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낙선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한 건물로, 1847년 헌종이 왕비와 대왕대비를 위해 마련하여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개혁 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갑신정변 이후 고종의 집무소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의민태자와 이방자 여사가 거처하기도 했다. 낙선재 권역에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취운정, 한정당, 상량정 등이 포함된다.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주택 형식으로 건축되었으나 궁궐 침전 형식이 응용된 건축 양식과 다양한 문양의 장식으로 건축적 가치가 높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847년 완공된 건축물 - 대영박물관
    대영박물관은 한스 슬론 경의 소장품 기증을 바탕으로 1753년 설립되어 1,300만 점 이상의 문화 유물을 소장한 영국의 국립 박물관으로, 다양한 소장품과 건축물로 유명하지만 소장품의 출처 및 소유권 논란 등 여러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 창덕궁 - 돈화문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05년에 창건되지 못하고 1412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1608년에 중건되어 현재까지 정문으로 사용되고, 조선 초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다포집 구조의 건물이다.
  • 창덕궁 - 인정전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은 조선시대에 창건, 소실 후 재건되었으며 법궁의 역할도 수행했고, 내부에 용상과 일월오악도 병풍, 서양식 장식 등이 남아 있다.
  • 서울특별시의 보물 -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조선 중종 시대에 세워진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는 묘비 훼손을 막기 위한 경계문이 한글로 새겨진 비석으로, 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비석으로 평가받으며 보물로 지정되었다.
  • 서울특별시의 보물 - 흥인지문
    흥인지문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동쪽 대문으로, 1398년에 처음 건립되어 1869년에 중건되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호이자 도성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고, 풍수지리적 이유로 이름 지어졌으며, 현재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다.
낙선재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낙선재 영역 (안뜰)
명칭창덕궁 낙선재 (昌德宮 樂善齋)
영문 명칭Nakseonjae Hall of Changdeokgung Palace
종류보물
지정 번호1764
지정일2012년 3월 2일
소재지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번지, 창덕궁(사적 제122호)
소유자국유
수량1동 (정면 6칸, 측면 2칸)
시대조선 시대
문화재청 ID12,17640000,11

2. 역사적 배경

낙선재는 헌종 13년(1847)에 건립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이후 조선 왕조 마지막 의민태자이방자 여사가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낙선재는 비교적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지만, 석복헌과 수강재는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다.[2]

낙선재는 남행각의 정문인 장락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 맞은편에 위치하며,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좌측에는 서행각이 남행각과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장 왼쪽에 앞으로 돌출된 1칸은 주춧돌 위에 누마루를 형성하여 눈길을 끈다. 누마루 뒤에는 온돌방 1칸, 그 오른쪽에는 대청 2칸, 온돌방 2칸, 다락방 1칸이 배치되어 있다. 다락방 뒤쪽에는 특이하게 온돌방이 돌출되어 있다. 2칸 대청과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고, 건물 뒤에는 쪽마루가 길게 설치되어 공간 간 이동이 용이하다. 낙선재에는 궁궐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는 다양한 문양의 창호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누마루와 그 뒤 온돌방 사이의 만월문은 누마루 공간의 위계를 보여주는 돋보이는 요소이다.[2]

건축 양식은 잘 다듬은 화강석을 쌓아 만든 기단 위에 네모난 주춧돌을 놓고 네모 기둥을 세운 물익공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이다. 물익공은 당초 문양으로 세련되게 조각되었고, 보머리와 보아지도 같은 방식으로 품위 있게 장식되어 궁궐의 모습을 갖추었다. 기둥 사이는 소로로 마감되었고, 누마루의 머름대 아래에는 아름답게 조각된 낙양이 장식되어 누 부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상부 가구는 몸체는 5량, 누마루는 3량으로 구성되었으며, 아름답게 다듬은 대들보 위에 당초 문양을 새긴 화려한 제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2]

2. 1. 건립 배경 및 목적

헌종은 1847년(헌종 13년)에 왕비와 대왕대비를 위해 낙선재를 건립하여, 조선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개혁 의지를 실천하는 장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2] 1884년 갑신정변 직후에는 고종이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2] 이후 낙선재는 조선 왕조 마지막 의민태자가 1963년부터 1970년까지 거주하였고, 1966년부터 1989년까지는 이방자 여사가 기거하였다.[2]

2. 2. 갑신정변과 고종의 집무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이 집무실로 사용했으며, 그 후 조선 왕조 마지막 의민태자가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이방자 여사가 1966년부터 1989년까지 기거하였다.[2]

2. 3. 대한제국 멸망 이후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이 집무소로 사용했고, 그 후 조선 왕조 마지막 의민태자1963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으며, 1966년부터 1989년까지는 이방자 여사가 기거하였다. 낙선재는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석복헌과 수강재는 상당 부분이 변형되어 있다.[2]

3. 건축적 특징

낙선재는 헌종이 1847년(헌종 13년)에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개혁 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한 건물이다. 낙선재는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석복헌과 수강재는 상당 부분 변형되었다.[2]

3. 1. 건축 양식 및 구조

낙선재는 남행각에 있는 정문인 장락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에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좌측에 서행각이 남행각과 직교로 연결되어 있다. 맨 좌측에 앞으로 돌출한 1칸은 주형 초석 위에 놓여 누마루가 되면서 시선을 끈다. 누마루 뒤로는 온돌방 1칸을 두고 그 우측으로 대청 2칸, 온돌방 2칸, 다락방 1칸을 배열하였으며, 다락방 뒤쪽에도 흔치 않은 온돌방을 돌출되게 두었다. 2칸 대청과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고, 건물 뒤에는 쪽마루가 길게 깔려 있어 공간 간 이동이 편리하다. 이 건물에는 궁궐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다양한 문양의 창호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누마루와 그 뒤 온돌방 사이의 만월문은 단연 돋보이는 백미로 누마루 공간의 위계를 보여준다.[2]

구조 양식은 잘 다듬은 화강석 바른 층 쌓기 한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물익공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물익공은 당초 문양으로 세련되게 조각하고 보머리와 보아지도 같은 수법으로 품위 있게 장식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게 했다. 주간은 소로로 수장하고, 누마루의 머름대 아래에는 아름답게 조각한 낙양이 장식되어 있어 누 부분이 더욱 돋보인다. 상부 가구는 몸채는 5량가, 누마루는 3량가로 가구하고 미려하게 다듬은 대량 위에 당초 문양을 양각한 화려한 제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했다.[2]

3. 2. 내부 공간 구성

낙선재는 남행각에 나 있는 정문인 장락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좌측에 서행각이 남행각과 직교로 연결되어 있다. 맨 좌측에는 앞으로 돌출한 1칸이 주형 초석 위에 놓여 누마루가 되어 시선을 끈다. 누마루 뒤로는 온돌방 1칸, 그 우측으로 대청 2칸, 온돌방 2칸, 다락방 1칸이 배열되어 있으며, 다락방 뒤쪽에도 흔치 않은 온돌방이 돌출되어 있다. 2칸 대청과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고, 건물 뒤에는 쪽마루가 길게 깔려 있어 공간 간 이동이 편리하다. 이 건물에는 궁궐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다양한 문양의 창호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누마루와 그 뒤 온돌방 사이의 만월문은 단연 돋보이는 백미로 누마루 공간의 위계를 보여준다.[2]

구조 양식은 잘 다듬은 화강석 바른 층 쌓기를 한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물익공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물익공은 당초 문양으로 세련되게 조각하고 보머리와 보아지도 같은 수법으로 품위 있게 장식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주간은 소로로 수장하고, 누마루의 머름대 아래에는 아름답게 조각한 낙양이 장식되어 있어 누 부분이 더욱 돋보인다. 상부 가구는 몸채는 5량가, 누마루는 3량가로 구성하고 미려하게 다듬은 대량 위에 당초 문양을 양각한 화려한 제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했다.[2]

3. 3. 장식 및 문양

낙선재에는 궁궐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다양한 문양의 창호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누마루와 그 뒤 온돌방 사이의 만월문은 단연 돋보이는 백미로 누마루 공간의 위계를 읽게 한다.[2]

구조 양식은 잘 다듬은 화강석 바른 층 쌓기 한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물익공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물익공은 당초 문양으로 세련되게 초각하고 보머리와 보아지도 같은 수법으로 품위 있게 장식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게 했다. 주간은 소로로 수장하고, 누마루의 머름대 아래에는 아름답게 초각한 낙양이 장식되어 있어 누 부분이 더욱 돋보인다. 상부 가구는 몸채는 5량가, 누마루는 3량가로 가구하고 미려하게 다듬은 대량 위에 당초 문양을 양각한 화려한 제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했다.[2]

4. 낙선재 권역

낙선재는 창덕궁창경궁 경계에 있다. 낙선재 권역은 맨 좌측의 낙선재, 우측의 석복헌과 수강재, 뒤편 화계의 상량정·한정당·취운정으로 구성되어 있다.[2]

원래 왕의 연침 공간을 위해 낙선재가 지어졌고, 이듬해 빈의 처소를 위해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중수했다. 궁궐 안에서 사대부 주택 형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낙선재와 연경당뿐이다.[2] 문화재청에서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취운정, 한정당, 상량정을 낙선재 권역으로 분류한다.

4. 1. 보소당

보소당(寶蘇堂)은 낙선재 동쪽에 있는 건물이다. 소식을 보배로 삼는다는 뜻으로, 헌종의 당호이다. 보소당에 수장된 인존을 모은 《보소당인존》이 전해진다.[3]

4. 2. 장락문

장락문(長樂門)은 낙선재 남행각에 있는 정문이다.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썼다.[4]

4. 3. 석복헌

석복헌은 1848년에 경빈 김씨의 처소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5] 1847년에 왕의 연침 공간을 목적으로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빈의 처소로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중수하였다.[2] 궁궐 안에 사대부 주택 형식으로 지은 건물로는 낙선재와 연경당이 있다.[2]

4. 4. 수강재

1785년에 지어졌으며,[6] 순원왕후가 사용했고,[5] 덕혜옹주도 이곳에서 기거하였다.

4. 5. 한정당

취운정 서쪽 담장의 일각문 밖에 있는 건물로,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이후에 지어졌다.[7]

4. 6. 취운정

수강재 북측 화계 위에 있는 정자로, 1686년에 지어졌다. 숙종은 이 곳을 배경으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8]

4. 7. 상량정

상량정(上凉亭)은 낙선재 서북쪽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 이름은 평원루(平遠樓)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9] 1820년에서 1849년 사이에 지어졌다.

5. 지정 가치

낙선재는 궁궐 안의 침전 건축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주택 형식으로 건축되었으나, 궁궐 침전 형식이 응용되면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문양 장식이 특히 주목된다. 조선 후기 건축 장인(匠人)들의 축적된 기량을 엿볼 수 있어 건축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조선 왕가의 실제 침전으로 사용된 역사성도 중요한 건물이다.[2]

참조

[1] 서적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2005
[2]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지정 http://gwanbo.mois.g[...] 문화재청장 2012-03-02
[3] 웹인용 "[한국사의 안뜰] 왕실 인장 집대성… 생애 짧았지만 예술 사랑 길이 남겨" https://news.naver.c[...] 2021-01-23
[4] 뉴스 문화재는 살아있다 25.창덕궁 낙선자 https://newslibrary.[...] 한겨레 1997-12-30
[5] 웹인용 매화향 은은한 낭만궁궐 낙선재를 공개합니다 https://www.cha.go.k[...] 2021-01-23
[6] 서적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 8월 27일 갑진 5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785
[7] 서적 궁궐의 현판과 주련 https://www.cha.go.k[...] ""
[8] 웹인용 순조비 순원왕후의 거처 수강재의 후원 정자, 창덕궁 취운정 https://ncms.ncultur[...]
[9] 웹인용 낙선재 후원의 화려한 육모정자, 창덕궁 상량정 https://ncms.ncultur[...]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