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재
1. 개요
오세재는 고려 시대의 인물로, 오인정의 아들이자 이지심의 사위이다. 1151년 진사시에 응시하고 명종 때 과거에 급제했으며, 한유와 두보의 시문을 본받아 소년들까지 알 정도로 널리 작품이 알려졌다. 이규보와 망년지교를 맺었으나, 세상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하고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경주로 떠나 그곳에서 가난하게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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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년 출생 -
헨리 2세
헨리 2세는 1154년 잉글랜드 왕위에 올라 앙주 제국을 건설하고 법률 및 사법 제도를 개혁했으나, 토마스 베켓과의 갈등과 아들들과의 상속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사망했다. -
1133년 출생 -
이슈트반 4세
이슈트반 4세는 벨러 2세의 아들이자 게저 2세의 동생으로, 형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후 비잔티움 제국의 지원을 받아 헝가리 왕위를 주장했으나, 이슈트반 3세에게 패배하고 결국 독살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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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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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고려의 학자 -
오연총
오연총은 고려 예종 때 요나라와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여진 정벌에서 윤관의 부원수로 활약했으며, 신기군 징발 조건 완화와 서경 궁궐 창건 반대 등의 정치적 행보를 보이다가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내고 문양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고려의 학자 -
원천석
원천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고려 말 진사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은둔하여 야사 6권을 저술했으며, 시조 2수가 전해지고, 강원도 원주에 묘역이 있다.
2. 생애
오세재는 예종 때 한림학사를 지낸 오학린의 손자이자, 고창 오씨의 시조이다. 아버지 오인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오세재는 막내였고, 형 오세공과 오세문과 함께 시문에 뛰어난 인물로 알려졌다. 이지심의 딸과 결혼하였다.
1151년(의종 5년) 진사 시험에 응시했고, 명종 때 과거에 급제했다. 시문은 한유와 두보를 본받아 지었으며, 소를 치는 아이나 심부름꾼조차 그 이름을 알 정도였다고 한다. 1185년(명종 15년) 이규보와 망년지교를 맺었다.
세상에 나아갈 기회가 없음을 깨달은 그는 고려의 수도 개경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외할아버지가 경상북도 동경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려 했으나, 길이 험난하여 제고사의 축사가 되어 말을 타고 동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개경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빈곤 속에 생을 마감했다.
2.1. 가계 및 초기 생애
오인정(吳仁正)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형으로 오세공과 오세문이 있었다. 나중에 이지심의 사위가 되었다.
1151년(의종 5년)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했다. 당시 나이는 19살이었다. 이후 명종 때 과거에 급제했다.
시문(詩文)은 한유와 두보를 본받았으며, 그의 작품들은 소먹이는 아이와 심부름하는 하인들까지 알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1185년(명종 15년) 18세였던 이규보와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3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