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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헌 및 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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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산 동헌 및 내아는 조선 시대 울산읍성의 관아 건물로,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동헌과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로 구성된다. 동헌은 1681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1763년에 중건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울주군 회의실로 사용되다가 1981년에 복원되었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아는 ㄱ자형 건물로 조선 시대 울산 지역 상류 주택의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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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헌 및 내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울산 동헌 및 내아
울산 동헌 및 내아
이름울산 동헌 및 내아
한자 표기蔚山 東軒 및 內衙
문화재 지정 정보
국가대한민국
위치울산광역시
유형유형문화재
번호1
지정일1997년 10월 9일
주소울산광역시 중구 동헌길 167 (북정동)
꼬리표울산 북정동
면적알 수 없음
수량2동
추가 정보
시대알 수 없음
소유알 수 없음
참고알 수 없음
전승지알 수 없음
전승자알 수 없음
웹사이트알 수 없음
문화재청 ID21,00010000,26

2. 역사

울산 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에 위치했던 중심 건물로, 조선시대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다. 내아는 수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던 살림집을 의미한다.

동헌은 1681년(숙종 7년)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세웠으며, 이후 1763년(영조 39년) 부사 홍익대(洪益大)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울산군청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울산군청의 회의실로 이용되는 등 본래의 용도와 다르게 활용되었다.

1981년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때 동헌과 내아, 오송정, 정문인 학성도호부아문(鶴城都護府衙門) 등이 중건되었다. 동헌 경내에는 이 건물들 외에도 가학루 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각종 비석, 홍살문 등이 남아 있다.

2. 1. 건립과 중건

울산 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부의 수령(오늘날의 시장 또는 군수와 유사한 역할)이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공간이다. 내아는 수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던 살림집을 가리킨다.

동헌은 1681년(숙종 7년) 당시 울산부사였던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건립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인 김호 부사가 '일학헌(一鶴軒)'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시간이 흘러 1763년(영조 39년)에는 부사 홍익대(洪益大)가 동헌을 다시 짓고 이름을 '반학헌(伴鶴軒)'으로 바꾸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울산군청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울산군청의 회의실로 이용되는 등 본래의 용도와 다르게 쓰이는 시기를 거쳤다. 1981년에 이르러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동헌과 내아, 오송정, 그리고 정문인 학성도호부아문(鶴城都護府衙門)만을 중건한 것이다.

동헌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중앙에는 2칸의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그 양옆으로 각각 2칸의 방을 배치하였다. 왼쪽 방 앞의 툇마루 주변에는 장식적인 계자(鷄子) 난간을 둘렀다. 지붕은 처마 끝에 서까래를 하나 더 덧댄 겹처마 형식이며, 기둥 위에는 새 날개 모양의 장식 부재인 익공(翼工)을 올려 꾸몄다. 지붕 형태는 팔작지붕으로, 추녀마루가 길게 뻗어 건물이 위엄 있고 화려해 보인다.

내아는 온돌방 4칸, 대청 2칸, 부엌 1칸, 누마루 1칸으로 구성된 ㄱ자 형태의 건물이다. 이러한 ㄱ자형 평면 구조는 조선시대 울산 지역 상류층 주택에서 볼 수 있는 一자형 안채에 사랑방과 누마루를 덧붙인 형식과 유사하다. 특히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건물로 이어진 점이 특징적이다.

동헌의 정문인 학성도호부아문은 '학성도호부 관아의 문'이라는 뜻이다. 이 문이 세워지기 전, 원래 자리에는 가학루(駕鶴樓)라는 이름의 정면 3칸짜리 중층(2층) 문루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2. 2.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울산 동헌일제강점기에 울산군청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울산군청 회의실로 그 용도가 이어졌다. 1981년에는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동헌과 내아, 오송정, 학성도호부아문(鶴城都護府衙門)이 중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 건축

울산 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공간이며, 내아는 수령이 거주하던 살림집이다.

동헌은 1681년(숙종 7년)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지었고, 그의 아들인 부사 김호가 '일학헌(一鶴軒)'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이후 1763년(영조 39년) 부사 홍익대(洪益大)가 다시 지으면서 '반학헌(伴鶴軒)'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울산군청으로, 해방 이후에는 울산군청 회의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1년 복원 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때 동헌과 내아, 오송정, 학성도호부아문 등이 다시 세워졌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아는 조선시대 울산 지역 상류 주택의 특징을 보여주는 ㄱ자형 건물이다. 동헌의 정문인 학성도호부아문이 세워지기 전에는 가학루(駕鶴樓)라는 정면 3칸의 중층 문루가 있었다. 이 외에도 경내에는 오송정,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여러 비석, 홍살문 등이 남아 있다.

3. 1. 동헌

울산 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에 있던 중심 건물로, 조선시대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보던 곳이다.

1681년(숙종 7년)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지었으며, 그의 아들인 부사 김호가 '일학헌(一鶴軒)'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이후 1763년(영조 39년) 부사 홍익대(洪益大)가 다시 지으면서 '반학헌(伴鶴軒)'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울산군청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울산군청 회의실로 쓰였다. 1981년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때 동헌과 내아, 오송정, 학성도호부아문만 다시 세워졌다.

건물 구조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다. 가운데에는 2칸 넓이의 대청을 두고, 그 양옆으로 각각 2칸씩의 방을 배치했다. 특히 왼쪽 방 앞의 툇마루 주위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다. 지붕은 처마 끝에 부연을 덧댄 겹처마 형태이며, 기둥 위에는 익공 양식의 포를 올렸다. 지붕 형태는 추녀마루가 길게 뻗은 팔작지붕이다.

3. 2. 내아

내아는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건물은 온돌방 4칸, 대청 2칸, 부엌과 누마루 각 1칸씩을 둔 ㄱ자형 평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ㄱ자형 평면은 조선시대 울산 지역 상류 주택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로, 일자(一)형 안채에 사랑방과 누마루를 덧붙여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의 건물로 이어진 형태를 띠고 있다.

3. 3. 학성도호부아문

학성도호부아문(鶴城都護府衙門)은 울산 동헌의 정문이다. 이름은 학성도호부 관아(官衙)의 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의 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가학루(駕鶴樓)라는 이름의 정면 3칸짜리 중층 문루(門樓)가 그 자리에 있었다.

3. 4. 기타 부속 건물

동헌과 내아 외에도 경내에는 여러 시설물이 있다. 동헌의 정문인 학성도호부아문은 '학성도호부 관아의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아문이 세워지기 전에는 가학루( 駕鶴樓한국어 )라는 이름의 정면 3칸짜리 중층 문루가 정문 역할을 하였다. 이 외에도 정자인 오송정,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여러 비석, 홍살문 등이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동헌의 다른 이름인 반학헌 역시 관련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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