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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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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남부는 일반적으로 아브루초, 풀리아, 바실리카타, 칼라브리아, 캄파니아, 몰리세, 시칠리아 등 역사적 두 시칠리아 왕국의 지정학적 범위를 포함하는 지역을 지칭한다. 이탈리아 국립 통계 연구소(ISTAT)는 이 지역을 캄파니아, 아브루초, 몰리세, 풀리아, 바실리카타, 칼라브리아의 6개 주로 정의하며, 유럽 연합(EU) 역시 이 구분을 사용한다. 지리적으로 이탈리아반도 하부를 형성하며,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 식민지화의 영향으로 마그나 그라에키아로 불렸으며, 이후 로마 제국, 노르만 왕국,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지배를 거쳐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 북부와 남부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는 '남부 문제'로 이어졌으며, 현재까지도 경제적 불균형, 조직 범죄, 높은 실업률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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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개요
다른 이름이탈리아 메리디오날레 (Italia meridionale)
수드 이탈리아 (Sud Italia)
메리디오네 (Meridione)
메초조르노 (Mezzogiorno)
언어공식 언어: 이탈리아어
소수 언어:
아르베레슈어
카탈루냐어
칼라브리아 그리스어
프랑코-프로방스어
그리코 방언
오크어
사르데냐어
세르보-크로아티아어
지역 언어:
코르시카어
나폴리어
시칠리아어
행정 구역
지역목록
지역 목록아브루초주
풀리아주
바실리카타주
칼라브리아주
캄파니아주
몰리세주
사르데냐주
시칠리아주
인구
총 인구 (2019년)20,637,360명
면적
총 면적123,024km2

2. 정의

남부 이탈리아는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두 시칠리아 왕국의 영역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을 포함한다. 여기에는 아브루초주, 풀리아주, 바실리카타주, 칼라브리아주, 캄파니아주, 몰리세주, 시칠리아주가 속한다.[10][14][13][15] 사르데냐 섬은 문화, 언어, 역사적으로 이들 지역과 관련성이 적지만, 통계 및 경제적 목적으로 남부 이탈리아에 포함되기도 한다.

국립 통계 연구소(ISTAT)와 유럽 연합(EU)은 통계상 이탈리아 남부(Italia meridionaleit)에 캄파니아주, 아브루초주, 몰리세주, 풀리아주, 바실리카타주, 칼라브리아주의 6개 주를 포함시킨다.[65]

시칠리아주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영역, 유사한 문화, 밀접한 경제망을 이유로 남부 이탈리아에 포함되기도 한다. 라치오주나 사르데냐주가 남부 이탈리아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3. 지리

이탈리아 남부는 이탈리아 반도 아랫부분을 '부츠' 모양으로 형성한다. 캄파니아, 칼라브리아, 바실리카타, 풀리아, 몰리세, 아브루초, 시칠리아 등의 주가 여기에 포함된다. 타란토만은 이오니아해의 일부로, "부츠"의 발꿈치와 발가락 부분을 나눈다. 동쪽 해안에는 아드리아해가 있으며, 오트란토 해협을 통해 지중해와 연결된다. 서쪽 해안에는 티레니아해가 있고, 나폴리만, 살레르노만, 가에타만 등 여러 만이 있다.[10][14][13][14][15]

아브루초의 그란 사소 디탈리아. 아펜니노 산맥에서 가장 높고 알프스 산맥을 제외한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소렌토 반도 남쪽에는 아말피 해안이 뻗어 있으며, 반도 끝에는 카프리 섬이 있다.

이탈리아 남부의 기후는 대체로 지중해성 기후(쾨펜 기후 구분 Csa)이다. 그러나 풀리아 및 몰리세의 동부 지역과 칼라브리아의 이오니아 해안, 시칠리아 남부 지역은 반건조 기후(BSw)를 보인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는 나폴리이며, 바리, 타란토, 레조 디 칼라브리아, 포자, 살레르노 등이 주요 도시이다.

근현대에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생한 주요 지진


이탈리아 남부는 살렌토를 제외하면 지질학적으로 매우 활동적이어서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1980년 이르피니아 지진으로 2,914명이 사망하고 10,00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30만 명이 집을 잃었다.

4. 역사

기원전 8세기기원전 7세기그리스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16] 이들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정착지를 건설했으며, 이 지역을 마그나 그라에키아("대 그리스")라고 불렀다. 이러한 식민지화와 함께 고대 그리스어의 방언, 종교 의식, 독립적인 ''폴리스'' 전통 등 그리스 문화가 이탈리아로 전파되었다. 독창적인 헬레니즘 문명이 곧 발전했고, 이후 토착 이탈리아어 및 로마 문명과 상호 작용했다. 에피루스의 피로스가 기원전 282년에 로마의 패권을 막으려다 실패한 후, 남부는 로마의 지배하에 떨어졌다.

서로마 제국476년에 멸망한 후, 이탈리아 남부는 530년대동로마 제국의 통제하에 회복되었다. 그러나 6세기 말, 롬바르드족의 침입으로 동로마 제국의 통치는 1070년대까지 명목상으로만 유지되었다.[16] 11세기에는 노르만족이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 이후, 시칠리아 왕국은 나폴리 왕국시칠리아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1442년, 아라곤 왕국의 알폰소 5세가 나폴리 왕국을 정복하고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다시 아라곤 왕관의 속국으로 통일했다.[16]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는 나폴리 왕위에 대한 앙주 가문의 주장을 구실로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이탈리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왕국은 수십 년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분쟁 대상이었지만, 스페인의 지배는 1559년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프랑스가 왕국에 대한 주장을 포기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18세기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 왕국의 소유권은 다시 바뀌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에 따라 나폴리신성 로마 제국카를 6세에게 주어졌고, 그는 1720년시칠리아의 지배권도 얻었다. 그러나 1734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동안 스페인 군대에 의해 나폴리와 시칠리아가 정복되었고, 1735년부터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아들인 파르마 공작 카를로스가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했다.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 시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나폴리를 점령하고 파르테노페 공화국을 세웠으나, 부르봉 왕가의 페르디난도 4세는 시칠리아로 피신했다.[25][26] 나폴레옹 몰락 후,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페르디난도 4세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로 복위되었다.[27]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의 천인대 원정으로 양시칠리아 왕국은 멸망하고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볼투르노 전투와 가에타 공방전에서 프란체스코 2세는 최후까지 저항했으나 결국 항복했다.[30] 통일 이후,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브리간테로 불리는 저항 세력이 활동했으나,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진압되었다.

4. 1. 고대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그리스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16] 이들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정착지를 건설했으며, 이 지역을 마그나 그라에키아("대 그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 콩코르디아 신전, 계곡 신전, 아그리젠토, 시칠리아


이러한 식민지화와 함께 고대 그리스어의 방언, 종교 의식, 독립적인 ''폴리스'' 전통 등 그리스 문화가 이탈리아로 전파되었다. 독창적인 헬레니즘 문명이 곧 발전했고, 이후 토착 이탈리아어 및 로마 문명과 상호 작용했다. 칼키데아/쿠마에 변종 그리스 문자에트루리아인들이 채택했고, 고대 이탈리아 문자는 이후 라틴 문자로 발전하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문자가 되었다.

''네아폴리스''(Νεάπολις, 나폴리, "새로운 도시"), ''시라쿠사이''(Συράκουσαι, 시라쿠사), ''아크라가스''(Ἀκράγας, 아그리젠토), ''시바리스''(Σύβαρις, 시바리) 등 많은 새로운 헬레니즘 도시들이 매우 부유하고 강력해졌다.

에피루스의 피로스가 기원전 282년에 로마의 패권을 막으려다 실패한 후, 남부는 로마의 지배하에 떨어졌다.

4. 2. 중세

서로마 제국이 476년에 멸망한 후, 이탈리아 남부는 530년대에 동로마 제국의 통제하에 회복되었다. 그러나 6세기 말, 롬바르드족의 침입으로 동로마 제국의 통치는 1070년대까지 명목상으로만 유지되었다.[16]

11세기에는 노르만족이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신성 로마 제국 프리드리히 2세는 멜피 헌법을 반포하고 나폴리 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 이후, 시칠리아 왕국은 나폴리 왕국시칠리아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4. 3. 근세

1442년, 아라곤 왕국의 알폰소 5세가 나폴리 왕국을 정복하고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다시 아라곤 왕관의 속국으로 통일했다.[16] 1458년 알폰소 5세가 사망하자 왕국은 다시 분열되었고, 그의 사생아인 페란테가 나폴리를 상속받았다.

1494년 페란테가 사망하자, 프랑스의 샤를 8세는 나폴리 왕위에 대한 앙주 가문의 주장을 구실로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이탈리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샤를 8세는 1495년 나폴리에서 페란테의 후계자인 알폰소 2세를 몰아냈지만, 아라곤의 페르디난트 2세의 지원으로 복위한 알폰소 2세의 아들 페르디난도 2세 때문에 곧 물러나야 했다.

1496년 페르디난도 2세가 사망하고 그의 삼촌인 프레데리크 4세가 왕위를 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고, 1501년 아라곤의 페르디난트와 왕국을 분할하기로 합의했지만, 곧 결렬되었다. 아라곤 왕관과 프랑스는 다시 전쟁을 벌였고, 결국 1504년 아라곤이 승리하여 페르디난트가 왕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후 왕국은 수십 년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분쟁 대상이었지만, 스페인의 지배는 1559년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프랑스가 왕국에 대한 주장을 포기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누오보 성, 나폴리: 앙주 가문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18세기까지 스페인 제국 본부로 사용되면서 크게 변경되었다.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 왕국의 소유권은 다시 바뀌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에 따라 나폴리신성 로마 제국카를 6세에게 주어졌고, 그는 1720년에 시칠리아의 지배권도 얻었다. 그러나 1734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동안 스페인 군대에 의해 나폴리와 시칠리아가 정복되었고, 1735년부터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아들인 파르마 공작 카를로스가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했다. 카를로스는 1759년 스페인 왕위를 물려받고,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그의 막내 아들인 페르디난도 4세에게 남겨두었다. 두 왕국은 1735년부터 부르봉 왕가 아래 개인 연합을 이루었지만, 헌법적으로 분리된 상태를 유지했다.

4. 4. 19세기와 이탈리아 통일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 시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나폴리를 점령하고 파르테노페 공화국을 세웠으나, 부르봉 왕가의 페르디난도 4세는 시칠리아로 피신했다.[25][26] 나폴레옹 몰락 후,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페르디난도 4세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로 복위되었다.[27]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의 천인대 원정으로 양시칠리아 왕국은 멸망하고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볼투르노 전투와 가에타 공방전에서 프란체스코 2세는 최후까지 저항했으나 결국 항복했다.[30]

통일 이후,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브리간테로 불리는 저항 세력이 활동했으나,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탈리아 의회는 1863년 피카 법을 제정하여 브리간테와 그 협력자들을 군사 재판에 회부하고 강제 지정 거주를 명령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71][72][73]

통일 당시 북부와 남부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는 컸다. 북부는 도로, 철도, 운하 등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고 철강 생산량도 많았지만, 남부는 그렇지 못했다.[28] 1860년 이탈리아 반도의 문맹률은 평균 75%였고 남부에서는 87%에 달했다.[28] 이러한 격차는 '남부 문제'로 이어졌다.

북부 엘리트들은 남부를 미개발 지역으로 보고 카밀로 벤소에게 남부의 침략과 개혁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31] 남부를 야만적으로 보는 시각은 북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했다.[31] 데니스 맥 스미스는 부르봉 왕가가 봉건 제도를 지지하며 백성을 고립시켰다고 지적했고,[33] 안토니오 그람시는 남부에는 부르주아 계급이 없고 농업이 원시적이라고 평가했다.[34]

지우스티노 포르투나토는 남부의 문제가 통일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외세 지배로 인한 오랜 가난과 고립이 그 원인이라고 강조했다.[38][39]

5. 경제

2018년 사르데냐와 시칠리아를 제외한 본토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국내 총생산 (GDP)은 2711억유로로 이탈리아 경제 생산량의 15.4%를 차지했다. 구매력을 고려한 1인당 GDP는 19300EUR로 같은 해 EU 27개국 평균의 64%였다.[97]

이탈리아 통일 당시,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의 두 시칠리아 왕국 사이의 격차는 컸다. 북부 이탈리아는 약 75,500km의 도로와 2,316km의 철도를 갖추었고, 화물 운송을 위해 강과 연결된 다양한 운하를 보유했으며, 철강 생산량은 연간 17,000톤이었다. 반면, 옛 부르봉 남부 지역에는 14,700km의 도로, 184km의 철도(나폴리 주변에만), 강과 연결된 운하가 없었으며, 철강 생산량은 연간 1,500톤이었다.[28] 1860년, 이탈리아 반도의 문맹률은 평균 75%였으며, 북서부 사르데냐 왕국 (일명 "피에몬테")에서 54%로 가장 낮았고, 남부에서는 87%에 달했다.

사보이 왕가의 병합 7년 전인 1853년 부르봉이 이끄는 두 시칠리아 왕국 지도


남부 상선은 주로 지중해의 어업과 연안 무역을 위한 범선으로 구성되었으며 증기선은 매우 적었다. 이탈리아 역사가 라파엘레 데 체사레는 남부 이탈리아의 광대한 해안선을 "남쪽을 향한 거대한 부두"라고 정의하며, 상선과 군함 모두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했다.[30]

북부 엘리트들은 남부를 미개발 지역으로 보고 사회 자본이 부족하다고 여겨, 두 시칠리아 왕국을 침략하여 북부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통치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31]

영국의 역사가 데니스 맥 스미스는 1860년 북부와 새롭게 병합된 남부 이탈리아 사이의 급격한 차이를 두 지역이 상당히 다른 수준의 문명에 있었다고 묘사한다.[33]

안토니오 그람시는 1861년 이탈리아 통일 당시 북부와 남부 이탈리아의 "절대적으로 상반되는 상황"을 강조한다. 그는 북부 이탈리아에는 자본주의와 산업 부문의 추가 발전에 유리한 경제 조직이 존재했지만,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가부장적인 부르봉 행정부는 아무런 가치도 생산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존재하지 않았고, 농업은 원시적이었으며, 지역 시장을 만족시키기에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도로, 항구도 없었고, 이 지역의 몇 안 되는 수로도 지리적 특성 때문에 활용되지 않았다.[34]

남부 경제는 이탈리아 통일 이후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산업화 과정은 중단되었다.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사회경제적 발전이 국가의 다른 지역, 특히 북부 지역에 비해 지속적으로 뒤처지는 이러한 상황을 남부 문제라고 한다. 가난과 조직 범죄는 이탈리아 남부의 오랜 문제였으며 통일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그 주된 결과는 이탈리아 통일 후의 강도 행위의 급증이었다.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 시기, 파시스트 정책은 이탈리아 제국 건설을 목표로 했으며, 이탈리아 남부 항구는 식민지로 가는 모든 상업의 전략적 요충지였다.[47]

1950년대에 메쪼조르노 기금은 남부의 산업화를 돕기 위한 거대한 공공 마스터 플랜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목표는 대체로 달성되지 못했고, 남부는 점점 더 보조금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국가에 의존하고 자체적인 민간 성장을 창출할 수 없게 되었다.[48] 현재, 거대한 지역 불균형이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여전히 만연한 조직 범죄와 매우 높은 실업률을 포함한다.

이탈리아 남부는 경제를 위해 관광에 크게 의존하며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한다.

2015년 7월 이탈리아 단체인 ''SVIMEZ''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남부는 지난 7년간 마이너스 GDP 성장을 기록했으며, 2000년부터 그리스의 절반 수준으로 성장해왔다.[52] 2016년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GDP와 경제가 이탈리아 북부의 두 배로 성장했다.[53]

1인당 GDP 순 이탈리아 남부 지역
(유로, 현재 시장 가격 기준)[61]
순위지역2017전국 평균 대비 %
12아브루초25000EUR86.51
14바실리카타21400EUR74.05
15사르데냐20900EUR72.32
16몰리세20100EUR69.55
17풀리아18700EUR64.71
18캄파니아18500EUR64.01
19시칠리아17700EUR61.25
20칼라브리아17400EUR60.21
이탈리아28900EUR100.00


6. 인구

이탈리아 남부의 인구 밀집 도시
순위도시인구 (2019년)[42]
1나폴리캄파니아955,503
2팔레르모시칠리아659,894
3바리풀리아319,482
4카타니아시칠리아311,777
5메시나시칠리아231,708
6타란토풀리아195,279
7레조 디 칼라브리아칼라브리아179,049
8칼리아리사르데냐154,108
9포자풀리아150,185
10살레르노캄파니아132,640



1861년 통일 이후, 남부 이탈리아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1981년 20,053,334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감소 추세를 보여 2021년에는 19,932,825명을 기록했다.[42]

7. 문화

이탈리아 남부는 마그나 그라에키아 시대부터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로마 원수정 시대에 라틴화가 완료되었지만,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비잔틴 제국의 재정복 이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다시 나타났다.

중세 시대에는 노르만-아랍-비잔틴 문화를 지닌 시칠리아무슬림에게 점령되어 에미레이트가 되면서 아랍 문화 요소가 유입되었다. 이후 남부 이탈리아 노르만 정복을 통해 노르만족이 정착하면서 건축, 종교, 고급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아라곤 왕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의 지배를 받으며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특히 스페인은 3세기 이상 남부 이탈리아를 지배하며 큰 영향을 남겼다.

15세기에는 아라곤의 페르디난트 2세의 추방령으로 인해 유대인 공동체가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오스만 제국 등지로 이주했다. 19세기에는 바실리카타의 거리 악사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국 교향악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남부 이탈리아에는 카세르타 궁전, 아말피 해안, 폼페이, 사시 디 마테라, 알베로벨로의 트룰리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관광 명소가 많다. 시바리스, 파에스툼고대 그리스 도시 유적도 남아있다. 폴리노 국립 공원을 비롯한 여러 국립 공원이 자연을 보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칸초네 나폴레타나, 타란텔라 등 전통 이탈리아 음악이 부활하고 있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나폴리에서 기원했다.

시칠리아 왕국나폴리 왕국은 분리된 시대가 길었고, 시칠리아어나폴리어는 언어적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통합되었던 시기가 있어 북부에 비해 각 지방의 문화적 차이는 작은 편이다.

남부 이탈리아는 중앙집권적인 외국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강했다. 이는 마피아, 카모라, 은드랑게타 등 범죄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졌다.[45]

8.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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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왕국 국기(왼쪽)와 양시칠리아 왕국 국기(오른쪽)

의 결과. 붉은색이 "이혼법 폐지 반대"가 우세한 지역, 녹색이 "이혼법 폐지 찬성"이 우세한 지역.


남부 이탈리아는 보수적인 지역으로, 1946년 이탈리아 왕정 폐지에 관한 국민투표에서는 북부가 왕정 폐지를 지지했으나, 남부에서는 왕정 유지를 지지하는 쪽이 더 많았다. 나폴리에서는 주민의 약 80%가 왕정 폐지에 반대 투표를 했으며, 국왕 움베르토 2세가 왕정 존속을 위해 남부 이탈리아로 피신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전국 선거 결과가 발표되어 왕정 폐지가 결정되자, 나폴리의 우익 단체가 폭동을 일으켜 치안 당국과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Strage di via Medina|메디나 사건it). 사보이아 가문의 복위를 바라는 왕당파가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보이아 왕가를 적대하며, 그 이전의 시칠리아 부르봉 왕조의 부활과 남부 이탈리아 독립을 바라는 양시칠리아 독립 운동도 존재한다.

1970년에 세속화와 페미니즘 관점에서 이혼을 합법화하는 이혼법이 제정되었지만, 이혼을 교리로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세력은 이혼법 폐지를 주장했다. 1974년 이탈리아 국민투표에서는 전국적으로는 "이혼법 폐지 반대"가 우세했지만,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이혼법 폐지 찬성"이 우세한 지역이 두드러졌다.

네오 파시스트 정당(현 국민 동맹)의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자치 운동 등 지역 정당이 북부 동맹을 참고하여 창당되었으나, 반대로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도시 국가의 전통으로 지역 대립이 심하며 지방 분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한 북부에 비해, 남부는 중앙 집권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9. 남부 문제

1871년 이탈리아의 산업화 지수. 짙은 색일수록 산업화가 진행되었음을 나타낸다. 남부는 산업화가 뒤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체사레 롬브로조


북부에 대한 남부의 경제 격차 문제나 남부에 대한 차별 등의 문제는 통칭하여 남부 문제라고 불린다[66](''→이탈리아 통일 운동#남부 문제의 발생''도 참조).

17세기 남이탈리아를 지배한 스페인나폴리에 왕궁 등 훌륭한 건물을 정비하여 위용을 자랑했지만, 남이탈리아 통치 자체에는 무관심했기 때문에 남이탈리아의 치안은 악화되어 황폐해졌다. 그 때문에 나폴리는 '악마에게 사로잡힌 낙원' 또는 '악마가 사는 낙원'이라고 불렸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발흥했지만, 남이탈리아를 통치하는 양시칠리아 왕국 (시칠리아 부르봉 왕조)의 프란체스코 2세나 로마 교황 비오 9세는 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주세페 가리발디에 의해 양시칠리아 왕국이 정복되어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자, 부르봉 왕조에 대한 숭경심이 강했고, 또한 열렬한 기독교 신자가 많은 남이탈리아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데모와 반란·'산적'(비적)의 활동이 활발해졌다[67][68]。원래 북이탈리아인들은 남이탈리아인을 멸시했지만, 이러한 저항으로 인해 '야만스러운 남부'라는 차별 감정이 더욱 증폭되었다[69]。통일 정부는 이들을 일률적으로 '산적'이라고 부르며 탄압했다[70]。이탈리아 의회는 브리간테를 철저하게 단속하기 위해 1863년에 피카 법을 제정했다[71]。이 법령은 남이탈리아에서 적용되었다. 브리간테는 군사 재판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브리간테와 그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에게 강제 지정 거주를 명령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72]。이 법령의 문제점은 '공범자'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것으로, 브리간테와 무관한 그 친족이나 친구 외에 공화주의자(민주주의자)나 구 부르봉 왕조 지지자 등 통일 정부에게 불리한 인물도 무차별적으로 체포되어 남부 주민의 권리가 억압되었다[73]

북이탈리아인이나 이탈리아 각지의 자유주의자들은 남부에 대해 차별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왕국 재상인 카밀로 카보우르는 남이탈리아를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패한 지역'이라고 불렀다[74]。루이지 파리니도 '([남이탈리아의] 몰리세·테라 디 라보로는 정말 야만적인 지역이다. 마치 아프리카 같다. 이 지역의 농민에 비하면 베두인 (아프리카의 유목민)이 아직 문명적이다.'[75][76], '남부 주민 약 700만 명 중에 이탈리아 통일을 원하는 인물은 100명도 안 된다. 자유주의자 따위는 여기 한 명도 없다. 이런 쓰레기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에게 매질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들을 교정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77]。국가와 일반 대중에 의한 자유주의자에 대한 혹독한 박해·탄압·차별이 행해지고 있던 조국 양시칠리아 왕국에서 사르데냐 왕국으로 망명한 프란체스코 트리인케라는, 조국의 민중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국민의 야만성·무지몽매함·민도가 낮기 때문에 부르봉 왕조와 같은 악정을 행하는 정체가 존속하고 있다고 생각했다[78]

19세기 이탈리아 유대인인 체사레 롬브로조는 뇌가 생물학적으로 퇴화되어 죄를 범하기 쉬운 정신적 기질을 가진 '생래성 범죄자'라는 개념을 제창했다. 그는 '생래성 범죄자'는 골상학이나 관상학에 근거하여 신체적 특징으로 판별할 수 있다고 했다. 롬브로조는 죄를 범할 위험성이 높은 '생래성 범죄자'를 죄를 범하기 전에 미리 식별하여, 사회로부터 격리해 두는 것이 좋다고 했다.

롬브로조는 남이탈리아인은 '생래성 범죄자'가 많다고 주장했다. 롬브로조 학설은 남부 차별에 논리적 근거를 부여했다. 그는 수많은 범죄자의 검시에 참여했지만, 롬브로조 본인의 말에 따르면 '생래성 범죄자' 이론은 브리간테 시체의 검시에 참여했을 때 떠올린 것이라고 한다[80]。그는 이탈리아 북부 주민과 남부 주민은 '인종'에 차이가 있으며, '금발'의 인물이 많은 북부에서는 범죄 발생률이 적고, '금발'의 인물이 적은 남부에서는 범죄 발생률이 많다고 주장했다[81]

롬브로조에게 가르침을 받은 엔리코 페리는 롬브로조 학설을 발전시켜 '타고난 범죄자'라는 개념을 강조했다[82]。페리는 북부 주민은 게르만족·슬라브족·켈트족의 피를 잇고, 남부 주민은 아랍인·페니키아인·그리스인의 피를 잇고 있지만, 남부 주민은 아프리카나 오리엔트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범죄율이 높고, 범죄자가 많다고 주장했다[83]。롬브로조 학설의 흐름을 잇는 알프레도 니체포로는 남부 주민은 죄를 범하기 쉬운 정신적 기질과 야만성 때문에 브리간테나 마피아·카모라 등의 흉악 범죄자 집단을 만들어 왔다고 주장했다[84]。그리고 남부 주민의 그러한 정신적 기질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북이탈리아인에 의한 남부의 '문명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85]

롬브로조 학자는 아니지만, 프랑스 제3공화국의 총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중세의 천 년 가까이 동안, 남이탈리아는 아랍인이나 이슬람교도에게 지배받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인은 반쯤 더러운 피가 들어 있다'고 공언했다[86]。'더러운 피'는 '유럽인이 아닌 피'로 아랍을 가리키며, 남부 주민은 문화적으로도 북아프리카와 가깝고 피부색도 갈색인 것에 대한 멸시도 포함되어 있었다[86]

롬브로조 학설은 해외로도 전파되어 남미에도 정착했다. 아르헨티나는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을 받아들였지만 도시 범죄 건수의 증가가 보였고, 롬브로조 학설에 근거하여 이민의 '인종'별 범죄 발생 건수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고, '인종'별 범죄 경향의 조사가 진행되었다[87]。빈곤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탈리아 남부 주민은 많은 수가 이민으로 해외로 건너갔지만, 카를로스 네스토르 마셸은 자서전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화』에서, 아르헨티나에 온 이탈리아 이민은 아르헨티나의 발전에 기여하지 않고 사회를 오염시키는 존재라고 주장하며 배척을 주장했다[88]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주의에 의한 국민 통합을 주장하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의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국민의 분열을 조장하는 롬브로조 학설에 근거한 남부 차별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제한되었고, 그것은 쇠퇴했다[89]。그러나 북이탈리아인의 남부에 대한 차별 감정은 남아, 심리학자 바타키(Marco Walter Battacchi)는 1959년 단계에서 북이탈리아인이 여전히 남부에 대한 차별 감정을 품고 있음을 자서전에서 말했다[90]。남이탈리아인에 대한 차별어로서 테로네가 있으며, 현대에도 남이탈리아 출신 축구 선수에 대한 모욕으로, 축구 경기장에서 '테로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리기도 한다[91]。경제적 발전이 뒤쳐져 있는 남부는 짐덩어리라는 차별 감정도 있어서 1990년대에 결성된 북이탈리아의 지역 정당 북부 동맹(현재는 당명을 '동맹'으로 개칭)은 재정적 부담이 되고 있는 남이탈리아를 분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탈리아를 세 개의 나라 (북부·중부·남부)로 분립시키고 연방제를 구축할 것을 주장하며, 북이탈리아인의 지지를 모았다[92]。북부 동맹은 베를루스코니 내각에 각료를 파견할 정도로 성장하여 리소르지멘토의 모습이 문제시되었다[93]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한 군인으로서 육군 대장 엔리코 차르디니는 이탈리아 각지에서 현창되고 있지만, 브리간테 진압 임무를 맡고 있었을 때 차르디니의 명령에 의해 남부 주민의 학살이 일어났다고 하여, 나폴리 시의회는 2016년에 상공회의소에 설치되어 있던 차르디니의 흉상 제거를 결의하고, 2017년에 차르디니에게 수여되었던 명예 시민 칭호를 말소하는 것을 결의했다[94][95]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친 남부의 실태를 기록한 책으로는 조지 기싱의 『남이탈리아 주유기』나 카를로 레비의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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