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1917년)
1. 개요
이경호는 1917년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나, 경성법학전문학교와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법조인이다. 서울대학교 조교수,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법무부에서 10년간 근무하며 법무국장과 검사를 지냈다. 제3공화국 헌법 제정에 참여하고 한일회담 대표로 활동했으며, 법무부, 국방부, 교통부 차관을 거쳐 제14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유정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저서로 『헌법 강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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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17년 1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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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 2002년 8월 25일 |
| 본관 | 전주 이씨(全州 李氏) |
| 호 | 정산(晶山) |
| 배우자 | 이영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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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 이윤수 이혜수 이지수 |
| 학력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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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변호사 제7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제8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제9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제10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제11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제12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상임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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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훈 |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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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 | 김찬진 (사위) 이경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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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교통부 차관 -
조경식
조경식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정부 관료이며,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고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 정책 관련 비판과 환경 정책 기여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
대한민국의 교통부 차관 -
김태동 (1918년)
김태동은 일제강점기부터 박정희 정부 시대까지 요직을 거친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논란과 해방 후 정부 정책 결정 참여, 경제 개발 계획 관여, 사회기반시설 확충 및 사회복지 정책 확대 기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나,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등재되어 역사적 평가는 논란의 대상이다. -
통일주체국민회의 -
곽상훈
곽상훈은 독립운동과 정치 활동에 헌신한 인물로, 3·1 운동 참여, 상해한인청년동맹 및 신간회 활동 등 독립운동에 기여했으며 해방 후에는 5선 국회의원, 국회 부의장, 국회의장 및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했으나, 5·16 군사정변 이후 정치적 입장을 바꾸어 복잡한 삶을 살았다. -
통일주체국민회의 -
유신정우회
유신정우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하에 결성되어 국민회의 추천 의원들로 구성되었으며, 정권의 국회 장악 수단으로 기능하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후 해체된 대한민국의 정치 조직이다. -
규슈 대학 동문 -
민병주
민병주는 물리학자, 원자력공학자, 정치인으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이다. -
규슈 대학 동문 -
나카하라 류타로
나카하라 류타로는 2000년 비트매니아 IIDX 곡 공모를 통해 데뷔한 일본의 음악가 겸 DJ로, 해피 하드코어와 댄스 뮤직을 중심으로 BEMANI 시리즈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HHH 유닛 활동과 앨범 발매를 병행하고, 한국에서는 '류걲'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2. 약력
전라남도 광양 출신이다. 경성법학전문학교와 규슈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조선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이후 관계에 투신하여 법무부, 국방부, 교통부 차관을 차례로 역임했으며, 제14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제10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유신정우회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병으로 69세에 별세했다. 저서로는 『헌법 강의』 등이 있다.
2.2. 경력
규슈 제국 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40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현 규슈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43년에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조선 광복 이후 학계와 관계에서 활동했다.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3. 생애
전라남도 광양 출신으로, 경성법학전문학교와 규슈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조선 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헌법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51년부터는 법무부에서 여러 직책을 거쳐 법무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를 지냈다.
제3공화국 헌법 제정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했으며, 한일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나서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 국방부, 교통부 차관과 보건사회부 장관 등 정부 요직을 역임했다. 제10대 총선거에서는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저서로 『헌법 강의』 등이 있으며, 지병으로 69세에 별세했다.
3.1. 초기 생애 및 교육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났다. 1940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에는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현 규슈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듬해인 1943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조선 광복 이후에는 헌법학자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194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1950년에는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3.2. 해방 이후 학계 및 관료 활동
조선 광복 이후 1947년 헌법학자로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1950년에는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51년부터 10년간 법무부에서 정보과장, 송무과장, 법무과장을 차례로 지냈으며, 1960년에는 법무부 법무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로 활동했다. 1962년에는 헌법심의위원회 전문위원으로서 제3공화국 헌법 제정 과정에 참여했다. 이듬해인 1963년에는 한일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나서기도 했다.
이후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65년 8월 법무부 차관을 시작으로, 1968년 5월에는 국방부 차관, 1970년 10월에는 교통부 차관을 역임했다. 1971년 6월부터 1973년 12월까지는 제14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퇴임 후 제10대 총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유정회 소속으로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저서로는 『헌법 강의』 등이 있다. 지병으로 자택에서 69세로 별세했다.
3.3. 박정희 정부 관료 및 정치 활동
1962년 헌법심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제3공화국의 헌법 제정에 관여했다. 이듬해인 1963년에는 한일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참여했다. 이후 박정희 정부에서 여러 부처의 차관과 장관을 역임하며 주요 관료로 활동했다.
보건사회부 장관 퇴임 후, 제10대 총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유정회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4. 저서
* 『헌법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