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
1. 개요
이복은 촉한의 관료로, 유비, 유선 시대를 거치며 서좌, 현령, 태수, 상서복야 등을 역임했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위독해지자 유선의 명을 받고 그를 찾아가 국가 대계에 대한 조언을 들었으며, 장완과 비의를 후임으로 추천받았다. 장완이 한중에 주둔할 때 전감군 겸 사마를 맡았으며, 양희, 진수, 상거 등의 기록에서 과예한 인물로 칭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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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의 정치인 -
황권
황권은 삼국 시대 촉한과 위나라에서 활약한 인물로, 유비의 촉 정벌 이후 촉한의 신료가 되었으나 오나라 공격을 반대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위나라에 귀순하여 진남장군 등을 역임했으며, 아들 황숭은 촉에 남아 등애의 침공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
촉한의 정치인 -
양의
양의는 촉한의 정치가로, 제갈량 사후 군 철수 임무 수행과 위연 제거에 공을 세웠으나, 좁은 소견과 과도한 야심으로 장완에게 밀려 불만을 품고 자결하여 능력과 인격의 조화 및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남겼다. -
쓰촨성 출신 -
덩샤오핑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톈안먼 사건 무력 진압 등 비판도 받으며, 실사구시와 선부론을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일국양제 원칙을 제시한 중국의 정치가이자 개혁가이다. -
쓰촨성 출신 -
진수 (서진)
촉한과 서진에서 벼슬을 지낸 진수는 환관의 핍박을 받기도 했으나 장화의 추천으로 등용되어 《삼국지》를 편찬, 위나라를 정통으로 하는 역사관을 확립한 역사가이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2. 생애
이복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유비 사후 유선이 촉한을 계승한 이후에도 여러 요직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34년(건흥 12년)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을 얻자, 유선의 명을 받고 그를 방문하여 국가 대계와 후계 문제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제갈량은 자신의 후임으로 장완을, 그 다음 후임으로 비의를 추천했다. 이복이 그 다음 후임자에 대해 묻자 제갈량은 답하지 않았다.
연희 초, 대장군 장완이 한중에 주둔할 때 전감군 겸 사마를 맡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양희의 『계한보신찬』, 진수의 『익부기구잡기』, 상거의 『화양국지』에서는 모두 이복을 "과예"한 인물로 칭찬하고 있다.
2.1. 초기 생애
이복은 늦은 후한 시대에 현재의 쓰촨성 몐양시인 쯔퉁군 부현(涪縣)에서 태어났다. 이씨는 부현의 유력 가문(호족) 중 하나였다. 아버지 이권은 임공현장을 역임했지만, 초평 2년(191년)에 유언에게 살해당했다.
2.2. 유비 시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이복은 그 밑에서 서좌(書佐), 서충국현장(西充國縣長), 성도현령(成都縣令)을 역임하였다. 書佐중국어는 문서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직이며, 현장은 현의 책임자이다.
2.3. 유선 시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이복은 서좌, 서충국현장, 성도현령을 역임하였다. 유선이 촉한을 계승한 후에는 파서태수, 강주독, 양위장군을 지냈고 상서복야에 임명되었으며 평양정후에 봉해졌다.
234년(건흥 12년),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이 들자, 유선의 명으로 제갈량을 찾아가 국가의 큰 계획과 후임자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제갈량은 자신의 후임으로 장완을, 장완의 후임으로는 비의를 추천하였다. 이복이 그다음 후임자를 묻자 제갈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희 초, 대장군 장완이 한중에 주둔할 때 이복은 전감군 겸 사마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