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올림피아스는 에피로스 출신으로,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아내이자 알렉산드로스 3세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다양한 이름을 가졌으며, 아킬레우스의 후예라는 명성을 지닌 에피로스 왕족 출신이다. 필리포스 2세와의 결혼을 통해 마케도니아 왕비가 되었으나, 남편과의 불화로 추방과 귀환을 반복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에는 손자인 알렉산드로스 4세의 후견인으로 마케도니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결국 카산드로스에 의해 살해당했다. 올림피아스는 여러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 다루어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고대 이피로스인 - 알렉산드로스 1세 (에페이로스)
알렉산드로스 1세는 네오프톨레모스 1세의 아들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삼촌으로, 필리포스 2세에 의해 에페이로스의 왕이 되어 이탈리아 남부에서 전쟁을 벌이다 판도시아 전투에서 패배 후 암살당했다. - 기원전 4세기 여자 통치자 - 아르테미시아 2세
아르테미시아 2세는 기원전 4세기 카리아의 여왕으로, 남편이자 오빠인 마우솔로스의 사후 그의 업적을 기려 마우솔레움을 건설하고 로도스와의 전쟁에서 군사적 전략을 통해 카리아의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예술과 문화에도 기여하여 식물 속 쑥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 기원전 4세기 여자 통치자 - 선태후
선태후는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 혜문왕의 후궁이자 소양왕의 생모로, 소양왕의 섭정 기간 동안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하며 위염, 미융 등 동생들을 중용하여 권력을 강화하고 국정을 운영했으며, 의거왕과의 관계를 통해 북방 안정을 꾀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으나, 권력 남용, 사치스러운 생활, 의거왕 살해 등의 부정적인 평가도 받는 인물이다. - 기원전 316년 사망 - 카르디아의 에우메네스
카르디아 출신인 에우메네스는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서기를 지냈고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알렉산드로스 4세를 지지하며 활약했으나, 마케도니아인에 대한 내부 불신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알렉산드로스 제국 분열을 가속화했다. - 기원전 316년 사망 - 안티게네스
안티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의 장군으로 군사적 능력은 뛰어났지만, 금전 갈취, 페르디카스 암살 가담, 에우메네스 배신, 안티고노스 1세와의 대립에서 패배 등 정치적 행보에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올림피아스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Ὀλυμπιάς (올림피아스) |
기타 이름 | 올림피아스 |
신분 | |
직업 | 마케도니아의 왕비 |
배우자 | 필리포스 2세 |
자녀 | 알렉산드로스 대왕 클레오파트라 |
생애 | |
출생 | 기원전 375년경 |
출생지 | 고대 그리스, 에피로스, 몰로시아 |
사망 | 기원전 316년 (59세) |
사망지 | 마케도니아, 고대 그리스 |
가문 | |
왕가 | 몰로시아인 |
종교 | |
종교 | 고대 그리스 종교 |
2. 이름
올림피아스는 에피루스의 고대 그리스계 씨족 몰로시안의 왕 네오프톨레모스 1세의 딸이자 에피루스 왕 알렉산드로스 1세의 누이이다. 올림피아스 가문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후손으로 아이아키다이(아이아코스의 후예)로 여겨져 에피루스에서 존경을 받았다.
2. 1. 다양한 이름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논집》(모랄리아)에 따르면, 올림피아스는 원래 ‘폴리크세나’(Polyxena)로 불렸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와 결혼하면서 ‘뮈르탈레’(Myrtale)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는 어떤 비밀 종교에 입교하는 의식의 한 장면이었다.[27][28]‘올림피아스’는 그녀에게 알려진 네 개의 이름 중 세 번째 이름이다. 이 이름은 아마도 알렉산드로스의 출산과 동시에, 기원전 356년 올림피아 경기에서 필리포스 2세가 소유한 경주마가 우승했다는 소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플루타르코스, 《알렉산드로스 전기》 3.8)[29] 그녀의 마지막 이름은 ‘스트라토니케’(Stratonice)인데, 이 이름은 기원전 317년 마케도니아의 왕비 에우리디케 2세에게 승리했을 때 주어진 별명으로 추정된다.[30]
3. 생애
올림피아스는 에피루스 왕 네오프톨레모스 1세의 딸로, 기원전 357년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와 정략결혼하여 마케도니아의 왕비가 되었다. 이 결혼은 아림바스가 필리포스 2세와 맺은 조약을 통해 이루어졌다.[34] 필리포스 2세는 올림피아스가 사모트라케 섬의 대신전에서 카베이리 신비에 입문했을 때 사랑에 빠졌다고 전해지지만,[11] 실제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12]
기원전 356년, 필리포스 2세의 경주마가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자, 당시 미르탈레로 알려졌던 올림피아스는 '올림피아스'라는 이름을 얻었다.[13] 같은 해 여름,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낳았다. 플루타르코스는 결혼 첫날밤 올림피아스가 번개 꿈을 꾸었고, 필리포스 2세는 사자 형상 문장 꿈을 꾸었다고 묘사했다. 아리스탄데르는 이를 올림피아스가 용맹한 아들을 임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14]
필리포스 2세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올림피아스의 질투심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파란만장했다.[16] 기원전 337년, 필리포스 2세가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고,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와 함께 에피루스로 망명했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가 파우사니아스에게 살해당한 후, 올림피아스는 마케도니아로 돌아왔지만 암살 묵인 혐의를 받았다.[15][16]
필리포스 2세 사후, 올림피아스는 에우리디케와 그녀의 자녀를 처형하는 데 관여했다고 한다.[17]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 동안, 올림피아스는 그와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제우스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버지라는 주장을 확인했을 수도 있다. 올림피아스는 마케도니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는 그녀를 정치에서 멀리하려 했다. 기원전 330년, 올림피아스는 에피루스로 돌아가 에이아키데스의 섭정으로 활동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알렉산드로스 4세와 필리포스 3세가 페르디카스의 섭정을 받았다. 올림피아스는 페르디카스에게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제안했으나, 페르디카스는 니케아를 선택했다. 폴리페르콘이 기원전 319년 섭정이 되었지만, 카산더가 필리포스 3세를 왕으로 세우고 폴리페르콘을 쫓아냈다. 올림피아스는 폴리페르콘과 동맹을 맺고 마케도니아를 침공하여 카산드로스를 몰아냈다.
올림피아스는 필리포스 3세와 아데아 에우리디케를 처형하고 카산드로스의 추종자들을 사로잡았다.[18] 카산드로스는 퓌드나에서 올림피아스를 포위했고, 결국 올림피아스는 처형당했다.[19]
3. 1. 에페이로스 왕족
올림피아스는 에피루스의 고대 그리스계 씨족의 왕 네오프톨레모스 1세의 딸이자 에피루스 왕 알렉산드로스 1세의 누이이다. 올림피아스의 일족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후손으로 아이아키다이(아이아코스의 후예)로 여겨져 에피루스에서 존경을 받았다. 플루타르코스의 『윤리집(모랄리아)』에 따르면, 그녀는 원래 폴릭세나로 불렸다고 한다.[27] 그 후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와의 혼인에 따라 뮈르탈레로 이름을 바꾸었다.[28] 이 개명은 모종의 비밀 종교의 입신 의식의 한 장면이었다."올림피아스"는 현재 알려진 그녀의 4개의 이름 중 세 번째이다. 이 이름은 아마도 알렉산드로스의 출산과 동시에, 기원전 356년 올림피아 경기회에서 필리포스가 소유한 경주마가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플루타르코스 『알렉산드로스 전기』3.8)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29] 그녀의 마지막 이름은 스트라토니케이다. 이 이름은 기원전 317년 마케도니아 왕비 에우리디케 2세에게 승리했을 때 주어진 별명으로 보인다.[30]
3. 2. 마케도니아 왕비
올림피아스는 에피루스 왕 네오프톨레모스 1세의 딸이자 몰로시아인의 여족장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에피루스에 살던 부족인 몰로시아인 출신으로, 알렉산더 1세의 누이였다. 아리바스와 결혼한 트로아스라는 누이도 있었다.
올림피아스의 가문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에피루스의 존경받는 아이아키데스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사로니코스 만의 아이기나 섬을 다스린 신화 속 왕 아이아코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이아키데스는 그리스인으로 널리 인정받은 유일한 에피로테스 가문이었을 것이다. 올림피아스는 스파르타의 헬레네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올림피아스의 어머니가 카오니아인 공주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는 올림피아스가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헬레노스와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의 후손이라고 말하곤 했다는 소문에 근거한다.
올림피아스는 원래 플루타르코스가 ''도덕론''에서 언급했듯이 폴릭세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와 결혼하기 전 알려지지 않은 비밀 종교에 입문하기 위해 미르탈레로 이름을 바꿨다. '올림피아스'라는 이름은 그녀가 가진 네 개의 이름 중 세 번째로, 기원전 356년 고대 올림픽에서 필리포스 2세의 승리를 기념하여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소식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탄생과 일치했다(플루타르코스, 알렉산더 3.8). 그녀는 기원전 317년 마케도니아의 에우리디케 2세와의 승리 이후 올림피아스에게 붙여진 칭호인 스트라토니케라는 이름을 마지막으로 얻었다.
360년, 네오프톨레모스 1세가 사망하자 그의 형제 아림바스가 몰로소스 왕위를 계승했다. 기원전 358년, 아림바스는 마케도니아의 새 왕 필리포스 2세와 조약을 맺어 몰로소스는 마케도니아의 동맹국이 되었다. 기원전 357년, 아림바스의 조카 올림피아스와 필리포스 2세의 정략결혼으로 동맹이 더욱 굳건해졌고, 올림피아스는 마케도니아의 왕비가 되었다. 필리포스 2세는 올림피아스가 사모트라케 섬의 대신전에서 카베이리 신비에 입문했을 때 사랑에 빠졌다고 전해지지만,[11] 실제 결혼은 마케도니아와 에피루스 간의 동맹을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12]
기원전 356년, 필리포스 2세의 경주마가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면서 당시 미르탈레로 알려진 그의 아내는[13] '올림피아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같은 해 여름, 올림피아스는 첫 아이 알렉산드로스 3세를 낳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에는 징조가 따른다고 믿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결혼 첫날밤 올림피아스는 번개가 자신의 자궁에 떨어져 큰 불이 사방으로 흩어지다 꺼지는 꿈을 꿨다. 결혼 후 필리포스 2세는 아내의 자궁에 사자 형상의 문장이 있는 도장을 찍는 꿈을 꿨고, 아리스탄데르는 이를 올림피아스가 용맹하고 사자 같은 성품을 가진 아들을 임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14]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는 딸 클레오파트라도 두었는데, 그녀는 나중에 삼촌 알렉산드로스 1세와 결혼하여 마케도니아와 에피루스 간의 외교 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1차 자료에 따르면, 필리포스 2세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올림피아스의 야망, 질투심으로 인해 그들의 결혼 생활은 매우 파란만장했고, 결국 소원해졌다.[16] 기원전 337년, 필리포스 2세가 아탈로스의 조카인 클레오파트라라는 마케도니아 귀족 여성과 결혼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필리포스 2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에우리디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결혼식 후 모임에서 필리포스 2세는 아탈로스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왕위 계승을 위협하자 그의 정당성을 옹호하지 못했고, 이는 필리포스 2세, 올림피아스, 알렉산드로스 3세 사이에 큰 긴장을 야기했다.[16]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와 함께 에피루스로 자발적 망명을 떠나 당시 왕이었던 오빠 알렉산드로스 1세의 몰로소스 궁정에 머물렀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는 에피루스의 알렉산드로스 1세에게 자신과 올림피아스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결혼시켜 관계를 공고히 했다. 이로 인해 올림피아스는 오빠의 지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어 고립되었다. 그러나 필리포스 2세는 결혼식 도중 개인 경호원 파우사니아스에게 살해당했고, 올림피아스는 마케도니아로 돌아왔지만 그의 암살을 묵인했다는 혐의를 받았다.[15][16]
올림피아스는 필리포스 2세와의 사이에서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와 딸 클레오파트라(숙부 에피루스의 왕알렉산드로스 1세와 결혼)를 두었지만, 남편 필리포스 2세와 불화하여 추방당했다. 후에 알렉산드로스 3세의 중재로 필리포스 2세와 화해하고 펠라로 귀환했다.
3. 3.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와 디아도코이 전쟁
기원전 356년 여름, 올림피아스는 첫 아이인 알렉산드로스를 낳았다. 플루타르코스는 결혼 첫날밤에 올림피아스가 번개가 자신의 자궁에 떨어져 큰 불이 타올라 사방으로 흩어지다 꺼지는 꿈을 꿨다고 묘사했다. 결혼 후 필리포스는 자신의 아내의 자궁에 사자 형상의 문장이 있는 도장을 찍는 꿈을 꿨다. 아리스탄데르는 올림피아스가 담대하고 사자 같은 성품을 가진 아들을 임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14] 필리포스와 올림피아스는 딸 클레오파트라도 두었는데, 그녀는 나중에 삼촌인 알렉산드로스 1세와 결혼하여 마케도니아와 에피루스 간의 외교적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했다.1차 자료에 따르면, 필리포스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올림피아스의 야망, 질투심으로 인해 그들의 결혼 생활은 매우 파란만장했고, 결국 점점 더 소원해졌다.[16] 기원전 337년, 필리포스가 클레오파트라라는 마케도니아 귀족 여성과 결혼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녀는 아탈로스의 조카였고, 필리포스는 그녀에게 에우리디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결혼식 이후 모임에서 필리포스는 아탈로스가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왕위 계승을 위협하자 그의 정당성을 옹호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필리포스, 올림피아스, 알렉산드로스 사이에 큰 긴장이 조성되었다.[16]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자발적으로 에피루스로 망명하여 당시 왕이었던 오빠 알렉산드로스 1세의 몰로소스 궁정에 머물렀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는 에피루스의 알렉산드로스 1세에게 자신과 올림피아스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결혼시키면서 관계를 공고히 했다. 이로 인해 올림피아스는 오빠의 지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어 더욱 고립되었다. 그러나 필리포스는 결혼식에 참석하던 중 파우사니아스에게 살해당했는데, 그는 필리포스의 개인 경호원인 ''소마토필라케스''의 일원이었다. 올림피아스는 마케도니아로 돌아왔지만, 그의 암살을 묵인한 혐의를 받았다.[15][16]
필리포스 2세가 사망한 후, 올림피아스는 일부 고대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를 살해하거나 살해를 사주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알렉산드로스를 마케도니아의 정당한 왕으로 만들기 위해 에우리디케와 그녀의 자녀를 처형하는 것을 감독하는 데에도 관여했다고 한다.[17] 알렉산드로스의 원정 동안, 그녀는 그와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그의 아버지가 필리포스가 아니라 제우스였다는 아들의 이집트에서의 주장을 확인했을 수도 있다.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드로스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지만, 그녀의 아들은 그녀를 정치에서 멀리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케도니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왕국의 섭정인 안티파테르에게 문제를 일으켰다. 기원전 330년, 그녀는 에피루스로 돌아가 에피루스에서 사촌인 에이아키데스의 섭정으로 활동했는데, 이는 오빠인 알렉산드로스 1세가 이탈리아 남부 원정 중 사망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사망한 후, 그의 아내 록사네는 그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를 낳았다. 알렉산드로스 4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복형제이자 장애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는 페르디카스의 섭정을 받았는데, 그는 안티파테르의 딸 니케아와 결혼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 동시에 올림피아스는 페르디카스에게 그녀와 필리포스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제안했다. 페르디카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선택했고, 이는 안티파테르를 분노하게 했으며, 그는 다른 여러 디아도코이와 동맹을 맺고 페르디카스를 폐위시킨 후 섭정으로 선포되었지만, 그해 안에 사망했다.
폴리페르콘은 기원전 319년 안티파테르의 뒤를 이어 섭정이 되었지만, 안티파테르의 아들 카산더는 필리포스 2세의 아들 필리포스 3세(아리다이오스)를 왕으로 세우고 폴리페르콘을 마케도니아에서 쫓아냈다.[18] 그는 에피루스로 도망쳐 록사네와 그녀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를 데려갔는데, 그들은 이전에 올림피아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올림피아스는 이 분쟁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곧 카산드로스가 통치하면 그녀의 손자가 왕위를 잃게 될 것을 깨닫고 기원전 317년에 폴리페르콘과 동맹을 맺었다.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그녀의 복귀를 지지했고, 폴리페르콘과 올림피아스의 연합군은 에이아키데스의 가문과 함께 마케도니아를 침공하여 카산드로스를 권력에서 몰아냈다.
필리포스 3세의 아내 아데아 에우리디케의 군대를 설득하여 그녀 편으로 끌어들여 전투에서 승리한 후, 올림피아스는 기원전 317년 10월에 그 둘을 포획하여 처형했다. 그녀는 또한 카산드로스의 형제와 그의 추종자 백 명을 사로잡았다.[18] 카산드로스는 곧 퓌드나에서 올림피아스를 포위했는데, 항복 조건 중 하나는 올림피아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지만, 카산드로스는 그녀를 처형하기로 결정하고 록사네와 알렉산드로스 4세의 생명만 잠시 보류했다(그들은 기원전 309년에 처형되었다). 퓌드나 요새가 함락되자 카산드로스는 올림피아스를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병사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어머니를 해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그녀의 많은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카산드로스의 승인하에 그녀를 돌로 쳐 죽였으며,[19] 그녀의 시신에 장례 의식을 거부했다고 한다.
4. 대중문화 속 올림피아스
연도 | 작품명 | 배역 | 비고 |
---|---|---|---|
1956 | 알렉산더 대왕 | 다니엘 다리유 | 리처드 버튼 (알렉산더 역), 프레드릭 마치 (아버지 역) |
1960 | 신이 된 알렉산더 | 모리스 드뤼옹 소설 | |
1960 | 어린 알렉산더 대왕 | 나오미 미치슨 소설 | |
1962 | 정복자 | 에디슨 마셜 소설 | |
1965 | 여인들의 음모 | 오브리 메넨 소설 | |
1969 | 하늘의 불꽃 | 메리 르노의 알렉산더 3부작 중 1권 | |
1972 | 페르시아 소년 | 메리 르노의 알렉산더 3부작 중 2권, 자주 언급됨 | |
1981 | 장례 게임 | 메리 르노의 알렉산더 3부작 중 3권 | |
1993 | 네오톨레무스의 딸 | 마이클 A. 디미트리 소설 | |
2001 | 알렉산더: 꿈의 아이 | 발레리오 마시모 만프레디 소설 | |
2004 | 알렉산더 | 안젤리나 졸리 | 콜린 파렐 (알렉산더 역), 발 키머 (필리포스 역) |
2004 | 재의 제국: 알렉산더 대왕 소설 | 니콜라스 니카스트로 소설 | |
2005 | 전쟁의 미덕: 알렉산더 대왕 소설 | 스티븐 프레스필드 소설, 알렉산더 시점 1인칭 서술 | |
2008 | 태양을 떨어뜨려라 (알렉산더 대왕 #2) | 주디스 타르 소설 | |
2012 | 전쟁의 신 | 크리스찬 카메론의 알렉산더 가상 전기 | |
2017 | 포러스 | 사멕샤 | 인도 드라마 |
2019 | 사자와 함께 춤을 | 잔 리임스 2부작, 미르탈레(올림피아스 과거 이름) | |
- | 히스토리에 | 이와아키 히토시 만화 | |
- | 호러블 히스토리 | "마케도니아에서 제작" 스킷 |
참조
[1]
웹사이트
Olympias, the Mighty Mother of Alexander the Great
https://web.archive.[...]
2019-12-03
[2]
웹사이트
Olympias Queen of Macedonia
http://www.american-[...]
www.american-pictures.com
2009-07-30
[3]
서적
Olympias: Mother of Alexander the Great
Routledge
2006
[4]
문서
[5]
백과사전
Epirus
http://www.britannic[...]
2023-12-24
[6]
서적
A Dictionary of Greek and Roman biography and mythology
Little, Brown, and Company
[7]
문서
[8]
서적
Olympias: Mother of Alexander the Great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06-09-27
[9]
웹사이트
Review of Elizabeth Carney's ''Olympias, Mother of Alexander the Great'' by Michael D. Dixon
https://cj.camws.org[...]
Classical Journal
2022-07-05
[10]
문서
[11]
문서
[12]
문서
[13]
백과사전
'Olympias {{!}} Macedonian leader'
https://www.britanni[...]
2018-01-29
[14]
문서
[15]
문서
[16]
문서
[17]
서적
Classical Bearings: Interpreting Ancient History and Culture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06-25
[18]
웹사이트
'Olympias | Macedonian leader'
http://www.britannic[...]
[19]
웹사이트
Olympias Mother of Alexander
https://web.archive.[...]
2014-09-30
[20]
웹사이트
'Medallion with Olympias · The Walters Art Museum · Works of Art'
https://web.archive.[...]
2012-08-20
[21]
웹사이트
'The Gold of Macedon {{!}} ARCHAEOLOGICAL MUSEUM OF THESSALONIKI'
https://www.amth.gr/[...]
2018-01-29
[22]
간행물
Alexandre le Grand en Macédoine dans la Ière moitié du IIIe siècle ap. J.-C.
[23]
문서
[24]
문서
[25]
문서
[26]
문서
[27]
문서
[28]
문서
[29]
문서
[30]
문서
[31]
웹인용
'Medallion with Olympias · The Walters Art Museum · Works of Art'
http://art.thewalter[...]
2012-08-20
[32]
웹인용
Olympias Queen of Macedonia
http://www.american-[...]
www.american-pictures.com
2009-07-30
[33]
문서
[34]
문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