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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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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기부정론은 1960-70년대 일본 학생운동에서 나타난 자기비판적 경향으로, 운동 주체들이 스스로를 기득권층으로 인식하고 사회적 약자를 억압한다고 여겨 자기 입장을 부정하며 약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일본인=범죄 민족'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이어져, 일본을 단죄하고 말살해야 한다는 논리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자기 부정론은 반일 테러로 이어졌으며, '일본인이라는 것 자체가 죄'라는 인식을 낳기도 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극단적 반일주의와 반일 감정의 정치적 이용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건강한 한일 관계를 위한 제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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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정론
자기 부정
개요
정의어떤 주체의 과거 또는 현재의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거부하는 태도 또는 그러한 행위를 말한다.
특징자기 비판, 자기 혐오, 열등감, 죄책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원인개인의 경험, 사회적 압력, 심리적 요인 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영향정신 건강 악화, 대인 관계 문제, 사회 부적응 등 다양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철학적 논의
헤겔 변증법자기 부정은 정반합의 과정에서 '반'에 해당하며, 긍정적인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로 간주된다.
실존주의사르트르는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초월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사회 변혁을 위해서는 기존 질서에 대한 자기 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리학적 관점
정신분석학자기 부정은 억압된 욕망이나 트라우마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교정함으로써 자기 부정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긍정심리학자기 수용과 긍정적인 자기 인식을 통해 자기 부정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의미
집단적 자기 부정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비판적 사고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제도에 대한 자기 부정이 필요하다.
정체성 형성청소년기의 자기 부정은 자아 정체성 확립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기 부정의 극복
자기 이해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수용자신의 단점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자기 대화자신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격려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전문가의 도움심각한 자기 부정의 경우,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같이 보기
관련 개념자기애성 성격 장애
우울증
자존감
자기 혐오
열등감
자아비판 (自我批判)
로마자 표기jaeobiipan
설명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스스로 비판하는 행위.

2. 용어

"자기부정론"과 관련된 용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 자기부정론: 자신의 소속 집단(국가, 민족 등)의 과거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일본 신좌익 운동에서 나타난 특수한 형태의 자기부정론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행위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되어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아시아 인민"에 대한 속죄를 강조하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 반일망국론: "일본인 = 범죄 민족"이라는 논리로, 일본 국가와 민족을 부정하고 말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다. 신좌익 활동가들은 이 논리를 바탕으로 "범죄 국가·일본국"과 "범죄 민족·일본인"을 단죄하고, "아시아 인민"에 대한 속죄를 영원히 성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비국민: 민족 의식이나 국민 의식을 버리고, 반일 투쟁에 헌신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자기부정론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적극적으로 "비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1. 학생운동

운동의 주체인 좌익 학생들이 사실은 "학생"이라는 "혜택받은" 신분(쁘띠 부르)에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스스로의 학생이라는 입장을 부정함으로써 "가해자성"을 극복하고, 약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하는 논의였다.[1]

이 자기 부정론의 등장 이후, 신좌익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내걸고 반차별 투쟁에 힘을 쏟게 되었다.[1]

일본 공산당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사토 카츠미는,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에 실제로 조선인과 함께 운동을 했던 공산당 초기 세대는 속죄 의식과 무관했다고 말하며, "당시, 공산주의 본가 소련 공산당이, 일본에서 상대했던 정당은 일본 공산당이었고, 사회당 등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아니었다. 소련 공산당에게 상대받지 못한 사회민주주의자와 그 계열의 문화인들 사이에, 제국주의와 싸우지 않았다는 부채감이 열등감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이 열등감의 반전이 '속죄 의식'이 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2]

2. 2. 반일망국론

이 이론은 이후 "일본인 = 범죄 민족 = 민족 정화되어야 할 민족"이라는 반일망국론의 논리로 이어졌다. 신좌익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과거 일본군 병사(하사관이나 장교도 포함)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가담했으며, 그런 "침략자"의 후손인 자신들은 약자인 "아시아 인민"에 대한 원죄를 짊어진 일제 본국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범죄 국가·일본국"과 "범죄 민족·일본인"을 철저히 단죄하고 말살하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 "아시아 인민"에 대한 속죄가 영원히 성립한다고 주장했다.[1]

일본국 및 일본 민족은 갚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 온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국가·민족이며, 존재 가치가 전혀 없으므로, 적극적으로 민족 의식·국민 의식을 버리고 "비국민"이 되어 반일 투쟁에 몸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다.[3]

그러나 신좌익의 자기 부정론은 심리학상의 자기 부정과는 달리,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즉, "자신이 소속된 국가나 민족의 과거 범죄를 추궁하고 단죄하는 나는 멋있고 자랑스럽다"는 식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며, "자기 부정하는 자기"를 무비판적으로 긍정하는 모습이 나타났다.[4]

이러한 이유로 1970년대에는 신좌익 활동가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 가토 사부로)에 의한 반일 테러가 잇따랐다. 경찰 관계자 등 "권력 측"뿐만 아니라, "자기 부정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적 열위자"로서 일반 일본인도 단죄 대상이 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의 소책자 『복복시계』에는 "일제 본국의 노동자, 시민은 식민지 인민과 일상적으로 적대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이다"라며 일반 일본인을 싸잡아 단죄하고 있다.

신좌익 활동가에서 전향한 도야마 고이치는 이 자기 부정론에 대해 "'일본인이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죄'라는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테제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또한 "'화청투고발' 이후의 좌익은 스스로가 일본인이라는 것에 원죄 의식을 품고, 제3세계 인민에게 멸사봉공하는 것을 노선화했다"고 말했다. 한편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은 "반일 공화국"의 우익 단체라고도 불린다.[5]

일본의 좌파 계열 학자 중에는 한반도의 민족주의 사관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이 나타났다. 마르크스주의의 쇠퇴와 함께 재검토도 이루어졌지만, 실증주의적인 조선 연구는 위기적인 상태가 되었다.[6]

3. 역사적 배경

주어진 참조 소스에는 자기부정론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4. 반일사상의 전개

신좌익 운동에서 비롯된 자기부정론은 "일본인 = 범죄 민족"이라는 반일망국론으로 이어졌다. 신좌익 활동가들은 과거 일본군 병사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가담한 이들의 후손인 자신들은 "아시아 인민"에 대한 원죄를 짊어졌다고 주장하며, "범죄 국가·일본국"과 "범죄 민족·일본인"을 철저히 단죄하고 말살해야 한다고 했다.[1]

1970년대에는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 등 신좌익 활동가들에 의한 반일 테러가 잇따랐다. 이들은 경찰뿐만 아니라 일반 일본인도 단죄 대상으로 삼았다. 도야마 고이치는 이러한 자기부정론을 "'일본인이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죄이다'라는,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테제"라고 표현했다.[5]

일본 좌파 계열 학자들 중에는 한반도의 민족주의 사관에 동조하는 자들이 많았다.[6]

4. 1. 신좌익 운동과 자기부정론

신좌익 운동은 "학생"이라는 "혜택받은" 신분(쁘띠 부르)에 있는 학생들이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의문은 스스로의 학생이라는 입장을 부정함으로써 "가해자성"을 극복하고, 약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자기부정론으로 이어졌다.[1]

이후 신좌익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내걸고 반차별 투쟁에 힘을 쏟았다.[1] 일본 공산당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사토 카츠미는,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에 실제로 조선인과 함께 운동을 했던 공산당 초기 세대는 속죄 의식과 무관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련 공산당에게 상대받지 못한 사회민주주의자와 그 계열의 문화인들 사이에, 제국주의와 싸우지 않았다는 부채감이 열등감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이 열등감의 반전이 '속죄 의식'이 된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2]

이러한 자기부정론은 "일본인 = 범죄 민족 = 민족 정화되어야 할 민족"이라는 반일망국론으로 이어졌다. 신좌익 활동가들은 과거 일본군병사 (중에는 하사관이나 장교)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가담한 "침략자"의 후손으로서, 약자인 "아시아 인민"에 대한 원죄를 짊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이 소속된 "범죄 국가·일본국"과 "범죄 민족·일본인"을 철저히 단죄하고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일본국 및 민족은 갚을 수 없는 범죄를 거듭해 온 추악한 수치스러운 국가·민족이며, 그 존재 가치가 전혀 없으므로, 적극적으로 민족 의식·국민 의식을 버리고 "비국민"이 되어, 반일 투쟁에 몸을 던지라고 설교했다.[3]

그러나 신좌익의 자기 부정론에는 "자신이 소속된 국가나 민족이 저지른 과거의 범죄를 감히 추구하고, 그것을 단죄하고 있는 나는 멋있고 자랑스럽다"라는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등 "자기 부정하는 자기"의 무비판적인 자기 긍정이 나타났다.[4]

1970년대에는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이나 가토 사부로와 같은 신좌익 활동가들에 의한 반일 테러가 잇따랐다. 이들은 경찰 관계자 등의 "권력 측"뿐만 아니라, "자기 부정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적 열위자"로서 일반 일본인도 단죄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의 소책자 『복복시계』에는 "일제 본국의 노동자, 시민은 식민지 인민과 일상적으로 적대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이다"라고 일반 일본인을 싸잡아 단죄하고 있다.

신좌익 활동가에서 전향한 도야마 고이치는 이 자기 부정론에 대해 "'일본인이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죄이다'라는,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테제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화청투고발』 이후의 좌익은, 스스로가 일본인이나 남성이나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에 원죄 의식을 품고, 제3세계 인민이나 여성이나 장애인에게 멸사 봉공하는 것을 노선화하는 전도에 발을 들였다"라고 말했다. 한편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은 "반일 공화국"의 우익 단체라고도 표현하고 있다.[5]

일본의 좌파 계열 학자 중에도 한반도의 민족주의 사관에 동조하는 자가 많이 나타났다. 마르크스주의의 쇠퇴와 함께 재검토도 일어났지만, 실증주의적인 조선 연구는 위기적인 상태가 되었다.[6]

4. 2. 반일 테러와 그 영향

이 이론은 "일본인 = 범죄 민족 = 민족 정화되어야 할 민족"이라는 반일망국론의 논리로 이어졌다. 신좌익 활동가들은 과거 일본군 병사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가담한 이들의 후손인 자신들은 "아시아 인민"에 대한 원죄를 짊어진 일제 본국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범죄 국가·일본국"과 "범죄 민족·일본인"을 철저히 단죄하고 말살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시아 인민"에 대한 속죄는 영원히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1]

1970년대에는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 등 신좌익 활동가들에 의한 반일 테러가 잇따랐다. 이들은 경찰 관계자 등 "권력 측"뿐만 아니라, "자기 부정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적 열위자"로서 일반 일본인도 단죄 대상으로 삼아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의 소책자 『복복시계』에는 "일제 본국의 노동자, 시민은 식민지 인민과 일상적으로 적대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이다"라고 적혀있다.

신좌익 활동가에서 전향한 도야마 고이치는 이러한 자기 부정론에 대해 "'일본인이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죄이다'라는,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테제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라고 표현했다.[5]

4. 3. 좌파 지식인들의 역할

일본의 좌파 계열 학자들 중에는 한반도의 민족주의 사관에 동조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다.[6] 마르크스주의의 쇠퇴와 함께 이러한 역사관에 대한 재검토도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는 혐한 서적이 유행하면서 실증주의적인 조선 연구는 위기적인 상태가 되었다.[6]

5. 한국의 관점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경험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참여한 일본인 후손들에 대한 원죄 의식으로 이어진다.[1]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적 사건은 이러한 반일 감정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일본 신좌익 활동가들은 "일본인 = 범죄 민족"이라는 극단적인 반일망국론을 주장하기도 했다.[1][3]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한국 진보 진영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일본 좌파 계열 학자 중 일부는 한반도의 민족주의 사관에 동조하기도 했다.[6]

5. 1. 한국에서의 반일 감정

한국에서의 반일 감정은 주로 일제강점기의 경험에서 비롯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가담한 일본군 병사(하사관이나 장교 포함)들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원죄 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1] 특히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은 이러한 반일 감정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신좌익 활동가들은 "일본인 = 범죄 민족"이라는 극단적인 논리를 펼치며, 반일망국론을 주장하기도 했다.[1] 이들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단죄하고 일본인이라는 민족 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3]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 진영은 이러한 역사 인식을 공유하며,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며,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의 좌파 계열 학자 중 일부는 한반도의 민족주의 사관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6]

6. 비판적 시각

자기부정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주로 극단적 반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이론은 "일본인 = 범죄 민족 = 민족 정화되어야 할 민족"이라는 반일망국론의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신좌익 활동가들은 과거 일본군병사(하사관이나 장교 포함)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가담한 이들의 후손인 자신들은 약자인 "아시아 인민"에 대한 원죄를 짊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범죄 국가·일본국"과 "범죄 민족·일본인"을 철저히 단죄하고 말살해야 "아시아 인민"에 대한 속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1]

또한, 일본과 일본 민족은 갚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추악한 국가·민족이며 존재 가치가 없으므로, 적극적으로 민족 의식·국민 의식을 버리고 "비국민"이 되어 반일 투쟁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3]

그러나 이러한 신좌익의 자기부정론에는 "자신이 소속된 국가나 민족의 과거 범죄를 단죄하는 나는 자랑스럽다"라는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측면이 있으며, "자기 부정하는 자기"에 대한 무비판적인 자기 긍정이 나타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4]

1970년대에는 신좌익 활동가([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 가토 사부로)에 의한 반일 테러가 잇따랐다.

도야마 고이치는 "'일본인이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죄이다'라는,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테제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라고 표현하며 자기부정론을 비판했다. 한편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은 "반일 공화국"의 우익 단체라고도 불린다[5]

일본의 좌파 계열 학자 중에는 한반도의 민족주의 사관에 동조하는 자가 많았다. 마르크스주의의 쇠퇴와 함께 재검토도 일어났지만, 혐한 서적이 유행하면서 실증주의적인 조선 연구는 위기적인 상태가 되었다[6]

6. 1. 극단적 반일주의의 문제점

이 이론은 "일본인 = 범죄 민족 = 민족 정화되어야 할 민족"이라는 반일망국론의 논리로 이어졌다. 신좌익 활동가들은 과거 일본군병사(하사관이나 장교 포함)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가담한 이들의 후손인 자신들은 약자인 "아시아 인민"에 대한 원죄를 짊어진 일제 본국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범죄 국가·일본국"과 "범죄 민족·일본인"을 철저히 단죄하고 말살해야 "아시아 인민"에 대한 속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1]

일본 및 민족은 갚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추악한 국가·민족이며, 존재 가치가 없으므로, 적극적으로 민족 의식·국민 의식을 버리고 "비국민"이 되어 반일 투쟁에 몸을 던지라고 주장했다[3]

그러나 신좌익의 자기 부정론에는 "자신이 소속된 국가나 민족의 과거 범죄를 단죄하는 나는 자랑스럽다"라는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등의 "자기 부정하는 자기"에 대한 무비판적인 자기 긍정이 나타났다[4]

1970년대에는 신좌익 활동가([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 가토 사부로)에 의한 반일 테러가 잇따랐다. 이들은 경찰 등의 "권력 측"뿐만 아니라, 일반 일본인도 "자기 부정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적 열위자"로 간주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의 소책자 『복복시계』에는 "일제 본국의 노동자, 시민은 식민지 인민과 일상적으로 적대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이다"라고 일반 일본인을 싸잡아 단죄하고 있다.

신좌익에서 전향한 도야마 고이치는 이 자기 부정론에 대해 "'일본인이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죄이다'라는,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테제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라고 표현했다. 한편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은 "반일 공화국"의 우익 단체라고도 불린다[5]

일본의 좌파 계열 학자 중에도 한반도의 민족주의 사관에 동조하는 자가 많이 나타났다. 마르크스주의의 쇠퇴와 함께 재검토도 일어났지만, 혐한 서적이 유행하면서 실증주의적인 조선 연구는 위기적인 상태가 되었다[6]

참조

[1] 서적 新左翼とロスジェネ 集英社 2009
[2] 웹사이트 随筆・「贖罪意識」の犯罪 https://gendaikorea.[...]
[3] 서적 やっていない俺を目撃できるか! 北海道庁爆破犯人デッチ上げ事件 三一書房 1981
[4] 간행물 全共闘の思想性 絶対他力と自己否定 季報「唯物論研究」刊行会 2007
[5] 블로그 青いムーブメント(2) (ファシズムへの誘惑・ブログ) http://www.warewared[...]
[6] 블로그 朝鮮研究の将来は危機的-古田博司: 辻本武 tsujimoto blog https://tsujimoto.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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