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미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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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다 미키지로는 일본의 법학자이자 관료로, 1895년 도쿄 법학교(현 호세이 대학)를 졸업하고 판사 검사 등용 시험에 합격했다. 1907년 대한제국 정부의 초빙으로 평안북도 재판소 법무보좌관을 지냈으며,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사무관, 중추원 서기관, 서기관장 등을 역임했다. 1923년 퇴관 후 고베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1929년에 사망했다.

오다 미키지로
기본 정보
이름오다 미키지로
본명오다 간지로 (小田幹治郎)
출생1892년 12월 12일
사망1945년 8월 6일 (52세)
출생지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사망지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묘소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에바야마
국적일본
직업군인, 관료
경력
소속일본 제국 육군
최종 계급육군 중장
학력일본 육군사관학교 (26기) 졸업
일본 육군대학교 졸업
주요 보직관동군 헌병대장
조선군 헌병대장
참전중일 전쟁
훈장
수훈금치훈장
공3급 금치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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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

효고현 출신으로, 1895년 화불 법률학교(현재의 호세이 대학)를 졸업하고 판사 검사 등용 시험에 합격하여 법조 경력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일본에서 판사 등을 역임했다.

1905년 대한제국 정부의 초빙을 받아 법무 보좌관, 법전 조사국 사무관 및 서기관으로 활동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및 그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등 식민 통치 기구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 조선총독부 사무관, 중추원 서기관 등을 거쳐 1922년 중추원 서기관장에 임명되었으며,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23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베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1929년 사망했다.

2.1. 일본

효고현 출신이다. 1895년 화불 법률학교(현재의 호세이 대학) 국어 법률과를 졸업하고 판사 검사 등용 시험에 합격하였다.

1901년 12월 9일 사법관 시보(試補) 및 검사대리로 임명되었다. 1903년 7월 11일에는 나가노 구 재판소 판사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7월 18일부터는 나가노 지방 재판소 판사를 겸직하였다.

1923년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베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활동했다. 1929년 3월 1일 사망하였다.

2.2. 대한제국

1905년 (메이지 38년), 대한제국 정부의 초빙을 받았다. 이후 1907년 1월 20일에는 평안북도 재판소 법무보좌관으로 임명되었고, 1908년 1월 1일에는 내각 법전조사국 사무관을 맡았다. 1910년 2월 2일에는 법전조사국 서기관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2.3. 일제강점기 조선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오다는 식민 통치 기구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조선총독부와 그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등에서 주요 직책을 역임했으며, 상세 경력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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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내용
1910년 10월 1일조선총독부 취조국 사무관
1912년 4월 1일조선총독부 사무관, 참사관실 근무
1915년 5월 1일총독관방 총무국 총무과 겸무
1915년 5월 17일조선총독부 중추원 서기관 겸직
1916년 4월 26일고적조사회 간사
1918년 1월 19일중추원 조사과장
1921년 4월 27일중추원 서기관 겸 조선총독부 사무관
1922년 9월 30일중추원 서기관장
1922년 12월 28일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


이 외에도 조선어 사전 심사 위원, 구관 심사 위원 등을 지내며 식민 통치 정책 수립 및 집행의 여러 과정에 참여했다. 1923년 3월 29일 관직에서 물러났다.

2.4. 일제강점기 이후

1923년 3월 29일 의원면관되었다. 같은 해 퇴관 후 고베시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여 활동했다. 1929년 3월 1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