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덕기
1. 개요
전덕기는 한성부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목사였다. 독립 협회 서무부에서 활동하며 이동녕,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 운동에 참여했고, 공옥학교 교사 및 신민회 결성을 통해 교육 및 민족운동에도 헌신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지원했으며, 메서디스트 교회 목사 안수를 받고 담임 목사로 활동했다. 1912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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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
이상설
이상설은 대한제국 시기의 독립운동가로, 성균관 교수와 탁지부 재무관을 역임하며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독립을 호소하고,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
이회영 -
이석영 (독립운동가)
이석영은 조선 말기 이조판서 이유승의 아들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전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에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 장교 양성에 기여했으나, 자금 고갈 후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
감리교신학대학교 동문 -
이윤영 (1890년)
3·1 운동 참여, 신사참배 저항 등의 활동을 한 일제강점기 목사이자 교육자이며 해방 후 조선민주당 창당, 제헌 국회의원, 무임소장관, 사회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신흥대학 학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
감리교신학대학교 동문 -
현순
현순은 하와이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3·1 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무부 및 내무부 차장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외교 활동과 임시정부 재정 지원을 위한 모금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자 목사이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한성부 출신으로, 독립 협회 서무부에서 일하며 이동녕, 이승만, 박용만 등과 함께 독립 운동에 참여했다. 교회 전도사로도 활동했다.
1906년 공옥학교 교사를 거쳐 1907년 교감 이회영, 교사 이동녕 등과 신민회를 결성했다. 같은 해 이준과 함께 헤이그 특사 사건을 지원했고, 메서디스트 교회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같은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
1912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병으로 보석되었으나, 이후 영면했다. 위패는 국립묘지에 모셔져 있다.
2.2. 교육 및 신민회 활동
1906년, 같은 교회에서 설립한 공옥학교에서 교사를 맡았고, 1907년 교감 이회영, 교사 이동녕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했다. 같은 해, 이준과 함께 같은 교회 지하에서 헤이그 특사 사건을 성공시킨 메서디스트 교회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같은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
2.3. 헤이그 특사 지원과 목회 활동
1907년, 이준과 함께 같은 교회 지하에서 헤이그 특사 사건을 지원하였는데, 이는 대한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같은 해, 메서디스트 교회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같은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
2.4. 105인 사건과 투옥
1912년 일제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이후 병으로 인해 보석되었다.
2.5. 사망과 추모
전덕기는 1912년에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이후 병으로 보석되었으나 영면하였다. 그의 위패는 국립묘지에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