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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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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정전은 태종 5년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된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 복구되었으나, 순조 때 화재로 다시 소실되어 1804년에 중건되었고, 철종 때 해체 및 보수 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이 소실된 시기에는 법궁의 정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인정전 내부에는 임금의 용상과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으며, 대한제국 시기에는 서양식 요소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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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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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창덕궁 인정전 (昌德宮 仁政殿)
영어 이름Injeongjeon Hall of Changdeokgung Palace
지정 번호225
지정일1985년 1월 8일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와룡동)
시대조선 순조 4년(1804년)
소유자국유
수량1동
상세 정보
문화재청 ID11,02250000,11

2. 역사

인정전은 1405년(태종 5년) 창덕궁 창건 때 지어졌으며, '어진 정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왕의 즉위식 등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중요한 건물이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근정전이 소실된 후 창덕궁이 먼저 복구되면서, 인정전은 근정전을 대신하여 법궁의 정전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경복궁 근정전이 복원되자 다시 정전의 자리를 내주었다.

넓은 마당은 조회가 있었던 뜰이란 뜻으로 조정(朝廷)이라고 부른다. 1782년(정조 6년) 조정의 위계질서가 문란해졌다고 하여 품계석을 설치하였다. 품계석은 문무관 각각 18품계를 새겼으나, 정(正)4품부터는 종(從)을 함께 포함하여 정1품에서 정9품까지 동, 서로 12개씩 있다. 3품 이상은 당상관, 3품 이하는 당하관이라고 불렀다. 품계석에 맞추어 동편에는 문관(동반), 서편에는 무관(서반)이 중앙을 향해 섰으며, 이들을 합쳐 양반이라고 불렀다. 문무관은 임금을 향해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보며 섰고, '배(拜)-'라는 구령에 맞춰 절을 하는 '곡배(曲拜)'를 했다.

2. 1. 건립과 소실

1405년(태종 5년) 창덕궁 창건과 함께 인정전이 건립되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광해군 즉위년에 복구되었으나, 1803년(순조 3년) 선정전 서행각에서 발생한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다. 이듬해인 1804년에 중건되었고, 1866년(철종 7년) 해체·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인정전 앞뜰의 품계석은 1782년(정조 6년)에 설치되었다.

2. 2. 복구와 중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복구되었다. 이후 순조 3년(1803년) 선정전 서행각에서 난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이듬해인 순조 4년(1804년)에 중건되었다. 그 후, 철종 7년에 해체·보수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3. 보수와 변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즉위년에 복구되었다. 이후 순조 3년 선정전 서행각에서 난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이듬해에 중건되었다. 1857년(철종 7년) 해체·보수공사를 하였고, 1907년(순종 즉위년) 순종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실내 바닥, 전구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3. 구조

인정전은 창덕궁의 법전(法殿)으로, 왕의 즉위식, 결혼식, 세자 책봉식, 문무백관 하례식 등 국가의 공식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인정(仁政)'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다. 광해군 때 중건된 이후 순조 3년(1803) 화재로 재건되었고, 철종 8년(1857)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정전은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 마당으로 들어서서 왼쪽으로 꺾여 인정문 안쪽에 있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사방을 둘러싼 행각들이 꽉 찬 공간을 연출하여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효과를 준다. 인정전 좌·우에는 동행각 36칸과 서행각 38칸이 딸려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창덕궁이 먼저 복구되면서 경복궁근정전을 대신하여 법궁의 법전 역할을 하였다. 이후 경복궁이 복원되자 다시 근정전에 법전(정전)의 자리를 내주었다.

3. 1. 인정전 내부

인정전 내부에는 정면에 임금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다.

이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이는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이는 국토를 의미한다.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변에는 유리창, 전구, 커튼 등 서양 장신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구한말 외국과의 수교 후 다양한 외래 문물이 들어온 것이다.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인정전의 실내 바닥이 전돌에서 마루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5대 궁궐 중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 곳은 1887년 경복궁이다.

3. 2. 인정전 앞뜰 (조정)

인정전 앞의 넓은 마당은 조회가 있었던 뜰이라는 뜻으로 조정(朝廷)이라고 불린다. 조정에는 품계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문무백관의 위치를 나타내는 표시다. 품계석은 정1품부터 정9품까지 동쪽과 서쪽에 각각 12개씩 있다. 문관은 동쪽(동반), 무관은 서쪽(서반)에 위치하여 서로 마주 보며 종렬로 섰다. 3품 이상은 당상관, 3품 이하는 당하관으로 구분했으며, 이러한 신분 질서는 정조 때 조정의 위계질서가 문란해지면서 더욱 강조되었다. 문무관은 임금을 향해 절을 할 때 서로 마주 보며 절을 하는 '곡배'를 했다.

4. 대한제국 시기 변화

인정전 주변에는 유리창, 전구, 커튼 등 서양 장식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구한말 외국과의 수교 후 다양한 외래 문물이 들어온 것이다.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인정전의 실내 바닥이 전돌에서 마루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1887년 경복궁에 처음 전기가 들어온 이후, 5대궁에도 전기 시설이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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