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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하마 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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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노하마 조선소는 1878년 영국인 에드워드 찰스 커비가 설립한 일본 최초의 근대적 조선소 중 하나이다. 1882년 일본 최초의 철제 증기선 다이코마루를 건조했으며, 일본 해군 최초의 철제 전함 야마토(초대)를 수주했으나, 자금난과 커비의 자살로 인해 해군에 인수되었다. 이후 구레 진수부 관할로 운영되다 구레 해군 공창으로 통합되어 폐쇄되었다.

2. 역사

1868년 에드워드 찰스 커비가 다른 2명과 함께 '오노하마 철공소'를 설립하여 목조 증기선 등을 만들었으며, 1878년 커비가 혼자 독립하면서 '오노하마 조선소'가 되었다. 1882년에는 일본 최초의 철제 증기선 다이코마루를 건조했다. 에드워드 해즐렛 헌터가 설립한 '오사카 철공소'(이후 히타치 조선)와 더불어 일본 근대 조선소의 여명기에 큰 역할을 했다.

커비는 사업을 확장하여 1883년 해군으로부터 일본 최초의 철제 군함 야마토 건조 계약을 맺었으나, 자금난과 부품 수급 지연, 커비의 자살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884년 해군이 조선소를 인수하여 관영 조선소로 운영하였다. 구레 진수부 개설 후에는 구레 진수부 관할이 되었다. 구레 조선부(이후 구레 해군 공창)가 궤도에 오르자 설비는 구레로 이전되었고, 1893년 "오노하마 조선소"라는 이름은 폐지되었으며, 1895년 완전히 폐쇄되었다.

2. 1. 설립과 초기 (1868년 ~ 1883년)

1868년 에드워드 찰스 커비는 다른 두 명과 함께 '오노하마 철공소'를 설립하여 목조 증기선 등을 만들었다. 1878년 커비는 혼자 독립하여 '오노하마 조선소'를 설립했다. 1882년에는 일본 최초의 철제 증기선 다이코마루를 건조하여, 에드워드 해즐렛 헌터가 설립한 '오사카 철공소'(이후 히타치 조선)와 함께 일본 근대 조선소의 여명기에 큰 역할을 했다.

커비는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철선 건조 실적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1883년 해군으로부터 일본 최초의 철제 군함 야마토 수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건조 과정에서 여러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1884년 해군이 조선소를 인수하여 관영 조선소로 운영하게 되었다.

2. 1. 1. 에드워드 찰스 커비

에도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 초기에 영국인 출신 상인 에드워드 찰스 커비는 일본이 쇄국 정책을 끝내고 외국 무역을 개방한 직후인 1865년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는 요코하마의 거류지에 잡화점인 커비 앤 컴퍼니(Kirby & Co)를 설립했고, 이후 고베에 지점을 열었다.[1]

1869년, 커비는 로버트 허긴, 존 테일러와 함께 거류지에서 약 약 1.61km 떨어진 이쿠타 강변에 고베 철공소를 설립했다. 이곳에는 주조 공장, 대장간, 그리고 깊은 수심의 부두가 있었다.[1]

1878년, 커비는 파트너들의 지분을 인수하고 오노하마 조선소를 설립했으며, 카라치에서 동생 알프레드를 엔지니어링 이사로 데려왔다. 이 회사는 수리 작업, 해양 구조, 소형 선박 건조에 종사했다.[1]

2. 1. 2. 야마토 (초대) 건조

커비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하여,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철선 건조 실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결과, 1883년 2월 23일 해군으로부터 일본 최초의 철제 전함 '야마토'(초대) 건조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3] 그러나 건조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 자금난: 건조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었다.[3]
  • 부품 수급 지연: 1883년 10월, 영국에 주문한 부품이 현지 파업의 영향으로 늦게 도착했다.[3]
  • 커비의 자살: 1883년 12월, 공사 기간 연기 신청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자금 사정이 막히면서 커비가 자살했다.[3]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야마토' 건조는 난항을 겪었지만, 1884년 해군이 오노하마 조선소를 인수하여 관영 조선소로 운영하면서 건조가 계속될 수 있었다.[4]

2. 2. 해군 인수와 운영 (1884년 ~ 1895년)

커비는 사업을 확장하여, 당시 일본 유일의 철선 건조 실적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1883년 2월 23일 해군으로부터 일본 최초의 철제 전함 '야마토'(초대) 건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건조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0월에 영국에 주문한 부품이 파업으로 늦게 도착했고, 공사 기간 연기 신청이 이루어진 12월에는 자금난으로 커비가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3]

'야마토' 건조 중이었기 때문에 1884년 해군이 오노하마 조선소를 인수하여 관영 조선소로 운영하였다. 구레 진수부 개설 후에는 구레 진수부 관할이 되었다.

2. 2. 1. 구레 해군 공창으로의 통합

1884년(메이지 17년) 해군이 오노하마 조선소를 인수하여 관영 조선소로 존속시켰으며, 구레 진수부 개설 후에는 그 관할로 지정되었다.[4] 루이-에밀 베르탱은 조선소가 어뢰정 생산에 집중할 것을 권고했다. 1890년 구레 해군 공창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구레 조선부(이후 구레 해군 공창)가 궤도에 오르자 설비는 구레로 이전되었고[4], 1893년 "오노하마 조선소"라는 이름은 폐지되었으며, 1895년 완전히 폐쇄되었다.

3. 주요 건조 함정

오노하마 조선소에서는 슬루프 야마토(초대), 포함 마야, 아카기, 오시마, 연습함 간주, 만주 등을 건조했다.

3. 1. 군함

3. 2. 연습함

간주, 만주

4. 평가 및 의의

오노하마 조선소는 에도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 초기에 걸쳐 일본 근대 조선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서구의 선진 기술 도입과 일본 제국 해군력 강화에 기여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오노하마 조선소는 일본 최초의 상업용 철제 리브 증기선인 다이이치 타이코 마루|第一太湖丸|일본어를 건조하여 비와호 운항에 기여했다.[1] 이는 일본 내륙 수운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가쓰라기급 군함 야마토를 건조하여 일본 해군력 증강에도 기여했다.[1]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관점에서 보면, 오노하마 조선소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기여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오노하마 조선소에서 건조된 군함들은 청일 전쟁러일 전쟁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으며, 이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결론적으로, 오노하마 조선소는 일본 근대 조선 산업 발전에 기여한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제국주의적 팽창의 도구로 활용된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조

[1] 논문 官営軍需工場の技術移転に果たした外国人経営企業の役割 : 神戸鉄工所、小野浜造船所を例として http://id.nii.ac.jp/[...] 政治経済史学会 2004-10
[2] 웹사이트 展示会「近代神戸の足跡」造船業 http://lib.kobe-u.ac[...] 神戸大学附属図書館 2013-06-01
[3] 논문 1883年海軍軍拡前後期の艦船整備と横須賀造船所 https://hdl.handle.n[...] 弘前大学人文学部 2002-02
[4] 서적 駆逐艦 その技術的回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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