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공학자)
1. 개요
이소연은 1978년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기계공학 학사 및 석사, 바이오시스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6년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을 통해 우주비행사 후보로 선발되었다. 2008년 4월, 소유스 TMA-12호를 타고 국제 우주 정거장(ISS)에 9박 10일간 머물며 다양한 우주 과학 실험을 수행했다. 우주 비행 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연구원, 한국 우주 홍보대사, KAIST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소연의 역할, 책임 회피, MBA 과정 이수 등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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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이소연 |
|---|---|
| 로마자 표기 | I So-yeon |
| 한글 | 이소연 |
| 한자 | 李素妍 |
| 출생일 | 1978년 6월 2일 |
| 출생지 | 광주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연구원 |
| 웹사이트 | 이소연 인스타그램 |
| 선발 | 2006년 대한민국 우주인 배출 사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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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무 | 소유스 TMA-12, 소유스 TMA-11 |
| 총 체류 시간 | 10일 21시간 13분 |
| 부모 | 아버지: 이길수, 어머니: 정금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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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일 | 2014년 8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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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우주인 -
고산 (기업인)
고산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삼성전자 연구원과 우주인 배출 사업 최종 후보를 거쳐 3D 프린터 벤처기업과 창업지원 단체를 운영하며, TIDE 연구소와 Fab Lab Seoul을 열었다. -
대한민국의 생물공학자 -
권성훈
권성훈은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생체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한민국의 공학자 겸 기업가로서, 나노 기술 및 바이오 센서 분야 연구와 더불어 셀레믹스, 퀀타매트릭스 등 기술 벤처 회사를 창업하여 기술 상용화에 기여했다. -
광주과학고등학교 동문 -
오현민
오현민은 광주과학고와 KAIST 수리과학과를 졸업하고 《더 지니어스》를 통해 이름을 알린 방송인이자 인터넷 방송인이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이소연은 1978년 광주광역시에서 아버지 이길수와 어머니 정금순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광주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여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에 따라 우주비행사 후보로 선발되었으며, 2007년 우주 비행 준비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원에서의 연구를 중단하고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았다. 2008년 2월 29일, 러시아 훈련으로 인해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바이오시스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 우주 비행 경력
이소연은 대한민국 우주인 배출 사업을 통해 2006년 12월 25일에 고산과 함께 최종 후보 두 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다. 2007년 9월 5일, 대한민국 과학기술부는 러시아 훈련 성과 등을 고려하여 고산을 주 우주인으로, 이소연을 예비 우주인으로 선정했다.
2008년 3월 10일,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는 고산에서 이소연으로 주 우주인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 연방 우주국이 고산의 훈련 규정 위반을 이유로 교체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2008년 4월 8일, 이소연은 두 명의 러시아 우주 비행사와 함께 소유즈 TMA-12를 타고 우주로 발사되었다. 대한민국은 이소연의 우주 비행에 대해 러시아에 20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소연은 영국의 헬렌 셔먼과 이란계 미국인인 아노쉬 안사리에 이어 자국에서 처음으로 우주에 간 세 번째 여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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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대한민국 우주인 배출 사업
대한민국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00년 12월 러시아와 공동으로 우주비행자 양성 계획을 수립하고, 2006년 4월 우주비행자 모집 공고를 하였다. 전체 지원자 36,206명 중 고산과 함께 최종 후보 2인으로 선발되었다. 이소연과 고산은 2007년 3월부터 모스크바 북동쪽 근교의 스타 시티에 있는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GCTC)에서 우주 적응 및 우주 과학 실험 수행을 위한 기초 훈련을 받았다.
2007년 9월 5일 고산이 우주 비행 참가자로 선정되었고, 이소연은 고산이 만일의 문제로 탑승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한 백업 우주 비행 참가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2008년 3월, 고산의 관련 보안 규정 위반으로 인해 이소연이 우주 비행 참가자로, 고산이 백업 우주 비행 참가자로 변경되었다.
3.2. 우주 비행
2008년 4월 8일 오후 8시 16분 39초(한국시간 기준), 이소연은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소유스 TMA-12호를 타고 국제 우주 정거장(ISS)으로 출발했다. 이 우주선에는 이소연 외에도 러시아의 세르게이 볼코프와 올레그 코노넨코가 함께 탑승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이소연의 우주 비행을 한국과 러시아 우주연방청 간의 '상업 계약'에 따른 것으로 보고, 이소연을 '우주비행사'(astronaut)가 아닌 '우주비행 참가자'(spaceflight participant)로 분류했다. 그러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백홍열 원장은 코롤료프에 있는 러시아측 MCC(Mission Control Center)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소연이 단순한 우주비행 참가자가 아니라 논란의 여지 없는 우주비행사라고 주장했다.
4월 10일 오후 9시 57분(한국시간 기준), 소유스 TMA-12호는 ISS와의 도킹에 성공했다. 4월 11일 자정 12시 41분(한국시간), 이소연은 세르게이 볼코프에 이어 두 번째로 ISS에 들어가 157번째 ISS 탑승자가 되었다.
ISS에서 이소연은 9박 10일 동안 머물면서 18가지 우주과학 실험을 수행했다. KARI를 위해 진행한 실험에는 초파리의 행동 및 유전체 변화 관찰, 우주에서의 식물 성장, 심장 박동 연구, 중력 변화가 눈의 압력과 얼굴 모양에 미치는 영향 관찰 등이 포함되었다. 삼성전자에서 특별 제작한 3차원 카메라를 이용해 매일 6장의 얼굴 사진을 찍어 중력 변화에 따른 얼굴 변화를 관찰했고, 지구를 관찰하며 황사의 움직임을 살폈다. 또한 ISS의 소음 수준도 측정했다. 이소연은 우주 비행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저칼로리, 고비타민 김치를 가져가기도 했다.
4월 19일 오후 2시 6분 30분(한국시간), 이소연은 소유스 TMA-11호로 갈아타고 ISS와의 도킹을 해제했다. 이소연과 함께 엑스퍼디션 16의 공식 크루멤버였던 러시아의 유리 말렌첸코, 미국의 페기 윗슨이 귀환길에 올랐다. 소유스 우주선의 오작동으로 인해 우주선은 탄도 재진입을 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승무원들은 지구에서 경험하는 것의 10배에 달하는 중력 가속도를 경험했다. TMA-11 우주선은 카자흐스탄 목표 지점에서 420km 벗어난 오르스크시 남동쪽 초원지대에 착륙했다. 세 명 모두 생존했지만, 이소연은 귀환 후 심한 허리 통증으로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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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우주 비행 이후
우주 비행에서 귀환한 후, 이소연은 소유즈 TMA-11의 오작동으로 인한 탄도 재진입을 겪으며 심한 허리 통증을 겪었고, 귀국 후 입원 치료를 받았다. 회복 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고산과 함께 한국 우주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2007년 2월에는 SBS 명예특파원을 맡았고, 2011년 1월부터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2008년 10월 4일, 이소연은 맨 섬 더글러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국제우주상업연구소를 출범시켰다. 2009년에는 국제우주대학교(ISU) 우주 연구 프로그램(SSP)에 참여했고, 에임스 연구 센터에서 싱귤래리티 대학교(SU) 대학원 프로그램(GSP) 창립반에 합류했다. 2011년 5월에는 아시안 사이언티스트 매거진에서 주목해야 할 15명의 아시아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년간의 KARI 전임연구원 및 KAIST 교수 생활을 마친 후, 2012년 KARI의 승인을 받아 휴직하고 미국 UC버클리대학교 하스 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는 4년 동안 한국 각지를 돌며 235회의 강연을 한 후, 2년간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의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친 것이었다.
2013년 8월에는 미국 워싱턴주 퓨알럽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인 의사 정재훈과 결혼했다. 이후 이소연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KARI를 그만두고 가정에 전념한다고 밝혔다. 이소연이 민간인 신분으로 전환됨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이소연에게 부여했던 "한국 우주인" 타이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MBA를 취득한 것에 대한 국내 비판도 있었으며, 2014년 6월 26일 KARI에 퇴직원을 제출했다. 이후에도 미국에서 생활하며, 국내에서는 "260억 원을 들여 키운 우주 비행사가 국외로 떠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MBA를 취득한 후, 우주비행 전문가 협회에 합류했다. 2016년부터는 미국 워싱턴 (주) 에버렛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물리학을 가르쳤고, 워싱턴 대학교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Dr.STONE의 스핀오프인 『Dr.STONE reboot: 백야』의 과학 감수를 맡고 있다.
4. 논란 및 비판
이소연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의 의무 복무 기간 2년을 마친 후 2012년 8월 연구원을 휴직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우주 연구와 관련 없는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이수한 것에 대해 국내에서 비판이 있었다. 2013년 8월에는 한국계 미국인 의사와 결혼했으며, 2014년 6월 26일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직했다.
이후에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국내에서는 "260억 원을 들여 키운 우주 비행사가 국외로 떠났고, 유인 우주 비행 노하우도 사라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이소연은 '한국에서는 (우주 개발 분야의) 일이 없어서 전공을 바꿔 다시 공부한다'고 밝혔다.
Dr.STONE의 스핀오프인 『Dr.STONE reboot: 백야』의 과학 감수를 맡고 있다.
4.1. 역할 논란
NASA은 이소연을 우주비행 참가자로 규정하였고, 이는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소연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소연을 우주실험전문가 그룹으로 규정했지만, 러시아에서는 특정 조건을 갖춘 사람을 우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어 우주인 자격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2008년 5월 7일, 피트 워든 NASA 에임즈 연구 소장은 서울디지털포럼 2008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이소연을 우주비행사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NASA의 공식 입장은 아니며, 미국에서 우주비행사(astronaut)로 불리기 위해서는 정해진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연방 우주국과 NASA의 문서 및 언론 브리핑에 따르면, 이소연은 한국과의 상업적 계약을 통해 러시아 정부의 초청을 받아 소유즈와 국제 우주 정거장(ISS)에 탑승하는 우주 비행 참가자(uchastnik kosmicheskovo poleta러시아어) 역할을 수행했다.
4.2. 책임 회피 논란
2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한국 최초의 우주인 배출 사업 이후, 이소연이 항공우주 분야와 관련 없는 MBA 과정을 밟고 미국에 정착하면서, 국가적 투자에 대한 책임 회피 논란이 제기되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의무 복무 기간(2년) 종료 직후 미국 유학 및 이민은 과학 기술 인재 유출의 대표적인 사례로 비판받는다.
사회학자 송호근은 이소연이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고 MBA 과정으로 이직한 것에 대해, 자신의 꿈을 유지할 인센티브가 없는 이공계 문제의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과학기술 인프라에서는 앞서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우위를 유지하려면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는 인센티브 시스템과 교육 및 훈련 제도의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과학 인재들이 공학 계열을 기피하고 의과대학에 몰리는 현상을 해결해야 하며, 이공계 우수 인재 기근이 과학기술 분야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소연은 4년 동안 한국 각지를 돌며 235회의 강연을 한 후, 2년간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치고 2012년 8월에 연구원을 휴직, 미국으로 갔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우주 연구와 관련 없는 MBA (경영학 석사) 과정을 이수한 것에 대해 국내에서 비판도 있었다. 2013년 8월에는 한국계 미국인 의사와 결혼했고, 2014년 6월 26일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직했다.
이후에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국내에서는 "260억 원을 들여 키운 우주 비행사가 국외로 떠났고, 유인 우주 비행 노하우도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이소연은 '한국에서는 (우주 개발 분야의) 일이 없어서 전공을 바꿔 다시 공부한다'고 밝혔다.
5. 기타 활동
2008년 10월 4일, 이소연은 맨 섬 더글러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국제우주상업연구소를 출범시켰다.
2009년, 이소연은 국제우주대학교(ISU) 우주 연구 프로그램(SSP)에 처음으로 참여한 우주인이 되었으며, 에임스 연구 센터(NASA Ames Research Center)에서 싱귤래리티 대학교(SU) 대학원 프로그램(GSP) 창립반과 함께 진행되었다.
2011년 5월 아시안 사이언티스트 매거진은 이소연을 주목해야 할 15명의 아시아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