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
1. 개요
임현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했다. 1583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으나, 1591년 정철의 일당으로 몰려 파직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강원도도사로 춘천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회양 부사, 길주 목사를 거쳐 1597년 남원부사로 재직 중 남원성 전투에서 소서행장의 군대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숙종 때 충간의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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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사망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
1597년 사망 -
원균
원균은 조선 중기 무장으로, 여진족 토벌에 참여했으며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를 지냈으나 이순신과의 갈등 속에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 후 전사(또는 생존)한 인물이다. -
조선 선조 -
권율
조선 중기의 문관이자 무장인 권율은 안동 권씨 출신으로,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에서 승리하는 등 활약하여 도원수에 올랐으며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는 데에도 기여,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된 인물이다. -
조선 선조 -
의인왕후
의인왕후는 조선 선조의 왕비로서, 박응순의 딸로 태어나 선조와 혼인했으나 자녀를 두지 못했으며, 임진왜란 중 광해군을 보살피고 46세에 사망하여 선조와 함께 목릉에 안장되었다. -
조선의 관료 -
박성빈 (조선)
박성빈은 1871년에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했으며, 아들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었다. -
조선의 관료 -
김응우
김응우는 김일성의 고조부로 평안도 대동 출신이며, 북한에서는 제너럴 셔먼호 격침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있고, 김일성 가문으로 이어진 전주 김씨이다.
2. 생애
임현은 중종 때 한성판윤, 공조판서를 역임한 임유겸의 친족으로, 재상 임권, 임추 형제는 그의 재종조부였다. 1583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나, 1591년 정철의 일파로 몰려 파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1597년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후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고, 1706년 충간(忠簡)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나아가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다.
2.1. 관직 생활과 파직
1583년(宣祖zh-hant 16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으나, 1591년(宣祖zh-hant 24년) 서인 정철의 일당으로 몰려 파직되었다.
1592년(宣祖zh-hant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로서 춘천에서 왜군 400여 명을 잡아 죽였으며, 같은 해 회양부사(淮陽府使)가 되었다. 1594년(宣祖zh-hant 27) 길주목사(吉州牧使)를 거쳐 1597년 4월 남원부사(南原府使)로 부임했다.
1597년(宣祖zh-hant 30) 8월 남원성이 수만의 왜군에게 포위되고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이 도망간 상황에서도 분전했으나, 결국 남원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후 의정부좌찬성(左贊成)으로 추증되었으며, 1706년(肅宗zh-hant 32) 충간(忠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2. 임진왜란과 활약
1592년 (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로서 춘천에서 왜군 400여 명을 잡아 죽였으며, 같은 해 회양부사(淮陽府使)가 되었다. 1594년(선조 27) 길주목사(吉州牧使)를 거쳐 1597년 4월 남원부사(南原府使)로 부임하였다.
1597년(선조 30) 8월 남원성이 수만의 왜군에게 포위되고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이 도망간 상황에서도 분전했으나, 결국 남원 전투에서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