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식
1. 개요
왕유식은 제남 왕씨 출신으로,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영향으로 설치된 훈련대 소속 무관이었다. 1895년 일본 유학 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교관, 군부 교육국 교무과장 등을 역임하며 육군 소장까지 진급했다.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에는 조선군 소속 조선보병대장을 지냈으며, 1920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군 부문으로 선정되었다.
| 이름 | 왕유식 |
|---|---|
| 로마자 표기 | Wang Yoo-Shik |
| 한글 | 왕유식 |
| 한자 | 王瑜植 |
| 히라가나 | おう・ゆしょく |
| 가타카나 | ワン・ユシク |
| 생애 | 1870년 2월 20일 ~ 1930년 3월 10일 |
|---|---|
| 출생지 | 불명 |
| 사망지 | 불명 |
| 복무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
|---|---|
| 복무 기간 | 불명 |
| 최종 계급 | 대한제국 육군 부령 |
| 일본군 계급 | 소장 |
| 부대 | 불명 |
| 지휘 | 불명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불명 |
| 서훈 내역 | 불명 |
| 기타 이력 |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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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육군 소장 -
사토 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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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육군 소장 -
이희두
이희두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 소장으로 복무하며 일진회에 가담, 친일 행적을 보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포함된 인물이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1870년 출생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
1870년 출생 -
마르뜨 멜롯
마르뜨 멜롯은 1925년부터 1947년까지 <마티아스 파스칼의 죽음>, <보바리 부인>, <레 미제라블>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활동한 배우이다.
2. 생애
본관은 제남이다. 을미사변 이후 영향력이 증대된 일본의 입김으로 1895년에 설치된 훈련대 소속의 무관이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 명단에는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사위 이종택도 들어 있다.
2.1. 대한제국 시기
1895년 육군 참위로 훈련대에서 복무 중 일본 유학생으로 뽑혀 도일했다. 유학 동기생은 훈련대의 실무 장교들로, 신우균 등 총 7명이었다. 이때 일본 유학은 군부 내 박영효 계열 친일 장교를 제거하려는 대한제국 고종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들을 유학 보낸 뒤 고종은 훈련대를 해산시켰다.
왕유식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제8기 특별과정으로 졸업하고 이듬해 귀국했다. 189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교관이 되었고, 1899년 육군 부위, 1901년 육군 정위, 1904년 육군 참령으로 진급했다. 군부 교육국 교무과장, 보병과 포병 병과에서 근무했고, 군법회의 판사도 지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군대가 해산된 뒤 육군 부령으로 근위보병 대대장에 임명되었다. 조선군사령부 소속 조선보병대장에 오르고 일본군 육군 소장까지 진급했다.
1920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으며, 이때를 기준으로 종5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당시 계급은 보병 대좌였다.
2.2. 일제강점기
제남 왕씨인 왕유식은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영향으로 1895년 설치된 훈련대 소속 무관이었다.
1895년 육군 참위로 훈련대 복무 중 일본 유학생으로 뽑혀 신우균 등 동료 7명과 함께 일본으로 갔다. 일각에서는 이를 대한제국 고종이 군부 내 박영효 계열 친일 장교를 제거하려는 의도로 보기도 한다. 고종은 이들을 유학 보낸 뒤 훈련대를 해산시켰다.
왕유식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제8기 특별과정으로 졸업하고 이듬해 귀국했다. 189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교관이 되었고, 1899년 육군 부위(정3품), 1901년 육군 정위, 1904년 육군 참령으로 진급했다. 군부 교육국 교무과장, 보병과 포병 병과에서 근무, 군법회의 판사도 역임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육군 부령으로 근위보병 대대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조선군사령부 소속 조선보병대장에 오르고 일본군 육군 소장까지 진급했다.
1920년 일본 정부에게서 훈6등 서보장을 받았으며, 당시 보병 대좌로 종5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