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전한)
1. 개요
왕조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법률에 능통하여 경조윤과 승상 장사를 지냈다. 원정 2년, 문제의 능묘 도굴 사건을 계기로 장탕을 모함하여 자결하게 만들었으나, 이후 모의가 발각되어 주매신, 변통과 함께 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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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15년 사망 -
주매신
주매신은 가난한 환경에서 독서를 즐기며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가 전한 무제의 신임을 얻어 관직에 나아가 회계태수, 동월 정벌 참여 등을 거쳐 승상 장사가 되었으나 모함으로 주살되었다. -
기원전 115년 사망 -
조영제 (남월)
조영제는 남월 문왕 조말의 아들로, 기원전 135년 민월의 침공으로 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고 왕위를 계승하여 재위 12년 만에 사망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행적
왕조는 법률에 능통하여 우내사에 임명되었으나, 이후 실각하여 승상장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사대부 장탕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원정 2년(기원전 115년), 문제의 능원에서 도굴 사건이 발생하자, 왕조는 주매신, 변통(邊通)과 함께 장탕을 모함하였다. 이들의 모함으로 인해 장탕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후 장탕의 어머니의 행동을 계기로 무제가 사건을 재조사하였고, 왕조 등의 모함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왕조는 주매신, 변통과 함께 주살되었다.
2.1. 관직 생활
법률에 능통하여 우내사에 임명되었으나, 실각하고 겨우 승상장사가 되어 장탕에게 굽신거리는 처지가 되었다.
원정 2년(기원전 115년), 문제의 능원에 묻은 예전(瘞錢)이 도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승상 장청적은 어사대부 장탕과 함께 무제에게 나아가 사죄하려 하였는데, 장탕은 장청적만이 능원을 항상 순시했으므로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여겨 사죄하지 않았다. 결국 장청적만 사죄하였고, 무제는 사건 처리를 장탕에게 맡겼다.
장청적은 자신의 거취를 걱정하였는데, 왕조는 평소 자신을 업신여긴 장탕을 미워하여,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주매신·변통(邊通)과 함께 장탕에게 죄를 덮어씌울 모의를 하였다. 곧 장청적에게 장탕의 잘못을 아뢰었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외의 간악한 일들이 드러나자 장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탕이 죽은 후, 아들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긴 장탕의 어머니는 장사를 초라하게 치르려고 장탕의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옮겼다. 장탕 어머니의 행동에 놀란 무제는 사건을 다시 조사하였고, 모의가 발각되어 왕조는 주매신 · 변통과 함께 주살되었다.
2.2. 장탕 모함 사건
왕조는 법률에 능통하여 우내사에 임명되었으나, 실각한 후에는 겨우 승상장사가 되어 장탕에게 굽신거리는 처지가 되었다.
원정 2년(기원전 115년), 문제의 능원에 부장품으로 묻었던 돈인 예전(瘞錢)이 도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승상이었던 장청적은 어사대부 장탕과 함께 무제에게 나아가 사죄하려 하였다. 그러나 장탕은 능원을 항상 순시하는 것은 장청적의 책임이므로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여 사죄하지 않았다. 결국 장청적만 사죄하게 되었고, 무제는 이 사건의 처리를 장탕에게 맡겼다.
장청적은 자신의 거취를 걱정하게 되었다. 한편 왕조는 평소 자신을 업신여겼던 장탕을 미워하고 있었는데,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주매신, 변통(邊通)과 함께 장탕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모의를 하였다. 이들은 장청적에게 장탕의 잘못을 아뢰었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장탕의 다른 간악한 일들까지 드러나자 장탕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탕이 죽은 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겨 장례를 초라하게 치를 생각으로 장탕의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옮겼다. 장탕 어머니의 행동에 놀란 무제는 사건을 다시 조사하도록 명하였고, 그 결과 왕조 등의 모함이 발각되었다. 결국 왕조는 주매신, 변통과 함께 주살되었다.
2.3. 최후
원정 2년(기원전 115년), 문제의 능원에 매장된 예전(瘞錢)이 도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승상이었던 장청적은 어사대부 장탕과 함께 무제에게 나아가 사죄하려 했지만, 장탕은 능원 순찰은 장청적의 책임이라며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사죄하지 않았다. 결국 장청적만 사죄하게 되었고, 무제는 이 사건의 처리를 장탕에게 맡겼다. 이로 인해 장청적은 자신의 지위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편, 왕조는 과거 법률에 능통하여 우내사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이후 실각하여 겨우 승상의 장사 직위에 머무르며 평소 자신을 업신여기던 장탕에게 굽신거리는 처지에 있었다. 장탕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왕조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주매신 및 변통(邊通)과 함께 장탕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장청적에게 장탕의 잘못을 무제에게 고하도록 부추겼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장탕의 다른 비리들까지 드러나자, 결국 장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탕이 죽은 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겨 장례를 매우 간소하게 치르려 했다. 이러한 모습에 의문을 품은 무제가 사건을 다시 조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왕조 등이 장탕을 모함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왕조는 주매신, 변통과 함께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