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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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재벌 해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일본의 군국주의를 근본적으로 궤멸시키기 위해 추진한 정책이다. 1945년 미국 정부의 대일 방침에 따라 일본 상업 및 생산을 지배하던 재벌의 해체를 규정하고, 일본 정부는 4대 재벌을 포함한 기업들의 해체 계획을 수립했다. 지주회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재벌 소유의 유가 증권과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일본 정부에 이관하고, 재벌 가문과 임원들의 산업계 추방, 주식 매각을 통한 경제력 분산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후 독점 금지법 완화와 재벌의 재결집으로 기업 집단이 형성되었으며, 재벌 해체 정책은 미시행 조치와 함께 1952년 강화 조약 발효로 철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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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건과 초기 대응
1945년 9월 22일, 미국 정부는 "항복 후 미국의 초기 대일 방침"에서 "일본 상업 및 생산의 대부분을 지배해 온 산업상 및 금융상의 대규모 결합 해체를 촉진"한다고 규정했다. 연합국은 재벌을 "일본 군국주의를 제도적으로 지원했다"고 인식하고, 재벌 해체를 통해 군국주의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다고 보았다.[1]
초기 일본 정부는 소극적이었으나, 야스다 재벌의 지주회사인 야스다 보젠샤가 10월 15일 자체 해산 방침을 결정하면서 "재벌 해체 불가피" 방향으로 기울었다.[1]
이러한 상황에서 GHQ 경제과학국장 레이먼드 C. 크레이머는 10월 16일 성명을 발표, 일본 측의 자발적인 재벌 해체 노력을 기대하며 GHQ는 이를 지원하겠지만, 일본 측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을 경우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11월 6일 GHQ 최고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본 정부의 재벌 해체 계획안을 승인했고, 11월 23일 칙령 제657호 "회사의 해산의 제한 등에 관한 건"이 공포되면서 재벌 해체가 시작되었다.[1]
1945년 11월 4일, 일본 정부는 야스다 안을 토대로 한 재벌 해체 계획안을 GHQ에 제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1]
- 지주회사가 소유한 유가 증권 및 모든 기업에 대한 소유권, 관리권, 이권을 나타내는 상표를 일본 정부가 설립하는 기관으로 이관한다.
- 이관 재산에 대한 변제는 10년간 양도 및 환매가 금지된 등록 국채로 지급한다.
- 미쓰이, 이와사키(미쓰비시), 스미토모, 야스다 4가 구성원, 지주회사 이사 및 감사의 산업계 추방.
- 지주회사의 산하 기업에 대한 지령권 및 관리권 행사를 금지한다.
11월 6일, GHQ 최고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본 정부 안에 수정 및 실시 시 감독, 검열권 유보를 조건으로 일본 정부 안을 승인했다.
2. 1. 야스다 안과 GHQ의 초기 방침
1945년 9월 22일, 미국 정부는 "항복 후 미국의 초기 대일 방침"에서 "일본 상업 및 생산의 대부분을 지배해 온 산업상 및 금융상의 대규모 결합 해체를 촉진"한다고 규정했다. 연합국은 재벌을 "일본 군국주의를 제도적으로 지원했다"고 인식하고, 재벌 해체를 통해 군국주의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다고 보았다. 초기 일본 정부는 소극적이었으나, 야스다 재벌의 지주회사인 야스다 보젠샤가 10월 15일 자체 해산 방침을 결정하면서 "재벌 해체 불가피" 방향으로 기울었다.[1]이러한 상황에서 GHQ 경제과학국장 레이먼드 C. 크레이머는 10월 16일 성명을 발표, 일본 측의 자발적인 재벌 해체 노력을 기대하며 GHQ는 이를 지원하겠지만, 일본 측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을 경우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11월 6일 GHQ 최고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본 정부의 재벌 해체 계획안을 승인했고, 11월 23일 칙령 제657호 "회사의 해산의 제한 등에 관한 건"이 공포되면서 재벌 해체가 시작되었다.[1]
2. 2. 일본 정부의 재벌 해체 계획안
1945년 11월 4일, 일본 정부는 야스다 안을 토대로 한 재벌 해체 계획안을 GHQ에 제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1]- 지주회사가 소유한 유가 증권 및 모든 기업에 대한 소유권, 관리권, 이권을 나타내는 상표를 일본 정부가 설립하는 기관으로 이관한다.
- 이관 재산에 대한 변제는 10년간 양도 및 환매가 금지된 등록 국채로 지급한다.
- 미쓰이, 이와사키(미쓰비시), 스미토모, 야스다 4가 구성원, 지주회사 이사 및 감사의 산업계 추방.
- 지주회사의 산하 기업에 대한 지령권 및 관리권 행사를 금지한다.
11월 6일, GHQ 최고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본 정부 안에 수정 및 실시 시 감독, 검열권 유보를 조건으로 일본 정부 안을 승인했다.
3. 지주회사정리위원회
1946년 4월 4일, GHQ는 지주회사의 유가 증권 및 증빙을 인수하여 정리하는 지주회사 정리위원회에 대한 일본 정부 안을 승인했다.[2] 4월 20일 관련 법률인 "지주회사 정리위원회령"이 시행되었고, 8월 23일부터 위원회 활동이 시작되었다.[2]
1946년 9월 6일, 내각총리대신은 미쓰이 본사, 미쓰비시 본사, 스미토모 본사, 야스다 보젠샤, 후지 산업 (구 나카지마 비행기)을 1차 지주회사로 지정했다.[2] 지주회사 정리위원회는 이들 5개 회사에 해산을 권고했고, 재벌 해체 정책이 실행에 옮겨졌다. 4대 재벌의 지주회사인 미쓰이 본사 등은 해체 대상으로 예상되었지만, 후지 산업은 군용 항공기 제조사였기 때문에 연합국으로부터 순수 군수 산업으로 인식되어 재벌과는 별도로 해체가 요구되었다.
9월 23일 미쓰비시 본사를 시작으로, 위원회는 지정된 5개 회사에 위원회가 양도받아야 할 재산 내용을 통지했다.[2] 10월 8일부터 10월 29일까지 제1차 유가 증권 양수가 집행되었다. 이때 5개 사로부터 양도받은 유가 증권 총액은 15.8684억엔에 달했고, 이는 5개 사가 보유한 유가 증권 총액의 약 78%에 해당했다.
미쓰이 본사, 미쓰비시 본사, 야스다 보젠샤는 9월 30일 해산하여 위원회의 감독하에 청산에 들어갔다. 현업 부문(임업)을 가지고 있던 스미토모 본사와 후지 산업은 해산이 늦어져 각각 1948년 2월, 1950년 5월에 청산에 들어갔다.[2]
1차 지주회사로 지정된 5개 회사는 다음과 같다.
- 미쓰이 본사 주식회사
- 미쓰비시 본사 주식회사
- 스미토모 본사 주식회사
- 합명 회사 야스다 보젠샤 (현 야스다 부동산)
- 후지 산업 주식회사 (구 나카지마 비행기)
3. 1. 지주회사정리위원회의 발족
1946년 4월 4일, GHQ는 지주회사의 유가 증권·증빙을 인수하여 정리하는 지주회사 정리위원회에 대한 일본 정부 안을 승인했다.[2] 4월 20일 관련 법률인 "지주회사 정리위원회령"이 시행되었고, 5월 7일 설립 총회, 8월 8일 정관 인가와 위원 임명을 거쳐 8월 23일부터 위원회 활동이 시작되었다.[2]3. 2. 1차 지주회사 지정과 해체
1946년 9월 6일, 내각총리대신은 미쓰이 본사, 미쓰비시 본사, 스미토모 본사, 야스다 보젠샤, 후지 산업 (구 나카지마 비행기)을 1차 지주회사로 지정했다.[2] 이에 따라 지주회사 정리위원회는 이들 5개 회사에 해산을 권고했고, 재벌 해체 정책이 실행에 옮겨졌다.4대 재벌의 지주회사인 미쓰이 본사 등은 "초기 대일 방침"이 나왔을 때부터 해체 대상으로 예상되었다. 반면, 후지 산업은 군용 항공기 제조사였고,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모든 생산 시설과 사원이 제1군수 공창으로 일본 정부에 접수·징용되었던 사정이 있었다. 이 때문에 연합국으로부터 순수 군수 산업으로 인식되었고, GHQ는 재벌과는 별도로 후지 산업의 해체를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9월 23일 미쓰비시 본사를 시작으로, 위원회는 지정된 5개 회사에 위원회가 양도받아야 할 재산 내용을 통지했다.[2] 10월 8일 (미쓰이 본사, 미쓰비시 본사), 10월 16일 (스미토모 본사), 10월 29일 (야스다 보젠샤, 후지 산업)에 걸쳐 제1차 유가 증권 양수가 집행되었다. 이때 5개 사로부터 양도받은 유가 증권 총액은 15.8684억엔에 달했고, 이는 5개 사가 보유한 유가 증권 총액의 약 78%에 해당했다.
이와 동시에 5개 회사에 대한 해산 권고도 이루어졌다. 미쓰이 본사, 미쓰비시 본사, 야스다 보젠샤는 9월 30일 해산하여 위원회의 감독하에 청산에 들어갔다. 현업 부문(임업)을 가지고 있던 스미토모 본사와 후지 산업은 해산이 늦어져 각각 1948년 2월, 1950년 5월에 청산에 들어갔다.[2] 후지 산업의 해산이 늦어진 이유는 재벌에 앞서 해체 계획이 세워졌고, 당초 GHQ는 보유 주식 처분을 위원회가 아닌 회사 자체에서 하도록 하는 방침이었으며, 정리에 있어서 공장별 분할을 요구하는 회사 측과 더 적은 수의 분할을 제안한 위원회 측 간의 대립이 있었고, 전시 보상 특별세 관계의 특별 손실 계상을 둘러싸고 세무 당국에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1차 지주회사로 지정된 5개 회사는 다음과 같다.
- 미쓰이 본사 주식회사
- 미쓰비시 본사 주식회사
- 스미토모 본사 주식회사
- 합명 회사 야스다 보젠샤 (현 야스다 부동산)
- 후지 산업 주식회사 (구 나카지마 비행기)
4. 주식 민주화와 경제력 분산
GHQ는 재벌 소유 주식을 일반 대중에게 매각하여 경제력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이 주식 매각은 종업원, 지역 주민, 그리고 입찰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본 은행의 자금 지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4]。
1947년 6월부터 1951년 6월까지 증권 처리 조정 협의회(Securities Coordinating Liquidation Committee)는 총 141억 엔의 주식을 매각했다. 이 주식들은 지주 회사 정리 위원회령, 회사 증권 보유 제한령, 폐쇄 기관 정리 위원회령 등에 근거한 것이었다. 특히 1949년에 매각된 주식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4]。
매수자 구성을 1950년 3월까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 비율 |
---|---|
종업원 | 38.5% |
입찰 | 23.3% |
매각 | 27.7% |
56명의 재벌 가족이 소유했던 주식 2억 2300만 주 중 7%가 약 15만 명의 종업원 및 지역 주민에게 분산되었다. 매각 대금은 구 소유자에게 반환되었으며, 이 중 62.51%는 구 채무 상환에, 12.13%는 조세 공과 지불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제국 은행은 미쓰이 본사에 대한 대출을 회수할 수 있었고, 다른 재벌 계열 은행들도 부실 채권을 성공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4]。
1949년 독점 금지법 제10조가 개정되어, 금융업 이외의 회사도 라이벌 회사가 아니면 주식 및 사채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5]。
개인의 주식 보유 비율은 1949년 말에 최고치를 기록한 후, 도지 라인의 영향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유출된 주식은 금융 기관과 사업 법인으로 이동했으며, 구 재벌 은행을 중심으로 주식의 상호 보유가 재편되었다. 이는 역 코스에 의해 재벌 해체가 주식회사 제도를 인정한 후의 유상 주식 분산이 되었기 때문이었다[4]。
5. 독점금지법과 그 이후
1946년 12월 7일, 일본 정부는 4대 재벌에 이은 규모의 재벌이나 신흥 콘체른 등의 지주회사, 트러스트, 각 산업에서 독점·과점적 지위에 있던 기업 40개 사를 지정했다.[14]
- 지주회사
- 오쿠라 광업 주식회사(오쿠라 재벌): 건설·시멘트 사업 부문을 토키와 개발로 분사했다. 재산을 계승한 중앙 건물 주식회사가 후계 회사이며, 현재도 구 오쿠라 재벌 계열 기업의 주주로 존재한다.[14]
- 아사노 본사 주식회사(아사노 재벌)
- 후루카와 광업 주식회사(후루카와 재벌): 일본 경금속 등을 분사했다.
- 시부사와 동족 주식회사(시부사와 재벌)
- 노무라 합명 회사(노무라 재벌): 현재의 노무라 식산.
- 주식회사 닛산(닛산 콘체른): 일본 산업과는 별도 회사이지만 동사를 계승하는 지주 회사로 지정되었다.
- 일본 조다 주식회사(닛소 콘체른)
- 리켄 공업 주식회사(이화학연구소 콘체른): 리켄 피스톤 링, 리켄 제강(현 다이도 특수강 그룹), 리켄 계기, 리켄 전선, 오지 제철(전 다이도 특수강 산하→신일본제철 산하→신닛테츠 스미킨 산하), 리켄 강재(→리켄 강기→토요코 리켄→엘고텍) 등 11개 회사를 설립했다.
- 일본 질소 비료 주식회사(닛치 콘체른): 후의 신일본 질소 비료(현: 칫소 및 JNC).
- 쇼와 전공 주식회사(모리 콘체른): 쇼와 고분자, 쇼와 알루미늄 등을 분사했다.
- 오키 전기 증권 주식회사(오키 전기의 자회사, 야스다 산하)
- 트러스트, 독점·과점적 기업
- 전력: 1937년 9월 일본 전력에 관해서는 필두 주주인 닛덴 증권을 제외하고는 여러 생명보험이 참가했다.[16]
- 일본 발송전 주식회사: 1949년 11월 설립된 전기 사업 재편 심의회(위원장·마쓰나가 야자에몬)의 답변에 따라 홋카이도, 도호쿠, 도쿄, 호쿠리쿠, 주부, 간사이, 주고쿠, 시코쿠, 규슈 등 9개 전력 회사로 분할되었다.
- 조선·중기계
- 가와사키 중공업 주식회사(고베 가와사키 재벌, 단, 지정 당시에는 미쓰비시 산하): 제철(→가와사키 제철, 현: JFE 스틸), 항공·방위(→가와사키 항공기, 후에 본체로 흡수 합병, 단 항공 기기 관련 부문은 일본 항공기로 분리 독립), 철도 차량(→가와사키 차량 제조, 후에 본체로 흡수 합병), 중전(→가와사키 전기 제조, 후에 후지 전기 제조로 흡수 합병) 부문을 각각 분리 독립시켰다.
- 전기 기기
- 주식회사 히타치 제작소(닛산): 히타치 금속, 히타치 전선(현재는 히타치 금속에 흡수), 히타치 화성 공업(히타치 화성→현: 레조낙) 등을 분사하고, 히타치 조선을 그룹에서 분리시켰다.
- 마쓰시타 전기 산업 주식회사: 파나소닉과 마쓰시타 전공(현재는 파나소닉에 재흡수)으로 해체되었다.
- 도쿄 시바우라 전기 주식회사(미쓰이): 도시바 탄가로이(현: 탄가로이), 시바우라 기계, 니시시바 전기, 도시바 강관(현: 닛테쓰 강관), 쇼와 전선 홀딩스 등을 분리했다.
- 오키 전기 주식회사(야스다): 오키 윈테크, 오키 전선 등을 분리했다. 단, 산하에 있던 증권 자회사는 해체되었다.
- 일본 무선 주식회사(오쿠라): 나가노 일본 무선 및 신일본 무선 등을 분리했다. 후에 닛신보(네즈)의 실질 산하에 들어갔다.
- 화학
- 닛산 화학 공업 주식회사(닛산): 일본 유지(닛산·야스다), 제국 섬유(야스다), 도호 레이온(야스다, 닛신보→테이진 계열, 현: 도호 테낙스)을 분할·설립했다.
- 제철
- 일본 제철 주식회사: 야하타 제철, 후지 제철, 하리마 내화 벽돌(현: 구로사키 하리마), 닛테쓰 기선(현: NS 유나이티드 해운)으로 분할되었다. 야하타 제철·후지 제철은 후에 합병하여 신일본 제철(현: 일본 제철)이 되었다.
- 주식회사 고베 제강소(구스즈키 상점 계열): 신코 전기(현: 심포니아 테크놀로지), 신코 조기, 나브테스코 등을 분리했다.
- 제지
- (초대) 오지 제지 주식회사(미쓰이): 도마코마이 제지·혼슈 제지(현재는 오지 홀딩스)·일본 제지 3사로 해체되었다.
- 광산
- 제국 광업 개발 주식회사: 제국 석유(현: 국제 석유 개발 제석), 석유 자원 개발 등으로 분열되었다. 광산 부문은 대부분 기존 광산 회사에 반환되었고, 독자 개발 광산을 바탕으로 신광업 개발 주식회사가 발족했지만 1971년에 경영 파탄했다.
- 해운
- 일본 유선 주식회사(미쓰비시)
- 오사카 상선 주식회사(스미토모)
- 야마시타 기선 주식회사(야마시타 재벌)
- 섬유
- 다이켄 산업 주식회사(이토추 재벌): 이토추 상사, 마루베니, 구레하 방적(도요 방적으로 흡수 합병), 아마테이, 다이켄 공업, 크레하로 해체되었다.
- 도요 방적 주식회사(현: 도요 방적): 구 다이켄 산업 계열의 구레하 방적을 합병했다. 구레하 화학은 후요 그룹의 지원을 받아 재생되었다.
- 후지 가스 방적 주식회사(현: 후지보 홀딩스)
- 가네보 방적 주식회사(현: 크라시에 홀딩스): 화장품 부문은 가네보 화장품(구: 가네보 부티크)으로 분리, 가오로 매각되었다.
- 다이닛폰 방적 주식회사: 니치보(현: 유니치카)가 데라다 재벌 계열의 기시와다 방적을 흡수 합병, 데라다 방적과 오츠 타이어가 계열에 가입했다(단, 오츠 타이어는 스미토모 고무가 매수, 자동차용 타이어 사업을 통합하여 던롭 팔켄 타이어가 됨).
- 군제 공업 주식회사(현: 군제): 군제 산업(현: GSI 크레오스), 군제 고분자를 분리했다.
- 내외면 주식회사(현: 신 내외면): 구 시키시마 방적이 매수했다.
- 닛신보 방적 주식회사: 일본 무선과 자본·업무 제휴를 맺었다. 도호 레이온(현: 도호 테낙스, 현재는 테이진의 핵심 사업 자회사)을 자회사로 한 경위가 있다.
- 제국 인조 견사 주식회사(현: 테이진, 구 스즈키 상점 계열): 기계 부문을 테이진 제기(후에 나브코와 통합, 현재는 나브테스코)로 분사했다.
- 다이와 방적 주식회사
- 시키시마 방적 주식회사(현: 시키보): 구 내외면을 신 내외면으로 자회사화했다.
- 일본 모직 주식회사(가와니시 재벌): 고베 생사(도산) 등을 분리했다.
- 구라시키 방적 주식회사: 레이온 사업을 구라레로 분리했다.
- 가타쿠라 공업 주식회사: 가타쿠라 칫카린(현: 가타쿠라 코프 아그리, 마루베니 계열) 등을 분리했다.
1946년 12월 28일, 재벌 산하로 각 산업에서 독점·과점적 지위에 있으며 1차·2차 지정 대상이 되지 않은 기업 20개 사가 추가 지정되었다.
- 미쓰이 계열
- 미쓰이광산 주식회사: 비철금속 부문을 미쓰이금속광업으로 분사했다.
- 홋카이도 탄광 기선 주식회사
- 미쓰이물산 주식회사: 중소 상사로 해체되었지만, 후에 재통합되었다.
- 미쓰이화학공업 주식회사(현: 미쓰이 화학)
- 미쓰이선박 주식회사(현: 쇼센 미쓰이)
- 미쓰비시 계열
-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3개 지역별 회사로 해체했지만, 1964년에 재통합되었다.
- 미쓰비시광업 주식회사: 타이헤이광업·미쓰비시광업으로 분할되었지만, 1990년에 미쓰비시 머티리얼로 재통합되었다.
- 미쓰비시전기 주식회사
- 미쓰비시화성공업 주식회사(후의 미쓰비시 화학): 아사히유리(현: AGC), 신코 레이온(후의 미쓰비시 레이온)을 분리했다. 2017년에 미쓰비시화학·미쓰비시 레이온·미쓰비시 수지가 합병하여 미쓰비시 케미컬이 되었다.
- 미쓰비시상사 주식회사: 중소 상사로 해체되었지만, 후에 재통합되었다(단, 세이카 산업, 도쿄 산업, 금속 상사(현: 미쓰비시 상사 RtM 재팬), 메이와 산업, 동아무역(현: 신동아무역, 가네마쓰의 자회사) 등은 존속했고, 동서무역은 자본 독립).
- 스미토모 계열
- 후소금속공업 주식회사(현: 일본제철): 나루미 도기, 스미토모 경금속 공업(현: UACJ), 스미토모 정밀공업, 스미토모 특수금속(현: 히타치금속NEOMAX 컴퍼니)을 분리·설립했다.
- 일본 전기 주식회사: 브라운관용 유리 사업을 일본 전기유리에 사업 승계했다.
- 닛신화학공업 주식회사(현: 스미토모 화학)
- 스미토모 전기공업 주식회사
- 이이카 광업 주식회사(현: 스미이시 머티리얼즈): 비철금속 제련 사업을 스미토모 금속광산으로 분리·설립했다.
- 후루카와 계열
- 후루카와 전기공업 주식회사: 일본 제온, 후지전기, 후루카와 전지 등을 분사했다.
- 아사노 계열
- 일본강관 주식회사(현: JFE 엔지니어링)
- 아사노물산 주식회사(아사노 재벌의 상사, 후에 마루베니에 흡수 합병)
- 닛산 계열
- 일본광업 주식회사(현: ENEOS): 탄광 부문을 일본탄광으로 분사했다.
- 오쿠라 계열
- 내외통상 주식회사: 구 오쿠라 상사와 상호 변경했지만, 헤이세이 불황으로 자기 파산했다.
1947년 7월 3일, GHQ는 일본 정부에 미쓰이물산과 미쓰비시상사에 대해 더 엄격한 정리 조치를 요구하는 각서를 전달했다.[17]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미쓰이물산·미쓰비시상사의 해산·청산을 즉시 시작한다.
- 7월 3일 이후, 위원회의 허가 없는 상거래·자산 양도를 금지한다.
- 과거 10년 동안 양사의 임원 등은 2명 이상, 종업원은 100명 이상 동일 회사에 재직하거나 회사 설립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 양사의 임원 또는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는 양사가 사용하던 사무실 사용을 금지한다.
- "미쓰이물산", "미쓰비시상사" 또는 유사한 상호 사용을 금지한다.
- 양사는 모든 자산 목록을 작성하여 위원회에 제출하고, 모든 장부·기록을 보존해야 한다.
- 양사의 모든 자산은 공개 시장 매각 등 공정한 방법으로 처분한다.[17]
7월 5일, 위원회는 양사 해체로 인한 경제적 혼란을 막기 위해 대장성, 일본 은행, 상공성, 무역청과 협력하여 기존 계약에 따른 거래는 계속 허가하고, 관련 자금 조달을 지원했다. 양사 해체는 7월 6일에 보도되었지만, 위원회의 신속한 조치로 혼란은 피할 수 있었다.
위원회는 특수 청산부를 설치하여 양사의 청산 작업을 진행했다. 채권 회수와 부동산 처분에 어려움을 겪자, 1950년 3월 1일 미쓰이물산을 승계하는 닛토 창고 건물, 4월 1일 미쓰비시상사를 계승하는 광화실업을 설립하여 2대 상사의 해체를 완료했다.
5. 1. 독점금지법 제정과 완화
1947년 일본에서 독점금지법이 제정되어 기업 간 상호 주식 소유가 제한되었다.[17] 1949년에는 독점금지법이 완화되어 경쟁 관계가 아닌 회사 간의 주식 소유는 허용되었다.[17]5. 2. 재벌의 재결집과 기업 집단의 형성
1952년 그린메일러인 후지쓰나 규지로가 요와 부동산의 35%를 매점하자, 미쓰비시 그룹은 전후 처음으로 재결집하여 모든 주식을 최고가로 사들였다.[7] 1953년 8월, 독점금지법 제10조, 제11조(금융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주식 보유 제한), 제13조(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 간의 임원 겸임 금지), 제14조(회사 이외의 자에 의한 주식 보유 제한)가 철폐되었다.[7] 1954년 7월, 구 미쓰비시 상사 130개사가 대합동을 달성했지만, 12월에 4배 가까운 대폭 증자로 완전 부활을 이루었다.[7]금융기관과 사업 법인의 경계와는 상관없이, 재벌별로 주식을 서로 보유하게 되었고, 전전의 이류 이하의 재벌이나 신흥 콘체른도 계열 융자를 받으면서 주식 상호 보유에 참여해 갔다.[7] 후지 은행은 구 야스다 계열(도호 레이온, 일본정공, 오키 전기 등)이나 구 아사노 계열(일본강관, 일본 시멘트 등), 구 모리 계열(쇼와 전공)을 중심으로, 더 나아가 구 닛산 계열 중 닛산 자동차, 닛산 화학, 일본 유지 등에 접근하여, 계열 융자를 하면서, 이들과의 주식 상호 보유를 진행했다.[7] 제일 은행은 구 시부사와 계열의 IHI, 기차제조를 시작으로, 전전부터 깊은 관계가 있었던 고가 재벌, 가와사키 계열(가와사키 중공업 등), 고베 제강 계열, 후지야마 계열에도 동일한 관계를 구축했다.[7] 산와 은행은 전전부터 밀접했던 다이닛폰 방적, 다이와 방적, 제국인견, 히타치 조선, 신일본 기선, 도요 전기, 도요 베어링, 나카야마 제강, 다이하쓰, 이와이 산업 등에도 역시 동일한 관계를 구축했다.[7]
6. 지정 지주회사 목록
1946년 9월 6일, 미쓰이 본사 주식회사, 미쓰비시 본사 주식회사, 스미토모 본사 주식회사, 합명 회사 야스다 보젠샤(현: 야스다 부동산), 후지 산업 주식회사(구: 나카지마 비행기) 등 5개 회사가 지주회사로 지정되었다(제1차 지정).[2] 이들 회사는 지주회사 정리위원회의 해산 권고를 받고 해산 절차를 밟았다. 스미토모 본사와 후지 산업은 각각 1948년 2월, 1950년 5월에 청산에 들어갔다.[1]
1946년 12월에는 三井鉱山일본어, 홋카이도 탄광 기선, 三井物産일본어, 미쓰비시 중공업 등 20개사가, 1947년 3월에는 국제전기통신과 일본전신전화공사가 추가로 지정되었다.[2]
1947년 9월 26일에는 지방 재벌 및 소규모 재벌을 대상으로 아래의 16개사가 추가 지정되었다.[2]
회사명 | 주요 계열사 및 설명 |
---|---|
오하라 합자회사 | 구라시키 방적의 지주 회사 |
주식회사 하야시카네 상점 | 다이요 어업의 지주 회사 |
이시하라 합명회사 | 이시하라 산업의 지주 회사 |
토요타 산업 주식회사 | 토요타 자동직기·토요타 자동차의 지주 회사 |
테라다 합명회사 | 테라다 재벌 |
합자회사 진마 혼케 상점 | 일본 술 하쿠시카 제조, 진마 재벌 |
야마시타 주식회사 | 야마시타 재벌 |
다이와 식산 합자회사 | 타케다 약품공업의 지주 회사 |
간토 흥업 주식회사 | 일본 석유 창업자 일족의 지주 회사 |
주식회사 오카자키 본점 | 오카자키 재벌 |
주식회사 정덕회 | 도쿄 가와사키 재벌, 후의 가와사키 정덕 주식회사 |
스즈키 삼영 주식회사 | 아지노모토·산라쿠 양조의 지주 회사 |
핫토리 합자회사 | 핫토리 시계점의 지주 회사 |
와카사 흥업 주식회사 | 쇼와 전공의 지주 회사 |
공동 흥업 주식회사 | 아사노 재벌의 증권 보유 회사 |
합명회사 우시쿠라조 |
6. 1. 1차 지정 (1946년 9월)
1946년 9월 6일, 5개 회사가 지정되었다. 현업 부문(임업)을 가지고 있던 스미토모 본사와 후지 산업은 해산이 늦어져 각각 1948년 2월, 1950년 5월에 청산에 들어갔다.[1] 후지 산업의 해산이 늦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1]- 재벌에 앞서 해체 계획이 입안되었다.
- 당초 GHQ는 보유 주식 처분을 위원회가 아닌 회사 자체에서 하도록 하는 방침이었다.
- 정리 과정에서 공장별 분할을 요구하는 회사 측과, 더 적은 수의 분할을 제안한 위원회 측 간의 대립이 있었다.
- 전시 보상 특별세 관계의 특별 손실 계상을 둘러싸고 세무 당국에 소송을 제기했다.
해체 대상 기업은 다음과 같다.[1]
- 미쓰이 본사 주식회사
- 미쓰비시 본사 주식회사
- 스미토모 본사 주식회사
- 합명 회사 야스다 보젠샤 (현: 야스다 부동산)
- 후지 산업 주식회사 (구: 나카지마 비행기)
6. 2. 2차 지정 (1946년 12월)
1946년 9월 6일, 내각총리대신은 미쓰이 본사, 미쓰비시 본사, 스미토모 본사, 야스다 보젠샤, 후지 산업 (구 나카지마 비행기)을 지주회사로 지정했다(제1차 지정). 이에 따라 지주회사 정리위원회는 5개 사에 해산을 권고했고, 재벌 해체 정책이 실행에 옮겨졌다.[2]4대 재벌의 지주회사인 미쓰이 본사 등은 "초기 대일 방침"이 나왔을 때부터 내외에서 해체 대상으로 예상되었다. 반면 후지 산업은 군용 항공기 제조사였고,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모든 생산 시설·사원이 제1군수 공창으로 일본 정부에 접수·징용되었던 사정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연합국은 후지 산업을 순수 군수 산업으로 인식했고, GHQ는 재벌과는 별도로 후지 산업의 해체를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9월 23일 미쓰비시 본사를 시작으로, 위원회는 지정된 5개 사에 위원회가 양도받아야 할 재산 내용을 통지했다. 10월 8일(미쓰이 본사, 미쓰비시 본사), 10월 16일(스미토모 본사), 10월 29일(야스다 보젠샤, 후지 산업)의 3차례에 걸쳐 제1차 유가 증권 양수가 집행되었다. 이때 5개 사로부터 양도받은 유가 증권 총액은 15억엔에 달했고, 이는 5개 사가 보유한 유가 증권 총액의 약 78%에 달했다.
이와 병행하여 5개 사에 대한 해산 권고도 이루어졌고, 미쓰이 본사, 미쓰비시 본사, 야스다 보젠샤는 9월 30일 해산하여 위원회의 감독하에 청산에 들어갔다. 11월에는 '회사 증권 보유 제한령'(회사의 증권 보유 제한 등에 관한 칙령)이 발표되었다.
6. 3. 3차 지정 (1946년 12월)
三井鉱山일본어, 홋카이도 탄광 기선, 三井物産일본어, 미쓰비시 중공업 등 20개사가 지정되었다.[2]6. 4. 4차 지정 (1947년 3월)
1947년 3월 15일에 지정되었다. 전기 통신 시설의 국유화 정책에 근거한 것으로, 편의상 지주 회사 정리 위원회의 소관으로 하였다. 대상 기업은 다음과 같다.6. 5. 5차 지정 (1947년 9월)
1947년 9월 26일, 이른바 지방 재벌·소규모 재벌을 대상으로 16개사가 지정되었다.[2]회사명 | 주요 계열사 및 설명 |
---|---|
오하라 합자회사 | 구라시키 방적의 지주 회사 |
주식회사 하야시카네 상점 | 다이요 어업의 지주 회사 → 상사 부문 등은 다이토 통상으로 승계. 그룹 산하에 있던 북일본 석유는 현재 코스모 석유 계열의 석유 상사가 됨. |
이시하라 합명회사 | 이시하라 산업의 지주 회사 |
토요타 산업 주식회사 | 토요타 자동직기·토요타 자동차의 지주 회사 |
테라다 합명회사 | 테라다 재벌 |
합자회사 진마 혼케 상점 | 일본 술 하쿠시카의 제조원·진마 재벌 |
야마시타 주식회사 | 야마시타 재벌 |
다이와 식산 합자회사 | 타케다 약품공업의 지주 회사 |
간토 흥업 주식회사 | 일본 석유 창업자 일족의 지주 회사 |
주식회사 오카자키 본점 | 오카자키 재벌 |
주식회사 정덕회 | 도쿄 가와사키 재벌, 후의 가와사키 정덕 주식회사 |
스즈키 삼영 주식회사 | 아지노모토·산라쿠 양조의 지주 회사 |
핫토리 합자회사 | 핫토리 시계점의 지주 회사 → 후에 제2 정공사 및 세이코 전자 공업을 분사화. |
와카사 흥업 주식회사 | 쇼와 전공의 지주 회사 |
공동 흥업 주식회사 | 아사노 재벌의 증권 보유 회사 |
합명회사 우시쿠라조 |
7. 미시행 조치
1949년 9월, 지주회사 정리 위원회는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에 대해 상호·상표 사용을 1950년 7월 1일 이후 7년 동안 금지한다는 통지를 했지만, 시행은 나중에 연기되었고, 1952년 강화 조약 발효와 함께 철폐되었다.[18]
참조
[1]
서적
独占禁止政策二十年史
公正取引委員会
1968
[2]
간행물
持株会社整理委員会業務報告第一号
持株会社整理委員会
1946-12-31
[3]
서적
東京証券取引所50年史
東京証券取引所
2002
[4]
서적
証券百年史
日本経済新聞社
1978
[5]
서적
奥村
[6]
서적
奥村
[7]
서적
奥村
[8]
서적
奥村
[9]
서적
奥村
[10]
서적
奥村
[11]
서적
奥村
[12]
서적
奥村
[13]
서적
奥村
[14]
웹사이트
中央建物株式会社 会社概要
http://chuobuilding.[...]
[15]
서적
三井・三菱の百年
[16]
서적
電力コンツェルン読本
1937
[17]
논문
財閥発達史序説(4)「財閥解体」と再編成(2)
[18]
웹사이트
三井財閥の解体(後編)
https://www.mitsuipr[...]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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