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 (대홍려)
1. 개요
왕우는 전한 시대의 관료로, 대사농과 대홍려를 역임했다. 오봉 2년(기원전 56년) 평간유왕 유원이 죽자, 대홍려로서 유원의 죄를 들어 후사를 세울 수 없다고 상주하여 평간나라가 폐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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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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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정치인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전한의 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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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관료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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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1. 평간유왕 사후 처리
오봉 2년(기원전 56년), 평간유왕 유원이 죽자, 당시 대홍려였던 왕우는 평간유왕의 생전 잘못을 지적하며 그의 후사를 세워서는 안 된다고 선제에게 상소하였다. 왕우는 상소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유원은 노비를 죽였고 그의 아들은 알자를 죽여, 자사가 상주하였으니, 그 죄명이 명백합니다. 병이 들자 유명을 미리 내려 악공 노비들을 따라죽게 하고 협박해 자살한 사람이 16명이니 포학무도합니다. 춘추의 대의에 따르면 임금을 죽인 자의 아들은 마땅히 임금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비록 유원이 복주되지 못하고 죽었으나, 후사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선제는 왕우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여 평간나라를 폐지하였다.
3. 평가
대홍려 시절, 오봉 2년(기원전 56년) 평간유왕이 사망하자 그의 사후 처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왕우는 평간유왕이 생전에 저지른 잘못들을 근거로 후사를 세워서는 안 된다고 선제에게 상소했다.
상소 내용에서 그는 "유원은 노비를 죽이고 아들은 알자를 죽여, 자사가 상주하였으니, 그 죄명이 명백합니다. 병이 들자 유명을 미리 내려 악공 노비들을 따라죽게 하고 협박해 자살한 사람이 16명이니 포학무도합니다. 춘추의 대의에 따르면 임금을 죽인 자의 아들은 마땅히 임금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비록 유원이 복주되지 못하고 죽었으나, 후사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라고 주장하며, 유교적 도덕 원칙에 기반하여 평간유왕의 행위를 비판하고 후사 계승의 부당함을 역설했다.
선제는 왕우의 이러한 주장을 옳다고 판단하여 평간나라를 폐지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전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 조치로 평가받는다.
4. 출전
*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권53 경십삼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