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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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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투종족은 영국이 식민지 시대 인도에서 특정 민족이나 집단을 군인으로 선호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영국은 1857년 인도 대반란 이후 인도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용맹하고 복종적인 특성을 가진 '전투종족'을 선발했다. 이 이론은 특정 종족에게 군인으로서의 자질이 선천적으로 부여된다고 주장하며, 라지푸트, 시크교도, 구르카 등이 이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지적 능력 부족을 이유로 장교 모집에는 적용되지 않았고, 세계 대전 중 병력 부족으로 인해 비전투종족에서도 징집이 이루어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독립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 이론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으나, 군대 내 인력 구성에 그 영향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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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종족
개요
"1890년대 시크교도 자트족 군인."
정의전투 민족 이론은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영국군이 군인으로 모집하기 위해 사용했던 인종적 및 지역적 그룹을 분류하는 데 사용된 이론이다.
역사적 맥락
배경1857년 세포이 항쟁 이후, 영국은 인도 군대에 대한 모집 정책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론의 발전전투 민족 이론은 19세기 후반에 공식화되었으며, 특정 카스트와 부족이 다른 카스트와 부족보다 "자연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믿음에 근거했다.
주요 인물로버츠 경과 같은 영국 관리들은 이 이론을 옹호했으며, 인도 군대 내에서 특정 그룹의 대표성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징
선택 기준군 복무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자질에는 용기, 충성심, 신체적 힘, 공격적인 기질 등이 있었다.
지정된 그룹전투 민족으로 간주되는 그룹에는 시크교도, 구르카족, 파슈툰족, 라지푸트족, 자트족 등이 포함되었다.
이론적 근거이 이론은 특정 그룹이 과거의 군사적 전통과 전쟁에 참여한 역사로 인해 군 복무에 적합하다는 주장에 근거했다.
영향 및 결과
모집 패턴영국군은 전투 민족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군대를 적극적으로 모집했으며, 이로 인해 이러한 지역의 군인 수가 불균형적으로 많아졌다.
군사적 효과전투 민족 이론은 영국령 인도 제국 군대의 효과에 기여했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지역적 불균형을 영속화시키기도 했다.
사회적 영향이 이론은 인도 사회 내에서 특정 그룹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을 강화했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느껴진다.
비판 및 논란
비판전투 민족 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특정 카스트와 지역을 선호하는 인종차별적 개념으로 널리 비판받았다.
논란이 이론은 인도 사회 내에서 불평등을 영속화시키고 특정 그룹에 대한 차별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안적 관점일부 학자들은 이 이론이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기 위한 분할 통치 전략의 한 형태였다고 주장한다.
유산
현대적 관련성전투 민족 이론은 인도 군대의 구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특정 지역의 군인 수가 불균형적으로 많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적 인식이 이론은 인도 사회 내에서 특정 그룹에 대한 고정관념을 영속화시켰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느껴진다.
학문적 연구전투 민족 이론은 역사가와 사회학자들이 식민지 시대 인도 사회와 정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주제로 남아 있다.

2. 전투종족 개념의 성립과 기준

영국은 1857년 인도 대반란을 겪으면서 '전투종족' 개념을 만들었다. 이 개념은 특정 종족이 전사로서의 자질을 타고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13] 영국의 장군이자 학자인 조지 맥문은 영국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지면 식민 지배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여, '전투종족'으로 분류된 부족만 군대에 모집하는 정책을 시행했다.[14]

그러나 영국은 '전투종족'을 용맹하지만 지적으로는 부족하고, 권위에 복종적이라고 여겼다.[15][2][12] 이 때문에 장교는 '전투종족'에서 선발하지 않았고, 사회 계급과 충성도를 기준으로 모집했다. 프레데릭 슬레이 로버츠에 의해 대중화된 이 개념은 세계 대전 중 병력 부족을 야기하여 '비전투종족'에서도 모집하게 만들었다.[16]

이 이론은 세포이 반란 당시 영국에 충성한 라지푸트, 자트, 파슈툰, 시크, 구르카 등을 '전투종족'으로 분류하고, 반란에 가담한 병사들의 입대를 억제하는 데 이용되었다.[18] 일부 학자들은 영국이 전투 병사의 이미지를 과장했다고 주장하며,[19] 리차드 슐츠는 이 개념이 인도인들을 분열시키고 지배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비판했다.[20]

2. 1. 영국이 제시한 전투종족의 기준

영국은 1857년 인도 대반란 이후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지만 다른 지역은 쉽게 제압했다. 영국 관리들은 사냥에 익숙하거나, 언덕이나 산악 지역의 농업 문화를 가진, 분쟁의 역사가 있는 '전투종족'을 찾았다. 다른 이들은 '안락한 삶'을 산다는 이유로 제외되거나, 선동자로 낙인 찍혔다.[12] '전투종족' 교리는 유용한 군인을 만드는 자질이 특정 종족에게 출생 시 상속되며, 나머지 인도 종족은 전사가 될 수 있는 현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했다.[13]

영국 장군이자 학자인 조지 맥문 중장(1869–1952)은 그의 저술에서 "영국을 섬기는 것이 불경하고 수치스럽다는 감정이 생기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구조는 총 한 방 쏘지 않고 칼을 뽑지 않은 채 카드집처럼 무너질 것이다"라고 언급했다.[14] 이를 위해, 영국은 '전투종족'으로 분류된 부족들만 모집하는 정책을 세웠고, 이 관행은 영국령 인도 제국의 육군 모집 매뉴얼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영국은 '전투종족'을 용감하고 강하다고 여겼지만, 지적으로 열등하며, 대규모 군사 편성을 지휘할 수 있는 주도력이나 리더십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15] 또한 그들은 정치적으로 복종적이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2][12] 이러한 이유로 전투종족 이론은 그들로부터 장교를 모집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모집은 사회 계급과 영국령 인도 제국에 대한 충성도를 기반으로 했다. 한 자료는 이를 "가짜 민족학적" 구성이라고 부르며, 이는 프레데릭 슬레이 로버츠에 의해 대중화되었고, 세계 대전 동안 병력 수준에 심각한 부족을 초래하여 '비전투종족'에서 모집하도록 강요했다.[16] 윈스턴 처칠은 이 이론이 전쟁 중에 폐기된 것에 대해 우려했으며, 인도 최고 사령관에게 "가능한 한 전투종족에 의존해야 한다"고 썼다고 한다.[17]

이 이론의 비판자들은 1857년 인도 반란이 영국이 이를 믿게 만드는 데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 동안 세포이 망갈 판데이가 이끄는 벵갈 토착 보병대 병사들이 영국에 반란을 일으켰다. 마찬가지로, 치타공의 라잡 알리 반란 역시 영국군에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라지푸트, 자트, 파슈툰, 시크, 구르카, 쿠마우니 및 가르왈리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고 영국군 편에서 싸웠다. 그때부터 이 이론은 이러한 '종족'들 중에서 모집을 가속화하는 데 최대한 활용되었으며, 전쟁 중 반군과 연합했던 '불충' 병사와 고위 카스트 힌두교도의 입대를 억제했다.[18]

헤더 스트리트와 같은 일부 저자들은 군 당국이 연대 역사를 쓰고, 킬트를 입은 스코틀랜드인, 쿠크리를 휘두르는 구르카, 터번을 쓴 시크교도를 수많은 그림에서 칭송함으로써 전투 병사의 이미지를 부풀렸다고 주장한다.[19] 미국의 작가 리차드 슐츠는 전투 종족 개념을 영국이 자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도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지배하려는 기발한 노력이라고 주장했다.[20]

3. 영국 식민지 시대 전투종족 목록

대영 도서관에 수록되어 있는 "라지푸트족" (불명, c.1860)


제1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에 도착한 제15 시크 연대를 묘사한 프랑스 엽서. 엽서에는 "독일 불량배를 처벌하기 위해 행진하는 인도의 신사들"이라고 적혀 있다.


제14 머레이 자트 랜서 ''(사령관), c. 1909, AC 러베트(1862–1919)''
]

영국이 인도 아대륙에서 지정한 전투 종족은 다음과 같다.[55]

전투 종족
아히르[56]
아완족[57]
브후미하르 브라민 (반란 이후 제외됨)
번트
칸드라세니야 카야스타 프라브후
단가르족 (학타르)[58]
드훈드 아바시스
카트리
도그라[59]
가크하르족
가르왈리 족[60]
구만
구르자르[55]
구르카[61]
자누아[55]
자트족[62]
캄보즈/캄보흐.[63]
코크하르[55]
코다야 족
쿠마우니족s[64]
마하르족
싱할라인
마라타[65]
모히알족
나이르족[66][67][68][69] (반란으로 사라짐)
파슈툰족[55]
파라스하르족 (반란 이후 제외됨)
콰임크하니족
로르
레디족[70]
라지푸트족[62]
사이니족s[71][72]
시크족[73][74]
수드한
타놀리족[75][76]
타르칸족
야다브족



영국은 인도 아대륙에서 지정한 전투 종족에는 1900년 펀자브 토지 양도법의 조항에 따라 공식적으로 "농업 부족"으로 지정된 일부 집단이 포함되었으며, 행정부가 1925년에 목록을 작성했을 때 이 용어들은 동의어로 간주되었다.[21][22]

1925년 "농업 부족"으로 지정된 전투 종족
아히르
아라인
아완
발로치
도그라
가카르
구르자르
잔주아
자트
캄보
코카르
라바나
마톤
무갈
사이니
파탄
라지푸트
로우더
쿠레시
시알
사이예드



다양한 시기에 전투 종족으로 분류된 공동체는 다음과 같다.[23][24][25]

다양한 시기에 전투 종족으로 분류된 공동체
수단 파탄
부미하르 브라만[26]
가르왈[27]
고다스[28]
구르카[29]
쿠마온[30]
쿠르미[31]
마라타[32]
모할 브라만[33]
아우드의 농업 브라만[34][35]
나가족[31]
무쿨라토르[31]
나이르[36]
벨랄라[37]


4. 전투종족 이론의 비판과 폐기

전투종족 이론은 1857년 인도 대반란을 겪은 영국이 인도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특정 '종족'만이 전투에 적합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이론은 세계 대전을 거치며 병력 부족 문제에 직면하면서 폐기되었으며, 윈스턴 처칠은 이 이론의 폐기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17]

4. 1. 비판

영국은 1857년 인도 대반란 이후 일부 지역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면서, '전투종족' 개념을 통해 통제력을 강화하려 했다. 이들은 사냥, 분쟁의 역사, 언덕이나 산악 지역의 농업 문화 등을 가진 종족을 '전투종족'으로 간주했다.[12] 반면, '안락한 삶'을 사는 종족이나 선동자로 여겨지는 이들은 제외되었다.[12] '전투종족' 교리는 특정 종족이 전사로서 유용한 자질을 타고나며, 다른 인도 종족은 그렇지 않다고 가정했다.[13]

조지 맥문 중장(1869–1952)은 영국을 섬기는 것이 불경하고 수치스럽다는 감정이 생기면 영국의 구조가 무너질 것이라 언급하며,[14] '전투종족'으로 분류된 부족들만 모집하는 정책을 세웠다.

영국은 '전투종족'을 용감하고 강하다고 여겼으나, 지적으로는 열등하며 대규모 군사 편성을 지휘할 주도력이나 리더십 자질이 부족하다고 보았다.[15] 또한 이들을 정치적으로 복종적이고 권위에 순종적이라 여겼다.[2][12] 이러한 이유로 장교 모집은 사회 계급과 영국령 인도 제국에 대한 충성도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프레데릭 슬레이 로버츠에 의해 대중화된 "가짜 민족학적" 구성으로 불리기도 하며,[16] 세계 대전 동안 병력 부족을 초래하여 '비전투종족'에서 모집해야 했다.[16] 윈스턴 처칠은 이 이론이 폐기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17]

이 이론의 비판자들은 1857년 인도 대반란이 영국이 이 이론을 믿게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망갈 판데이가 이끄는 벵골 토착 보병대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치타공의 라잡 알리 반란도 영국군에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라지푸트, 자트, 파슈툰, 시크, 구르카, 쿠마우니, 가르왈리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고 영국군 편에서 싸웠다. 이로 인해 영국은 이들 '종족'에서 모집을 가속화하고, 반군과 연합했던 병사나 고위 카스트 힌두교도의 입대를 억제했다.[18]

헤더 스트리트 등의 저자들은 군 당국이 연대 역사를 쓰고, 킬트를 입은 스코틀랜드인, 쿠크리를 휘두르는 구르카, 터번을 쓴 시크교도를 칭송하며 전투 병사의 이미지를 부풀렸다고 주장한다.[19] 미국의 작가 리차드 슐츠는 전투 종족 개념을 영국이 인도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지배하려는 기발한 노력이라고 비판했다.[20]

5. 독립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의 상황

인도와 파키스탄은 독립 후에도 영국 식민지 시절의 "전투 종족" 이론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 실제 군대 구성에서 특정 지역 및 종교 집단의 과대 대표 현상이 나타났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이 이론을 부인했지만, 인도군의 경우 펀자브 지역 출신, 특히 시크교도와 펀자브 무슬림이 많이 모집되었고, 1970년대 초반에는 "전투 계급" 부대의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39] 하리아나, 히마찰프라데시, 펀자브 주는 현대 인도군에서 여전히 과도하게 대표되고 있다.[40]

인도 육군의 주별 구성[40]
국가 인구의 %, 2011년[41]인도 육군의 %, 1968-1971년인도 육군의 %, 1996-1997년
우타르 프라데시 (우타라칸드 포함)17.315.620.6
라자스탄5.77.07.9
펀자브2.315.37.6
마하라슈트라9.37.67.3
비하르 (자르칸드 포함)11.35.17.0
서벵골7.53.65.7
하리아나2.17.85.1
안드라 프라데시 (텔랑가나 포함)7.04.14.9
타밀나두6.05.14.9
히마찰 프라데시0.64.74.4
잠무 카슈미르 (라다크 포함)1.02.93.7
카르나타카5.12.83.7
케랄라2.85.43.1
마디아 프라데시 (차티스가르 포함)8.15.13.0
기타 모든 주 및 연방 직할지 결합13.97.911.1



인도군 내 종교별 구성에서도 시크교도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40]

인도 육군의 종교별 추정 구성[40]
종교국가 인구의 %, 2011년[45]인도 육군의 추정 %, 1997년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파키스탄의 경우, 펀자브인이 군대의 다수를 차지하고 벵골인은 소수였다. 이러한 불균형은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 벵골인들의 불만을 야기했고, 이는 방글라데시 독립의 한 원인이 되었다.[39] 파키스탄 군부 내 "전투 종족" 이론의 지속적인 영향력은 1965년과 1971년 전쟁에서 인도를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오판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48][49][53][54]

오늘날 파키스탄 군대 징집은 여전히 "전투 종족" 이론의 편견을 반영하여, 파슈툰족과 펀자브인이 과도하게 대표되고 발루치족과 신드족은 덜 대표된다.[11]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11]

5. 1. 인도

인도는 독립 후 "전투 종족" 이론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38] 대영 인도 육군에서 가장 큰 단일 모집은 펀자브에서 나왔으며, 특히 시크교도와 펀자브 무슬림을 선호했다. 그 결과, 독립 당시 신생 인도군 고위 장교의 90% 이상이 신생국 인구의 5%에 불과했던 동부 펀자브 출신이었다.[38] 대표성이 없는 군대의 불안정한 잠재력을 인식한 자바할랄 네루 총리는 곧 인도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군대에 대한 대규모 개혁"을 촉구했다.[39]

그러나 대부분의 카스트 또는 부족의 모집 제한이 해제되었지만, 이전의 "전투 종족"이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모집은 점진적으로 강화되었고, 그 결과 1970년대 초반에 인도는 "전투 계급" 부대의 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주로 시크교도와 도그라를 모집하는 펀자브 연대는 독립 이후 5개 대대에서 29개 대대로 증가했으며, 주로 자트족과 라지푸트족으로 구성된 라지푸타나 소총대는 같은 기간 동안 6개 대대에서 21개 대대로 증가했다.[39]

이전 동부 펀자브를 구성했던 세 주 - 하리아나, 히마찰 프라데시, 펀자브 - 는 현대 인도군에서 여전히 과도하게 대표되고 있다.

인도 육군의 주별 구성[40]
국가 인구의 %, 2011년[41]인도 육군의 %, 1968-1971년인도 육군의 %, 1996-1997년% 변경
우타르 프라데시 (우타라칸드 포함)17.315.620.6
라자스탄5.77.07.9
펀자브2.315.37.6
마하라슈트라9.37.67.3
비하르 (자르칸드 포함)11.35.17.0
서벵골7.53.65.7
하리아나2.17.85.1
안드라 프라데시 (텔랑가나 포함)7.04.14.9
타밀나두6.05.14.9
히마찰 프라데시0.64.74.4
잠무 카슈미르 (라다크 포함)1.02.93.7
카르나타카5.12.83.7
케랄라2.85.43.1
마디아 프라데시 (차티스가르 포함)8.15.13.0
기타 모든 주 및 연방 직할지 결합13.97.911.1



명시적인 민족 또는 카스트 기반의 요구 사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군사 편성에 남아 있다. 가장 주목할만한 예는 인도 육군의 가장 선임이자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가장 권위 있는 부대인 대통령 경호대인데, 이 부대는 시크교도, 자트족, 라지푸트족에서 동일한 비율로만 모집한다. 인도 정부는 이른바 "계급 구성" 제한을 의식 분견대의 "기능적 요구 사항"이라는 근거로 방어했는데, 즉 "의례적 의무는 위엄과 투사를 위해 공통적인 키, 체격, 외모 및 복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42]

시크교도는 무술 종족 이론이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에서 계속 과도하게 대표되고 있다. 군인의 종교적 데이터는 수집되지 않지만, 1997년 초 정부는 각 종교의 군대 내 종교 지도자 수를 로크 사바에 공개했는데, 이는 각 종교의 군대 내 신도의 수와 비례한다고 여겨지며, 군대의 10% 이상이 일반 인구의 2% 미만인 시크교도임을 나타냈다.[40] 특히 시크 연대와 시크 경보병은 파업 부대로 널리 사용되는 약 20개 대대로 구성된 동질적인 연대이며,[40] 시크 연대는 인도 육군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연대이다.[43] 시크교도는 인도 육군 장교단의 최대 20%를 차지한다.[40]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크교도들은 군대 내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40] 아난드푸르 사히브 결의안은 "육군 내 그들의 현재 강점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44] 자스완트 싱 불라르 소장은 종교 할당량으로 인해 시크교도가 군대에 입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시크 반군과 해외 시크교도 이주에 연료를 공급했을 수 있다고 불평했다.[40] 조긴더 싱 딜론 중장은 해외 이주로 인해 13,000명으로 측정되는 장교 부족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교육 기준 및 시험 점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불평했다.[40]

인도 육군의 종교별 추정 구성[40]
종교국가 인구의 %, 2011년[45]인도 육군의 추정 %, 1997년비율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5. 2. 파키스탄

독립 당시, 새로운 파키스탄군은 "전투 종족" 이론의 제도적 유산을 반영했지만, 더 이상 공식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영국은 펀자브인을 선호했고, 벵골인 (신생 국가의 단일 최대 집단)이 1857년 반란 이후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실이 결합되어, 인도보다 훨씬 더 민족적으로 불균형한 군대가 구성되었다. 1947년 파키스탄 육군 창설 당시, 새로운 국가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펀자브가 육군 인원의 72%를 차지했고, 전체 인구의 55%를 차지하는 동벵골은 사실상 대표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기갑군에는 파키스탄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신드, 발루치스탄 또는 벵골 출신의 무슬림이 한 명도 없었다.[11]

이러한 불균형은 특히 동파키스탄벵골인 사이에서 긴장을 야기했는데, 그들은 서파키스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이론, 즉 펀자브인과 파슈툰족에 비해 자신들이 '전투적 성향'이 없다고 믿는 것에 굴욕감을 느꼈다.[46] 파키스탄 작가 하산 아스카리 리즈비는 파키스탄 육군에서 벵골인 인력의 제한적인 채용은 서파키스탄인들이 "전투 종족 이론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47] 그 결과, 1955년 파키스탄 육군의 908명의 장교단 중 894명이 서파키스탄 출신이었고, 동파키스탄 출신은 14명에 불과했다. 따라서, 1958년 파키스탄 쿠데타 이후, 동파키스탄 벵골인의 군 지도부 배제는 국가 정치 지도부 배제로 이어졌다. 이는 동파키스탄인들의 파키스탄 정부에 대한 소외감을 심화시켰고, 결국 방글라데시 독립으로 이어졌다.[39]

파키스탄군 지휘부 내에서 이 이론의 지속적인 영향력은, 그 병력의 대부분이 전투 종족 출신이었으며, 특히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전, 그들이 전쟁에서 인도를 쉽게 물리칠 것이라는 정당화되지 않은 자신감에 기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48][49] 이러한 전투 우월성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50][51][52] 적의 수적 우세는 극복될 수 있었다.[53] 파키스탄의 국방 작가들은 1971년의 패배가 부분적으로 잘못된 '전투 종족' 이론에 기인하며, 이 이론만으로 벵골 반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를 낳았다고 지적했다.[54] 작가 스티븐 P. 코헨은 "전투 종족' 이론을 절대적인 진리의 수준으로 격상시킨 것은 파키스탄 정치에 국내적 영향을 미쳤으며, 안보의 다른 측면을 소홀히 하는 데 기여했다."라고 언급한다.[53]

오늘날 파키스탄에서 군대 징집은 여전히 "전투 종족" 이론의 편견을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솔트 레인지 출신의 파슈툰족과 펀자브인이 과도하게 대표되고 발루치족과 신드족은 덜 대표된다.[11]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고 군대를 더욱 대표적으로 만들기 위한 몇 가지 노력이 있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신드와 발루치스탄의 징집 기준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11] 2007년 군 간 공보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군대의 구성이 국가 인구 통계에 더 가까워지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육군에서 펀자브인의 비율은 2001년 71%에서 2007년 57%로 감소했으며, 2011년까지 5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신드족의 비율은 15%에서 17%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발루치족은 2007년 3.2%에서 2011년 4%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보고서는 2011년까지 아자드 카슈미르와 길기트-발티스탄 출신 군인의 비율이 0%에서 9%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11] 그러나, 예를 들어, 신드 출신의 신규 징집병의 불균형적으로 큰 부분이 신드족보다는 파탄족(파슈툰족)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비평가들은 이러한 수치가 인종 그 자체가 아닌 지방 출신을 측정함으로써 징집의 지속적인 편견을 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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