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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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정(1895년)은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그러나 2019년 KBS 보도를 통해 일제강점기 밀정 행적이 드러났다. 그는 김좌진을 포함한 독립군 간부들의 정보를 일제에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독립군 간부 이홍래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동명이인 이정과의 공적 혼재 논란이 발생하여, KBS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위패가 밀정 이정의 것임을 주장하는 반면, 유족 측은 다른 독립운동가 이정의 위패라고 주장했다. KBS는 이정의 밀정 행적은 변함없는 사실이며, 다만 두 인물의 공적이 혼재되어 훈장이 수여된 점을 지적했다.
이정은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 장군의 비서로 활동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1]
이정은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 장군의 비서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청산리 전투 이후 일제에 협력하여 독립군 정보를 밀고했다는 사실이 KBS의 2019년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1] 1924년, 이정은 독립군 간부들의 인상착의, 군자금 모금 상황, 향후 계획 등 상세한 정보를 일제에 제공하였다.
이정의 밀정 행적은 청산리 전투를 다룬 '독립운동사 자료집'에 수록된 그의 '진중일지'를 통해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1] 그러나 이 자료는 그가 일제의 밀정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2. 생애
3. 밀정 행적
3. 1. 2019년 KBS의 밀정 보도
KBS는 2019년 8월 13일 '밀정 1부 - 배신의 기록' 방송을 통해 이정의 밀정 행적을 보도했다. 이 방송에서는 일본과 중국 기밀문서 5만 장을 분석하여 일제강점기 한국인 밀정 혐의자 895명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중 우덕순과 이정을 대표적인 사례로 고발했다.[1]
KBS 탐사보도부는 일본 외무성 기밀문서에서 이정의 행적을 발견했다. 청산리 전투가 끝난 4년 후인 1924년, 이정은 독립군 간부들의 인상착의, 군자금 모금 상황, 향후 계획 등 상세한 정보를 일제에 제공하였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 자료를 보고 "경악할 만한 밀고"라고 평가했다.[2]
3. 1. 1. 밀고 내용
1924년 이정은 일제에 독립군 간부들의 용모와 특징, 김좌진과 김원봉의 향후 합동 의거 계획, 군자금 모금 상황 등을 상세하게 밀고했다. 이는 청산리 전투가 끝나고 4년 뒤의 일이었다.[2]
이정은 김좌진 장군(당시 36세)의 인상착의와 특징을 밀고했다. 일본 기밀문서에 따르면 김좌진은 총사령관으로, 검술, 사격, 유도, 승마에 특기가 있었으며, 신장은 6척 1촌(약 185cm)이고 얼굴은 타원형이었다. 이 외에도 이장녕, 이범석 등 독립군 간부들의 개인별 특징(특기, 외모, 직책)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3]
이정의 밀고 내용은 총 57장에 달하며, 군자금 모금 과정과 책임자, 독립군의 재정 상태, 김좌진·김원봉의 연합 의거 계획 등 대한독립군단의 내부 기밀 정보가 낱낱이 담겨 있었다.[3][4]
이정은 독립군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변장하고 활동하던 이홍래 선생의 활동 방식과 경로를 상세히 밀고했다. 이홍래는 이정의 밀고 한 달 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5]
3. 1. 2. 밀고의 결과
이정의 밀고로 대한독립군단의 군자금 모금 과정, 독립군 간부들의 인상착의 및 특징, 김좌진, 김원봉의 연합 의거 계획 등 조직의 기밀 정보가 일제에 넘어갔다.[3][4] 이정이 밀고한 내용에 등장하는 독립군 간부 이홍래는 밀고 한 달 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5] 이홍래는 독립군의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변장하며 활동했으나, 이정은 이러한 세세한 내용까지 일제에 밀고했다.[5]
3. 2. 동명이인 이정과의 공적 혼재 논란
KBS가 2019년 8월 13일 '밀정 1부 - 배신의 기록'에서 이정의 밀정 자료를 공개한 이후, 또 다른 독립운동가 이정과의 공적이 혼재되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 이정의 손자 이상욱은 KBS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제소하였다.
하지만 KBS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위패는 공훈록과 보훈처 공식기록인 공적조서에 따라 밀정 이정(이정 A)의 것이라고 반박하며, 방송에서 동명이인 이정(이정 B)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렸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서훈 과정에서 동명이인 이정의 공적을 구분하지 못하고, 서훈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수정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주먹구구식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6]
3. 2. 1. 두 명의 이정
이정(李楨)은 동명이인이 두 명 존재하는데, 각각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두 인물은 한자 이름과 종교(대종교)가 같고, 활동 시기와 지역도 비슷하여 혼동을 일으켰다. 대종교 교인 명부인 '종문영질'에는 두 사람이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이정 A는 1922년 3월 16일에, 이정 B는 1918년 11월 26일에 참교를 받았다.[6]
KBS는 이정 A의 공훈록에 북로군정서, 김좌진 장군의 막빈(비서) 등의 공로가 기록되어 있으며,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위패는 이 공훈록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정 B의 유족은 이정 B의 위패가 현충원에 안치되었다고 주장하며 KBS 보도에 대해 정정을 요구했다.[1]
보훈처 공적조서에는 이정 A와 이정 B의 기록이 뒤섞여 있어 혼란을 더욱 야기했다. KBS는 보훈처에 이러한 모순된 내용을 질문했으나, 보훈처는 어떤 자료가 맞는지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전했다.[6] 이는 국가의 독립유공자 서훈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된다.[6]
3. 2. 2. 공적 혼재 문제
보훈처의 공적조서에 이정 A와 이정 B의 공적이 뒤섞여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정 A는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으로 1883년에 태어나 북로군정서에서 김좌진 장군의 비서로 활동했고, 이정 B는 함경북도 경원군 출신으로 1895년에 태어나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속성과를 졸업하고 대종교 활동으로 옥고를 치렀다.[6]
두 사람 모두 한자와 종교(대종교)가 같고 활동 시기와 지역이 비슷하여 혼동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대종교 교인 명부인 '종문영질'에는 두 사람의 이정이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이정 A는 1922년 3월 16일에, 이정 B는 1918년 11월 26일에 참교를 받았다.[6]
KBS는 이정의 공훈록(독립유공자공훈록 4권)에 북로군정서, 김좌진 장군의 막빈 등 이정 A의 공로가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보훈처 공적조서에는 1. 북로군정서 모연대장 2. 청산리 전투 후 지방 피신 중 일병 주구손에 피살 3. 대종교 신자 무후 4. 대종교인 검거 고문 옥사(한국독립운동사 p.86)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번과 2번은 이정 A의 공적이고 3번과 4번은 이정 B의 공적으로, 두 사람의 기록이 하나의 공적조서에 뒤섞여 있음이 지적되었다.[6]
KBS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질문했지만, 보훈처는 어떤 자료가 맞는지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이는 국가의 독립유공자 서훈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동명이인 이정의 공적을 구분하지 못하고 서훈 후에도 적극적인 수정 조치가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6]
3. 3. KBS 이재석 기자의 반박
KBS 이재석 기자는 밀정 이정의 공적과 동명이인 이정의 공적이 혼재되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밀정 이정의 행적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반박하였다. 이정은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공로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나, 전투 4년 뒤 밀정으로 변절한 기록이 일본 기밀문서에서 확인된다는 것이다.[7]
이재석 기자는 밀정 이정(이정 A)과 동명이인 이정(이정 B)의 공적이 뒤섞여 한 명의 인물에게 훈장이 수여되었고, 이대로 국립현충원에 위패가 설치되었으며 후손들에게 정부 지원금이 나갔다고 주장했다. 만약 밀정으로 밝혀진 이정 A의 공적(청산리 전투 참전 등)이 빠진다면 훈장 등급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7]
또한 이재석 기자는 후손들이 공적 혼재 사실을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KBS 보도 전까지 후손들이 두 명의 이정이 뒤섞였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스스로 국가보훈처에 알려 바로잡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7]
4. 평가 및 논란
이정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나,[1] KBS의 보도로 밀정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 과정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동명이인 이정(이정 A, 이정 B)의 공적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의 공적조서에 뒤섞어 기록한 점이 지적되었다.[6] 보훈처는 어떤 자료가 맞는지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아, 서훈 과정의 주먹구구식 운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6]
5. 같이 보기
참조
[1]
저널
안중근·김좌진 배신한 핵심 밀정 '훈장 받고, 현충원에?'
https://news.naver.c[...]
이데일리
2019-08-15
[2]
저널
안중근·김좌진 배신한 핵심 밀정 '훈장 받고, 현충원에?'
https://news.naver.c[...]
이데일리
2019-08-15
[3]
저널
"[탐사K] 895명 추적…“김좌진의 비서는 밀정이었다”"
https://news.naver.c[...]
미디어오늘
2011-08-12
[4]
저널
"[탐사K/앵커의 눈] 훈장 받고 현충원에…독립운동가가 된 밀정"
https://news.naver.c[...]
KBS
2019-08-13
[5]
저널
"[탐사K]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밀정…서훈 취소는?"
https://news.naver.c[...]
KBS
2019-08-20
[6]
저널
KBS가 폭로한 '밀정' 이정 현충원 위패 논란
https://news.naver.c[...]
미디어오늘
2019-09-04
[7]
저널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디어오늘의 기사
https://news.naver.c[...]
미디어오늘
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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