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상
1. 개요
임아상은 당나라의 장수로, 소정방을 따라 돌궐 정벌 등에 참여했으며, 661년 고구려와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이듬해 사망했다. 657년 연연도호부의 도호였으며 서돌궐 정벌에 참여하여 승리에 기여했고, 659년에는 국방부 장관과 재상을 역임하며 장손무기 사건을 조사했다. 고구려 원정 중 사망했으며, 공정하고 사심 없는 태도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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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년 사망 -
정명진 (당나라)
당나라 장군 정명진은 수나라 말 두건덕 휘하 현령으로 있다가 당나라에 귀순하여 유흑달 토벌과 여당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며 사후 우위대장군에 추증되고 시호는 열이다. -
662년 사망 -
고백자 막시모스
고백자 막시모스는 7세기 비잔틴 제국의 신학자이자 수도사로, 단의론에 맞서 양의론을 옹호하며 기독교 교리를 수호했고, 플라톤주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신성화 과정을 강조했으며,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 모두에서 교회 교부로 추앙받는다. -
당나라의 병부상서 -
곽자의
곽자의는 당나라 중기의 장군으로, 안사의 난을 평정하고 토번과 위구르의 침략을 막아 당 왕조 부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분양왕에 봉해지고 그의 삶은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당나라의 병부상서 -
우승유
우승유는 당나라 덕종 연간에 태어나 진사시에 급제하고 재상과 지방관을 역임했으며, 이덕유와 대립하여 우이의 당쟁을 일으켰고, 《현괴록》의 저자로 849년에 사망했다. -
당나라의 행군대총관 -
설인귀
설인귀는 당나라 초기의 무장으로, 태종의 고구려 원정에서 시작해 고종 때까지 활약하며 공을 세웠고, 고구려 멸망 후 안동도호부 책임자가 되어 유민을 다스렸으나, 토번과의 전투 패배와 모함으로 유배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그의 용맹함과 지략은 후대에 널리 알려져 민간 설화와 연극의 소재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감악산 산신으로 숭배받기도 한다. -
당나라의 행군대총관 -
소정방
소정방은 수나라 말기부터 당나라 초기에 활약한 무장으로, 동돌궐, 서돌궐, 백제 정벌 등에서 공을 세웠으며, 고구려 정벌에서는 실패하고 토번과의 전투 중 사망했다.
2. 배경 및 초기 생애
임아상은 당나라 장수로, 소정방을 따라 돌궐 정벌 등의 전투에 참여했다. 661년, 당 고종의 명에 따라 고구려와의 전쟁에도 참전했으나, 이듬해 군에서 사망했다.
임아상의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재상으로 재직했던 기간 외에는 그의 배경이나 경력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는 재상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구당서'나 '신당서'에 열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웨이난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3. 당 고종 시기의 활동
임아상은 당나라 장수로서 소정방을 따라 돌궐 정벌 등에 참여했다. 661년, 당 고종의 명에 따라 고구려와의 전쟁에도 참전했으나, 다음 해 군에서 사망했다.
임아상은 대장군 재직 시절, 자신의 친구나 친척을 승진시키지 않고 채워야 할 자리가 있을 때마다 항상 적절한 기관에 채용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는 "크고 작은 직책은 모두 국가의 직책입니다. 어찌 제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그의 군대 내에서는 상벌이 공정했고, 사람들은 그의 공정함을 존경했다고 한다.
3.1. 서돌궐 정벌
657년, 고종 치세 동안 임아상은 연연도호부(燕然, 현대의 바옌나오얼 시에 위치, 내몽골 자치구)의 도호였으며, 소정방이 서돌궐의 사발략 칸 아사나 힐루(阿史那賀魯)를 공격할 때 소정방의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후 소정방의 아사나 힐루와의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에 기여했고, 결국 아사나 힐루는 소정방의 또 다른 부장인 소사업에게 포로로 잡혔다.
3.2. 재상 임명과 장손무기 사건
657년, 고종 치세 동안 임아상은 연연도호부(燕然, 현대의 바옌나오얼 시에 위치, 내몽골 자치구)의 도호였으며, 수정방이 서돌궐의 사발략 칸 아사나 힐루(阿史那賀魯)를 공격할 때 수정방의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후 수정방의 아사나 힐루와의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에 기여했고, 결국 아사나 힐루는 수정방의 또 다른 부장인 소사업에게 포로로 잡혔다.
659년, 임아상은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참지정사의 직함을 받아 재상 역할을 하였다. 그 해 말, 반역 혐의로 이미 유배된 전 재상 겸 고종의 숙부 장손무기가 추가적인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자, 임아상은 동료 재상인 이적, 허경종, 신모장, 노승경과 함께 조사를 담당했다(비록 고종의 강력한 부인 무후 (나중에는 무측천으로 알려짐)의 동맹인 허경종이 조사를 주도했지만), 이 조사는 장손무기의 강제 자살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