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세
1. 개요
오토세는 오미 국 오쓰 출신으로, 후시미의 여관 테라다야의 안주인이었다. 남편 테라다야 이스케가 사망한 후 가업을 이어받아 경영했으며, 사쓰마 번의 지정 숙소였던 테라다야에서 일어난 테라다야 사건 당시에도 자리를 지켰다.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존황양이파 지사들을 보호하고, 료마의 부탁으로 오료를 양녀로 삼는 등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도왔다. 메이지 시대에 사망했으며, 여러 영화, 드라마, 연극, 만화 등 대중문화 작품에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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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사람 -
오쿠보 도시미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사쓰마 번 출신의 일본 정치가 오쿠보 도시미치는 사이고 다카모리, 기도 다카요시와 함께 막부 타도를 이끌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근대화를 추진했으나, 강력한 권력과 정책 추진 방식으로 비판받았으며 사족에게 암살당했다. -
메이지 시대 사람 -
히구치 이치요
메이지 시대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소설가인 히구치 이치요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키재기》, 《섣달 그믐날》, 《흐린 강》 등의 단편 소설로 일본 근대 문학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으며, 사회적 약자와 여성의 고통을 섬세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은 높이 평가받고 5000엔 지폐의 초상화 모델로도 사용되었다. -
1829년 출생 -
뜨득 황제
뜨득 황제는 1847년부터 1883년까지 베트남을 통치한 응우옌 왕조의 황제로, 기독교 탄압, 쇄국 정책, 프랑스와의 전쟁 패배, 사이공 조약 체결 등을 겪었으며, 그의 사후 응우옌 왕조는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다. -
1829년 출생 -
아우구스트 케쿨레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독일의 화학자로서 탄소의 사중 원자가와 자가 연결 능력을 기반으로 유기화학의 구조 이론을 체계화하고 벤젠의 고리 모양 구조를 제안하여 방향족 화합물 연구에 기여했으며, 그의 업적은 화학 발전에 혁신적인 공헌을 하였다. -
오미국 사람 -
진구 황후
진구 황후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일본의 전설적인 인물로, 섭정 기간 동안 구마소 정벌과 삼한 정벌 등의 업적을 이루었으며,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과 왜곡된 측면이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문화적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
오미국 사람 -
아사노 나가아키라
아사노 나가아키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섬긴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형의 사망 후 기이 기슈번을 상속받고 오사카 전투에서 공을 세워 아키 히로시마번의 번주가 되었다.
2. 생애
오토세는 오미 국오쓰에서 여관을 경영하던 오모토 쥬베이의 차녀로 태어났다. 18세에 후시미 미나미하마의 배 숙소인 테라다야의 6대 주인 테라다야 이스케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낳았다. 남편 이스케는 방탕하여 경영을 악화시켰기 때문에 오토세가 대신 테라다야를 경영하고 시어머니를 모셨다. 이스케는 병으로 35세에 요절했지만, 오토세는 안주인으로서 가업을 이었다.
1862년 테라다야 소동 당시 사쓰마 번 무사들의 칼부림 현장에 있었고, 어린 딸을 부뚜막에 숨기고 장부를 지키는 기지를 발휘했다. 사건 후 사쓰마 번의 위로금으로 즉시 다다미와 미닫이를 교체하여 영업을 재개하는 등 사업가적 면모를 보였다.
오토세는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존황양이파 지사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료마의 부탁으로 오료를 양녀로 삼고, 오료의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사들을 도왔다.
1866년 3월 10일(게이오 2년 1월 24일) 테라다야에서 료마와 미요시 신조가 후시미 봉행에 습격당해 체포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사쓰마 번과 후시미 봉행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오토세도 막부로부터 위험 인물로 간주되어 감옥에 갇힐 뻔했다.
메이지 10년 (1877년) 사망. 묘소는 테라다야와 가까운 후시미 쇼린인에 있다.
2.1. 어린 시절과 결혼
오토세는 오미 국오쓰에서 여관을 경영하던 오모토 주베이의 차녀로 태어났다. 18세에 후시미 미나미하마의 배 숙소인 테라다야의 6대 주인 테라다야 이스케의 아내가 되어 1남 2녀를 낳았다. 남편 이스케는 방탕한 사람이었고 경영을 악화시켰기 때문에 오토세가 대신 테라다야의 경영을 맡았으며, 시어머니의 뒷바라지도 했다. 이스케는 병으로 쓰러져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지만, 오토세는 그대로 안주인으로서 가업을 이어갔다.
2.2. 테라다야 경영
오미 국오쓰에서 여관을 경영하던 오모토 쥬베이의 차녀로 태어났다. 18세에 후시미 미나미하마의 배 숙소인 테라다야의 6대 주인 테라다야 이스케의 아내가 되어 1남 2녀를 낳았다. 남편 이스케는 방탕한 사람이었고 경영을 악화시켰기 때문에, 오토세가 대신 테라다야의 경영을 맡았으며 시어머니의 뒷바라지도 했다. 이스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도 전해지지만) 병으로 쓰러져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지만, 오토세는 그대로 안주인으로서 가업을 이어갔다.
테라다야는 사쓰마 번의 지정 숙소였다. 분큐 2년 (1862년) 테라다야 소동이 일어나 사쓰마 번 무사들이 칼부림을 벌였을 때, 오토세도 그 자리에 있었고, 3살 된 둘째 딸을 부뚜막에 숨기고 장부를 지켰다. 사건 후, 사쓰마 번으로부터 위로금이 들어오자, 사용인에게 명하여 즉시 다다미와 미닫이를 교체하여 영업할 수 있도록 정비했다고 한다.
오토세는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으며,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막부로부터 미움을 받던 존황양이파 지사들을 보호했다. 료마에게 부탁받은 오료는 양녀로 삼았으며, 오료의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까지 했다.
게이오 2년 1월 24일 (1866년 3월 10일), 테라다야에 머물고 있던 료마와 미요시 신조가 후시미 봉행에 의해 습격당하여 체포될 뻔한 곤경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사쓰마 번과 후시미 봉행 사이에 갈등이 생겼으며, 사쓰마 측의 오토세도 막부로부터 주목받아 위험 인물로 간주되어 감옥에 갇힐 뻔한 적도 있었다.
2.3. 존왕양이파 지사들과의 만남
오토세는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으며,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막부로부터 미움을 받던 존황양이파 지사들을 보호했다. 료마의 부탁으로 오료를 양녀로 삼았으며, 오료의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했다.
게이오 2년 1월 24일 (1866년 3월 10일), 테라다야에 머물고 있던 료마와 미요시 신조가 후시미 봉행에 의해 습격당해 체포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사쓰마 번과 후시미 봉행 사이에 갈등이 생겼으며, 사쓰마 측의 오토세도 막부로부터 주목받아 위험 인물로 간주되어 감옥에 갇힐 뻔한 적도 있었다.
2.4. 사카모토 료마와의 인연
오토세는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하여 막부로부터 미움을 받던 존황양이파 지사들을 보호하였다. 료마의 부탁으로 오료를 양녀로 삼았으며, 오료의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했다.
1866년 3월 10일(게이오 2년 1월 24일)에는 테라다야에 머물던 료마와 미요시 신조가 후시미 봉행에 의해 습격당해 체포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쓰마 번과 후시미 봉행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사쓰마 측이었던 오토세도 막부로부터 주목받아 위험 인물로 간주되어 감옥에 갇힐 뻔하기도 했다.
2.5. 말년
오토세는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으며,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막부로부터 미움을 받던 존황양이파 지사들을 보호했다. 료마의 부탁으로 오료를 양녀로 삼았으며, 오료의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했다.
게이오 2년 1월 24일 (1866년 3월 10일), 테라다야에 머물고 있던 료마와 미요시 신조가 후시미 봉행에 의해 습격당하여 체포될 뻔한 곤경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사쓰마 번과 후시미 봉행 사이에 갈등이 생겼으며, 사쓰마 측의 오토세도 막부로부터 주목받아 위험 인물로 간주되어 감옥에 갇힐 뻔한 적도 있었다.
메이지 10년 (1877년)에 사망했으며, 묘소는 테라다야와 가까운 후시미 쇼린인에 있다.
3. 일화
료마가 오토세에게 보낸 편지 중 많은 내용은 그녀에게 부탁하거나 하소연하는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노이 리키(오토세의 장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료마에게 부탁을 받고 왔다거나, 무쓰 요노스케의 친구라면서 여비나 숙박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지만, 오토세는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최대한 돌봐주었습니다."
4. 대중문화 속 오토세
다음은 오토세가 등장하는 대중문화 작품들이다.
| 분야 | 제목 | 배우 | 연도 |
|---|---|---|---|
| 영화 | 만월 30석 배 | 야마다 이스즈 | 1952년 |
| 영화 | 반딧불 | 아와시마 치카게 | 1958년 |
| 영화 | 막말 순정전 | 마츠카네 요네코 | 1991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NHK 대하 드라마 『료마가 간다』 | 모리 미츠코 | 1968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NHK 대하 드라마 『가쓰 가이슈』 | 이치하라 에츠코 | 1974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NLT 『료마가 사랑한 여자』 | 키시 케이코 | 1974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NTV 『우리들의 내일』 | 판분쉐 | 1980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TV 도쿄 『료마가 간다』 | 아와시마 치카게 | 1982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TBS 『사카모토 료마』 | 아사지 요코 | 1989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TBS 『료마가 간다』 | 이케가미 키미코 | 1997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TV 도쿄 『료마가 간다』 | 와카무라 마유미 | 2004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NHK 대하 드라마 『신선조!』 | 토다 케이코 | 2004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NHK 대하 드라마 『료마전』 | 쿠사카리 타미요 | 2010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TBS 『JIN-진- (완결편)』 | 무로이 시게루 | 2011년 |
| 텔레비전 드라마 | TV 아사히 『후루타테 토킹 히스토리 ~막말 최대의 수수께끼 사카모토 료마 암살, 완전 실황~』 | 야부키 하루나 | 2019년 |
| 무대 | 극단 신파 『테라다야 오토세』 | 미즈타니 야에코 | 1968년 |
| 무대 | 메이지좌 『교토의 반딧불~오토세와 료마~』 | 아와시마 치카게 | 1971년 |
| 무대 | 메이지좌 『교토의 반딧불』 | 쿠로키 히토미 | 2017년 |
| 만화 | 『오이! 료마』 | 코야마 유 | |
| 만화 | 『료마가 간다』 | 스즈노키 유 |
4.2. 텔레비전 드라마
* 모리 미츠코: NHK 대하드라마 『료마가 간다』 (1968년)
* 이치하라 에츠코: NHK 대하드라마 『가쓰 가이슈』 (1974년)
* 키시 케이코: NLT 『료마가 사랑한 여자』 (1974년)
* 판분쉐: NTV 『우리들의 내일』 (1980년)
* 아사지 요코: TV 도쿄 『료마가 간다』 (1982년)
* 이케가미 키미코: TBS 『료마가 간다』 (1997년)
* 와카무라 마유미: TV 도쿄 『료마가 간다』 (2004년)
* 토다 케이코: NHK 대하드라마 『신선조!』 (2004년)
* 쿠사카리 타미요: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 (2010년)
* 무로이 시게루: TBS 『JIN-진- (완결편)』 (2011년)
* 야부키 하루나: TV 아사히 『후루타테 토킹 히스토리 ~막말 최대의 수수께끼 사카모토 료마 암살, 완전 실황~』 (2019년)
4.3. 무대
| 분야 | 제목 | 배우 |
|---|---|---|
| 무대 | 극단 신파 『테라다야 오토세』(1968년) | 미즈타니 야에코 |
| 무대 | 메이지좌 『교토의 반딧불~오토세와 료마~』(1971년) | 아와시마 치카게 |
| 무대 | 메이지좌 『교토의 반딧불』(2017년) | 쿠로키 히토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