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노덕
1. 개요
윤노덕은 윤영렬과 한진숙의 딸로, 한국 초기 여성 장로 중 한 명이다. 사촌 윤치호의 권유로 기독교에 입교하여 정동감리교회 장로로 활동하며 교회 활동과 사회 사업에 헌신했다. 조선고아구제회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부녀부를 설치하여 고아 구제에 힘썼으며, 6.25 전쟁 중에도 경주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예배당 건립에 기여했다. 만년에는 정동교회 원로 장로로 추대되었으며, 정동제일교회는 그의 공적을 기려 강당 이름을 윤노덕 홀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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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종교인 -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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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종교인 -
안창호
안창호는 평안남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상가로서, 서양식 교육과 기독교 입교 후 독립협회 활동, 대한국민회 설립 등 해외 독립운동, 신민회 조직, 흥사단 재건 등 국내외 민족 교육과 계몽 운동에 헌신하며 민족 개조를 주창하고 이상촌 건설을 추진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옥중에서 병사하였다. -
대한민국의 종교인 -
김계원
김계원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참여하여 육군참모총장, 중앙정보부장, 주중화민국 대사,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 외교관이며 10.26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선고 후 감형 및 사면되었다. -
대한민국의 종교인 -
이만희 (종교인)
이만희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총회장이자 종교 지도자로, 계시록의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교리를 전파하며 신천지를 창립하여 선교 활동을 펼쳤으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집단 감염 사태와 횡령,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사회적 비판과 논란의 중심에 섰다. -
충청남도 출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충청남도 출신 -
조남풍
조남풍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1야전군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특수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베트남 전쟁 참전, 공수특전부대 육성, 한국형 기갑무기 개발 등에 기여하고, 예편 후에는 동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국제 외교 및 안보 분야에서 활동했다.
2. 생애
윤노덕은 윤영렬과 한진숙의 7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윤치호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이병도의 6촌 형인 이병림과 결혼했다. 이후 한국 교회의 초기 여자 장로 중 한 명이 되었다. 활발한 교회 활동과 더불어 '화생보육원' 사업을 지원하고 조선고아구제회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 사업에도 힘썼다. 6ㆍ25 전쟁 중에는 경상북도 경주에서 경주감리교회 설립을 도왔고, 만년에는 서울 정동제일교회 원로장로로 추대되었다. 사후 정동제일교회는 그의 공적을 기려 강당 이름을 '윤노덕 홀'로 명명했다.
2.1. 초기 생애와 가문 배경
윤영렬과 한진숙의 7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사촌 윤치호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으며, 1904년 이병도의 6촌 형 이병림과 결혼하였다. 1907년 정동교회 전도부인에 의해 다시 정동교회에 입교, 시집 가족들을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였다. 이후 정동감리교회의 장로로 장립되었는데, 한국교회 초기 여자 장로 중 한 사람이었다.
2.2. 일제강점기 활동
윤영렬과 한진숙의 7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사촌 윤치호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으며, 1904년 이병도의 6촌 형 이병림과 결혼했다. 1907년 정동교회 전도부인에 의해 다시 정동교회에 입교, 시집 가족들을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였다. 이후 정동감리교회의 장로로 장립되었는데, 한국교회 초기 여자 장로 중 한 사람이었다. 활발한 교회활동을 했으며 '화생보육원' 사업을 뒷받침하는 등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조선고아구제회 창립 때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고아원 구제, 지원 활동을 하였다. 1939년 고아구제회에 부녀부를 설치할 때 직접 주도하여 70여 명의 부녀회원을 모집하였다. 1935년 고아구제회 여자부회장에 선출되었다. 그해 1월 모금운동을 하여 경성 답십리동에 있는 경성고아원의 신축 자금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2.3. 6.25 전쟁과 그 이후
1950년 6ㆍ25 전쟁으로 피난갔을 때는 피난지인 경상북도 경주에서도 교회에 다니며 경주감리교회 설립에 예배당 건립 재산을 희사하였다. 휴전 후에도 경주에 체류하며 경주감리교회에서 장로로 봉직하다가, 1957년 경기도 수원으로 이주하여 수원종로감리교회 장로로 활동했다. 만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정동교회 원로장로로 추대되어 공로 표창을 받았으며 노환으로 별세했다. 훗날 서울 정동제일교회는 그녀의 공적을 기려 특별히 강당 이름을 윤노덕 홀이라 이름붙였다.
2.4. 사후
1950년 6.25 전쟁으로 피난갔을 때는 피난지인 경상북도 경주에서도 교회에 다니며 경주감리교회 설립에 예배당 건립 재산을 희사하였고, 이후 휴전 후에도 경주에 체류하며 경주감리교회에서 장로로 봉직하다가, 1957년 경기도 수원으로 이주하여 수원종로감리교회 장로로 활동했다. 만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정동교회 원로장로로 추대되어 공로 표창을 받았으며 노환으로 별세했다. 훗날 서울 정동제일교회는 그녀의 공적을 기려 특별히 강당 이름을 윤노덕 홀이라 이름붙였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및 정보 |
|---|---|
| 할아버지 | 윤취동(1798년 7월 18일 - 1863년 12월 21일) |
| 할머니 | 고령 신씨(高靈申氏) |
| 할머니 | 안동 김씨(安東金氏, 1800년? - 1900년 10월) |
| 아버지 | 윤영렬(1854년 4월 15일 - 1939년 11월 4일) |
| 어머니 | 청주 한씨 한진숙(1851년 ~ 1938년 2월 18일), 한진창의 누이 |
| 남편 | 이병림(李丙琳), 이병도의 6촌 형 |
| 딸 | 이영희, 이화여자대학교 음과대학 교수 |
| 딸 | 이달희 |
| 사위 | 한상준, 제6대 한양대학교 총장 |
| 고모 | 해평 윤씨(1835년 - 1920년) |
| 고모부 | 이원시(李源始, 본관은 용인) |
| 큰아버지 | 윤웅렬(1840년 4월 17일 - 1911년 9월 22일) |
| 큰어머니 | 전주 이씨(1844년 9월 27일 - 1936년 2월 12일, 이름은 이정무) |
| 큰어머니 | 김정순(金貞淳, 1879년 3월 15일 - 1959년 11월 16일) |
| 오빠 | 동암 윤치오(1869년 8월 5일 ~ 1950년 12월 22일) |
| 오빠 | 동야 윤치소(1871년 8월 25일 ~ 1944년 2월 20일) |
| 오빠 | 악연 윤치성(1875년 3월 2일 - 1936년 8월 11일) |
| 오빠 | 간송 윤치병(1880년 6월 4일 - 1939년 1월 24일) |
| 오빠 | 윤치명(1885년 9월 - 1944년 4월 21일) |
| 언니 | 윤활란(尹活蘭, ? - ?) |
| 남동생 | 동산 윤치영(1898년 2월 10일 - 1996년 2월 9일) |
| 남동생 | 이름 미상, 어려서 요절 |
| 서모 | 이름 미상, 아버지 윤영렬의 첩 |
| 이복 여동생 | 윤씨(이름 미상, ? ~ ?) |
| 이복 동생 | 윤치정(尹致晶) |
| 이복 동생 | 윤치일(尹致日) |
| 외증조부 | 한익상(1767년 ~ 1846년, 병조 참판 역임) |
| 외할아버지 | 한치원(1821년 ~ 1881년, 호는 동랑(冬郎), 부호군 역임) |
| 외삼촌 | 한진창(1858년 1월 26일 ~ 1935년 2월 2일) |
| 사돈 | 현진건(1900년 8월 9일 ~ 1943년 4월 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