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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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은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배출을 목표로, 유인 우주 기술 습득과 국민의 우주 개발에 대한 관심 증진을 위해 추진되었다. 2004년 시작된 이 사업은 러시아에 상업용 우주여행 권리를 구매하여, 2006년 이소연과 고산을 최종 후보로 선발했다. 훈련 과정에서 고산이 교체되어 이소연이 2008년 4월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과학 실험을 수행했다. 그러나 사업은 일회성에 그쳤고, 후속 연구 및 체계적인 우주인 양성 시스템 부재, 예산 낭비 논란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소연은 2012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하고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았으며, 현재 대한민국 우주인 배출 사업은 중단된 상태이다.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
개요
공식 명칭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
영문 명칭Korean Astronaut Program (KAP)
목표
주요 목표대한민국 우주 개발의 대중적 관심과 참여를 유도
과학 기술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을 높임
미래 우주 인력 양성의 기반을 구축
역사
시작2006년 4월
종료2008년 4월
주요 사건2008년 4월 8일: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 ISS 임무 수행
주관 기관
주최과학기술부 (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한국항공우주연구원
협력러시아 연방 우주국
선발 및 훈련 과정
선발 인원최종 2명 (1명 탑승, 1명 예비)
선발 과정서류 심사
체력 검사
정신력 검사
영어 인터뷰
심층 면접
최종 평가
훈련 장소러시아 가가린 우주인 훈련 센터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름이소연
직업생명공학 박사
주요 임무국제우주정거장에서 과학 실험 수행
한국 관련 홍보 활동
우주에서의 시간10일
예산
총 예산약 260억원
기타
의의대한민국의 우주 개발 역사에 중요한 기념비적인 사건
국민들에게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줌
논란우주 선정 과정의 투명성 문제 제기
단발성 행사라는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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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업 목적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을 배출하여 유인 우주 기술을 습득하고, 우주 개발에 대한 국민, 특히 청소년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3. 사업 과정

2004년 대한민국 과학기술부는 러시아와 계약을 맺고 2500을 지불하여 한국인을 우주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06년 12월 25일 36,206명의 공모자 중 고산과 이소연 두 명이 최종 후보로 선발되었다. 이들은 2007년 초부터 모스크바 인근의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사 훈련 센터에서 15개월간 훈련을 받았다. 2007년 9월 5일 고산이 제1 후보, 이소연이 예비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2008년 3월 10일 고산의 훈련 규정 위반으로 이소연이 제1 후보로 변경되었다.

2008년 4월 8일 11:16(GMT) 이소연은 카자흐스탄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발사되었다. 이소연은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약 10일 동안 여러 과학 실험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3.1. 우주인 후보 선발

2006년 36,000명 이상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4차례의 선발 과정을 거쳤다. 12월 25일, SBS 텔레비전 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고산이소연이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다.

두 후보는 모스크바 인근의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15개월간 우주 비행 훈련을 받았다. 2007년 9월 15일, 고산이 탑승 우주인으로, 이소연이 예비 우주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2008년 3월 10일, 고산의 훈련 규정 위반으로 인해 러시아 측이 고산의 파견에 반대했고, 한국 측과의 협의 결과 이소연이 탑승 우주인으로 변경되었다.

3.2. 우주 비행

2008년 4월 8일 이소연은 카자흐스탄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소유즈 TMA-12를 타고 협정 세계시(GMT) 11시 16분에 우주로 발사되었다. 국제 우주 정거장(ISS)에서 약 10일간 체류하며 다양한 과학 실험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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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은 NASA 및 러시아의 기록상 우주비행사가 아닌 우주비행 관계자로 기록되어 있다.

3.3. 다른 예비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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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성별나이소속비고
윤석오29한양대학교 교직원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경제학, 해군 통역장교
장준성25부천남부경찰서 경위경찰대학 법학과
이진영36대한민국 공군 소령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운항학과, 전투기 조종사 편대장
박지영23한국과학기술원 석사 과정대전과학고등학교 졸업
류정원33IT 매직 최고 기술 책임자
이한규33삼성 SDI 연구원
최아정24서울대학교 석사 과정
김영민33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구원

4. 사업 평가 및 논란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은 여러 면에서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2008년 첫 한국인 우주인 배출 이후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우주인 귀환 후 활용 계획이 미흡하여 우주인을 홍보성 대외 일정에만 동원했다는 점이 주로 지적된다.

이소연이 우주과학 기술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MBA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간 것은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우주인 양성 및 교육 시스템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4.1. 비판적 평가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은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2008년 첫 한국인 우주인 배출 이후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우주인 귀환 후 활용 계획이 미흡하여 우주인을 홍보성 대외 일정에만 동원했다는 점이 주로 지적된다.

이소연이 우주과학 기술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MBA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간 것은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우주인 양성 및 교육 시스템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4.1.1. 사업 지속 실패

한국우주인배출사업은 2008년에 첫 우주인 배출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하였지만, 이후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였다.

2014년 국정감사 결과 이소연의 지구 귀환 이후 항공우주연구원에서 4년 동안 진행한 우주인 관련 연구 과제는 4건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 국적의 우주인을 배출하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 우주인 귀환 이후 활용 계획을 제대로 세워놓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소연은 30여 건의 우주과학 논문을 발표하고 특허도 1건 등록하는 등 스스로 역할을 찾아내려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항공우주연구원은 이소연을 우주인 관련 후속 연구에 활용하지 않고 외부 강연 235회, 과학 전시회·행사 90회, 대중매체 접촉 203회 등 4년 동안 523회에 이르는 홍보성 대외 일정만 소화하도록 하였다.

또한 이소연이 우주과학 분야의 기술 개발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MBA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간 점은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우주인 양성 및 교육 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방증이기도 하다.

4.1.2. 중장기 계획 부재

한국우주인배출사업은 2008년에 첫 우주인 배출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였다. 2014년 국정감사 결과 이소연의 지구 귀환 이후 항공우주연구원에서 4년 동안 진행한 우주인 관련 연구 과제는 4건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 국적의 우주인을 배출하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 우주인 귀환 이후 활용 계획을 제대로 세워놓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소연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30여 건의 우주과학 논문을 발표하고 특허도 1건 등록하는 등 스스로 역할을 찾아내려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항공우주연구원은 이소연을 우주인 관련 후속 연구에 활용하지 않고 외부 강연 235회, 과학 전시회·행사 90회, 대중매체 접촉 203회 등 4년 동안 523회에 이르는 홍보성 대외 일정만 소화하도록 하였다.

또한 이소연이 우주과학 분야의 기술 개발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MBA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간 점은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우주인 양성 및 교육 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초에 사업 목적에는 우주인이 우주에 다녀온 이후에 관한 계획이 없었다. 사업으로 선발된 우주인은 우주 비행 이후 우주 개발에 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홍보 역할만 있었을 뿐, 소중한 경험을 살려 우주 기술 개발이나 후속 우주인 프로그램 등으로 연결시킬 계획이 전무했다.

4.1.3. 체계적인 우주인 양성 시스템 부재

이소연이 우주과학 분야의 기술 개발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MBA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간 점은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우주인 양성 및 교육 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받는다. 이소연은 2014년에 MBA 과정을 밟기 위해 우주 비행사 프로그램을 사임했는데, 이는 우주 비행사로서의 활동과 양립할 수 없었다.

5. 사업 이후 경과

이소연은 2014년 MBA 과정을 밟기 위해 프로그램을 사임했는데, 이는 우주 비행사로서의 활동과 양립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