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충
1. 개요
박해충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정치인으로, 대한민국 공군 및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제5, 8, 9, 10, 1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민주당, 신민당, 민주한국당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신한민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를 지냈다. 정치 활동 중 군사 정권에 저항하여 여러 차례 수감되었으며, 5선 의원을 기록했으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만성적인 폐부전을 앓다 2005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2. 생애
박해충은 1928년 12월 12일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서 태어나 대구공립공업학교(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을 수료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낙동강 전투에서 중상을 입기도 했다.
1953년 대구광역시로 이주했고, 신의주 출신 피난민 여성과 결혼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60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 후, 5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정치 활동 정화법으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거나, 3선 개헌 반대, 5·17 쿠데타 이후 제5공화국 출범 반대 등으로 정치적 탄압을 받았지만, 1984년 정치 규제에서 해금되었다.
만년에는 폐부전을 앓다가 2005년 2월 21일 간암으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로 향년 78세로 사망했다.
| 선거명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제3대 총선 | 3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군 을 | 무소속 | 9,412표 | 27.57% | 2위 | 낙선 | |
| 제4대 총선 | 4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군 을 | 민주당 | 14,280표 | 36.97% | 2위 | 낙선 | |
| 제5대 총선 | 5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군 을 | 민주당 | 15,413표 | 39.12% | 1위 | 당선 | 초선 |
| 제6대 총선 | 6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 | 민주당 | 17,691표 | 24.27% | 2위 | 낙선 | |
| 제7대 총선 | 7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 | 신민당 | 33,181표 | 36.88% | 2위 | 낙선 | |
| 제8대 총선 | 8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 | 신민당 | 42,863표 | 47.79% | 1위 | 당선 | 재선 |
| 제9대 총선 | 9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의성군 | 신민당 | 44,914표 | 27.84% | 2위 | 당선 | 3선 |
| 제10대 총선 | 10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의성군 | 신민당 | 47,776표 | 27.58% | 2위 | 당선 | 4선 |
| 제12대 총선 | 12대 | 국회의원 | 전국구 | 민주한국당 | 3,931,300표 | 19.7% | 전국구 2번 | 당선 | 5선 |
| 제13대 총선 | 13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군 | 무소속 | 8,544표 | 15.10% | 3위 | 낙선 |
2.1. 초기 생애 및 정치 입문
1928년 12월 12일,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구공립공업학교(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을 수료했다. 한국 전쟁 발발 직전에 대한민국 공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했지만, 전쟁 중에 대한민국 육군으로 편입되어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다. 그러나 전쟁 중 수류탄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어 공군으로 복귀하여 상사로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1953년 가족과 함께 대구광역시로 이주했고, 같은 해 신의주 출신 피난민 여성과 결혼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2. 정치 활동
박해충은 1960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경북 안동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1963년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와 1967년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각각 민주당과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71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경북 안동시·안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1973년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와 1978년 대한민국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경북 안동시·안동군·의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내리 당선, 3선 및 4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1985년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한국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민주한국당에서는 사무총장과 부총재를 역임했으며,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8년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경북 안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며 정계에서 은퇴했다.
박해충은 군사 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1962년 정치 활동 정화법에 의해 11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19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 범국민 투쟁 위원회에 참여하여 군사 정권의 감찰 대상이 되었고, 1980년 5·17 쿠데타 이후에는 제5공화국 출범에 반대하여 다시 수감되었다가 정치 활동 금지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1984년 정치 규제에서 해금되었다.
| 선거명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제3대 총선 | 3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군 을 | 무소속 | 9,412표 | 27.57% | 2위 | 낙선 | |
| 제4대 총선 | 4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군 을 | 민주당 | 14,280표 | 36.97% | 2위 | 낙선 | |
| 제5대 총선 | 5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군 을 | 민주당 | 15,413표 | 39.12% | 1위 | 당선 | 초선 |
| 제6대 총선 | 6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 | 민주당 | 17,691표 | 24.27% | 2위 | 낙선 | |
| 제7대 총선 | 7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 | 신민당 | 33,181표 | 36.88% | 2위 | 낙선 | |
| 제8대 총선 | 8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 | 신민당 | 42,863표 | 47.79% | 1위 | 당선 | 재선 |
| 제9대 총선 | 9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의성군 | 신민당 | 44,914표 | 27.84% | 2위 | 당선 | 3선 |
| 제10대 총선 | 10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시·안동군·의성군 | 신민당 | 47,776표 | 27.58% | 2위 | 당선 | 4선 |
| 제12대 총선 | 12대 | 국회의원 | 전국구 | 민주한국당 | 3,931,300표 | 19.7% | 전국구 2번 | 당선 | 5선 |
| 제13대 총선 | 13대 | 국회의원 | 경북 안동군 | 무소속 | 8,544표 | 15.10% | 3위 | 낙선 |
2.3. 군사 정권과의 갈등
1962년 정치 활동 정화법에 의해 군사 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11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69년 3선 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에 참여하여 군사 정권의 감찰 대상이 되었다. 1980년 5·17 쿠데타 이후 제5공화국 출범에 반대하여 다시 수감되었고, 정치 활동 금지 조치를 받았으나, 1984년 정치 규제에서 해금되었다.
3. 평가 및 일화
안동 지역에서 안동 김씨, 安東한국어 외에 당선된, 이른바 '잡성' 출신으로 5선 의원을 기록하여 최다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야당 내에서 김영삼의 상도동계, 김대중의 동교동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계파 정치인이었다. 대규모 국가 사업 추진을 위해 때때로 여당에 협력하여 야당 측으로부터 '야당의 가면을 쓴 친정부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76년 10월 28일, 안동 다목적댐 준공식에서 대통령 박정희는 발전기 가동 버튼을 누르기 직전, 박해충을 불러 함께 버튼을 누르게 했다. 당시 여당 의원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야당 의원인 박해충과 함께 버튼을 누른 것은, 댐 건설에 대한 그의 협력이 매우 중요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 후 안동에서는 "박정희와 박해충이 같은 박씨라서 친분이 두텁다"는 소문과 함께 "사쿠라"라는 비판도 있었다.
제13대 총선에서 안동시 선거구에서 당선된 오경의 국회의원은 박해충의 비서관 출신이다.
4.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54년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 무소속 | 9,412표 (27.57%) | 2위 | 낙선 | |
| 1958년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당 | 14,280표 (36.97%) | 2위 | 낙선 | |
| 1960년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당 | 15,413표 (39.12%) | 1위 | 당선 | 초선 |
| 1963년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당 | 17,691표 (24.27%) | 2위 | 낙선 | |
| 1967년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신민당 | 33,181표 (36.88%) | 2위 | 낙선 | |
| 1971년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 신민당 | 42,863표 (47.79%) | 1위 | 당선 | 재선 |
| 1973년 | 제9대 국회의원 선거 | 신민당 | 44,914표 (27.84%) | 2위 | 당선 | 3선 |
| 1978년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 신민당 | 47,776표 (27.58%) | 2위 | 당선 | 4선 |
| 1985년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한국당 | 3,931,300표 (19.7%) | 전국구 2번 | 당선 | 5선 |
| 1988년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무소속 | 8,544표 (15.10%) | 3위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