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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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해고는 7세기 말 당나라 무주 시대의 장군으로, 거란족 이진충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무주에 투항하여 대조영의 세력을 공격했다. 그는 이진충의 반란 당시 그의 수하 장수였으며, 이후 무주에 항복하여 옥검위대장군에 임명되어 대조영의 세력을 추격했다. 698년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에게 패배한 후, 거란 백성을 진압하고 무씨 성을 하사받았으나, 당 중종 복위 후 무씨 성을 버렸다. 이해고는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에게 패배하여 발해 건국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으며, 드라마 대조영에서 정보석이 배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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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령 전투는 698년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 군대가 당나라 군대를 상대로 승리한 전투이며, 발해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이해고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이해고(李楷固) |
| 별칭 | 해당 사항 없음 |
| 생애 |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지 | 미상 |
| 군사 경력 | |
| 복무 | 거란, 무주 |
| 복무 기간 | 미상 ~ 705년 |
| 최종 계급 | 우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
| 부대 | 미상 |
| 지휘 | 미상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천문령 전투 |
| 서훈 내역 | 미상 |
| 기타 이력 | |
| 기타 이력 | 무주 장군 |
2. 생애
696년 거란의 이진충과 손만영이 무주에 반란을 일으키자, 이해고는 이진충 휘하의 장수로 참전했다. 696년 이진충이 사망하고 697년에 손만영이 피살되자, 이해고는 낙무정과 함께 무주에 항복했다. 이후 적인걸의 설득으로 측천무후 휘하의 장수가 되었다.[2]
698년 옥검위대장군에 임명된 이해고는 12만 대군을 이끌고 대조영을 추격, 천문령 전투에서 걸사비우와 대중상을 죽였으나 대조영에게 패배했다.[2] 이후 무주에 저항하는 거란 백성을 진압하고 연공에 봉해졌으며 무씨 성을 하사받았다. 705년 당 중종 복위 후 당나라가 회복되자 무씨 성을 버렸다. 이해고의 사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2]
2. 1. 초기 생애와 거란 반란 가담
696년, 거란의 이진충과 그의 처남 손만영이 측천무후가 세운 무주에 반기를 들었다. 이해고는 당시 이진충 휘하의 장수였다. 696년 이진충이 사망하고, 697년 손만영이 피살되었다. 이후 이해고와 낙무정(駱務整)은 무주 신병도총관 양현기에게 패하여 측천무후에게 항복했고, 하아소와 마행위, 양봉절은 장안으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2] 무주에서는 처음에 이해고와 낙무정을 죽이려 했으나, 재상 적인걸이 측천무후를 설득하여 그들을 휘하 장수로 삼았다.이후 이해고는 남은 거란족 세력을 진압하였다. 700년 이해고는 연공(燕公)에 봉해졌고, "무(武)"씨 성을 하사받았다. 그러나 705년 당 중종이 복위하여 당나라로 국호를 회복하자 이해고는 무씨 성을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2. 2. 무주(武周)에 투항
696년, 거란의 이진충과 그 처남 손만영이 측천무후가 황위에 있을 당시 일시적으로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무주국의 폭압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해고는 이 당시 거란족 무상가한 이진충의 수하 장수였다. 696년 8월에 서협석곡의 황장곡에서 무주의 군사를 상대해 무주 장수 장현우와 마인절을 올가미로 씌어 사로잡았으며[2] 696년에 이진충이 사망하고 697년에는 손만영이 피살되었다. 이후 무주 신병도총관 양현기에게 패해 이해고와 수하 장수 낙무정(駱務整)은 측천무후에게 항복했고 하아소와 마행위, 양봉절은 장안으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2] 처음에 무주에서는 이해고와 낙무정을 죽이려 했으나 재상 적인걸이 측천무후를 설득해 그들을 자기 휘하의 장수로 삼았다.[2]2. 3. 천문령 전투와 대조영과의 대결
696년, 거란의 이진충과 그의 처남 손만영이 무주(측천무후가 황위에 있을 당시 일시적으로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주나라)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해고는 거란족 무상가한 이진충의 수하 장수였다.[2] 696년 이진충이 사망하고, 697년 손만영이 피살되자, 이해고와 낙무정(駱務整)은 측천무후에게 항복했다.[2] 적인걸이 측천무후를 설득하여 그들을 자기 휘하의 장수로 삼았다.[2]698년 이해고는 옥검위대장군에 임명되어 측천무후의 명으로 12만 대군을 일으켜 영주를 탈출한 대조영의 세력을 쫓았다.[2] 천문령 전투에서 중랑장 색구(索仇)와 함께 백산말갈 족장 걸사비우와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을 죽였으나, 대조영에게 패배하였다.[2] 이후 이해고는 낙무정과 함께 여전히 무주에 저항하고 있던 거란 백성들을 진압하고 연공에 봉해졌으며, 무씨 성을 하사받았다.[2] 705년 당 중종이 복위되어 다시 당나라로 회복되자 이해고는 무씨 성을 버렸다.[2]
2. 4. 무주(武周)와 당나라에서의 활동
696년, 거란의 이진충과 그 처남 손만영이 측천무후가 세운 무주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해고는 이진충의 수하 장수였다. 696년 8월, 서협석곡 황장곡에서 무주 장수 장현우와 마인절을 사로잡았다.[2] 696년 이진충이 사망하고, 697년 손만영이 피살되자, 무주 신병도총관 양현기에게 패해 낙무정과 함께 측천무후에게 항복했다. 하아소, 마행위, 양봉절은 장안으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적인걸의 설득으로 측천무후는 이해고와 낙무정을 휘하 장수로 삼았다.[2]698년, 이해고는 옥검위대장군에 임명되어 측천무후의 명으로 12만 대군을 이끌고 대조영을 쫓아 천문령 전투에서 중랑장 색구와 함께 걸사비우와 대중상을 죽였다. 그러나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에게 패배하였다.[2] 이후 낙무정과 무주에 저항하던 거란 백성들을 진압하고 연공에 봉해져 무씨 성을 받았다. 705년 당 중종 복위 후, 당나라로 회복되자 무씨 성을 버렸다. 이해고의 사망 시기는 불확실하다.[2]
2. 5. 사망
697년 이진충이 사망하고 손만영이 피살된 후, 이해고는 수하 장수 낙무정과 함께 무주에 항복했다.[2] 측천무후는 처음에 이해고와 낙무정을 죽이려 했으나, 재상 적인걸의 설득으로 그들을 휘하 장수로 삼았다.698년 이해고는 옥검위대장군에 임명되어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에게 패배하였다.[2] 이후에도 낙무정과 함께 거란 백성들을 진압하고 연공에 봉해졌으며 무씨 성을 하사받았다. 705년 당 중종 복위 후에는 무씨 성을 버렸다. 이해고가 언제 사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3. 천문령 전투
천문령 대첩은 698년 대조영이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발해 건국의 기반을 닦은 전투이다.
3. 1. 배경
신라와 당의 연합군(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한 후, 대조영은 부친 걸걸중상을 따라 당의 영주(營州)로 들어갔다. 696년 5월, 거란의 이진충(李盡忠)과 손만영(孫萬榮)이 무주(武周) 왕조에 반란을 일으켜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 걸걸중상과 말갈(靺鞨) 추장 걸사비우는 봉기하려는 준비를 했고, 측천무후의 유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지난날 통치했던 영토의 동쪽에 세력을 일으켰다.3. 2. 전개
천문령 전투는 698년, 고왕 대조영과 무주 왕조 하의 거란족 장수 이해고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신라와 당의 연합군(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한 후, 대조영은 부친 걸걸중상을 따라 당의 영주로 들어갔다.[1] 696년 5월, 거란의 이진충과 손만영이 무주 왕조에 반란을 일으켜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 걸걸중상과 말갈 추장 걸사비우는 봉기하려는 준비를 했고, 측천무후의 유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지난날 통치했던 영토의 동쪽에 세력을 일으켰다.[1]
당이 이해고를 보내 추격시켜 전투가 벌어졌고, 천문령에서 패배한다.[1] 대조영은 말갈족과 고구려 출신의 인물들로 구성된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의 세력을 규합하여 당군에 대항하였으며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은 전사했다.[1] 대조영은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였고 발해를 건국할 기반을 닦게 되었다.[1] 698년, 대조영은 산서성 대동시 인근의 동모산에서 대진국을 건국한다.[1]
3. 3. 결과 및 의의
천문령 전투에서 이해고(李楷固)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를 상대로 대조영이 승리하면서 발해 건국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698년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대진국을 건국하였다.4.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참조
[1]
뉴스
http://news20.busan.[...]
[2]
뉴스
http://news20.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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