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랑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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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 랑글레는 190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2세 때 녹내장으로 실명한 프랑스의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파리 국립 맹아 학교에서 오르간을 배운 후 파리 음악원에서 마르셀 뒤프레, 폴 뒤카 등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945년부터 1988년까지 생 클로틸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며 유럽과 미국에서 연주 활동을 펼쳤다. 254곡의 작품을 작곡했으며, 오르간 음악과 종교 음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 랑글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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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장 프랑수아-아생트 랑글레 3세
출생일1907년 2월 15일
출생지라 퐁트넬 (일에빌렌 주)
사망일1991년 5월 8일
사망지파리
직업작곡가
스타일클래식 음악
언어프랑스어, 브르타뉴어
신앙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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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장 랑글레는 2세 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 파리에 있는 국립 맹아 학교에서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했고, 파리 음악원에서 오르간, 즉흥연주, 작곡을 공부했다. 파리 음악원 졸업 후 국립 맹아 학교와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5년부터 1988년까지 파리의 생 클로틸드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고,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연주 여행을 했다. 그는 화려하고 초인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5월 파리에서 사망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랑글레는 프랑스 몽생미셸 근처의 작은 마을인 라 퐁트넬 (일에빌렌, 브르타뉴)에서 대장장이 장마리조제프 랑글레 2세와 재봉사 플라비 칸토 사이에서 태어났다. 2살 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었고, 파리에 있는 국립 맹아 학교에 보내져 앙드레 마르샬에게서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으로 진학하여 파이프 오르간 분야에서 상을 받았으며 마르셀 뒤프레와 폴 뒤카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그는 또한 샤를 투르네미르에게서 즉흥 연주를 배웠다.

졸업 후 랑글레는 국립 맹아 학교로 돌아와 가르쳤으며, 1961년부터 1976년까지 파리의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서도 가르쳤다. 그의 많은 제자들이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를 포함하여 중요한 음악가가 되었다.

2.2. 교육 활동

랑글레는 국립 맹아 학교를 졸업한 후 그곳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61년부터 1976년까지 파리의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서도 가르쳤다. 그의 제자 중에는 미국의 캐슬린 토머슨 (훗날 랑글레의 전기적 참고 문헌을 출판함)과 네덜란드의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 음악 교육자인 마르그레이트 크르. 데 용 등이 있었으며, 이들을 포함한 많은 제자들이 중요한 음악가가 되었다.

2.3. 오르간 연주자로서의 활동

랑글레는 1945년 세자르 프랑크와 샤를 투르네미르의 뒤를 이어 파리의 생 클로틸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티툴레르가 되었고, 1988년까지 그 자리에 머물면서 오르간 연주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콘서트 오르간 연주자로서 큰 수요를 얻었고,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한 투어를 했다. 1956년 1월부터 3월까지는 그의 세 번째 북미 투어가 진행되었으며, 그는 양쪽 해안에서 연주했다.

2.4. 개인적인 삶과 죽음

랑글레는 프랑스 몽생미셸 근처의 작은 마을인 라 퐁트넬(일에빌렌, 브르타뉴)에서 태어났다. 2살 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었고, 파리에 있는 국립 맹아 학교에 보내져 앙드레 마르샬에게서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아내 자네트는 1972년에 그의 전 제자이자 개인적인 리사이틀 연락 담당자이자 친구인 앤 라분스키에게 랑글레의 전기 장 랑글레, 그의 삶과 음악을 써달라고 부탁했지만, 랑글레가 사망한 지 9년 후인 2000년에 출판되었다. 라분스키는 1991년에 랑글레의 삶과 작품에 대해 박사 논문을 썼고, 다행히도 랑글레가 사망하기 전에 그 일부를 그와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랑글레는 라분스키가 자신의 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를 원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솔직하게 썼고, 이에 불만을 표했다. 라분스키는 때때로 랑글레가 복잡한 인물일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랑글레는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자란 브르타뉴 지역의 영향도 있었는데, 브르타뉴인들은 스스로를 자부심이 강하고 민간 설화를 즐겨 이야기하는 민족으로 여겼다.

랑글레는 파리 15구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두 번째 아내 마리 루이즈 자케-랑글레와 세 자녀 자닌, 클로드, 캐롤라인이 그의 뒤를 이었다. 생 클로틸드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 자리는 자크 타데가 이어받았다.

3. 음악

장 랑글레는 총 254곡의 음악을 작곡한 다작 작곡가이다. 1927년에 발표한 첫 작품 '전주곡과 푸가'와 1990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 '트리오' 모두 오르간 곡일 정도로 오르간 음악과 종교 음악으로 유명하지만, 기악곡과 실내악도 남겼다.

랑글레의 음악은 조성이 자유로우며 화성이 풍부하고 복잡하다. 생트클로틸드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프랑크와 투르네미르의 영향을 받았지만, 때로는 바르토크에게서 영향을 받은 토속적이고 켈트적인 민속성을 보여주는 시리얼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3.1. 작곡 개요

장 랑글레는 작품 번호가 있는 254개의 작품을 작곡한 다작 작곡가이다. 첫 작품은 오르간을 위한 전주곡과 푸가(1927)였으며, 마지막 작품은 또 다른 오르간 작품인 '트리오'(1990)였다. 그는 오르간 음악과 종교 음악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기악곡, 관현악, 실내악 작품과 일부 세속적인 가곡도 작곡했다.

랑글레의 음악은 매우 개성적인 절충주의적 스타일로 쓰여졌으며, 풍부하고 복잡한 화성법과 중첩된 선법을 사용했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음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으며, 그의 동시대 친구이자 동향인 올리비에 메시앙보다 더 조성적일 때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4부분 미사곡인 '장엄 미사'(Messe solennelle)와 '구원송 미사'(Missa Salve Regina), 단성부와 오르간을 위한 '단순 미사'(Missa in simplicitate)와 그의 많은 오르간 작품이 있다.

3.2. 음악적 특징

장 랑글레는 254곡의 작품을 작곡한 다작 작곡가였다. 1927년에 발표한 첫 작품은 오르간 곡 '전주곡과 푸가'였고, 1990년에 작곡한 마지막 작품 역시 오르간 곡 '트리오'였다. 이처럼 오르간 음악과 종교 음악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기악곡과 실내악도 남겼다.

랑글레의 음악은 20세기 중반 프랑스 음악의 특징을 보여주며, 풍부하고 복잡한 화성법과 다선법을 사용한 자유로운 조성이 돋보인다. 동시대 작곡가이자 친구인 올리비에 메시앙보다 더 조성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바르토크의 영향을 받은 토속적이고 켈트적인 민속성을 보여주는 시리얼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시각 장애로 인해 랑글레는 점자를 이용하여 작곡했다. 모든 세부 사항을 생각한 후 점자로 기록하고, 필경사(주로 그의 첫 번째 부인 자넷)에게 음표와 리듬 값을 받아 적게 하여 전체 악보를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장엄 미사곡 (Messe Solennelle)" 등의 미사곡과 피아노곡 "무궁동 (Mouvement perpétuel)"을 꼽을 수 있다.

3.3. 주요 작품

장 랑글레는 작품 번호가 있는 254개의 작품을 작곡한 다작 작곡가이다. 첫 작품은 오르간을 위한 '전주곡과 푸가'(1927)였으며, 마지막 작품은 또 다른 오르간 작품인 '트리오'(1990)였다. 그는 오르간 음악과 종교 합창 음악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수많은 기악, 관현악 및 실내악 작품과 일부 세속적인 가곡도 작곡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4부분 미사곡인 '장엄 미사'(Messe solennelle)와 '구원송 미사'(Missa Salve Regina), 단성부와 오르간을 위한 '단순 미사'(Missa in simplicitate)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많은 오르간 작품이 있다.

* '감사 찬가'(Hymne d'actions de grâces) (세 개의 그레고리오 성가 변주곡에서)
* '탄생'(La nativité) 및 '종려 주일'(Les rameaux) (복음 시)
* '영웅의 노래'(Chant héroïque), '평화의 노래'(Chant de paix), '깊은 곳에서'(De profundis) (아홉 개의 소품에서)
* '키리에 "창조주여"' (Kyrie "Orbis factor") (에큐메니컬 책에서)
* '성스러운 날의 주술'(Incantation pour un jour saint)
* '칸틸레네'(Cantilène (Suite brève))
* '중세 모음곡'(Suite médiévale)
* '민속 모음곡'(Folkloric Suite)
* '성 삼위일체에 대한 세 가지 묵상'(Trois méditations sur la Sainte Trinité)
* '축제'(Fête), 작품 51
* '하모늄 또는 오르간을 위한 24개의 소품'(24 Pieces for harmonium or organ), 작품 6
* '프레스코발디에 대한 헌사'(Hommage à Frescobal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