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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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위영은 일제강점기 금융인 출신으로, 대한민국 제2, 4, 5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고베고상 졸업 후 금융계에 진출하여 신탁은행 이사, 총재를 지냈으며,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자유당 중앙상임위원장을 역임했다. 장면을 총리로 적극 추천하고, 자유당 탈당 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정치적 변동을 겪었다. 제2공화국에서 국무원 사무처장과 무임소장관을 지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민주당 재건에 참여하여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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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위영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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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오위영 |
원어이름 | 吳緯泳 |
![]() | |
출생일 | 1901년 5월 5일 |
출생지 | 대한제국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 (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 |
국적 | 대한제국→대한민국 |
본관 | 해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
사망일 | 1978년 10월 2일 |
별칭 | 호 석운(石耘) |
학력 | 고베고등상업학교 |
직업 | 금융인, 정치인 |
경력 | |
경력 | 조선신탁은행 두취(은행장) 국무원 사무처장 무임소장관 제2·4·5대 국회의원 |
소속 | |
종교 | |
부모 | |
배우자 | |
자녀 | |
상훈 | |
웹사이트 |
2. 약력
- 1928년 고베 대학의 전신인 고베고상(神戶高商)을 졸업하고 귀국, 초계군금융조합 이사, 진해군금융조합 이사를 역임했다.
- 1945년 9월 미군정 주둔 후 1947년 신탁은행 이사
- 1949년 신탁은행 총재, 미국 시찰 중 주미한국대사 장면을 만나 귀국 후 대통령 이승만에게 총리로 천거.
- 1950년 제2대 민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 이후 자유당에 입당.
- 1954년 자유당 탈당, 민주당 창당에 참여.
- 1960년 8월 국무원사무처장 임명
- 1961년 초 개각 당시 무임소장관
- 1961년 5. 16 군사정변으로 은퇴
- 1963년 장면, 김도연, 현석호, 조재천, 박순천과 함께 민주당 재건에 참여.
2. 1. 금융 활동
경상남도 울산 출신으로,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하여 1928년 고베 대학의 전신인 고베고상(神戶高商)을 졸업하고 바로 귀국하였다. 그해 금융조합 이사에 선출되면서 금융계에 진출하였고, 초계군금융조합 이사, 진해군금융조합 이사를 역임했다.광복 직후 1945년 9월 미군정이 주둔하면서 금융계 경력이 인정되어 1947년 신탁은행의 이사로 선임되었다. 미군정 기간 중 신탁은행 이사로 있으면서 기반을 쌓아 부산일원의 자산가로 급부상하였다. 1949년 신탁은행 총재가 되었고, 그해 미국 시찰 중 주미한국대사 장면을 만났으며, 그의 청렴성에 감명받아 귀국 후 대통령 이승만에게 이를 알리고, 후에 그를 총리로 천거하게 된다.
2. 2. 정치 활동
1950년 제2대 민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오위영은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장면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자유당 내 의견 대립으로 인해 1954년 탈당하고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1]2. 2. 1. 자유당 창당과 탈당
1950년 제2대 민의원 선거 때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국회에서는 초선의원이면서도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다. 1951년 이승만이 새 총리를 물색할 때 장면을 적극 추천하여 총리로 기용되도록 하였다."제 생각으로는 장면 박사가 제일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미국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6‧25 당시의 성공적인 외교 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지금의 시끄러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1]
이후 자유당 중앙상임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2년 장면, 현석호 등과 함께 원내 자유당에서 활동하였으나, 원내 자유당 인사들이 장면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는 계획과 장면을 내각책임제하 국무총리로 추대하려는 시도 등에서 내부 의견 차이가 발생했고, 결국 모두 실패하였다. 이에 따라 1954년 자유당을 탈당하고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민주당 창당에 가담하여 신파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2. 2. 2. 민주당 활동과 장면 내각 후원
1950년 제2대 민의원 선거 때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되었으며, 국회에서는 초선의원이면서도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자유당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다. 1951년 이승만이 새 총리를 물색할 때 그는 장면을 적극 추천하여 총리로 기용시키기도 했다.제 생각으로는 장면 박사가 제일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미국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6‧25 당시의 성공적인 외교 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지금의 시끄러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한국어[1]
이어 자유당 중앙상임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2년 장면, 현석호 등과 원내 자유당에 있었으나 원내 자유당 인사들의 장면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는 계획과 장면을 내각책임제하 국무총리로 추대하려는 시도 등 내부에서 이견이 갈렸고 모두 실패함에 따라 1954년 자유당을 떠나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고 후에 민주당 창당에 가담하여 신파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2. 3. 생애 후반
1960년 제2공화국 출범 후 입각이 유력시되었으나 구파의 집단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그해 8월 조각 당시 국무원사무처장에 임명되었고, 1961년 초 개각 당시 무임소장관이 되었다. 그해 초 국무총리 장면에게 데모 방지법 마련에 대한 건의를 하였으나, 장면은 자유를 최대한 허용해야 된다며 그의 건의를 반대하였다.1961년 5. 16 군사정변으로 은퇴했다가 1963년 장면, 김도연, 현석호, 조재천, 박순천과 함께 민주당 재건에 참여하였다. 이후 야당 정치인으로 정치활동을 하였다.
3. 역대 선거 결과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1950년 | 총선 | 무소속 | 12,503표 (37.52%) | 1위 | 당선 | 초선 |
1954년 | 총선 | 무소속 | - | - | 사퇴 | |
1958년 | 총선 | 민주당 | 19,468표 (59.14%) | 1위 | 당선 | 재선 |
1960년 | 총선 | 민주당 | 370,202표 (24.12%) | 2위 | 당선 | 3선 |
1967년 | 총선 | 민주당 | 323,203표 (3.0%)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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