 | 1841년 | |
| 어머니 | 완양부대부인 최씨 | 1804년 | 1840년 | |
| 이복형 | 회평군 이원경 | 1827년 | 1844년 | |
| (이복형의) 어머니 | 용성부대부인 염씨 | 1793년 | 1863년 | |
| 이복동생 | 철종 | 1831년 | 1864년 | 조선 제25대 왕 (재위: 1849년 ~ 1864년) |
| 친어머니 | 이씨 | |||
| 정부인 | 정경부인 신씨 | 1832년 | 1857년 | 신재준의 딸 |
| 계부인 | 정경부인 김씨 | 1839년 | 1921년 | 김재원의 딸 |
| 딸 | 숙부인 전주 이씨 | 1866년 | 1913년 | |
| 사위 | 선산군수 황연수 | 1866년 | 1949년 | 창원 황씨 |
| 외손자 | 황규성 | 1893년 | 1949년 | |
| 양자 | 청안군 이재순 | 1851년 | 1904년 | |
| 양손자 | 풍선군 이한용 | 1875년 | 1890년 | |
| 양증손자 | 청풍군 이해승 | 1890년 |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