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운
1. 개요
왕운은 전한 말기와 신나라 시기에 활동한 관료로, 자는 자춘이며 태원군 기현 사람이다. 원수 2년(기원전 1년)에 태복, 원시 4년(4년)에는 부절·가절을 갖고 천하를 돌며 풍속을 관장했으며, 이듬해 광록훈으로 전임되었다. 거섭 2년(7년)에는 왕망의 명을 받아 거기장군이 되어 적의의 반란을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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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 왕운 (王韺) |
|---|---|
| 묘호 | 선종 (宣宗) |
| 시호 | 공화정경대왕 (恭和靖敬大王) |
| 능호 | 의릉 (毅陵) |
| 재위 기간 | 1083년 ~ 1094년 |
| 출생 | 1049년 10월 9일 |
| 사망 | 1094년 6월 17일 (44세) |
| 부모 | 부: 문종 모: 인예왕후 |
| 배우자 | 사숙왕후 원비 이씨 |
| 자녀 | 아들: 헌종 딸: 흥수공주 |
| 추존 존호 | 정원사의개성홍우세응효목대왕 (靖元思議開聖弘祐世膺孝穆大王) |
|---|---|
| 풀 시호 | 공화정경명효대왕 (恭和靖敬明孝大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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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정치인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1세기 중국 사람 -
반초
반초는 후한 시대의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서역 경영에 크게 기여하고 실크로드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왕운은 전한 원수 2년(기원전 1년)에 장락궁 위위에서 태복으로 전임되었다. 원시 원년(1년) 정월, 유개명과 유성도가 각기 동평왕·중산왕에 봉해지고 선제의 후손 36명이 열후에 봉해졌다. 왕운 등 25명의 대신들은 부태후의 존호를 논의하였다.
원시 4년(4년), 왕운은 대홍려 염천, 대사도사직 진숭, 수형도위 이흡, 중랑장 학당·사은·진봉, 기도위 녹병과 함께 부절·가절을 갖고 천하를 돌며 풍속을 살폈다. 이듬해 이 공로로 모두 열후에 봉해졌고, 왕운은 광록훈으로 전임되었다.
거섭 2년(7년), 동군 태수 적의가 왕망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왕운은 왕망의 명을 받고 거기장군이 되어 평락관(平樂館)에 주둔하였다.
2.1. 전한 시기 활동
왕운은 전한 원수 2년(기원전 1년)에 장락궁 위위에서 태복으로 전임되었다.
원시 원년(1년) 정월, 유개명과 유성도가 각기 동평왕·중산왕에 봉해지고 선제의 후손 36명이 열후에 봉해졌다. 왕운 등 25명의 대신들은 부태후의 존호를 논의하였다.
원시 4년(4년), 왕운은 대홍려 염천, 대사도사직 진숭, 수형도위 이흡, 중랑장 학당·사은·진봉, 기도위 녹병과 함께 부절·가절을 갖고 천하를 돌며 풍속을 살폈다. 이듬해 이 공로로 모두 열후에 봉해졌고, 왕운은 광록훈으로 전임되었다.
거섭 2년(7년), 동군 태수 적의가 왕망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왕운은 왕망의 명을 받고 거기장군이 되어 평락관(平樂館)에 주둔하였다.
2.1.1. 관직 역임
왕운은 전한 원수 2년(기원전 1년)에 장락궁 위위에서 태복으로 전임되었다.
원시 원년(1년) 정월, 유개명과 유성도가 각기 동평왕·중산왕에 봉해지고 선제의 후손 36명이 열후에 봉해졌다. 왕운 등 25명의 대신들은 부태후의 존호를 논의하였다.
원시 4년(4년), 왕운은 대홍려 염천, 대사도사직 진숭, 수형도위 이흡, 중랑장 학당·사은·진봉, 기도위 녹병과 함께 부절·가절을 갖고 천하를 돌며 풍속을 관장하였다. 이때의 공로로 이듬해에 모두 열후에 봉해졌고, 왕운은 광록훈으로 전임되었다.
거섭 2년(7년), 동군태수 적의가 왕망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왕운은 왕망의 명을 받고 거기장군이 되어 평락관(平樂館)에 주둔하였다.
2.1.2. 왕망의 집권 조력
원수 2년(기원전 1년), 장락궁 위위에서 태복으로 전임되었다.
원시 원년(1년) 정월, 유개명과 유성도가 각기 동평 왕·중산왕에 봉해지고 선제의 후손 36명이 열후에 봉해졌다. 왕운 등 25명의 대신들은 부태후의 존호를 논의하였다.
원시 4년(4년), 왕운은 대홍려 염천, 대사도사직 진숭, 수형도위 이흡, 중랑장 학당·사은·진봉, 기도위 녹병과 함께 부절·가절을 갖고 천하를 돌며 풍속을 관장하였다. 이때의 공로로 이듬해에 모두 열후에 봉해졌고, 왕운은 광록훈으로 전임되었다.
거섭 2년(7년), 동군 태수 적의가 왕망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왕운은 왕망의 명을 받고 거기장군이 되어 평락관(平樂館)에 주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