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정
1. 개요
위계정은 고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선종, 숙종, 예종 시대를 거치며 문하시중까지 오른 인물이다. 의천을 송나라에서 찾으려는 시도에 참여하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외교 활동을 했다. 만춘의 사치스러운 집 건축을 반대하고, 선종의 춤을 강요하는 연회에 불참하는 등 강직한 면모를 보였다. 숙종이 죽을 때 중요한 신하로 언급되었으며, 예종 대에 문하시중을 지냈으나 사직 후 사망했다. 인종 때 예종 묘정에 배향되고 충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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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8년 출생 -
소현
소현은 고려 시대 승려로, 해린의 제자가 되어 금산사 주지로 절을 중창하고 광교원을 설치하여 경전 강독 및 판각·유포에 힘썼으며 승통을 역임했고, 그의 탑비가 김제 금산사에 남아있다. -
1038년 출생 -
복강공주 (북송 인종의 장녀)
복강공주는 북송 인종의 장녀로, 효성이 지극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겪었으며 33세에 사망했다. -
1107년 사망 -
킬리지 아르슬란 1세
킬리지 아르슬란 1세는 룸 셀주크 왕조의 술탄으로, 말리크샤 1세 사망 후 왕조를 재건하고 십자군 전쟁에 맞서 싸우며 영토를 확장했으나, 카부르 강 전투에서 패배 후 익사했다. -
1107년 사망 -
호리카와 천황
호리카와 천황은 시라카와 천황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시라카와 상황의 원정 정치 하에서 학문과 예술에 심취했으며, 그의 아들이 도바 천황으로 즉위했다. -
장흥 위씨 -
위서현 (아나운서)
위서현은 숙명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춘천MBC 기자 및 뉴스캐스터를 거쳐 2003년 KBS 29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아침마당》, 《국악한마당》, 《KBS 뉴스 네트워크》, 《KBS 뉴스 7》, 《KBS 8 뉴스타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 그릇》을 저술한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다. -
장흥 위씨 -
위성곤
2. 생애
위계정은 문종 때 과거에 급제했으나, 《고려사》 문종세가에는 급제 시기나 관직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다. 1085년 의천의 송나라 유학 시도와 관련하여 선종의 명으로 그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선종, 숙종, 예종 대에 걸쳐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
1086년 팔관회에서 왕족들의 장수 축원을 반대했고, 1088년 선종의 첩 만춘의 집을 허물 것을 청했다. 1090년 송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청렴한 행동으로 이자의와 비교되었다. 1105년 숙종의 유교에서 중요한 인물로 언급되었고, 예종 즉위 후 문하시중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했다. 1107년 치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1124년 인종은 위계정을 예종 묘정에 배향하고 충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고려사 위계정 열전에는 문종 때 과거에 급제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문종세가에는 위계정이 급제한 시기나 관직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다.
1085년 문종의 아들인 의천이 송나라로 건너가 불교를 공부하고자 했으나 계속 허락을 받지 못하자 남몰래 송나라 상인의 배를 타고 떠나가 버렸다. 위계정은 선종의 명에 따라 배를 타고 나가서 의천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1086년 음력 11월 왕을 따라 팔관회에 참여했다가 환궁하던 중 눈이 내리던 날씨가 개자 선종이 왕족들에게 술잔을 올리고 장수를 축원하게 했으나 이자인과 위계정 등의 반대로 그만두게 되었다. 1088년 선종의 총애를 받는 첩 만춘(萬春)이 자신의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자 위계정은 만춘의 집을 허물자고 청하였으나 선종은 듣지 않았다. 이후 관등절(부처님 오신 날)에 베푼 연회에서 선종이 춤을 추어 보라고 명했으나, 위계정은 끝내 따르지 않았다.
1090년 고려에서는 호부상서(戶部尙書) 이자의를 정사(正使)로, 위계정을 부사(副使)로 삼아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이자의가 진귀한 물품을 많이 사들인 반면 위계정은 아무것도 사지 않아 두 사람의 행동이 비교되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였는데, 1105년 숙종이 세상을 떠날 때 내린 유교(遺敎)에서 〈재신(宰臣) 위계정(魏繼廷) 이하 문무 백관……〉이란 구절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조정 신하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2.2. 의천 귀국 노력과 외교 활동
1085년 문종의 아들 의천이 송나라로 건너가 불교를 공부하고자 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자, 몰래 송나라 상인의 배를 타고 떠났다. 선종의 명으로 위계정은 배를 타고 의천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1090년 고려는 이자의를 정사로, 위계정을 부사로 삼아 송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자의는 진귀한 물품을 많이 샀지만, 위계정은 아무것도 사지 않아 두 사람의 행동이 비교되었다.
2.3. 선종 시대의 활동
1085년 문종의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로 건너가 불교를 공부하고자 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자 몰래 송나라 상인의 배를 타고 떠났다. 선종의 명으로 위계정은 배를 타고 나가 의천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1086년 음력 11월 왕을 따라 팔관회에 참여했다가 환궁하던 중 눈이 내리던 날씨가 개자 선종이 왕족들에게 술잔을 올리고 장수를 축원하게 했으나 이자인과 위계정 등의 반대로 그만두게 되었다. 1088년 선종의 총애를 받는 첩 만춘(萬春)이 자신의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자 위계정은 만춘의 집을 허물자고 청하였으나 선종은 듣지 않았다. 이후 관등절(부처님 오신 날)에 베푼 연회에서 선종이 춤을 추어 보라고 명했으나, 위계정은 끝내 따르지 않았다.
1090년 고려에서는 호부상서 이자의를 정사로, 위계정을 부사로 삼아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이자의가 진귀한 물품을 많이 사들인 반면 위계정은 아무것도 사지 않아 두 사람의 행동이 비교되었다.
2.4. 숙종, 예종 시대의 활동과 죽음
1085년 문종의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로 건너가 불교를 공부하고자 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자, 몰래 송나라 상인의 배를 타고 떠났다. 선종의 명으로 위계정은 배를 타고 의천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1086년 음력 11월 왕을 따라 팔관회에 참여했다가 환궁하던 중 눈이 내리던 날씨가 개자, 선종은 왕족들에게 술잔을 올리고 장수를 축원하게 했으나 이자인과 위계정 등의 반대로 그만두게 되었다. 1088년 선종의 총애를 받는 첩 만춘(萬春)이 자신의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자 위계정은 만춘의 집을 허물자고 청하였으나 선종은 듣지 않았다. 이후 관등절(부처님 오신 날)에 베푼 연회에서 선종이 춤을 추어 보라고 명했으나, 위계정은 끝내 따르지 않았다.
1090년 고려는 호부상서 이자의를 정사로, 위계정을 부사로 삼아 송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이자의가 진귀한 물품을 많이 사들인 반면 위계정은 아무것도 사지 않아 두 사람의 행동이 비교되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였는데, 1105년 숙종이 세상을 떠날 때 내린 유교에서 〈재신(宰臣) 위계정(魏繼廷) 이하 문무 백관……〉이란 구절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조정 신하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1105년 음력 10월 예종이 등극한 후 문하시중이 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1년 가까이 조정에 나오지 않다가 1106년 음력 11월 사직을 청하였는데, 예종은 허락하지 않았으나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예종이 직접 쓴 조서를 내려 조정으로 불러들이자 그해 음력 12월 일시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이때 어사가 위계정이 오랫동안 조정에 나오지 않은 것을 이유로 파직시키라 했으나 예종은 따르지 않았다. 이 일을 두고 김부식의 형인 김부일은 어사가 위계정이 늙어서 조정 일을 돌보기 어려웠음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처사라고 비판하였다.
1107년 정월 위계정은 다시 사직을 청하여 예종의 윤허를 받아 치사하였다. 예종이 위계정에게 여러 물품을 하사하자, 위계정은 글을 올려 녹봉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예종은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조서를 내려 녹봉을 지급하게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1124년 인종은 위계정을 예종 묘정에 배향하고 충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3. 관직 역임
| 연도 | 관직 |
|---|---|
| 문종 재위 기간 | 이때 급제하였으며 나중에 좌보궐 지제고(左補闕知制誥)가 됨. |
| 1085년 | 의천을 찾으러 송에 갈 때 어사(御使)였음. |
| 1088년 | 음력 9월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임명됨. 만춘(萬春)의 일로 선종에게 간언한 후, 추밀승선(樞密承宣)이 됨. |
| 1090년 | 음력 7월 송에 사신으로 갈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이었음. |
| 1101년 | 음력 6월 숙종에게서 판한림원사(判翰林院事)로 임명되었으며, 음력 12월에는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로 임명되고 주국(柱國)을 겸함. |
| 1103년 | 음력 2월 수사도(守司徒) 판례부사(判例部事)로 임명됨. |
| 1104년 | 음력 12월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겸 태자소사(太子少師)로 임명됨. |
| 1105년 | 음력 6월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었으며, 음력 11월 수태위(守太尉) 문하시중 상주국(上柱國)으로 임명됨. |
4. 저술 활동
송나라 심괄의 저서 《보필담》에는 1087년 사신으로 온 위계정이 상원절(정월대보름)에 지은 시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동문선》에는 요나라 8대 황제 도종의 생일인 천안절을 축하하는 글이 실려 있다.
5. 가족 관계
* 증조부: 위달(魏澾)
* 조부: 위원보(魏原補)
* 부: 위기로(魏耆老)
* 형: 위계령(魏繼令)
* 처부: 황주량(黃周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