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원윤은 원술의 족형으로, 단양 태수를 역임했으나 손책의 부하 서곤에게 공격받아 쫓겨났다. 원술 사후에는 그의 유족을 보호하며 유훈에게 의탁했으나, 손책에게 완성(완성)이 함락된 후 오군으로 호송되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술의 조카로 등장하며, 원술 사후 그의 잔당을 이끌었으나 조조 군에게 몰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여남 원씨 - 원성
원성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4대 삼공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이며, 좌중랑장을 지냈고, 강직한 성품과 뛰어난 언변으로 명성이 높았다. - 여남 원씨 - 원소 (후한)
원소는 후한 말 군벌로, 명문가 출신으로 반동탁 연합군의 맹주였으나 조조와의 관도 대전에서 패배하여 세력이 몰락했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손견
손견은 후한 말의 군벌이자 오나라의 시조이며 손책과 손권의 아버지로, 황건적의 난 진압 등 공을 세웠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낙양 함락에 기여했으나, 향양 전투 중 전사했으며, 뛰어난 무력과 리더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과감한 성격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진기 (원술 부하)
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 문화에 관한 -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 미술은 14세기부터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양식의 변화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사실적 표현 기법이 발달했으며, 회화, 조각, 건축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활약하며 유럽 각 지역에서 특색을 반영하여 발전했다. - 문화에 관한 -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는 나관중이 유비를 중심으로 184년부터 280년까지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저술한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역사 소설로, 격동적인 시대의 사건과 인물들의 활약상을 다루며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미디어로 각색되어 왔다.
| 원윤 | |
|---|---|
| 인물 정보 | |
| 이름 | 원윤 |
| 한자 표기 | 袁胤 |
| 로마자 표기 | Yuan Yin |
| 자 | 중적 |
| 생몰년도 | 불상 |
| 출신지 | 예주여남군여양현 |
| 관직 및 직책 | |
| 최종 관직 | 단양태수 |
| 소속 세력 | |
| 주군 | 원술 |
| 기타 정보 | |
| 특기 사항 | 없음 |
2. 생애
손책은 흥평 원년(194년)부터 유요 등을 격파하고 강동을 평정했다. 그 후, 원술의 명에 따라 주유의 종부인 주상의 후임으로 단양 태수에 부임했다. 그러나 서곤에게 공격받아 단양에서 추방되었다. 원술은 조랑에게 산월을 선동하여 손책을 공격하게 했으나 실패했다.
건안 4년(199년) 원술이 사망하자, 원윤은 원술의 사위인 황의 등과 함께 원술의 관과 원요 및 원요의 생모・자매 등을 지켰다. 이후 유훈에게 도망쳐 완성에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유훈이 군대를 출동시킨 틈에 완성은 손책에게 함락되었고, 원술의 유족들은 보호받았다. 원윤 등은 오군으로 호송되었다. 원요가 손씨를 섬기고, 원씨도 손권의 측실이 되었지만, 원윤의 소식은 불분명하다.
2. 1. 원술의 족형
손책은 흥평 원년(194년)부터 토벌을 통해 유요 등을 격파하고 강동을 평정했다. 그 후, 원윤은 원술의 명에 따라 주상(주유의 종부)의 후임으로 단양태수에 부임했다. 그러나 원술에 의한 단양 지배를 좋게 생각하지 않던 서곤에게 공격받아 원윤은 단양에서 추방되었다. 분노한 원술은 종부 일기(종교 공동체의 일종)의 수령인 조랑에게 산월을 선동하여 손책을 공격하게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건안 4년(199년)에 원술이 사망하자, 원윤은 원술의 사위인 황의 등과 함께 원술의 관과 그의 아들 원요 및 원요의 생모・자매 등을 지켰다. 원윤 등은 과거 원술의 부하였던 유훈에게 도망쳐 유훈의 본거지인 완성에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유훈이 군대를 출동시킨 틈을 타 완성은 손책에게 함락되었고, 원윤 등 원술의 유족들은 보호받았다. 이후 원윤 등은 오군 (당시 손책의 본거지)으로 호송되었다. 원요가 손씨를 섬기고, 그 자매 중 한 명인 원씨도 손권의 측실이 되었지만, 원윤의 소식은 불분명하다.
2. 2. 단양태수 부임과 축출
흥평 원년(194년), 원술의 휘하에 있던 손책은 유요 등을 격파하고 강동을 평정했다. 그 후, 원윤은 원술의 명에 따라 주유의 종부인 주상의 후임으로 단양 태수에 부임했다. 그러나, 원술에 의한 단양 지배를 좋게 생각하지 않던 서곤에게 공격받아, 원윤은 단양에서 추방되었다. 분노한 원술은 종부 일기(종교 공동체의 일종)의 수령인 조랑에게 산월을 선동하여 손책을 공격하게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2. 3. 원술 사후
199년(건안 4년), 원술이 죽자 원술의 사위 황의(黃猗)와 함께 조조에게 감히 맞서 수춘(壽春)을 지키지 못하고 원술의 널과 처자들과 부곡을 거느리고 환성의 유훈에게 의탁했다. 유훈이 상료를 치러 환성을 비운 사이 손책이 성을 쳐 함락하고, 원윤 등 원술의 유족들은 사로잡혀 오군(吳郡)으로 호송되었다.이후 원술의 아들 원요는 손씨를 섬겼고, 원요의 자매 중 한 명인 원씨도 손권의 측실이 되었지만, 원윤의 소식은 불분명하다.
3. 《삼국지연의》 속 원윤
원술의 조카로 등장하며, 원술이 조조, 손책, 여포, 유비 연합군에게 패하여 도망칠 때 원술을 따라 원담에게 의탁하기 위해 하북 방향으로 가던 도중 원술이 분사하는 바람에 원술의 잔당을 이끌고 가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중간에 조조의 부하 서구(徐璆)를 만나 일행 모두가 살해당하고 옥새도 빼앗겼다. 이후 옥새는 조조에게 헌납되었다.
4. 가계
원윤은 원술의 사촌으로 추정된다.
4. 1. 여남 원씨 가계도

4. 2. 친족 관계
원윤은 원술의 조카뻘 되는 인물로, 원술의 사촌으로 추정된다. 흥평 원년(194년), 손책이 강동을 평정한 후 원술의 명으로 단양 태수에 부임했으나, 서곤에게 공격받아 쫓겨났다. 건안 4년(199년) 원술이 사망하자, 원술의 사위 황의 등과 함께 원술의 관과 아들 원요 등을 지켰다. 이후 원술의 부하였던 유훈에게 의탁했으나, 손책에게 패배하여 원술의 유족들과 함께 보호받고 오군으로 호송되었다. 이후 원요는 손씨를 섬기고, 원요의 자매 원씨는 손권의 측실이 되었으나, 원윤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