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데슬로흐
1. 개요
오토 데슬로흐는 독일의 군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1910년 바이에른 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이후 자유군단에 합류하여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 대항했다. 1921년부터 국방군에서 정보 장교로 복무했으며, 루프트바페 창설에 참여하여 여러 비행단 사령관을 거쳐 공군 기동 함대 사령관을 역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 공방전, 동부 전선 등에서 루프트바페 부대를 지휘했으며, 1944년 파리 해방 후 민간인 학살을 지휘하기도 했다. 전쟁 후 연합군에 억류되었다가 197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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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방군 공군 상급대장 -
쿠르트 슈투덴트
쿠르트 슈투덴트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 조종사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낙하산 부대 창설 및 발전에 기여, 주요 작전에서 공수부대를 지휘하며 초기 성공을 거두었으나, 크레타 전투에서의 민간인 학살 책임과 전쟁 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군인이다. -
독일 국방군 공군 상급대장 -
알렉산더 뢰어
알렉산더 뢰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나치 독일의 항공대장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 폭격 지휘로 전쟁 범죄자가 되어 유고슬라비아에서 사형당했다. -
4급 무공훈장 (바이에른) 수훈자 -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는 제1,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 군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6군 사령관으로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지휘하다 소련군에 항복했으며, 전후 반나치 활동에 참여하고 뉘른베르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
4급 무공훈장 (바이에른) 수훈자 -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 군인이자 원수로, 프로이센 귀족 출신으로 엘리트 군사 교육을 받고 제1차 세계 대전 참모 장교, 바이마르 공화국 고위직, 나치 시대 주요 전투 지휘관을 역임했으나, 나치 정권과의 관계 및 전쟁 범죄 책임에 대한 논란이 있다. -
1889년 출생 -
에프렘 짐발리스트
러시아 제국 출신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음악 교육자인 에프렘 짐발리스트는 레오폴트 아우어의 제자로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명성을 얻었고 커티스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은퇴 후에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
1889년 출생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2.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데슬로흐는 밤베르크에서 태어나 1910년 바이에른 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독일의 패배 이후, 프란츠 폰 에프의 자유군단에 합류하여 공산주의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 대항하여 싸웠다. 1921년부터 국방군(Reichswehr)에서 정보 장교로 복무했다. 독일 재무장 과정에서 1926~27년에 비밀 리페츠크 전투기 조종사 학교에 다녔다. 1933년 나치 정권 장악 이후 루프트바페 건설에 참여하여, 1934년 12월 1일부터 도이체 페어케어스플리에거슐레(Deutsche Verkehrsfliegerschule)(비행 훈련 학교)의 사령관을 역임했다. 1935년부터는 두 개의 루프트바페 비행단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1939년 10월 3일부터 공군 기동 함대 2(Luftflotte 2) 군단을 지휘했으며, 1940년 1월 1일 소장으로 임명되어 제6 비행 사단을 지휘했다.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서 육군 B 집단군에 항공 지원을 제공했으며, 1941년부터 동부 전선에서 루프트바페 부대를 지휘했다. 1942년 1월 1일 포병 대장(General der Flakartillerie)으로 진급하여 동부 전선 남부와 코카서스 산맥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1943년 6월 11일 볼프람 프라이헤어 폰 리히트호펜의 뒤를 이어 대장 계급으로 공군 기동 함대 4(Luftflotte 4)의 사령관이 되었다.
1944년 여름 서부 전선이 붕괴되자, 헤르만 괴링은 해임된 후고 슈페를레를 대신하여 데슬로흐를 공군 기동 함대 3(Luftflotte 3)의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파리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데슬로흐는 보복으로 민간 목표를 파괴하고 1944년 9월에 200명의 프랑스 민간인을 살상한 공습을 지휘했다. 이 공격은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적인 명령에 의해 수행되었다. 9월부터 다시 공군 기동 함대 4(Luftflotte 4)의 사령관으로 복무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의 뒤를 이어 공군 기동 함대 6(Luftflotte 6)의 수장이 되었다. 데슬로흐는 1948년까지 연합군에 의해 억류되었다.
1977년 뮌헨에서 사망했다.
2.1.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데슬로흐는 밤베르크에서 태어나 1910년 바이에른 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독일의 패배 이후, 그는 공산주의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 대항하여 싸운 프란츠 폰 에프의 자유군단에 합류했다. 1921년부터 그는 독일 국방군(Reichswehr)에서 정보 장교로 복무했다. 독일 재무장 과정에서 그는 1926~27년에 비밀 리페츠크 전투기 조종사 학교에 다녔다. 데슬로흐는 1933년 나치 정권 장악 이후 루프트바페의 급속한 건설에 참여하여, 1934년 12월 1일부터 도이체 페어케어스플리에거슐레(Deutsche Verkehrsfliegerschule)(비행 훈련 학교)의 사령관을 역임했다. 1935년부터 그는 두 개의 루프트바페 비행단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2.2.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데슬로흐는 밤베르크에서 태어나 1910년 바이에른 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독일의 패배 이후, 그는 공산주의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 대항하여 싸운 프란츠 폰 에프의 자유군단에 합류했다. 1921년부터 그는 독일 국방군(Reichswehr)에서 정보 장교로 복무했다. 독일 재무장 과정에서 그는 1926~27년에 비밀 리페츠크 전투기 조종사 학교에 다녔다.
2.3.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데슬로흐는 밤베르크에서 태어나 1910년 바이에른 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독일의 패배 이후, 프란츠 폰 에프의 자유군단에 합류하여 공산주의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 대항하여 싸웠다. 1921년부터 독일 국방군(Reichswehr)에서 정보 장교로 복무했다. 독일 재무장 과정에서 1926~27년에 비밀 리페츠크 전투기 조종사 학교에 다녔다. 1933년 나치 정권 장악 이후 루프트바페의 급속한 건설에 참여하여, 1934년 12월 1일부터 도이체 페어케어스플리에거슐레(Deutsche Verkehrsfliegerschule)(비행 훈련 학교)의 사령관을 역임했다. 1935년부터는 두 개의 루프트바페 비행단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3. 나치 독일 시기
나치 정권 장악 이후, 데슬로흐는 루프트바페 건설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그는 여러 루프트바페 부대를 지휘했으며,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민간인 목표물을 공격하기도 했다. 데슬로흐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연합군에 억류되었다.
3.1. 루프트바페 창설 및 활동
데슬로흐는 1933년 나치 정권 장악 이후 루프트바페 건설에 참여하여, 1934년 12월 1일부터 도이체 페어케어스플리에거슐레(Deutsche Verkehrsfliegerschule)(비행 훈련 학교)의 사령관을 역임했다. 1935년부터는 두 개의 루프트바페 비행단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1939년 10월 3일부터 공군 기동 함대 2(Luftflotte 2) 군단을 지휘했으며, 1940년 1월 1일 소장으로 임명되어 제6 비행 사단을 지휘했다.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서 육군 B 집단군에 항공 지원을 제공했으며, 1941년부터는 동부 전선에서 루프트바페 부대를 지휘했다. 1942년 1월 1일 포병 대장(General der Flakartillerie)으로 진급하여 동부 전선 남부와 코카서스 산맥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1943년 6월 11일 볼프람 프라이헤어 폰 리히트호펜의 뒤를 이어 대장 계급으로 공군 기동 함대 4(Luftflotte 4)의 사령관이 되었다.
1944년 여름 서부 전선 붕괴 후, 데슬로흐는 해임된 후고 슈페를레를 대신하여 헤르만 괴링에 의해 공군 기동 함대 3(Luftflotte 3)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파리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데슬로흐는 보복으로 민간 목표를 파괴하고 1944년 9월에 200명의 프랑스 민간인을 살상한 공습을 지휘했다. 이 공격은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적인 명령에 의해 수행되었다. 같은 해 9월부터 다시 공군 기동 함대 4(Luftflotte 4) 사령관으로 복무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의 뒤를 이어 공군 기동 함대 6(Luftflotte 6)의 수장이 되었다.
3.2.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데슬로흐는 1939년 10월 3일부터 공군 기동 함대 2(Luftflotte 2) 군단을 지휘했으며, 1940년 1월 1일 소장으로 임명되어 제6 비행 사단을 지휘했다.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서 육군 B 집단군에 항공 지원을 제공했으며, 1941년부터는 동부 전선에서 루프트바페 부대를 지휘했다. 1942년 1월 1일 포병 대장(General der Flakartillerie)으로 진급하여 동부 전선 남부와 코카서스 산맥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1943년 6월 11일 볼프람 프라이헤어 폰 리히트호펜의 뒤를 이어 대장 계급으로 공군 기동 함대 4(Luftflotte 4)의 사령관이 되었다.
1944년 여름 서부 전선이 붕괴되자, 데슬로흐는 해임된 후고 슈페를레를 대신하여 헤르만 괴링에 의해 공군 기동 함대 3(Luftflotte 3)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파리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데슬로흐는 보복으로 민간 목표를 파괴하고 1944년 9월에 200명의 프랑스 민간인을 살상한 공습을 지휘했다. 이 공격은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적인 명령에 의해 수행되었다. 같은 해 9월부터 데슬로흐는 다시 공군 기동 함대 4(Luftflotte 4)의 사령관으로 복무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의 뒤를 이어 공군 기동 함대 6(Luftflotte 6)의 수장이 되었다. 데슬로흐는 1948년까지 연합군에 의해 억류되었다.
3.3. 서부 전선
1944년 여름 서부 전선이 붕괴되자, 데슬로흐는 해임된 후고 슈페를레를 대신하여 헤르만 괴링에 의해 공군 기동 함대 3(Luftflotte 3)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파리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데슬로흐는 보복으로 민간 목표물 파괴를 지휘하여 1944년 9월에 200명의 프랑스 민간인을 살상한 공습을 했다. 이 공격은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적인 명령에 의해 수행되었다.
4. 수상 내역
* 철십자 훈장 (1914) 2급 (1914년 8월 20일) & 1급 (1915년 9월 21일)
* 바이에른 Militär-Verdienstorden독일어 검 부착 4급 (1915년 4월 19일) & 왕관과 검 부착 4급 (1917년 11월 9일)
* Ehrenpokal der Luftwaffe독일어
* Verwundetenabzeichen독일어 (1914) 흑색 (1918년 5월 15일)
* Spange zum Eisernen Kreuz독일어 (1939) 2급 (1940년 5월 13일) & 1급 (1940년 5월 24일)
*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74번째 기사십자 훈장 (1940년 6월 24일): 소장 계급으로 제2 방공군단 지휘
470번째 참나무 잎 (1944년 5월 10일): 상급대장 계급으로 제4 항공함대 사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