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노피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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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이노피타 전투는 기원전 457년, 아테네가 보이오티아를 상대로 승리한 전투이다.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테바이가 보이오티아를 장악하려 하자, 아테네는 뮈로니데스가 이끄는 군대를 파병하여 오이노피타에서 보이오티아 군을 격파했다. 아테네는 이후 타나그라를 점령하고 로크리스와 포키스를 복속시켰으며, 테살리아로 진군하여 보이오티아를 영향력 아래 두었다. 디오도로스는 이 전투를 마라톤 전투와 플라타이아 전투에 비견되는 업적으로 칭송했지만, 상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아테네는 기원전 447년 코로네이아 전투에서 패배할 때까지 보이오티아를 지배했다.

오이노피타 전투 - [전쟁]에 관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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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투 배경

기원전 457년, 스파르타아테네는 보이오티아의 타나그라에서 격돌했다.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이 승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메가라를 통해 귀국했다.

2.1. 타나그라 전투

기원전 457년 보이오티아의 타나그라에서 아테네와 그 동맹군, 스파르타와 그 동맹군이 전투를 벌였다. 양측 모두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큰 피해를 보아 이 승리를 이어가지 못하고, 메가라를 통해 귀국해야 했다.

2.2. 오이노피타 전투 이전 상황

기원전 457년 타나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했지만, 이 승리를 이어가지 못하고 메가라를 통해 귀국했다.

타나그라 전투 62일 후, 테바이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아 보이오티아를 장악하려 했다. 이에 아테네뮈로니데스가 이끄는 군대를 보이오티아에 파병했다.

3. 오이노피타 전투

기원전 457년 타나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했지만, 이 승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메가라를 통해 귀국했다. 이후 뮈로니데스가 이끄는 아테네 군이 보이오티아에 파병되어 오이노피타에서 보이오티아 군을 격파했다.

3.1. 전투 경과

기원전 457년 타나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한 지 62일 후, 테바이는 스파르타의 도움을 받아 보이오티아를 장악하려 했다. 이에 아테네는 뮈로니데스가 이끄는 군대를 보이오티아에 파병했다. 아테네 군은 오이노피타에서 보이오티아 군을 크게 격파했다.

디오도로스는 이 전투에서 아테네 군의 승리를 마라톤 전투와 플라타이아 전투에 버금가는 업적이라고 칭송하며, "다른 전투들은 바르바로이들과 싸웠거나 동맹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 전투는 아테네인들만의 힘으로 가장 용감한 그리스 전사들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전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이후 아테네 군은 타나그라 성벽을 허물고, 로크리스에서 부유한 사람 100명을 인질로 잡았으며, 포키스를 복속시키고 테살리아로 진군했다. 화루사로스를 함락시키지는 못했지만, 보이오티아를 아테네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3.2. 전투 결과

아테네는 오이노피타 전투에서 승리한 후 타나그라 성벽을 허물고, 로크리스포키스를 복속시켰으며, 테살리아로 진군했다. 비록 화루사로스는 점령하지 못했지만, 보이오티아는 아테네의 세력권에 편입되었다.

디오도로스는 이 전투를 마라톤 전투와 플라타이아 전투에 비견하며, 아테네가 단독으로 그리스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들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전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남아 있지 않다.

이후 아테네는 기원전 447년 코로네이아 전투에서 패배할 때까지 보이오티아를 지배했다.

4. 전투의 의의 및 평가

디오도로스는 오이노피타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리를 마라톤 전투, 플라타이아 전투에 비견하며, 아테네의 힘만으로 이루어낸 위업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이 전투가 다른 전투들과 달리 오직 아테네인들의 힘만으로, 그리스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들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남아 있지 않다.

4.1. 아테네의 보이오티아 지배

기원전 457년 타나그라 전투에서 승리한 스파르타테바이를 지원하여 보이오티아를 장악하려 했다. 이에 아테네뮈로니데스가 이끄는 군대를 파견, 오이노피타 전투에서 보이오티아 군을 격파했다. 이후 아테네는 타나그라 성벽을 허물고, 로크리스포키스를 복속시켰으며, 테살리아로 진군하여 보이오티아를 세력 하에 두었다.

디오도로스는 오이노피타 전투에서의 아테네 군 승리를 마라톤 전투와 플라타이아 전투에 비견될 만한 업적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아테네는 기원전 447년 코로네이아 전투에서 보이오티아 군에게 패배하면서 보이오티아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