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직 (1903년)
1. 개요
이근직은 1903년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관료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유학 후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으며,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 강원도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강원도 산업국장, 서울시 산업국장, 심계원 제2국장, 이시영 부통령 비서실장 등을 거쳐 경상북도지사, 내무부 장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 관련 혐의로 수감되었으며,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
대한민국의 농림부 장관 -
조봉암
조봉암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농림부 장관,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정치인으로,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당했으나 2011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대한민국의 농림부 장관 -
최규옥
최규옥은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의료계와 정계에서 활동한 정치인이자 의사로, 신탁통치 반대 운동과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강원도지사, 농림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
경상북도지사 -
양택식
양택식은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으로, 경상남도 부지사,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철도청장, 부산시 부시장, 경상북도지사를 거쳐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며 여의도 개발 완료, 영동지구 개발 추진,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주도했고, 이후 대한주택공사 사장, 동서석유화학 회장을 지냈다. -
경상북도지사 -
이상배 (1939년)
이상배는 행정고시 합격 후 울진군수, 안동시장, 경상북도지사, 환경청장, 서울특별시장 등 주요 행정 관료를 역임하고 제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
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3. 해방 이후 활동
1945년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고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강원도 비서과장 겸 철공과장으로 발탁되어 그대로 관계에 머물렀다. 이듬해에는 강원도 철공부장, 상공국장, 토목국장 등을 지냈으며, 대동건설주식회사라는 건설 기업을 운영하면서 1947년에는 강원도상공회의소 부회두를 맡기도 했다.
제1공화국 출범 후인 1949년에 강원도 산업국장과 내무국장을 지냈으며, 1950년에는 서울시 산업국장으로 전임하였다. 1952년에는 심계원 제2국장을 거쳐 부통령이던 이시영의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1955년 경상북도지사, 1957년 내무부 장관, 1959년 농림부 장관에 올랐다.
제1공화국 말기에 내무부와 농림부 장관을 지낸 핵심 각료 중 한 명이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했을 때, 3·15 부정선거 관련 혐의자로 지목되어 수감되었다. 이근직은 다른 국무위원들과 함께 표 조작을 논의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법정에서 이를 부인하였다.
3.1. 미군정 시기
1945년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고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강원도 비서과장 겸 철공과장으로 발탁되어 관계에 머물렀다. 이듬해에는 강원도 철공부장, 상공국장, 토목국장 등을 지냈으며, 대동건설주식회사라는 건설 기업을 운영하면서 1947년에는 강원도상공회의소 부회두를 맡기도 했다.
3.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강원도 산업국장과 내무국장을 지냈으며, 1950년에는 서울시 산업국장으로 전임하였다. 1952년에는 심계원 제2국장을 거쳐 부통령이던 이시영의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3.3. 경상북도지사, 내무부 장관, 농림부 장관 역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공부하였다. 1928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강원도에서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하였고,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3년에 평창군수, 1944년에 원주군수로 임명되었다.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되고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강원도 비서과장 겸 철공과장으로 발탁되어 관계에 머물렀다. 이듬해에는 강원도 철공부장, 상공국장, 토목국장 등을 지냈으며, 대동건설주식회사라는 건설 기업을 운영하면서 1947년에는 강원도상공회의소 부회두를 맡기도 했다.
제1공화국 출범 후인 1949년에 강원도 산업국장과 내무국장을 지냈으며, 1950년에는 서울시 산업국장으로 전임하였다. 1952년에는 심계원 제2국장을 거쳐 부통령이던 이시영의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1955년 경상북도지사, 1957년 내무부 장관, 1959년 농림부 장관에 올랐다.
제1공화국 말기에 내무부와 농림부 장관을 지낸 핵심 각료 중 한 명이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했을 때, 3·15 부정선거 관련 혐의자로 지목되어 수감되었다. 이근직은 다른 국무위원들과 함께 표 조작을 논의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법정에서 이를 부인하였다.
4. 4.19 혁명과 그 이후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했을 때, 3·15 부정선거 관련 혐의자로 지목되어 수감되었다. 이근직은 다른 국무위원들과 함께 표 조작을 논의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법정에서 이를 강력하게 부인하며,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일어난 4.19 혁명의 결과였다.
1964년 3월 16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4.1. 3.15 부정선거 연루 혐의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했을 때, 3·15 부정선거 관련 혐의자로 지목되어 수감되었다. 이근직은 다른 국무위원들과 함께 표 조작을 논의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법정에서 이를 부인하였다.
4.2. 재판과 사망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했을 때, 3·15 부정선거 관련 혐의자로 지목되어 수감되었다. 이근직은 다른 국무위원들과 함께 표 조작을 논의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법정에서 이를 부인하였다.
1964년 3월 16일 자택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