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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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기영은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로, 청석고등학교 시절 전국대회 6관왕을 차지하고 경기대학교에서 국내 최강으로 활약했다. 1993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으며, 1995년과 1997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2연패와 3연패를 달성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은퇴 후에는 용인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
광주 유도 강연회 당시의 전기영(광주, 2015년)
| 원어명 | 전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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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Jeon Gi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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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표기 | 全己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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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큔-라이샤워 표기 | Chŏn Kiyŏ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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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일 표기 | Cen Kiye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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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표기 | Jeon Ki-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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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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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73년 7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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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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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 | 179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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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중 | 86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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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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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급 | 미들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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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팀 | 한국마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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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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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해밀턴 | 금메달 (-78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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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 지바 | 금메달 (-86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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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파리 | 금메달 (-86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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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 뉴델리 | 금메달 (-86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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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 호찌민 | 동메달 (-86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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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상하이 | 금메달 (-78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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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부산 | 은메달 (-86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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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전기영은 1993년 해밀턴 세계 선수권에서 요시다 히데히코를 꺾고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는 체중 조절 문제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1995년 지바 세계 선수권에서 2연패와 2체급 석권을 달성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 1997년 파리 세계 선수권에서 3연패를 달성하며 한국 유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주특기는 업어치기, 안다리걸기, 밭다리걸기이다.
2003년 안토니오 이노키로부터 요시다 히데히코와의 이종격투기 시합 제안을 받았지만, "그쪽 방면으로 진출할 생각은 없다"라며 거절했다.
2.1. 초기 경력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으로, 청주 대성중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유도를 시작하였다. 청석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국대회 6관왕에 올랐으며 경기대학교 진학 후 동체급 국내 최강으로 떠올랐다.
1993년 2월 파리 오픈 78kg 급에서 윤동식을 결승에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같은 해 7월 대표선발전에서 1991년 세계 유도 챔피언 김병주, 윤동식과 치열한 3파전을 벌인 끝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10월 캐나다 해밀턴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요시다 히데히코와 맞붙어 경기 종료 30초 전 업어치기 절반을 따내어 승리, 생애 첫 번째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평소 체중이 85kg을 상회하여 체중 조절에 애를 먹으면서 1994년에는 맞수 윤동식에게 대표 자리를 내주고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지 못하였다. 이후 86kg으로 체급을 올려 다시 대표에 선발, 1995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5경기 연속 한판승을 기록하면서 대회 2연패와 2체급 석권을 동시에 달성하였다. 결승전에서는 요시다 히데히코와 또다시 맞붙었는데, 경기 시작 2분 46초 경 왼쪽 업어치기에 이은 왼쪽 밭다리후리기로 요시다를 매트에 꽂으며 한판승을 이끌어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1회전에서 네덜란드의 강자 마르크 하위징아에게 거둔 3-0 판정승을 제외한 나머지 네 경기 모두 한판승을 거두면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초반 3연속 한판승을 거두는 등 상대 선수들을 여유 있게 압도하며 금메달을 획득, 대회 3연패의 대기록을 세웠다. 1993년 세계 선수권 결승에서 올림픽 챔피언인 요시다 히데히코가 허리를 부상당해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20세의 나이로 요시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국내 예선에서 윤동식에게 패하여 아시아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1995년에는 이전 78kg급에서 86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세계 선수권 대표가 되었고, 세계 선수권 결승에서 역시 체급을 올린 요시다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2체급 제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7년 세계 선수권에서 3연패를 달성했으며, 방어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 국제 대회에서는 종종 패했지만 세계 대회에서는 확실하게 준비하여 결과를 남겼다. 주특기는 업어치기, 안다리걸기, 밭다리걸기이다.
2.2. 국제 무대 활약
1993년 2월 파리 오픈 78kg 급에서 윤동식을 결승에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주목받기 시작했고, 같은 해 7월 대표 선발전에서 1991년 세계 유도 챔피언 김병주, 윤동식과 치열한 3파전을 벌인 끝에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0월 캐나다 해밀턴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다. 결승전에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요시다 히데히코와 맞붙어 경기 종료 30초 전 업어치기 절반을 따내어 승리, 생애 첫 번째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평소 체중이 85kg을 넘어 체중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1994년에는 맞수 윤동식에게 대표 자리를 내주고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86kg으로 체급을 올려 다시 대표로 선발되었고, 1995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5경기 연속 한판승을 기록하며 대회 2연패와 2체급 석권을 동시에 달성하였다. 결승전에서는 요시다 히데히코와 다시 맞붙었는데, 경기 시작 2분 46초경 왼쪽 업어치기에 이은 왼쪽 밭다리후리기로 요시다를 매트에 꽂으며 한판승을 이끌어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1회전에서 네덜란드의 강자 마르크 하위징아에게 거둔 3-0 판정승을 제외한 나머지 네 경기 모두 한판승을 거두면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초반 3연속 한판승을 거두는 등 상대 선수들을 여유 있게 압도하며 금메달을 획득, 대회 3연패의 대기록을 세웠다. 1993년 세계 선수권 결승에서 올림픽 챔피언인 요시다 히데히코가 허리를 다쳐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20세의 나이로 요시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국내 예선에서 윤동식에게 패하여 아시아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1995년에는 이전 78kg급에서 86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세계 선수권 대표가 되었고, 세계 선수권 결승에서 역시 체급을 올린 요시다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2체급 제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1997년에는 세계 선수권에서 3연패를 달성했으며, 방어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 국제 대회에서는 종종 패했지만 세계 대회에서는 확실하게 준비하여 결과를 남겼다.
3. 은퇴 후
1999년 한국마사회에서 은퇴한 후 2003년 경기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005년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이는 1953년 개교 후 51년 만에 처음으로 비 용인대 출신이 유도학과 교수에 임용된 기록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과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했다.
4. 기타
* 2016년 형 ... 유도 해설자 역
* 1993년 세계 선수권 결승에서 올림픽 챔피언인 요시다 히데히코를 20세의 나이로 꺾고 우승했다. 당시 요시다는 허리를 부상당해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이듬해 국내 예선에서 윤동식에게 패하여 아시아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 1995년에는 78kg급에서 86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세계 선수권 대표가 되었고, 결승에서 요시다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2체급 제패를 달성했다.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 1997년 세계 선수권에서 3연패를 달성했다.
* 방어는 약한 편이라 국제 대회에서는 종종 패했지만, 세계 대회에서는 확실하게 준비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
* 2012년 현재, 한국 유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 주특기는 업어치기, 안다리걸기, 밭다리걸기이다.
* 2003년 안토니오 이노키로부터 요시다와의 이종격투기 시합 제안을 받았지만, "그쪽 방면으로 진출할 생각은 없다"라며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