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숭인
1. 개요
이숭인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성균시에 합격하고 예위시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공민왕 때 성균관 학관을 겸임하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으며, 정도전 등과 함께 원나라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 유배되기도 했다. 정몽주와 함께 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이인임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유배되기도 했다. 조선 건국 후 유배 도중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황거정에게 처형되었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고 시문에 능했으며, 명나라와의 외교 문서를 작성하여 명 태조를 감탄하게 했다. 저서로 《도은선생시집》 등이 있으며, 드라마 《용의 눈물》과 《정도전》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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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이숭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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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이름 | 李崇仁 |
| 자 | 자안(子安) |
| 호 | 도은(陶隱) |
| 출생일 | 1347년 |
| 출생지 | 고려 경상도 성주군 |
| 사망일 | 1392년 (46세) |
| 작위 | 고려의 숙옹부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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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주 | 공민왕 |
| 군주 칭호 | 국왕 |
| 섭정 | 영문하부사 신돈 |
| 재임 | 1368년 10월 1일 ~ 1370년 11월 30일 |
| 정당 | 무소속 |
| 경력 | 학자, 시인,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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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이숭인 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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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임 -
이인복 (1308년)
이인복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이조년의 손자이며 주자학에 밝았고, 과거 급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조일신의 난을 진압하고 찬성사에 올라 공신이 되었으며, 신돈에게 반대하여 퇴직 후 사망했다. -
이인임 -
이조년
이조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배꽃이 달빛에 희게 빛나는 밤의 정취와 다정함을 묘사한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를 지었다. -
문학자 -
루돌프 지메크
루돌프 지메크는 독일의 학자이자 본 대학교의 고대 게르만 및 노르드학 교수로, 게르만 종교, 신화, 바이킹 시대, 고대 노르드 문학, 중세 과학 등 중세 시대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게르만 신화 사전》, 《고대 노르드 문학 사전》 등의 저서를 통해 학계에 기여하고 있다. -
문학자 -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는 소 플리니우스로 알려진 로마 제국의 법조인이자 정치가, 작가로, 웅변가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서간집을 통해 1세기 로마 사회를 기록하고, 베수비오 화산 폭발과 기독교인에 대한 보고서 등 역사적 자료를 남겼다. -
1347년 출생 -
조온
조온은 조선 초 개국공신, 정사공신,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한천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문하부참찬사, 의정부찬성사 등을 역임하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
1347년 출생 -
조인옥
조인옥은 공민왕 때 벼슬을 시작하여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고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1등공신으로 녹훈되었으며, 용성군, 한산군에 봉해지고 사후 충정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2. 생애
이숭인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고, 성균관에서 정몽주 등과 함께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고려 문사로 명나라에 파견될 예정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무산되었고, 원나라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주장하다 유배되기도 했다. 우왕과 창왕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나, 이인임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유배되었다.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살해되자, 그의 일파로 몰려 유배되었고, 조선 건국 후 유배지에서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황거정에게 장형으로 살해되었다.
2.1. 고려 시대 활동
고려 공민왕 때인 1360년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고, 1362년에 예위시(禮闈試) 병과(丙科) 제2인에 급제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후 숙옹부승에 제수되었고 장흥고사(長興庫使)를 거쳐 진덕박사(進德博士)를 겸하였다. 이후 예의산랑(禮儀散郞)·예문응교(藝文應敎)·문하사인(門下舍人) 등을 역임했다.
공민왕이 성균관을 개창(改創)한 뒤 정몽주 등과 함께 학관(學館)을 겸했다. 고려 문사(文士)를 뽑아 명나라에 보낼 때 1등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어려 가지 못했다. 정도전 등과 함께 원나라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 후 정몽주와 함께 실록을 편수하고, 1386년(우왕 12)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인임의 인족(姻族)이라 하여 유배되기도 하였다. 1389년 창왕 때에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에도 혼란기를 맞아 유배·감금되었고, 1392년(공양왕 4) 이방원에게 정몽주가 처형되자 그의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2.2. 조선 건국과 죽음
고려 공민왕 때인 1360년에 성균시에 합격하였고, 1362년에 예위시 병과 제2인에 급제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후 숙옹부승에 제수되었고 장흥고사(長興庫使)를 겸하며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다. 이후 예의산랑(禮儀散郞), 예문응교(藝文應敎), 문하사인(門下舍人) 등을 역임했다. 공민왕이 성균관을 개창(改創)한 뒤 정몽주 등과 함께 학관(學館)을 겸했다. 고려 문사(文士)를 뽑아 명나라에 보낼 때 1등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어려 가지 못했다. 정도전 등과 함께 원나라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 후 정몽주와 함께 실록을 편수하고, 1386년 (우왕 12)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인임의 인척이라 하여 유배되기도 하였다. 1389년 창왕 때에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에도 혼란기를 맞아 유배 및 감금되었고, 1392년(공양왕 4) 이방원에게 정몽주가 처형되자 그의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조선 건국 후 유배 도중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황거정에게 고의적 장형으로 처형되었다.
3.1. 긍정적 평가
이숭인은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명나라와의 외교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그의 명문장은 명 태조를 탄복시켰다. 저서로는 《도은선생시집》(흔히 《도은집》)과 초옥자전(草屋子傳) 등이 있다.
6. 관련 문화재
도은선생시집 권1~2는 대한민국 보물 제2027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