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야마 마사히로
1. 개요
요코야마 마사히로는 일본의 전 야구 선수로, 중견수, 좌익수로 활약했다.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에서 중견수로 봄의 선발 우승을 이끌었고, 메이지 대학에서는 1956년 가을 리그에서 타율 0.378을 기록했다. 사회인 야구 다이쇼와 제지에서 뛰며 1957년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에 기여했으며, 1959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1961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는 주니치 신문사 기자와 주니치 드래건스 프런트에서 근무했다.
| 선수명 | 요코야마 마사히로 |
|---|---|
| 일본어 표기 | 横山 昌弘 (요코야마 마사히로) |
| 로마자 표기 | Masahiro Yokoyama |
| 국적 | 일본 |
| 출신지 | 시즈오카현 |
| 생년월일 | 1935년 2월 27일 |
| 사망일 | 알 수 없음 |
| 신장 | 173cm |
| 체중 | 72kg |
| 수비 위치 | 외야수 |
| 투구 | 우 |
| 타석 | 우 |
| 프로 입단 연도 | 1959년 |
|---|---|
| 드래프트 순위 | 알 수 없음 |
| 첫 출장 | 1959년 4월 14일 |
| 마지막 경기 | 1961년 10월 12일 |
| 연봉 | 알 수 없음 |
| 고등학교 | 시즈오카현립 시즈오카 상업 고등학교 |
|---|---|
| 대학교 | 메이지 대학 |
| 실업팀 | 다이쇼와 제지 |
| 프로 구단 | 주니치 드래건스 (1959 - 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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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현 출신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시즈오카현 출신 야구 선수 -
다케야스 다이치
다케야스 다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한신 타이거스와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활동했으며, 2017년 1군 데뷔 후 첫 승을 거두고 2019년에는 완봉승을 기록했으며, 2024년부터는 구마모토 골든 락스의 코치로 활동한다. -
시즈오카현 출신 -
이마이 유카
이마이 유카는 1970년 9월 19일에 태어난 일본의 성우이며, 1994년 데뷔하여 여러 작품에 출연했고, 2018년에 은퇴를 발표했다. -
시즈오카현 출신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일본 프로 야구 외야수 -
다케우치 신이치
다케우치 신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내야수와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2018년 은퇴 후에는 야쿠르트 구단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일본 프로 야구 외야수 -
오타니 쇼헤이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투수와 타자 모두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MVP를 수상하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도류 야구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1959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1년차부터 1군에서 기용되었고, 주로 중견수로 14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이듬해 1960년에는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주로 2번 타자로 21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61년에는 에토 신이치가 외야수로 전향하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주니치 신문 기자를 거쳐 주니치 구단 프런트에서 직원으로 근무했다.
2.1. 아마추어 시절
요코야마 마사히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와 메이지 대학에서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메이지 대학에 진학하여 도쿄 6대학 야구 리그에서 3학년까지 세 번의 우승을 경험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다. 대학 동기로는 사사키 시게노리, 다무라 미쓰루(중퇴), 세키구치 이치로, 오기 다카오 등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다이쇼와 제지에 입사하여 1957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3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2차전(첫 경기)에서 젠카네보에게 패했다. 그해 가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제3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스즈키 다카시, 후루타 마사유키 등과 함께 일본 대표팀 선수로 참가하여 중심 타자로서 팀 우승에 기여했다. 1958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2년 연속 출전했지만 1차전 상대인 마루젠 석유에게 패했다. 같은 해에 열린 일본 산업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타격상을 받았다.
2.1.1. 고등학교 시절
1952년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소속으로 다도코로 젠지로를 에이스로 하여, 중견수로서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하였다. 준결승전에서는 야오 고등학교의 기무라 다모쓰의 호투에 고전했지만 승리하였다. 결승전에서는 히노 요시즈미가 소속된 나루토 고등학교를 꺾고, 다도코로는 전 경기 완봉승을 거두는 등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를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의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같은 해 여름에 개최된 야마가타·시즈오카 대회 준결승전에서는 야토 다카오를 에이스로 하는 쓰루 고등학교에게 패하여 탈락했다. 팀 동료로는 포수 아이 도시하루가 있었다.
2.1.2. 대학교 시절
메이지 대학에 진학하여 도쿄 6대학 야구 리그에서 3학년까지 총 세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1956년 추계 리그에서는 타율 0.378(타격 순위 3위)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대학 동기로는 사사키 시게노리, 다무라 미쓰루(중퇴), 세키구치 이치로, 오기 다카오 등이 있었다.
2.2. 사회인 야구 시절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다이쇼와 제지에 입사하여 1957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3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2차전(첫 경기)에서 젠카네보에게 패했다. 같은 해 가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제3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스즈키 다카시, 후루타 마사유키 등과 함께 일본 대표팀 선수로 참가하여 중심 타자로서 팀 우승에 기여했다. 1958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2년 연속 출전했지만 1차전 상대인 마루젠 석유에게 패했다. 같은 해에 열린 일본 산업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타격상을 받았다.
2.3. 프로 야구 선수 시절
1959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1년차부터 1군에서 기용되었고, 주로 중견수로 14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60년에는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주로 2번 타자로 21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61년에는 에토 신이치가 외야수로 전향하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4. 상세 정보
요코야마 마사히로는 시즈오카 현립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와 메이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다이쇼와 제지에 입사하여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1957년 제28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3번 타자로 출전했으나 2차전에서 패했다. 같은 해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제3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일본 대표로 참가해 팀 우승에 기여했다. 1958년 제29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으나 1차전에서 패했다. 같은 해 산업 대항 타격상을 받았다.
1959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 1년 차부터 1군에서 중견수로 14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60년 좌익수로 전향, 2번 타자로 21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61년 에토 신이치의 외야수 전환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등번호는 25번이었다.
통산 3년 간 155경기에 출전, 타율 .231, 52안타, 2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4.1. 출신 학교
시즈오카 현립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메이지 대학에 진학했다.
4.2. 선수 경력
메이지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다이쇼와 제지에 입사했다. 1957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3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2차전(첫 경기)에서 젠카네보에게 패했다. 그 해 가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제3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스즈키 다카시, 후루타 마사유키 등과 함께 일본 대표팀 선수로 참가하여 중심 타자로서 팀 우승에 기여했다. 1958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2년 연속 출전했지만 1차전 상대인 마루젠 석유에게 패했다. 같은 해 산업 대항에서는 타격상을 받았다.
1959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1년차부터 1군에서 기용돼 주로 중견수로 14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60년에는 수비 위치를 좌익수로 옮겨 주로 2번 타자로 21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그러나 1961년 에토 신이치가 외야수로 전환됨에 따라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