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금성면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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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5~6세기경에 조성된 대규모 고총고분으로, 의성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걸쳐 있으며, 조문국 경덕왕릉을 포함하여 약 200여 기가 분포한다. 묘제와 출토 유물을 통해 신라의 지방 지배 방식과 의성 지역 세력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국립중앙박물관, 경희대, 경북대학교박물관 등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의성 양식 토기, 금동관, 금동제 귀걸이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의성 금성면 고분군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위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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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금성면 고분군 전경
문화재 정보
이름의성 금성면 고분군 (義城 金城面 古墳群) (Ancient Tombs in Geumseong-myeon, Uiseong)
유형사적
지정 번호555
지정일2020년 4월 1일
해제일2020년 4월 1일
주소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
관리경상북도 의성군
면적253필지, 630,038m2
지도대한민국
꼬리표의성 금성면
문화재청13,05550000,37
기념물 정보 (지정 해제)
이름 (기념물)의성금성산고분군 (義城金城山古墳群)
국가 (기념물) 경상북도
유형 (기념물)기념물
번호 (기념물)128
지정일 (기념물)1998년 4월 13일
해제일 (기념물)2020년 4월 1일
문화재청 (기념물)23,0128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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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배경 및 가치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에 걸쳐 조성된 324기의 대규모 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5~6세기 삼국 시대 의성군을 포함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신라의 발전 과정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1960년 의성 탑리리 고분군 발굴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이곳에서는 신라의 대표적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적인 특징을 보이는 점이 확인되었다. 또한, 경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위세품*과 의성 지역만의 독특한 토기 양식인 '의성양식토기'가 출토되었다.
* 위세품: 왕이 지방 세력의 수장에게 힘을 과시하고 세력권에 편입시키면서, 동시에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하사하던 귀한 물품

출토된 유물의 수량과 품질을 고려할 때, 고분이 주로 만들어진 시기는 신라가 중앙 집권 국가 체제를 갖추기 이전인 초기 국가 단계로 보이며, 무덤의 주인들은 당시 의성 지역 중심 읍락(國邑)의 지배 계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적으로도 고분군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당시 의성 지역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시사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5~6세기에 조성되어 의성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신라의 발전 과정에서 단순한 북방 거점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여주며, 묘제와 출토 유물 양상을 통해 신라의 지방 지배 방식 변화를 파악할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2.1. 의성 지역의 독자성

의성 금성면 고분군에서는 신라의 대표적인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을 받아들이면서도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독자적으로 수용하거나 변형된 형태(변형 돌무지덧널무덤)가 확인된다. 이는 당시 의성 지역이 신라 중앙 문화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특히, 고분군에서는 의성 지역만의 독특한 토기 양식인 '의성양식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 토기들은 신라 토기와 구별되는 강한 지역색을 띠며, 당시 의성 지역에서 독자적인 토기 제작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고 생산되어 지속적으로 유통되었음을 증명한다. '의성양식 토기'는 의성 지역 문화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또한, 금동관, 금동관 장식품, 금동제 귀걸이, 허리띠 장식(과대금구), 고리자루칼 등 다양한 형태의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이는 경주와의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한편, 의성 지역 지배층의 높은 위상을 나타낸다.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2. 신라와의 관계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5~6세기 삼국 시대 의성군 지역을 포함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신라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과 고분의 특징은 당시 의성 지역 세력과 신라 중앙 정부와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1960년 의성 탑리리 고분군 발굴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이곳에서는 신라의 대표적인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을 독자적으로 수용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지역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위세품(威勢品)이 다수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위세품으로는 금동관과 같은 머리 장식, 귀걸이(이식, 耳飾), 허리띠 장식(과대 금구, 銙帶金句), 고리자루칼(환두대도, 環頭大刀) 등이 있다. 이는 당시 왕이 지방 세력의 수장에게 힘을 과시하고 세력권에 편입시키면서, 동시에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하사하던 귀한 물품을 의미한다. 의성 금성면 고분군에서 이러한 위세품이 풍부하게 출토되었다는 점은 당시 의성 지역의 지배층이 신라 중앙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음을 시사한다.

출토된 위세품의 수량과 우수한 품질로 미루어 볼 때, 고분이 주로 축조된 시기는 신라가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 체제를 완성하기 이전인 초기 국가 단계로 추정된다. 무덤의 주인들은 이 시기 의성 지역의 중심 읍락(國邑)을 다스리던 지배 계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고분군의 지리적 위치 또한 신라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점이다. 고분군은 신라의 수도 경주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어, 의성 지역이 신라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의성 지역은 신라 발전 과정에서 단순한 북방 거점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고분군에서는 신라 문화의 영향 속에서도 '의성양식토기'라는 독자적인 토기 양식이 확인되는 점은, 의성 지역이 신라 중앙 정부와 교류하면서도 고유한 문화를 유지·발전시켰음을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5~6세기 의성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를 드러내는 동시에, 묘제와 출토 유물을 통해 신라의 지방 지배 방식 변화와 중앙 집권 체제 강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삼국사기에는 조문국신라 벌휴왕 2년(185년)에 신라에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고고학적 자료는 5~6세기 신라와 의성 지역의 관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이 고분들은 의성 지역 지방 세력의 성격, 사회 구조 및 신라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출토된 주요 유물들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 주요 고분 및 출토 유물

1960년 의성 탑리리 고분군 발굴을 시작으로 17차례의 매장문화재 조사와 9번의 학술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의성 금성면 고분군에서는 신라의 대표적인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을 받아들이면서도 독자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또한, 신라의 중심지인 경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위세품(威勢品)*이 여러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 위세품(威勢品): 왕이 지방 세력의 수장에게 힘을 과시하고 세력권에 편입하면서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하사하는 귀한 물품

출토된 유물의 수량과 품질로 미루어 볼 때, 이 고분들은 삼국 시대 중에서도 중앙집권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초기 국가 단계인 국읍(國邑, 중심 읍락)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무덤의 주인은 이 지역의 지배계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분군에서는 의성 지역만의 독특한 토기 양식인 ‘의성양식 토기’가 출토되어, 당시 이 지역에서 토기가 꾸준히 생산되고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분군이 신라의 수도 경주와 경북 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의성 지역이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고분군의 위치와 출토 유물들은 의성 지역이 신라의 성장 과정에서 단순한 북방 거점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3.1. 조문국 경덕왕릉 (1호 고분)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조문국경덕왕릉으로 전해지는 고분이다. 조문국은 이곳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 도읍하여 주변 지역을 다스렸으나, 신라 벌휴왕 2년(185년) 신라에 병합되었다.

이 능은 전통적인 고분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봉분 아래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비석과 상석이 놓여 있다. 조선 숙종 때 편찬된 허미수의 문집에는 먼 옛날 외밭이었던 이 묘역을 당시 의성현령이 꿈을 꾼 뒤 발견하여 수호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분구의 둘레는 74m, 높이는 8m에 달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고분이다. 능 앞에는 가로 42cm, 세로 22cm, 높이 1.6m 크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현재 매년 봄마다 지역 주민과 관리가 함께 모여 춘계향사를 지내고 있다.

3.2. 2호 고분

규모는 동-서 30.8m, 남-북 29m, 높이 8m이다. 봉토의 경사도는 25~30도이고,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다. 추가장 유형은 유사적석목곽묘 또는 적석목곽묘로 추정되며, 봉토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3.3. 주요 출토 유물

의성 금성면 고분군에서는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신라 토기 가운데 지역색을 강하게 나타내는 '의성양식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의성 지역에서 독자적인 토기 양식이 꾸준히 생산되고 유통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신라 경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위세품(威勢品)이 출토되었다. 위세품은 왕이 지방 세력의 수장에게 힘을 과시하고 세력권에 편입하면서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하사하는 귀한 물품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발견된 주요 위세품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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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위세품 목록
유물 종류설명
금동관-
금동관 장식품-
금동제 귀걸이이식(耳飾)이라고도 함
허리띠장식과대금구(銙帶金句)라고도 함
고리자루칼환두대도(環頭大刀)라고도 함


이러한 화려한 장신구 외에도 철제 무기류와 마구류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의 수량과 우수한 품질은 무덤의 주인들이 삼국 시대 초기 국가 단계인 국읍(國邑)의 지배계층이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현재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4.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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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적 의의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에 걸쳐 조성된 324기의 대규모 고분군으로, 5~6세기 삼국 시대 의성지역을 포함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역사·문화와 신라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1960년 의성 탑리리 고분군 발굴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신라의 대표적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을 독자적으로 수용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경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관(머리장식), 귀걸이(이식, 耳飾), 허리띠장식(과대금구, 銙帶金句), 고리자루칼(환두대도, 環頭大刀)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착장형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위세품(威勢品): 왕이 지방 세력의 수장에게 힘을 과시하고 세력권에 편입하면서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하사하는 귀한 물품.

출토 유물의 수량과 질을 고려할 때, 고분은 삼국 시대 중에서도 중앙집권국가 형성 이전의 초기 국가 단계인 국읍(國邑, 중심 읍락) 시기에 조성되었으며, 무덤 주인은 이 지역 지배계층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분군에서는 의성 지역만의 독특한 토기 양식인 ‘의성양식 토기’가 출토되어, 당시 이 토기가 꾸준히 생산되고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분군이 신라 수도 경주와 경북 북부지역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한 점은 의성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시사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고분군의 위치와 출토 유물은 의성 지역이 신라 발전 과정에서 단순한 북방 거점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여준다. 5~6세기에 조성된 이 대규모 고분군은 의성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어 지역사를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묘제와 유물 양상을 통해 신라의 지방 지배 방식 변화를 파악할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러한 특징들은 의성 금성면 고분군이 삼국 시대 초기 국가의 형성과 발전 과정, 신라 중앙과 지방의 관계, 지방 세력의 성장과 쇠퇴, 문화 교류 양상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임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