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
1. 개요
이택희는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출신의 정치인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신한당과 신민당에서 활동하며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신민당 정책 의장을 역임했다. 1980년대 신군부의 탄압을 받아 정계를 떠났다가 복귀하여 제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양김 정치에 반대하며 정풍회를 조직했다. 이후 용팔이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정계를 은퇴했다. 종중 자금 횡령으로 옥살이를 한 후 은거하다가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 이름: 이택희 | |
| 국적: 대한민국 | |
| 출생일: 1934년 1월 1일 | |
| 출생지: 일제강점기 조선 충청북도 중원 | |
| 사망일: 2017년 5월 22일 | |
| 본관: 경주 |
| 의원 선수: 3 | |
| 의원 대수: 8·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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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중학교 동문 -
윤진식
윤진식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관료, 기업인으로 재무부 공직, 관세청장, 산업자원부 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무역협회 회장과 한국-아랍소사이어티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충주중학교 동문 -
반기문
반기문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외교관 생활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며 국제 현안 해결에 기여하고 파리 기후 협정 체결을 이끌었으며 퇴임 후에도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
충주고등학교 동문 -
반기문
반기문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외교관 생활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며 국제 현안 해결에 기여하고 파리 기후 협정 체결을 이끌었으며 퇴임 후에도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
충주고등학교 동문 -
홍순영 (외교관)
홍순영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으로, 외무부 북미1과 과장, 아프리카국 국장,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주요 국가 대사를 거쳐 외교통상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대북 포용 정책에 기여하고 남북 교류 및 협력 증진에 힘썼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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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이택희는 유학자 유인석의 제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충주중학교, 충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단국대학교에서 정치학 강사로 재직 후, 신한당과 신민당 창당에 참여하여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신민당에서 충북도지부 위원장, 중앙당 요직, 제8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펼쳤다. 특히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공천으로 당선되어 내무위원, 예결위원으로 활동했다.
1980년대 초 신군부의 탄압으로 정치 활동에 제약을 받았으나, 1984년 정치 규제 해제 이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3선 의원이 되었다. 신한민주당 정책 의장을 맡으며 양김으로 대표되는 주류 정치 세력에 맞서 '정풍회'를 조직하는 등 독자적인 정치 노선을 추구했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용팔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실형을 선고받았고, 출소 후에는 종친회 활동 중 횡령 혐의로 다시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정계를 은퇴하고 은거 생활을 하다가 후두암 투병 끝에 2017년 84세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학업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중원군 (현 충주시) 출신이다. 아버지는 유학자로, 유인석의 제자였다. 충주중학교, 충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동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단국대학교 정치학 강사를 지냈다.
2.2. 정치 입문과 신민당 활동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중원군 (현 충주시) 출신이다. 아버지는 유학자로, 유인석의 제자였다. 충주중학교, 충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동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단국대학교 정치학 강사를 지낸 후, 신한당과 신민당 창설 조직 책임자를 역임했다. 충주중원 지구당 위원장, 충청북도당 부위원장, 중앙 상무위원 겸 정책 심의 위원, 대통령 선거 대책 본부 충청북도 지부 부위원장, 중앙 정책 심의 위원, 중앙당 총무부 국장, 중앙당 조직부 국장을 역임했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제8대 국회의원 재임 중 내무위원, 예결위원을 지냈다. 이후 같은 당 충청북도 도당 위원장, 지방 자치 추진 위원회 충청북도 지부 위원장, 초대 충청북도 지부 연락 실장, 중앙 정치 훈련원 부원장, 중앙 정책 연구실장, 충주·중원·제천·단양 지구당 위원장, 원내 수석 부총무, 당 기율 위원장, 정무 위원 등을 지냈다.
2.3. 신군부 탄압과 민주화 운동
1980년대 초 신군부의 고문과 정치 규제를 받아 한동안 정계를 떠났다. 1984년 정치 규제 해제 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을 하였고, 신한민주당 정책 의장을 지냈다. 이택희는 군부에 의한 독재 정치의 종말을 예감하는 한편, 동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양김의 방식을 "깡패 정치"로 거부하고, 1986년 9월에 같은 당의 이택돈, 박한상, 박해충과 함께 주류 세력인 양김에 대항하는 비주류 세력인 '정풍회'를 조직했다. 당내 갈등이 깊어지자, 1987년 4월 양김계는 대거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의 결성을 선언했지만, 그 창당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조폭에 의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별명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고, 이택희는 그 배후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1988년 9월 이후 체포되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정계를 떠나 경주 이씨 종친회장을 지냈지만, 종중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어 다시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다시 출소 후 은거 생활을 보내다가, 약 10년간의 후두암 투병 끝에, 2017년에 84세로 사망했다.
2.4. 양김과의 갈등과 용팔이 사건
1980년대 초, 이택희는 신군부의 고문과 정치 규제를 받아 한동안 정계를 떠났다. 1984년 정치 규제 해제 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을 하였고, 신한민주당 정책 의장을 지냈다. 이택희는 군부에 의한 독재 정치의 종말을 예감하는 한편, 동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의 방식을 "깡패 정치"로 거부하고, 1986년 9월에 같은 당의 이택돈, 박한상, 박해충과 함께 주류 세력인 양김에 대항하는 비주류 세력인 '정풍회'를 조직했다. 당내 갈등이 깊어지자, 1987년 4월 양김계는 대거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의 결성을 선언했지만, 그 창당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조폭에 의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별명 "용팔이 사건") 이 발생했고, 이택희는 그 배후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1988년 9월 이후 체포되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5. 정계 은퇴 이후
1980년대 초 신군부의 고문과 정치 규제를 받아 한동안 정계를 떠났다. 1984년 정치 규제 해제 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을 하였고, 신한민주당 정책 의장을 지냈다. 이택희는 군부에 의한 독재 정치의 종말을 예감하는 한편, 동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양김의 방식을 "깡패 정치"로 거부하고, 1986년 9월에 같은 당의 이택돈, 박한상, 박해충과 함께 주류 세력인 양김에 대항하는 비주류 세력인 '정풍회'를 조직했다. 당내 갈등이 깊어지자, 1987년 4월 양김계는 대거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의 결성을 선언했지만, 그 창당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조폭에 의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별명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고, 이택희는 그 배후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1988년 9월 이후 체포되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정계를 떠나 경주 이씨 종친회장을 지냈지만, 종중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어 다시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다시 출소 후 은거 생활을 보내다가, 약 10년간의 후두암 투병 끝에, 2017년에 84세로 사망했다.
3. 저서
* 대동정치
* 대동정치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