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통
1. 개요
장통은 낙랑, 대방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로,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전연의 모용외에게 귀부했다. 모용외는 장통을 낙랑군 태수로 임명하고, 장통은 이후 고구려와 교전하며, 319년에는 고구려 장수 여노자를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행적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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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초기 활동과 고구려와의 대립
낙랑·대방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었는데, 고구려가 낙랑을 공격하자 왕준은 낙랑 사람 1,000가구를 데리고 전연의 모용외에게 귀부할 것을 권하였다. 장통은 왕준의 말대로 모용외에게 귀부하여 낙랑태수에 임명되었다.
313년, 장통은 낙랑군과 대방군을 기반으로 고구려와 여러 해 동안 전쟁을 반복했다. 낙랑 사람 왕준이 장통을 설득하여, 이끌던 1천여 가구와 함께 선비 모용부의 모용외에게 귀순했다. 모용외는 낙랑군을 교치하고, 장통을 낙랑군 태수, 왕준을 참군에 임명했다.
이후 장통은 장군에 임명되었다.
319년 12월, 고구려의 장수 여노자가 하성에 주둔했다. 모용외는 장통을 보내 여노자를 기습하게 했다. 장통은 여노자를 사로잡고 1천여 가구를 데리고 돌아오는 전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