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 (동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유현은 촉한 멸망 후 위나라에서 봉거도위를 지냈으며, 영가의 난을 피해 촉 지방으로 피신했다. 이후 성한 황제 이수에 의해 안락공에 봉해졌고, 동진의 환온이 성한을 멸망시켰을 때 역사가로서 환온을 수행했다. 현재 중국 각지에 유현의 후손이라고 자칭하는 유씨들이 있다.

유현 (동진)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오호 십육국 시대 사람 - 요양
    요양은 후조 장군 요익중의 아들로, 군사적 능력과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후조 혼란기에 활약하고 동진에 귀순했으나, 결국 배반하여 독자 세력을 형성했으나 전진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그의 세력은 동생 요장에 의해 계승되어 후진 건국으로 이어졌다.
  • 오호 십육국 시대 사람 - 모용준
    모용준은 오호십육국시대 전연의 2대 군주이자 초대 황제로, 아버지 모용황의 뒤를 이어 연왕에 즉위한 후 후조의 혼란을 틈타 중원 진출을 본격화하여 황제를 칭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전진, 동진과 대립했고 수도를 업으로 옮겼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영가의 난 때 유씨 일족 대부분이 살해당하는 와중에 홀로 살아남아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당시 촉 지역을 지배하던 성한의 황제 이수(李壽)는 유현에게 그의 대숙부 유선의 작위였던 안락공(安樂公)을 봉해주었다. 또한, 과거 촉한의 문신이었던 이복의 손자이자 이수 황제의 장인이기도 한 이수를 유현에게 붙여주어 보좌하게 하였다.

347년, 동진환온이 성한을 정벌하고 수도 성도를 함락시켰을 때, 환온의 군대를 따라 종군했던 동진의 역사가 손성은 성도에서 유현을 만났다. 이 만남 이후 유현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의 후손들이 중국 각지에 퍼져 살아가며 현재 많은 유씨들이 그의 자손임을 내세우고 있다고 전해진다.

2.1. 촉한 멸망과 위나라에서의 생활

촉한에 의해 멸망한 후, 아버지 유영은 위나라에서 봉거도위(奉車都尉) 작위를 받고 중앙 부근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영가의 난(304년~311년)이 일어나 유비의 후손 대부분이 혼란 속에 목숨을 잃었으나, 유현은 홀로 난을 피해 땅으로 피신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촉 지역은 파저족이 세운 성한(成漢)이 지배하고 있었다. 성한의 황제 이수(李壽)는 유현에게 할아버지인 유선이 위나라에서 받았던 작위인 안락공(安樂公)을 다시 내려주었다. 또한, 과거 촉한의 신하였던 이복의 손자이자 자신의 장인이기도 한 이수(李秀)를 유현의 신하로 삼게 했다. 일부 기록에는 이웅 황제가 유현을 안락공에 봉했다고도 한다.

347년 (영화 3년), 동진대사마 환온이 성한을 공격하여 수도 성도를 함락시키고 성한을 멸망시켰다. 이때 환온의 군대를 따라 종군했던 동진의 역사가 손성은 성도에서 유현을 직접 만났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만남 이후 유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의 후손들이 중국 각지로 퍼져나가 현재 많은 유씨들이 그의 자손임을 내세우고 있다고 전해진다.

2.2. 성한에서의 안락공 즉위

촉한이 멸망한 후, 유현의 아버지 유영은 위나라로부터 봉거도위(奉車都尉) 작위를 받고 낙양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서진 시대에 영가의 난이 발생하여 많은 유씨 일족이 혼란 중에 목숨을 잃었으나, 유현은 홀로 살아남아 땅으로 피신하였다.

당시 촉 지역은 파저족의 이웅이 세운 성한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웅은 유현을 받아들여, 그의 큰아버지인 유선이 위나라로부터 받았던 안락공(安樂公) 작위를 다시 내려주었다. 또한, 과거 촉한의 신하였던 이복의 손자이자 이상의 아들인 이수(이수)를 유현의 속관으로 삼아 보좌하게 하였다.

2.3. 동진 환온과의 만남

영가의 난 때 유씨 일족 대부분이 살해당했으나, 유현은 난을 피해 지방으로 피신했다. 당시 촉 지역은 파저족이 세운 성한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유현은 성한의 군주(이웅 또는 이수)에 의해 대숙부 유선이 받았던 안락공 작위에 봉해졌다. 또한, 촉한의 신하였던 이복의 손자 이수(李壽)가 그의 속관으로 배속되기도 했다.

영화 3년(347년), 동진대사마 환온이 성한을 정벌하여 성도를 함락시키고 황제 이세의 항복을 받았다. 이때 환온을 수행하여 종군하던 동진의 역사가 손성은 성도에서 유현을 만났다. 이 만남 이후 유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현재 중국 각지에 그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유씨들이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3. 가계

유비
유비

4. 후손

영가의 난 때 일족 대부분이 살해당했으나, 유현은 난을 피해 촉 지방으로 피신했다. 당시 촉 지역을 다스리던 성한의 황제 이수는 유현에게 그의 대숙부인 유선의 작위였던 안락공(安樂公)을 다시 봉해주었다. 또한, 과거 촉한의 문신이었던 이복의 손자이자 이수 황제의 장인이기도 한 이수를 보좌역으로 붙여주었다.

347년, 동진환온이 성한을 정벌하여 성도가 함락되었을 때, 유현은 동진의 역사가이자 환온을 따라 종군했던 손성과 만났다. 이 만남 이후 유현의 구체적인 행적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중국 각지에 그의 후손들이 퍼져 살고 있으며, 많은 유씨들이 스스로 유현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