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수
1. 개요
이공수는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이자상, 이예의 손자이며 문하시중 최유선의 외손자이다. 1086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공부상서, 중서시랑평장사를 역임했다. 이자겸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하여 추충위사동덕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문하시중으로 치사했다. 왕의 외척이었으나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시호는 문충이다.
| 한글 | 이공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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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李公壽 |
| 로마자 표기 | I Gong-su |
| 다른 사람 | 이공수 (14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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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병부시랑 -
문정 (고려)
문정은 고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거치고 동번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공신 칭호를 받았으며, 수태위 문하시중을 역임하고 선종 묘정에 배향된 인물이다. -
고려의 공부상서 -
양규
양규는 고려 목종 때 형부낭중으로, 제2차 고려-거란 전쟁에서 서북면 도순검사로서 흥화진을 지키고 곽주를 탈환하는 등 큰 공을 세웠으나 애전 전투에서 전사 후,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부상서에 추증되고 삼한후벽상공신에 추봉되었다. -
고려의 공부상서 -
이의민
이의민은 경주 출신의 고려 시대 무신으로, 무술 실력으로 의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정중부의 난 이후 권력을 잡고 횡포를 부리다 최충헌 형제에게 암살당했다. -
고려 중기의 문신 -
정습명
정습명은 고려 인종 때 국자감 사업을 지내고 묘청의 난 토벌에 참여했으며 김부식 등과 함께 《삼국사기》 편찬에 참여한 문신으로, 의종 즉위 후 간언을 이어갔으나 왕의 미움을 사 자결했다. -
고려 중기의 문신 -
이인로
무신정변 이후 등용된 고려의 문인 이인로는 임춘, 오세재 등과 함께 강좌칠현으로 불리며 시와 술을 즐겼고, 한국 최초의 시화집 중 하나인 《파한집》을 저술하여 한국 시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이공수는 이자상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이예(預)이고 어머니 해주 최씨는 문하시중 최유선의 딸이며 최충의 손녀였다. 문종의 장인 이자연의 종손으로, 이자겸, 이자의와는 6촌간이었다. 또한 그의 삼촌 이류의 증손자이자 당조카 백선의 아들이 이인로였다.
1086년 (선종 3년) 과거에 급제하여 직한림원, 좌습유(左拾遺)를 거쳐 서경유수판관을 지냈다. 예종이 서경에 행차했을 때 백성을 잘 다스려 칭찬받았고, 왕이 개경으로 돌아갈 때 호종을 명받았으나 사양하였다. 이후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을 거쳐 병부시랑이 되었으며, 14년 동안 군사 선발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잘못이 없었다. 예종의 행차에 백성들의 부담을 경감하는 데 힘썼다. 여러 관직을 거쳐 공부상서로 승진하였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이 진압된 뒤 판이부사 감수국사(判吏部事 監修國史)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문하시중으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여 왕좌재(王佐材) 등 33인을 선발하였다. 1130년 양부(兩府)의 대신들과 의논하여 관리들에게 쌀을 차등 있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이자겸의 난 때 세운 공으로 추충위사동덕공신(推忠衛社同德功臣)에 책록되었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문하시중으로 승진하고 상주국(上柱國) 훈위를 받았다. 1131년 동덕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그 뒤 문하시중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왕의 외척이었으나 권세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았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2.1. 어린 시절
이자상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이예(預)이고 어머니 해주 최씨는 문하시중 최유선의 딸이며 최충의 손녀였다. 문종의 장인 이자연의 종손으로, 이자겸, 이자의와는 6촌간이었다. 또한 그의 삼촌 이류의 증손자이자 당조카 백선의 아들이 이인로였다.
2.2. 관료 생활
1086년 (선종 3년) 과거에 급제하여 직한림원, 좌습유(左拾遺)를 거쳐 서경유수판관을 지냈다. 예종이 서경에 행차했을 때 백성을 잘 다스려 칭찬받았고, 왕이 개경으로 돌아갈 때 호종을 명받았으나 사양하였다.
이후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을 거쳐 병부시랑이 되었다. 병부시랑으로 14년 동안 군사 선발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잘못이 없었다. 예종의 행차에 백성들의 부담을 경감하는 데 힘썼다. 여러 관직을 거쳐 공부상서로 승진하였다.
2.3. 생애 후반
이자겸이 난을 일으켰으나 가담하지 않고 토벌에 참여하였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이 진압된 뒤 판이부사 감수국사(判吏部事 監修國史)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문하시중으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여 왕좌재(王佐材) 등 33인을 선발하였다.
1130년 양부(兩府)의 대신들과 의논하여 관리들에게 쌀을 차등 있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이자겸의 난 때 세운 공으로 추충위사동덕공신(推忠衛社同德功臣)에 책록되었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문하시중으로 승진하고 상주국(上柱國) 훈위를 받았다. 1131년 동덕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그 뒤 문하시중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왕의 외척이었으나 권세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았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3. 가계
이공수는 해주 최씨(최유선의 딸)를 어머니로, 이예(李預)를 아버지로 두었다. 김보위의 딸을 처로, 강릉 김씨(김상기의 딸)를 후처로 맞이하였다. 슬하에 이지저, 이지간, 이지무, 이지혜, 이지의, 이지철 등 6남과 김영석에게 출가한 딸 하나를 두었다.
3.1. 가족 관계
4.1. 긍정적 평가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고 백성들의 부담을 경감하는 데 힘쓴 공로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