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흡
1. 개요
왕흡은 전한 고조 때의 공신으로, 청양정후(淸陽靖侯)에 봉해졌다. 중연(中涓)으로 고제를 따라 패상에서 기낭장(騎郞將)이 되었고, 한나라 건국 후 항우를 친 공로로 청양후에 봉해졌다. 기원전 180년에 사망했으며, 작위는 아들 왕강이 이었다.
왕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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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왕흡은 중연(中涓)으로써 고제를 풍(豊) 땅에서부터 따라 패상에 이르러 기낭장(騎郞將)이 되었다. 한나라가 건국된 후 항우를 친 공로로 조나라 청하군의 청양(지금의 허베이성 칭허현 동남)을 영토로 하는 청양후에 봉해졌고, 식읍 3,100호를 받았다. 고후 8년(기원전 180년)에 죽으니 시호를 정(定)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왕강이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한나라 건국 기여
중연(中涓)으로써 고제를 풍(豊) 땅에서부터 따랐고, 패상(霸上)에 이르러 기낭장(騎郞將)이 되었다. 한나라가 건국된 후 항우를 친 공로로 조나라 청하군의 청양 땅(지금의 허베이성 칭허현 동남)을 영토로 하는 청양후에 봉해졌고, 식읍 3,100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