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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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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춘추는 만주 지린성 출신으로, 독학으로 의술을 익혀 약방을 운영했다. 1930년대 초 김일성과 함께 유격대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동북항일연군과 소련 극동군 제88국제여단을 거친 '혁명 1세대'이다. 광복 후 연변에서 자치주 설립을 위한 활동을 했으며, 북한으로 돌아와 조선로동당에서 활동했다. 한국 전쟁 중 비판을 받아 일시 실각했으나, 이후 외교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국가 부주석 등을 역임했다. 1970년대 초 김정일의 후계 구도 확립 시 김정일을 지지했으며, 회고록 《항일 무장투쟁 시기를 회상하며》 등을 저술했다. 1988년 사망했으며, 김일성, 김정일 등이 참여한 국장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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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임춘추
출생1912년 3월 8일
사망1988년 4월 27일
출생지연길, 길림성, 중화민국
정당조선로동당
직책
직책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부주석
임기 시작1983년
임기 종료1988년
대통령김일성
동시 재임박성철, 리종옥
직책2중앙인민위원회 서기
임기 시작21972년 12월
임기 종료21983년
직책3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

2. 생애

임춘추는 1912년 중국 만주 지린성 옌지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의술을 익힌 뒤 약방을 열었다. 1930년대 초반부터 항일 유격대에 참여했다.

1945년 조선공산당 평안남도 서기가 되었다. 1947년 4월 저우바오중의 요청으로 중국 지린성 안투현 전원을 맡았다. 이후 지린성 민족사무청장을 거쳐 1948년 3월부터 옌볜 행정독찰 전원공서 전원 겸 옌볜 지구위 부서기를 역임했다. 1949년 1월 21일 민족공작 좌담회에서 "옌볜을 북한에 귀속시켜 동북 지역 거주 조선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했으나, 개인 견해인지 북한과의 합의를 거친 주장인지는 불분명하다. 민족공작 좌담회 이후 옌볜에서 직을 잃고 북한으로 귀국했다.

이후 외교관, 당 중앙위원, 정치국원 등을 거쳐 1983년 4월부터 1988년 사망할 때까지 국가 부주석을 역임했다.

2. 1. 항일 무장 투쟁 시기

임춘추는 만주 지린성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의술을 익혀 약방을 운영했다. 1930년대 초반부터 항일 유격대에 참여하여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김일성과 함께 활동하였다. 동북항일연군과 소비에트 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여단을 거친 "혁명 1세대"로 알려져 있다.[6][7]

김일성과 같은 나이로, 김정숙과도 일찍부터 알고 지내며 북조선에서 김일성과 김정숙 부부의 항일 투쟁 경력을 증언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회고록 《항일 무장투쟁 시기를 회상하며》(1959)에는 남호두회의(1936) 등 북조선에서 높게 평가하는 김일성의 항일 활동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2. 2. 해방 이후 활동

임춘추는 광복 후 연변에서 연변대학 설립에 참여하는 등 자치주 설립을 위해 활동했다.[6] 이후 조선로동당 평안도당 제2비서, 강원도당 위원장을 역임했다.[6] 1947년 4월, 주보중의 초청으로 중국 지린성 안투현에서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1] 1948년 3월에는 옌볜 행정독찰원 위원 및 옌볜 지구당 부서기를 역임했다.[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인 1949년 1월과 1950년 6월, 북한으로 돌아와 강원도 당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1] 그러나 1950년 12월, 오기섭, 김이, 최광과 함께 실각하여 비판을 받았다.[1]

1957년 5월 주 알바니아 대사, 1962년 10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 및 주 불가리아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다.[1] 1963년에는 조선로동당 부장을 맡았고, 1967년에는 실각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1] 1972년 12월 중앙인민위원회 (북한 내각의 전신) 서기를 거쳐, 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 결정에 따라 당 중앙 위원 및 당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었다.[1] 1983년 4월에는 국가 부주석에 임명되었고,[1] 1988년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1970년대 초반 김정일의 후계 구도가 확립될 때, 혁명 1세대 중 김일, 오진우 등과 함께 김정일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7]

2. 3. 북한 정권에서의 활동

임춘추는 만주 지린성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의술을 익혀 약방을 운영했다. 1930년대 초반부터 김일성과 함께 유격대 군의관으로 활동했으며, 동북항일연군과 소비에트 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여단을 거친 "혁명 1세대"이다.[6][7]

광복 후 연변에서 연변대학 설립 등 자치주 설립 활동을 했고, 조선로동당 평안도당 제2비서, 강원도당 위원장을 거쳐 불가리아 대사 등 외교관으로 일했다.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을 거쳐 1983년 국가 부주석에 임명되었다.[1][2]

1949년 1월과 1950년 6월, 공식 선포 후 북한으로 돌아왔다. 강원도 당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50년 12월 오기섭, 김이, 최광과 함께 실각하여 비판을 받았다.[4]

1957년 5월 주 알바니아 대사, 1962년 10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 및 주 불가리아 대사를 역임했다. 1963년 조선로동당 부장을 역임하였고, 1967년 실각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1972년 12월 중앙인민위원회 서기를 역임했다.[5] 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 결정에 따라 당 중앙 위원 및 당 정치국 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4월 부주석에 임명되었으며, 1988년 4월 사망했다.[1][2]

1983년 1월 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가 부주석으로 선출되었다. 1986년 부주석에 재선되었다.

1970년대 초반 김정일의 후계 구도가 확립될 때 혁명 1세대 중 김일, 오진우 등과 더불어 김정일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7]

임춘추는 김일성, 김정숙 부부의 항일 투쟁 경력을 증언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회고록 《항일 무장투쟁 시기를 회상하며》(1959)에는 남호두회의(1936) 등 북조선에서 높게 평가하는 김일성의 항일 활동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2. 4. 사망

임춘추는 1988년 4월 27일에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김일성, 김정일, 오진우 등 57명으로 구성된 장의위원회를 통해 국장으로 치러졌다.[3]

3. 저서

임춘추는 김일성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에서 자신의 저작에 대해 언급했다.[1] 그는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책들이 있다.


  • 《항일 유격대의 회상》 (외국어 출판사, 평양, 1968)
  • 〈조국의 부흥을 위한 웅대한 계획〉[2]
  • 〈혁명 출판 지도〉[3]
  • 《항일 유격대의 회상》 (외국어 출판사, 평양, 1970)
  • 〈8만 킬로미터의 장정〉[4]
  • 《반제 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외국어 출판사, 평양, 1974)
  • 〈왕청현 로쯔구 전투〉[5]

참조

[1] 뉴스 김정일 후계자거론 금지 배경 - 장군님의 후처자식 http://www.dailynk.c[...] 데일리NK 2005-12-13
[2] 서적 세기와 더불어
[3] 서적 Vantage Point https://books.google[...] Naewoe Press
[4] 서적 朝鮮戦争全史 岩波書店
[5] 논문 苦境脱出のための混迷と模索 : 1983年の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 https://ir.ide.go.jp[...] アジア経済研究所
[6] 뉴스 김정일 후계자거론 금지 배경 - 장군님의 후처자식 http://www.dailynk.c[...] 데일리NK 2005-12-13
[7] 서적 세기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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