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국민당
1. 개요
오스트리아 국민당(ÖVP)은 1945년 창당된 오스트리아의 기독교민주주의, 보수주의 정당이다. 19세기 말 기독교사회당을 모체로 하며, 2017년 제바스티안 쿠르츠 대표 체제에서 우경화 및 당명 변경을 통해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다. 194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후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과의 대연정을 통해 오스트리아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았으며, 2017년 총선에서 11년 만에 1당이 되어 오스트리아 자유당과 연정을 구성했다. 이후 2021년 쿠르츠 총리 사임 후 카를 네하머가 당 대표 및 총리직을 승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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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명칭 | 오스트리아 국민당 |
|---|---|
| 로마자 표기 | Österreichische Volkspartei |
| 약칭 | ÖVP |
| 창립일 | 1945년 4월 17일 |
| 전신 정당 | 키독교사회당 |
| 당 본부 | 빈 제1구역, Lichtenfelsgasse 7, 1010 |
| 당원 수 | 약 600,000명 |
| 당 아카데미 | ÖVP 정치 아카데미 |
| 청년 조직 | 청년인민당 |
| 공식 웹사이트 | Die neue Volkspartei |
| 공식 색상 | 터키옥색 (2017년 이후) 검정 (2017년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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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대표 | 카를 네하머 |
|---|---|
| 사무총장 | 크리스티안 슈토커 |
| 원내대표 | 아우구스트 뵈깅거 |
| 정치적 위치 | 중도우파에서 우익 |
|---|---|
| 이념 | 기독교 민주주의 자유보수주의 친유럽주의 |
| 유럽 정당 | 유럽 인민당 |
|---|---|
| 국제 조직 | 국제 민주 연합 |
| 국민의회 의석 | 51석 / 183석 |
|---|---|
| 연방의회 의석 | 26석 / 61석 |
| 주지사 | 6석 / 9석 |
| 주의회 (주 정부) | 6석 / 9석 |
| 주의회 (주 의회) | 146석 / 440석 |
| 유럽 의회 의석 | 5석 / 19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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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자유주의 정당 -
NEOS - 신오스트리아와 자유포럼
NEOS - 신오스트리아와 자유포럼은 오스트리아의 정당이며, 오스트리아 연방의회, 유럽의회, 주 의회에서의 의석수와 점유율을 표로 나타내고 여론조사 결과도 제공한다. -
오스트리아의 보수주의 정당 -
오스트리아 기독당
오스트리아 기독당에 대한 정보가 이 문서에 없어 개요를 작성할 수 없습니다. -
오스트리아의 보수주의 정당 -
오스트리아 기독사회당
오스트리아 기독사회당은 카를 루에거 지도 하에 19세기 말 창설된 가톨릭 계열 정당으로,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며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받아 제1공화국에서 정권을 주도했으나 1933년 해산되었고, 이후 오스트리아 국민당으로 계승되었다. -
오스트리아의 정당 -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은 1888년 창당되어 노동자 계급 해방과 사회주의 정책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수립을 주도하고 1945년 재건되어 제2공화국 수립에 기여했으며, 현재까지 주요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의 정당 -
녹색 - 녹색 대안
2. 역사
오스트리아 국민당(ÖVP)은 1893년 빈 시장이자 극우 포퓰리스트였던 카를 뢰거가 창당한 기독교사회당의 후신이다. 당 창당 당시 대부분의 당원들은 엔겔베르트 돌푸스 총리가 이끌었던 아버지의 전선 출신이었는데, 돌푸스 역시 앙슐루스 이전에는 기독교사회당 당원이었다.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아돌프 히틀러에 저항한 돌푸스를 기리기도 하지만, 돌푸스가 세운 정권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띠었고 오스트로파시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1945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국민당은 전후 첫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전체 투표의 거의 절반과 의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제1공화국을 괴롭혔던 극단적인 당파성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1945년 초 독립 회복 이후부터 오스트리아 공산당(KPÖ) 및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과의 대연정을 유지했다. 1966년까지 SPÖ와의 연정에서 수석 파트너로 남았고, 1966년부터 1970년까지는 단독으로 정부를 운영했다.
1999년 오스트리아 총선 이후 몇 달 동안의 협상 끝에, 2000년 초 국민당은 외르크 하이더가 이끄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오스트리아 자유당(FPÖ)과 연정을 구성했다. 자유당은 국민당보다 불과 수백 표 더 많이 얻었지만, 정부를 이끌기에는 너무 논란이 많은 것으로 여겨졌다. 국민당의 볼프강 슈젤이 총리가 되었는데, 이는 197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진 분노를 야기했고, 유럽 연합은 회원국에 대한 제재를 가한 최초의 사례로 오스트리아에 비공식적인 외교 제재를 가했다. 오스트리아는 제재가 해제될 때까지 모든 국가의 유럽 연합 가입 신청을 거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몇 달 후, 세 명의 전 유럽 총리들, 이른바 "세 명의 현자들"의 실태 조사 결과에 따라 이러한 제재는 해제되었다. 2002년 총선에서 슈젤이 이끄는 국민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42.27% 득표). 하이더의 자유당은 10.16%로 득표율이 감소했다.
2006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국민당은 패배했고, 많은 협상 끝에 SPÖ와의 대연정에서 소수 파트너가 되는 데 동의했으며, 새로운 당 대표인 빌헬름 몰테레르는 재무장관 겸 부총리가 되었고, SPÖ 지도자 알프레트 구젠바우어가 총리가 되었다. 2008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국민당은 15석을 잃었고, 득표율은 8.35% 더 감소했다. 그러나 2009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846,709표를 얻어 최다 득표율(30.0%)을 기록했지만, 의석 수는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2017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11년 만에 제1당이 되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오스트리아 자유당과 연정을 맺고 내각을 구성했다. 이비자 사건으로 자유당이 위기에 몰리면서 치러진 2019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기존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이후 국민당은 녹색 - 녹색 대안과 연정을 구성했다.
2021년 12월, 쿠르츠는 여러 부패 혐의에 책임을 지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와 동시에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총리도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당 사무총장과 내무장관을 지낸 카를 네하머가 지명되었다. 현재는 당 의장인 카를 네하머가 오스트리아의 총리로 선출되었다.
2.1. 창당 배경 (1945년 이전)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19세기 말 카를 뢰거가 창당한 기독교사회당을 모태로 한다. 기독교사회당은 보수주의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엔겔베르트 돌푸스 총리 시절에는 권위주의적 성향을 띠기도 했다(오스트로파시즘).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아돌프 히틀러에 저항한 돌푸스를 기리기도 하지만,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2.2. 창당과 대연정 시기 (1945년 ~ 1970년)
1945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전후 첫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극단적인 당파성을 우려하여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 오스트리아 공산당(KPÖ)과 대연정을 유지했다.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1966년까지 SPÖ와의 연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1966년부터 1970년까지는 단독으로 정부를 운영했다.
1960년대 초,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귀국 여부를 둘러싸고 '합스부르크 법 위기'가 발생했다. 국민당은 합스부르크 가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사회당의 반대로 대연정은 붕괴되었다. 1966년 3월 선거 결과, 국민당 당수 요제프 클라우스독일어는 전후 최초의 단독 정부를 구성했다.
오스트리아 국민당(ÖVP)은 카를 뢰거가 창당한 기독교사회당의 후신으로 1945년에 창당되었다. 당 창당 당시 대부분의 당원들은 엔겔베르트 돌푸스 총리가 이끌었던 아버지의 전선 출신이었다.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아돌프 히틀러에 저항한 돌푸스를 기리기도 하지만, 돌푸스가 세운 정권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띠었고 오스트로파시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1945년 오스트리아 독립 회복 직후 설립되었으며, 그 이후로 줄곧 연방의회에 진출해 왔다.
국민당은 구 기독교사회당과의 연속성을 강조하지 않았지만, 이전의 기독교사회당과 마찬가지로 실천적인 가톨릭 신자들의 지지가 두터운 정당이었다. 다양한 구성원을 대표했기 때문에 당 강령은 전통적인 가족 가치, 재산권, 농민의 이익을 강조했고, 매우 다양한 사회복지 입법을 수용했다. 전후 한동안 사회당과의 대연정이 구성되었지만, 대연정 정권의 기반을 이루었던 힘 중 하나는 양당 지도자들이 전쟁 경험으로 맺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대교체가 진행됨에 따라 국민당과 사회당 양쪽 모두에서 타당과의 타협을 좋아하지 않고 단독 정권을 지향하는 세력이 성장했다.
2.3. 현대 정치에서의 역할 (1970년 이후)
2017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11년 만에 제1당이 되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오스트리아 자유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였다. 이비자 사건으로 자유당이 위기에 몰리면서 치러진 2019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더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이후 국민당은 녹색 - 녹색 대안과 연정을 구성했다.
2021년 12월, 쿠르츠는 여러 부패 혐의에 책임을 지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와 동시에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총리도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당 사무총장과 내무장관을 지낸 카를 네하머가 지명되었다. 현재는 당 의장인 카를 네하머가 오스트리아의 총리로 선출되었다.
1970년 이후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완전히 권력에서 물러난 적이 없다. 1999년 오스트리아 총선 이후 몇 달 동안의 협상 끝에, 2000년 초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외르크 하이더가 이끄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오스트리아 자유당(FPÖ)과 연정을 구성했다. FPÖ는 오스트리아 국민당보다 불과 수백 표 더 많이 얻었지만, 정부를 이끌기에는 너무 논란이 많은 것으로 여겨졌다. 오스트리아 국민당의 볼프강 슈젤이 총리가 되었는데, 이는 197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진 분노를 야기했고, 유럽 연합은 회원국에 대한 제재를 가한 최초의 사례로 오스트리아에 비공식적인 외교 제재를 가했다. 몇 달 후, "세 명의 현자들"의 실태 조사 결과에 따라 이러한 제재는 해제되었다.
2006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패배했고, 많은 협상 끝에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과의 대연정에서 소수 파트너가 되는 데 동의했으며, 새로운 당 대표인 빌헬름 몰테레르는 재무장관 겸 부총리가 되었다. 2008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15석을 잃었고, 득표율은 8.35% 더 감소했다.
2006년에 실시된 국민의회( 하원) 선거에서는 사회민주당에 패배하여 제2당으로서 알프레트 구젠바우어가 이끄는 사회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했지만, 건강보험과 세금 등 기본 정책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 6월, 국민당 당수이자 연방정부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었던 빌헬름 몰테러는 기자회견에서 "이제 충분하다. 지도력 없는 당과 공통의 목표를 향할 수 없다"라며 연정에서의 이탈을 선언하고 국민의회 해산과 총선을 요구했다.
3. 이념
오스트리아 국민당의 주요 이념은 기독교민주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이다. 독일 기독교민주연합과 같이 경제적으로는 중도적인 시장 개입을, 사회적으로는 우파적인 사회보수적 정책을 표방한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따라 보조성과 분권화를 지지한다.
2017년 제바스티안 쿠르츠 대표 선출 이후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적 요소를 일부 수용하며 우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7년 총선에서 쿠르츠 대표는 불법 이민 단속과 정치 이슬람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쿠르츠가 당수가 된 후, 당은 기존의 검정에서 청록색으로 색상을 변경하고 새로운 국민당이라는 이름을 채택하면서 이미지 변화를 겪었다.
4.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관계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군주제 정당은 아니지만, 1945년 창당 이래 오늘날까지 왕당파를 지지층의 일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해 동정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1960년대 전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귀국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오토의 귀국을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1996년 3월 펠릭스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이 오스트리아에 "불법 입국"했을 때는 합스부르크 법의 즉각 폐지를 주장했다. 1996년 10월 유럽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오토의 장남 카를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을 국민당 후보로 공천했다. 2009년에는 울리히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이 법적 문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던 문제를 받아들여, 합스부르크 가문의 피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합스부르크 조항을 "시대착오적"이라고 하여 폐지를 위해 움직였다.
2019년 현재 정치 상황에서, 왕당파 정당인 슈바르츠-겔베 알리안츠 지지자들 중에서는 국민당과의 연계를 요구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여겨진다.
5. 역대 선거 결과
| 선거 종류 | 선거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 | 집권 여부 |
|---|---|---|---|---|---|
| 국민의회 | 1945년 총선 | 1,602,227 (1위) | 49.8% | 85석 | ÖVP-SPÖ-KPÖ 다수 |
| 1949년 총선 | 1,846,581 (1위) | 44.0% | 77석 | ÖVP-SPÖ 다수 | |
| 1953년 총선 | 1,781,777 (2위) | 41.3% | 74석 | SPÖ–ÖVP 다수 | |
| 1956년 총선 | 1,999,986 (1위) | 46.0% | 82석 | ÖVP–SPÖ 다수 | |
| 1959년 총선 | 1,928,043 (2위) | 44.2% | 79석 | ÖVP–SPÖ 다수 | |
| 1962년 총선 | 2,024,501 (1위) | 45.4% | 81석 | ÖVP–SPÖ 다수 | |
| 1966년 총선 | 2,191,109 (1위) | 48.3% | 85석 | ÖVP 다수 | |
| 1970년 총선 | 2,051,012 (2위) | 44.7% | 78석 | 야당 | |
| 1971년 총선 | 1,964,713 (2위) | 43.1% | 80석 | 야당 | |
| 1975년 총선 | 1,981,291 (2위) | 42.9% | 80석 | 야당 | |
| 1979년 총선 | 1,981,739 (2위) | 41.9% | 77석 | 야당 | |
| 1983년 총선 | 2,097,808 (2위) | 43.2% | 81석 | 야당 | |
| 1986년 총선 | 2,003,663 (2위) | 41.3% | 77석 | SPÖ–ÖVP 다수 | |
| 1990년 총선 | 1,508,600 (2위) | 32.1% | 60석 | SPÖ–ÖVP 다수 | |
| 1994년 총선 | 1,281,846 (2위) | 27.7% | 52석 | SPÖ–ÖVP 다수 | |
| 1995년 총선 | 1,370,510 (2위) | 28.3% | 52석 | SPÖ–ÖVP 다수 | |
| 1999년 총선 | 1,243,672 (3위) | 26.9% | 52석 | ÖVP–FPÖ 다수 | |
| 2002년 총선 | 2,076,833 (1위) | 42.3% | 79석 | ÖVP–FPÖ 다수 | |
| 2006년 총선 | 1,616,493 (2위) | 34.3% | 66석 | SPÖ–ÖVP 다수 | |
| 2008년 총선 | 1,269,656 (2위) | 26.0% | 51석 | SPÖ–ÖVP 다수 | |
| 2013년 총선 | 1,125,876 (2위) | 24.0% | 47석 | SPÖ–ÖVP 다수 | |
| 2017년 총선 | 1,341,930 (1위) | 31.5% | 62석 | ÖVP–FPÖ 다수 | |
| 2019년 총선 | 1,789,417 (1위) | 37.5% | 71석 | ÖVP–GRÜNE 다수 | |
| 유럽 의회 | 1996년 | 1,124,921 (1위) | 29.7% | 7석 | |
| 1999년 | 859,175 (2위) | 30.7% | 7석 | ||
| 2004년 | 817,716 (2위) | 32.7% | 6석 | ||
| 2009년 | 858,921 (1위) | 30.0% | 6석 | ||
| 2014년 | 761,896 (1위) | 27.0% | 5석 | ||
| 2019년 | 1,305,954 (1위) | 34.6% | 7석 |
5.1. 오스트리아 국민의회 선거
| 선거 | 합계 | 득표율 | 의석 | 집권 여부 |
|---|---|---|---|---|
| 1945년 총선 | 1,602,227 (1위) | 49.8% | 85석 | ÖVP-SPÖ-KPÖ 다수 |
| 1949년 총선 | 1,846,581 (1위) | 44.0% | 77석 | ÖVP-SPÖ 다수 |
| 1953년 총선 | 1,781,777 (2위) | 41.3% | 74석 | SPÖ–ÖVP 다수 |
| 1956년 총선 | 1,999,986 (1위) | 46.0% | 82석 | ÖVP–SPÖ 다수 |
| 1959년 총선 | 1,928,043 (2위) | 44.2% | 79석 | ÖVP–SPÖ 다수 |
| 1962년 총선 | 2,024,501 (1위) | 45.4% | 81석 | ÖVP–SPÖ 다수 |
| 1966년 총선 | 2,191,109 (1위) | 48.3% | 85석 | ÖVP 다수 |
| 1970년 총선 | 2,051,012 (2위) | 44.7% | 78석 | 야당 |
| 1971년 총선 | 1,964,713 (2위) | 43.1% | 80석 | 야당 |
| 1975년 총선 | 1,981,291 (2위) | 42.9% | 80석 | 야당 |
| 1979년 총선 | 1,981,739 (2위) | 41.9% | 77석 | 야당 |
| 1983년 총선 | 2,097,808 (2위) | 43.2% | 81석 | 야당 |
| 1986년 총선 | 2,003,663 (2위) | 41.3% | 77석 | SPÖ–ÖVP 다수 |
| 1990년 총선 | 1,508,600 (2위) | 32.1% | 60석 | SPÖ–ÖVP 다수 |
| 1994년 총선 | 1,281,846 (2위) | 27.7% | 52석 | SPÖ–ÖVP 다수 |
| 1995년 총선 | 1,370,510 (2위) | 28.3% | 52석 | SPÖ–ÖVP 다수 |
| 1999년 총선 | 1,243,672 (3위) | 26.9% | 52석 | ÖVP–FPÖ 다수 |
| 2002년 총선 | 2,076,833 (1위) | 42.3% | 79석 | ÖVP–FPÖ 다수 |
| 2006년 총선 | 1,616,493 (2위) | 34.3% | 66석 | SPÖ–ÖVP 다수 |
| 2008년 총선 | 1,269,656 (2위) | 26.0% | 51석 | SPÖ–ÖVP 다수 |
| 2013년 총선 | 1,125,876 (2위) | 24.0% | 47석 | SPÖ–ÖVP 다수 |
| 2017년 총선 | 1,341,930 (1위) | 31.5% | 62석 | ÖVP–FPÖ 다수 |
| 2019년 총선 | 1,789,417 (1위) | 37.5% | 71석 | ÖVP–GRÜNE 다수 |
5.2. 유럽 의회 선거
6. 조직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1945년 창당되어 현재까지 오스트리아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당의 조직은 당 대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1945년 이후 역대 당 대표는 다음과 같다.
|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시작 | 임기 종료 | 비고 |
|---|---|---|---|---|---|
| 1 | -- | 레오폴트 쿤샤크 | 1945년 | 1945년 | |
| 2 | -- | 레오폴트 피글 | 1945년 | 1952년 | |
| 3 | -- | 율리우스 라브 | 1952년 | 1960년 | |
| 4 | -- | 알폰스 고르바흐 | 1960년 | 1963년 | |
| 5 | -- | 요제프 클라우스 | 1963년 | 1970년 | |
| 6 | -- | 헤르만 비탈름 | 1970년 | 1971년 | |
| 7 | -- | 카를 슐라인처 | 1971년 | 1975년 | |
| 8 | -- | 요제프 타우스 | 1975년 | 1979년 | |
| 9 | -- | 알로이스 모크 | 1979년 | 1989년 | |
| 10 | -- | 요제프 리글러 | 1989년 | 1991년 | |
| 11 | -- | 에르하르트 부제크 | 1991년 | 1995년 | |
| 12 | -- | 볼프강 슐뢰젤 | 1995년 | 2007년 | |
| 13 | -- | 빌헬름 몰테러 | 2007년 | 2008년 | |
| 14 | -- | 요제프 프뢰렐 | 2008년 | 2011년 | |
| 15 | -- | 미하엘 슈핀델레거 | 2011년 | 2014년 | |
| 16 | -- | 라인홀트 미터라이너 | 2014년 | 2017년 | |
| 17 | -- | 제바스티안 쿠르츠 | 2017년 | 2021년 | |
| 18 | -- | 카를 네하머 | 2021년 | 현재 |
6.1. 당 상징
--
--
--
--
--
--
6.2. 1945년 이후 당 대표
|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시작 | 임기 종료 | 비고 |
|---|---|---|---|---|---|
| 1 | -- | 레오폴트 쿤샤크 | 1945년 | 1945년 | |
| 2 | -- | 레오폴트 피글 | 1945년 | 1952년 | |
| 3 | -- | 율리우스 라브 | 1952년 | 1960년 | |
| 4 | -- | 알폰스 고르바흐 | 1960년 | 1963년 | |
| 5 | -- | 요제프 클라우스 | 1963년 | 1970년 | |
| 6 | -- | 헤르만 비탈름 | 1970년 | 1971년 | |
| 7 | -- | 카를 슐라인처 | 1971년 | 1975년 | |
| 8 | -- | 요제프 타우스 | 1975년 | 1979년 | |
| 9 | -- | 알로이스 모크 | 1979년 | 1989년 | |
| 10 | -- | 요제프 리글러 | 1989년 | 1991년 | |
| 11 | -- | 에르하르트 부제크 | 1991년 | 1995년 | |
| 12 | -- | 볼프강 슐뢰젤 | 1995년 | 2007년 | |
| 13 | -- | 빌헬름 몰테러 | 2007년 | 2008년 | |
| 14 | -- | 요제프 프뢰렐 | 2008년 | 2011년 | |
| 15 | -- | 미하엘 슈핀델레거 | 2011년 | 2014년 | |
| 16 | -- | 라인홀트 미터라이너 | 2014년 | 2017년 | |
| 17 | -- | 제바스티안 쿠르츠 | 2017년 | 2021년 | |
| 18 | -- | 카를 네하머 | 2021년 | 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