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청적
1. 개요
장청적은 전한 문제 후원년에 아버지 장영의 뒤를 이어 무강후에 봉해졌으며, 어사대부와 승상을 역임했다. 원정 2년, 문제의 능묘 도굴 사건과 관련하여 장탕과 갈등을 겪었고, 이후 장탕의 죽음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봉국은 폐지되었다. 그의 죽음은 장탕과의 권력 다툼과 정치적 음모의 결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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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16년 사망 -
유언 (의성강후)
유언은 원삭 2년에 의성후에 봉해졌고 원정 원년에 사망한 후, 그의 묘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당시 매장 풍습과 장례 문화를 연구할 수 있으며, 학문과 예술을 장려했으나 말년의 사치로 비판받기도 하며 후대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기원전 116년 사망 -
장탕
장탕은 전한 무제 시대에 율령 정비, 염철 전매 정책, 고민령 제정을 주도하여 국가 재정 확보에 기여했으며, 무제의 신임을 받았으나 모함으로 자살했다. -
기원전 115년 사망 -
주매신
주매신은 가난한 환경에서 독서를 즐기며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가 전한 무제의 신임을 얻어 관직에 나아가 회계태수, 동월 정벌 참여 등을 거쳐 승상 장사가 되었으나 모함으로 주살되었다. -
기원전 115년 사망 -
조영제 (남월)
조영제는 남월 문왕 조말의 아들로, 기원전 135년 민월의 침공으로 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고 왕위를 계승하여 재위 12년 만에 사망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문제 후원년(기원전 163년), 아버지 장영의 뒤를 이어 무강후(武彊侯)에 봉해졌다. 건원 4년(기원전 137년), 어사대부에 임명되었으나 2년 후 두태후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은 죄로 면직되었다.
원수 5년(기원전 118년), 태자소부에서 승상으로 승진하였다.
원정 2년(기원전 116년), 문제의 능원에 묻은 예전(瘞錢)이 도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장청적은 어사대부 장탕과 함께 무제에게 나아가 사죄하려 하였는데, 장탕은 능원을 항상 순시한 사람은 장청적이니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여 사죄하지 않았다. 결국 장청적만 사죄하였고, 무제는 사건의 처리를 장탕에게 맡겼다.
장청적은 거취를 걱정하였는데, 평소 장탕을 미워하던 승상장사 주매신·왕조·변통(邊通)이 장탕에게 죄를 덮어씌울 생각에 장청적에게 장탕의 잘못을 아뢰었다. 곧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외의 간악한 일들이 드러나, 장탕은 11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탕의 어미는 아들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겨, 장사를 초라하게 지낼 생각으로 장탕의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가져갔다. 어미의 행동에 놀란 무제는 재수사를 명하였고, 주매신 등의 모의를 적발하여 모두 주살하였다. 장청적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2.1. 초기 관직 생활
문제 후원년(기원전 163년), 아버지 장영의 뒤를 이어 무강후에 봉해졌다. 건원 4년(기원전 137년), 어사대부에 임명되었으나, 2년 후 두태후의 장례를 소홀히 한 죄로 면직되었다.
2.2. 승상 임명과 장탕과의 갈등
원수 5년(기원전 118년), 장청적은 태자소부에서 승상으로 승진하였다. 원정 2년(기원전 116년), 전한 문제의 능원에 묻은 예전(瘞錢)이 도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장청적은 어사대부 장탕과 함께 무제에게 나아가 사죄하려 하였는데, 장탕은 능원을 항상 순시한 사람은 장청적이니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여 사죄하지 않았다. 결국 장청적만 사죄하였고, 무제는 사건의 처리를 장탕에게 맡겼다.
장청적은 거취를 걱정하였는데, 평소 장탕을 미워하던 승상장사 주매신·왕조·변통(邊通)이 장탕에게 죄를 덮어씌울 생각에 장청적에게 장탕의 잘못을 아뢰었다. 곧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외의 간악한 일들이 드러나, 장탕은 11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탕의 어미는 아들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겨, 장사를 초라하게 지낼 생각으로 장탕의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가져갔다. 어미의 행동에 놀란 무제는 재수사를 명하였고, 주매신 등의 모의를 적발하여 모두 주살하였다. 장청적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2.3. 장탕의 죽음과 연루
문제 후원년(기원전 163년), 아버지 장영의 뒤를 이어 무강후(武彊侯)에 봉해졌다. 건원 4년(기원전 137년), 어사대부에 임명되었으나 2년 후 두태후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은 죄로 면직되었다. 원수 5년(기원전 118년), 태자소부에서 승상으로 승진하였다.
원정 2년(기원전 116년), 문제의 능원에 묻은 예전(瘞錢)이 도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장청적은 어사대부 장탕과 함께 무제에게 나아가 사죄하려 하였는데, 장탕은 능원을 항상 순시한 사람은 장청적이니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여 사죄하지 않았다. 결국 장청적만 사죄하였고, 무제는 사건의 처리를 장탕에게 맡겼다.
장청적은 거취를 걱정하였는데, 평소 장탕을 미워하던 승상장사 주매신·왕조·변통(邊通)이 장탕에게 죄를 덮어씌울 생각에 장청적에게 장탕의 잘못을 아뢰었다. 곧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외의 간악한 일들이 드러나, 장탕은 11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탕의 어미는 아들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겨, 장사를 초라하게 지낼 생각으로 장탕의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가져갔다. 어미의 행동에 놀란 무제는 재수사를 명하였고, 주매신 등의 모의를 적발하여 모두 주살하였다. 장청적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2.4. 죽음과 무강후 폐지
원정 2년(기원전 116년), 문제의 능원에 묻은 예전(瘞錢)이 도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장청적은 어사대부 장탕과 함께 무제에게 나아가 사죄하려 하였는데, 장탕은 능원을 항상 순시한 사람은 장청적이니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여 사죄하지 않았다. 결국 장청적만 사죄하였고, 무제는 사건의 처리를 장탕에게 맡겼다.
장청적은 거취를 걱정하였는데, 평소 장탕을 미워하던 승상장사 주매신·왕조·변통(邊通)이 장탕에게 죄를 덮어씌울 생각에 장청적에게 장탕의 잘못을 아뢰었다. 곧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외의 간악한 일들이 드러나, 장탕은 11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탕의 어미는 아들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겨, 장사를 초라하게 지낼 생각으로 장탕의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가져갔다. 어미의 행동에 놀란 무제는 재수사를 명하였고, 주매신 등의 모의를 적발하여 모두 주살하였다. 장청적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장청적의 죽음은 장탕과의 권력 다툼, 그리고 그를 둘러싼 정치적 음모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