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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망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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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일망국론은 일본의 멸망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사상으로, 마르크스주의와는 달리 일본의 침략성을 역사적, 문화적인 "전통"으로 보고 일본 자체의 소멸과 일본인의 근절을 주장한다. 이 사상은 일본의 국호, 역사적 지위, 문화, 노동운동을 부정하며, 해외 인권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입장을 보인다. 오타 류는 한국을 이용해 일본을 전쟁에 휘말리게 하고, 류큐 공화국과 아이누 소비에트 공화국의 독립을 지원하여 일본을 멸망시키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반일망국론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폭력성을 띠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주창자가 보수로 전향하기도 했다. 이 사상은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과 같은 테러 사건의 기반이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한국 사회의 일부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 개인 및 단체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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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망국론
개요
유형일본 신좌파 이론
관련 개념반일 감정
상세 내용
설명일본 신좌파에서 제기된 이론으로, 반일적인 태도가 일본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 상세

반일망국론은 일본 신좌파 일부에서 제기된 극단적인 사상으로, 기존의 좌익 사상, 특히 마르크스주의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 사상은 일본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투쟁 중심 사관과 국제주의를 비판하며, 피식민 민족의 반일감정을 혁명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본'이라는 국호 자체에 제국주의적이고 오만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 사용을 거부하며, 천황제와 일본의 역사를 침략과 착취의 연속으로 규정한다.

나아가 일본 문화 전반을 부정하고, 일본인의 민족의식 자체를 죄악시하며 '비국민'이 될 것을 요구한다. 전후 일본의 경제 성장과 노동운동 역시 제3세계에 대한 착취의 결과물로 보아 비판하며, 일본인이 타국의 인권 문제에 개입하는 것조차 제국주의적 행태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완전한 해체와 소멸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급진적인 특징을 지닌다.

2. 1. 마르크스주의와의 차이점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26]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주장하며 국제적인 노동자 연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반일망국론은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관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치우메 쓰네오는 수기 「공산주의자 동맹 적군파로부터 일제 타도를 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에서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를 버리자"고 주장하며, 반일 투쟁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기존 개념에 얽매이지 말 것을 역설했다.[26][14]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은 "피식민 인민들은 일본의 프롤레타리아도 '적'으로 보고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의 고통스러운 확인이야말로 반일사상의 원점이다"라고 보았다.[26] 이들은 "피식민 인민의 반일감정"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하는 기본 원리라고 주장했다.[14]

블라디미르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종 단계로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일본의 침략성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이며,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천황제 등 제국주의 잔재를 청산하고 신생 일본 인민 공화국으로 거듭나면 일본의 침략성은 소멸될 수 있다고 본다.[27][15] 하지만 반일망국론은 일본의 침략성이 자본주의 이전, 즉 일본이라는 국가의 건국 시점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전통"이라고 주장하며[14], 단순히 사회 체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일본 고유의 '침략성'이 제거될 수 없다고 본다.[14] 이들은 일본 민족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고, 일본 국가의 소멸과 일본 민족의 절멸을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간다.[12][16]

또한 반일망국론은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중심적 시각을 거부한다. 이들은 "억압 민족의 노동계급" 역시 "억압 민족의 자본가 계급"과 마찬가지로 "피억압 민족"에 대한 가해자라고 주장한다.[26][14] 따라서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하는 것은 "억압 민족 노동계급"의 가해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행위라고 비판한다.[14]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구로카와 요시마사는 자신들의 사상이 "계급적 관점에 입각한 반일제(反日帝)"가 아니라 "계급적 구분을 내포한 반일(反日)" 그 자체라고 구분했다.[14] 그는 이를 기존의 혁명론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룬 "반일사상"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28][17]

2. 2. '일본' 국호 부정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해 뜨는 곳에 처한 천자의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천황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29][18] 이는 중국중화사상을 받아들여 만든 일본식 중화사상일 뿐만 아니라, 원조인 중국마저 "해 지는 곳에 처한 나라"로 깎아내리는 극도의 오만한 제국주의적 발상이 구현된 이름이다.[29][18] 따라서 '일본'이라는 명칭은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위치한 호상열도 지역을 가리키는 가치 중립적인 지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29][18]

2. 3. 일본의 역사적 지위

반일망국론은 일본 황실의 기원을 기마민족정복왕조설에 따라 대륙에서 도래한 세력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일본 전역은 침략으로 얻은 정복지이며, 피정복민 중 황실에 연관된 "천손족"과 동화된 이들은 농경민족이 되었고, 동화를 거부한 일부 피정복민은 부락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30][16]

이러한 침략은 중세 이후에도 남북으로 계속되어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아이누모시리와 류큐왕국을 병합함으로써 내지에서의 침략이 완료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반일망국론은 일본의 역사를 본질적으로 "침략과 착취의 역사"로 규정한다.[26][14][3] 이러한 "침략의 전통"이라는 뿌리 깊은 성향 때문에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25][13]

또한, 반일망국론은 자유민권운동과 같은 일본 내 민중에서 비롯된 정치 운동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는 해당 운동에 참여한 민중 역시 "범죄국가 일본"의 구성원에 불과하며, 그들의 생활은 아이누와 류큐민족의 희생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 운동 역시 전면적으로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918년에 발생한 쌀 소동은 정당한 저항 운동이 아니라, 식민지 인민으로부터 쌀을 수탈하는 계기를 만들었을 뿐인 단순한 폭동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25][13]

2. 4. 일본 문화 부정

반일망국론은 일본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죄악이자 반혁명적인 행위로 간주한다.[25][8][13] 이러한 관점에서 794년 헤이안쿄로 수도를 옮긴 간무 천황을 기리는 헤이안 신궁에 불을 지른 헤이안 신궁 방화사건을 높이 평가했다.[25][8][13]

이는 단순히 메이지 시대 이후의 일본 제국주의 비판을 넘어, 일본이라는 국가의 건국과 일본 민족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그 소멸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입장으로 이어진다.[12] 반일망국론은 일본인을 '억압자·범죄 민족'인 일제 본국인으로 규정하고 자기 부정을 요구하며, 일본을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국가·민족'으로 보고 민족 의식과 국민 의식을 버리고 '비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3]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이고 반일 투쟁에 나서는 것만이 '원죄'로부터 해방되는 길이라고 여긴다.[12]

2. 5. 일본 노동운동 부정

전후 일본고도경제성장으로 대다수 일본 국민이 소위 "부르주아적" 생활 수준을 누리게 되었으나, 반일망국론은 이러한 풍요의 재원이 "전 세계 인민들로부터 착취한 재산"이라고 주장한다.[25][13]

이러한 관점에서 "생활 개선 운동"이나 "임금 인상 운동"으로 대표되는 일본노동운동은 본질적으로 "강탈한 상품의 몫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행위로 간주된다.[25][13] 즉, 이는 「약탈 민족 일본인」의 빈곤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며, 반혁명적인 행위라고 비판한다.[25][13]

2. 6. 해외 인권 문제 불개입

1970년대 당시 일본의 일부 좌익 인사들은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구금된 김대중의 구명을 위해 활동했다.[25][7] 그러나 반일망국론자들은 이러한 활동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일제 본국인인 일본인이 외국,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은 민주주의가 잘 되어 있는 좋은 나라다, 앞선 나라다"라는 식의 '일본 우월 의식'을 드러내는 행위이며,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 침략 활동과 다를 바 없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25][7][13]

3. 일본 타도 전략

오타 류 등 반일망국론자들은 일본을 멸망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국력이 소모된 것을 본떠, 일본을 전쟁에 휘말리게 하여 파멸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한다.[30][31][3][16][19]

이 전략의 핵심 국가는 한국이다. 우선 한국인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부추겨 반일감정을 극대화한다.[30][31][2][4][16][19] 이를 통해 한국군쿠데타를 유발하여 당시 박정희 정권과 같은 소위 "친일" 정권을 타도하고,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친일파" 세력을 숙청한다.[30][31][3][2][4][16][19] 이후 들어선 "반일 군사 정권"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일으켜, 최소 10만 명 이상의 자위대원을 전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30][31][3][2][4][16][19]

동시에 주변 지역에서도 봉기를 유도한다. 오키나와에서는 "류큐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과 미국에 선전포고한 뒤, 한국과 연합하여 대일 침략 전쟁에 참여한다.[31][2][4][19] 홋카이도에서는 "아이누 소비에트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북방영토 반환 문제 등에서 아이누 민족이 무시당했다고 주장하며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화인(일본인) 500만 명을 학살할 것을 계획한다.[31][5][19]

국제적으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한편,[30][31][5][16][19] 일본적군의 국제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아랍 국가들이 일본으로의 원유 수출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한다.[30][31][2][4][16][19] 이를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ABCD 포위망과 같은 국제적인 "반일 포위망"을 구축하여 일본의 경제를 고립시키고 자멸을 유도한다.[30][31][2][4][16][19]

"일본 멸망" 이후에는 일본인 전체를 대상으로 재판이 열린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일본인은 일제본국인으로서의 "원죄"를 가졌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진다.[32][6][20] 오직 일본인으로서의 민족 의식과 국민 의식을 버리고 반일 투쟁에 동참한 "세계혁명낭인"만이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32][6][12][20] 이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지구상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와 민족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반일망국론의 궁극적인 목표이다.[32][2][6][20] 이는 일본과 일본인이 본질적으로 악하며 평화와 공존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인식에 기반한다.[2]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의 쿠로사와 요시마사 역시 특정 일본 정치 체제가 아닌 일본이라는 존재 자체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3]

4. 비판

신좌파의 영향력이 쇠퇴한 이후, 반일망국론은 기괴한 컬트 집단으로 여겨지며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 주창자인 오오모리 카츠히사는 후에 옥중에서 보수전향하여, 자신이 처음 고안했던 "반일망국론"을 "악마와 같은 사상"이라고 기록하며 강하게 비판했다.[21][9]
  • 언론인 사사키 토시나오는 이 집단 내에서의 생활을 "미친 짓"이라고 묘사했다.[9]
  • 사사키 토시오는 반일망국론에 대해 "광기", "엉뚱한 방향", "더 이상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철학", "괴상한 논리", "마이너리티 빙의"라고 평가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15]
  • 교육학자 모리구치 아키라는 이를 "이상한 감성", "일본인이면서 일본을 저주하는 사상", "반일 폭력 사상"이라고 평했으며, 자기 모순적인 "폭력적인 이념"이라고 비판했다.[10][22]
  •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늑대' 그룹의 리더격인 다이도지 마사시는 자신의 저서에서 "반일을 하나의 것으로 묶을 수는 없다"고 언급하며, 오오모리 카츠히사의 '반일'이 통일된 견해가 아니라고 지적했다.[23]


한편, 반일망국론의 극단적인 이념이 옴진리교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과 같은 다른 테러 사건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11] 이 사건은 출근 시간대 도쿄 메트로 3개 노선에서 발생하여 12명이 사망하고 50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약 1,000명이 일시적인 시력 문제를 겪는 등 큰 피해를 낳았다.[11]

5.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김대중이 구금되었을 때, 일부 일본 좌파 세력은 그의 구출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반일망국론을 따르는 이들은 김대중 구출 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김대중 구출 운동이 마치 "일본은 민주주의를 위한 좋은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일본 우월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보았으며, 이를 원칙적인 침략 행위로 간주했다.[7] 이러한 시각은 당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 및 인권 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한편, 반일망국론과 같은 극단적인 사상이 일본 내 다른 테러 사건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옴진리교가 일으킨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거론된다.[11] 이 사건은 출근 시간대 도쿄 메트로 3개 노선에서 사린 가스를 이용한 화학 테러로, 12명이 사망하고 50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약 1,000명이 일시적인 시력 문제를 겪는 등 큰 피해를 낳았다.[11]

참조

[1] 서적 過激派事件簿40年史 立花書房 2001
[2] 서적 水滸伝-窮民革命のための序説 三一書房 1973
[3] 서적 獄窓からのラブレター-反日革命への戦旅 新泉社 1985
[4] 서적 辺境最深部に向かって退却せよ! 三一書房 1971
[5] 서적 辺境最深部に向かって退却せよ! 三一書房 1971
[6] 서적 革命・情報・認識(よみかきのしかた) 現代書館 1974
[7] 서적 やっていない俺を目撃できるか! 北海道庁爆破犯人デッチ上げ事件 三一書房 1981
[8] 서적 やっていない俺を目撃できるか! 北海道庁爆破犯人デッチ上げ事件 三一書房 1981
[9] 서적 「当事者」の時代 光文社 2012
[10] 서적 なぜ日本の教育は間違うのか ~復興のための教育学~ 扶桑社 2012
[11] 서적 幻想の荒覇吐(アラハバキ)秘史-「東日流外三郡誌」の泥濘 批評社 1999
[12] 서적 過激派事件簿40年史 立花書房 2001
[13] 서적 やっていない俺を目撃できるか! 北海道庁爆破犯人デッチ上げ事件 三一書房 1981
[14] 서적 獄窓からのラブレター-反日革命への戦旅 新泉社 1985
[15] 서적 「当事者」の時代 光文社 2012
[16] 서적 水滸伝-窮民革命のための序説 三一書房 1973
[17] 서적 でもわたしには戦が待っている 斎藤和「東アジア反日武装戦線大地の牙」の軌跡 風塵社 2004
[18] 서적 反日革命宣言 東アジア反日武装戦線の戦闘史 鹿砦社 1979
[19] 서적 辺境最深部に向かって退却せよ! 三一書房 1971
[20] 서적 革命・情報・認識(よみかきのしかた) 現代書館 1974
[21] 웹사이트 私の左翼時代ー洗脳されて革命運動に参加 http://1st.geocities[...]
[22] 서적 なぜ日本の教育は間違うのか ~復興のための教育学~ 扶桑社 2012
[23] 서적 明けの星を見上げて:大道寺将司獄中書簡集 れんが書房新社 1984
[24] 서적 過激派事件簿40年史 立花書房 2001
[25] 서적 やっていない俺を目撃できるか! 北海道庁爆破犯人デッチ上げ事件 三一書房 1981
[26] 서적 獄窓からのラブレター-反日革命への戦旅 新泉社 1985
[27] 서적 「当事者」の時代 光文社 2012
[28] 서적 でもわたしには戦が待っている 斎藤和「東アジア反日武装戦線大地の牙」の軌跡 風塵社 2004
[29] 서적 反日革命宣言 東アジア反日武装戦線の戦闘史 鹿砦社 1979
[30] 서적 水滸伝-窮民革命のための序説 三一書房 1973
[31] 서적 辺境最深部に向かって退却せよ! 三一書房 1971
[32] 서적 革命・情報・認識(よみかきのしかた) 現代書館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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