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임외는 후한 시대의 인물로, 청렴하고 학문에 정진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명제 때 우림좌감으로 발탁되었으며, 장제 즉위 후 장작대장이 되었고 태복, 광록훈을 거쳐 장화 원년에 사공에 이르렀다. 화제 때는 외척 두헌의 세도를 탄핵하기도 했다. 영원 4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임둔이 작위를 이었다.

임외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92년 사망 - 반고 (후한)
    반고는 후한 시대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서》를 편찬하여 후대 역사 서술에 영향을 주었으며, 부를 발전시켜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으나 두헌의 실각으로 옥사했다.
  • 92년 사망 - 페르가몬의 안티파스
  • 후한의 사공 - 조조
    후한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사가, 시인이었던 조조는 뛰어난 능력으로 위나라의 기반을 다졌으나, 잔혹한 행위와 권력욕으로 인해 후대 평가에서 논쟁적인 인물이다.
  • 후한의 사공 - 동탁
    동탁은 후한 말 군벌로, 폭정과 권력 찬탈을 시도했으며,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상국에 올랐으나 여포에게 암살당했으며, 독재와 폭정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 후한의 관료 - 왕윤
    왕윤은 후한 말 관료로서 동탁 암살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황건적의 난 진압에도 공을 세웠으나, 동탁 제거 후 잔당의 반란으로 헌제를 지키다 가족과 함께 죽임을 당한, 뛰어난 능력과 충절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 후한의 관료 - 조조
    후한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사가, 시인이었던 조조는 뛰어난 능력으로 위나라의 기반을 다졌으나, 잔혹한 행위와 권력욕으로 인해 후대 평가에서 논쟁적인 인물이다.

2. 생애

젊어서부터 황로학을 좋아하였고, 사람됨이 청렴하고 욕심이 없어 녹봉을 받으면 집안의 과부와 고아들을 보살피는 데에 썼다. 명제는 임외의 기개를 높이 사 우림좌감으로 발탁하였고, 이후 임외는 호분중랑장·장수교위(長水校尉)를 역임하였다.

장제가 즉위한 후에는 장작대장이 되었다. 장작대장은 건무 이래로 알자(謁者)가 겸직해 왔었는데, 임외에 이르러 정식으로 설치하였다. 이후 태복·광록훈을 역임하였고, 항상 치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장화 원년(87년), 사공이 되었다.

화제가 즉위한 후, 외척 두헌이 세도를 부리니 임외는 원안과 함께 두씨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영원 4년(92년)에 죽었고, 작위는 아들 임둔이 이었다.

2.1. 관직 생활

젊어서부터 황로학을 좋아하였고, 사람됨이 청렴하고 욕심이 없어 녹봉을 받으면 집안의 과부와 고아들을 보살피는 데에 썼다. 명제는 임외의 기개를 높이 사 우림좌감으로 발탁하였고, 이후 임외는 호분중랑장·장수교위(長水校尉)를 역임하였다.

장제가 즉위한 후에는 장작대장이 되었다. 장작대장은 건무 이래로 알자(謁者)가 겸직해 왔었는데, 임외에 이르러 정식으로 설치하였다. 이후 태복·광록훈을 역임하였고, 항상 치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장화 원년(87년), 사공이 되었다.

화제가 즉위한 후, 외척 두헌이 세도를 부리니 임외는 원안과 함께 두씨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영원 4년(92년)에 죽었고, 작위는 아들 임둔이 이었다.

2.2. 외척 세력 견제

임외는 젊어서부터 황로학을 좋아하였고, 청렴하고 욕심이 없었다. 녹봉을 받으면 집안의 과부와 고아들을 보살피는 데에 썼다. 명제는 임외의 기개를 높이 사 우림좌감으로 발탁하였고, 이후 임외는 호분중랑장·장수교위(長水校尉)를 역임하였다.

장제 즉위 후에는 장작대장이 되었다. 장작대장은 건무 이래로 알자(謁者)가 겸직해 왔었는데, 임외에 이르러 정식으로 설치되었다. 이후 태복·광록훈을 역임하였고, 항상 치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장화 원년(87년), 사공이 되었다.

화제가 즉위한 후, 외척 두헌이 세도를 부리니 임외는 원안과 함께 두씨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영원 4년(92년)에 죽었고, 작위는 아들 임둔이 이었다.

3. 평가

4. 관직

임외는 후한의 관직을 역임했다. 76년부터 80년까지 장작대장을, 80년부터 83년까지 태복을, 83년부터 87년까지 광록훈을 역임했다. 87년 6월 무진일에는 사공에 임명되어 92년 8월 신해일까지 재직했다. 전임 사공원안이며, 후임 사공은 유방이다.

5. 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